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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4)화 (194/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4화

“혈귀들을 내버려 두더라도 산을 벗어날까요?”

단목천기가 고개를 끄덕이곤 외쳤다.

“길을 터야 한다!”

“산을 빠져나간다! 길을 터라!”

이끄는 자들은 모두 죽었고 남아 있는 것들은 이성을 잃은 채 달려들기만 하는 놈들인지라 모두 서슴지 않고 외치며 행동했다.

그리고 산길을 막아선 혈귀들을 조금씩 밀어내는 순간 이글거리는 불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불길이 그들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연기가 하늘에 시커멓게 들어차고 열기와 불티가 그들의 뺨을 할퀸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이 잡귀놈들아-! 비켜라!”

단목천기의 분노에 찬 사자후에 혈귀들이 비틀거렸다.

“서둘러라! 아이들의 마차부터 빠져나가야 한다!”

혈귀들은 등 뒤가 불타고 있든 말든, 그저 제 눈앞의 상대를 죽이려고 했다.

단목천기는 그들을 쉼 없이 베어 넘기며 단목현요에게 명령했다.

“현요 네가 마차를 몰아 빠져나가거라. 이대로 쭉 달리면 모용세가가 나올 것이다!”

단목현요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는 혈귀를 막으며 뒤를 따라 빠져나간다. 길을 열어야 한다!”

“마차가 지나갈 길을 열어야 한다!”

천랑대 대주가 후창하며 외쳤다. 그의 얼굴이 전투의 열기와 흥분으로 이글거렸다.

단목련의 말은 무시하고 싶어도, 저렇게 어린애가 저렇게 잘 알 리가 없다고 모른 척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의 앎, 한 발 넓어진 지평들은 충분히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는 걸, 대주는 깨달은 차였다.

련이 말해 준 것들, 그래서 자신이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했던 것들, 얼기설기 드넓게 펼쳐진 것들이 이번 전투를 통해 단숨에 단단히 조여들며 빙궁이라는 무늬를 지닌 뚜렷한 비단을 직조해 내는 과정을 시시각각 느끼는 것은 경이 그 자체였다.

지금 빙궁의 무사들 가운데 다쳐 쓰러진 이들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는 것 또한 그 덕이었다.

혈귀들이 수없이 밀려들어 지치고 힘들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차를 지키던 무사들은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길을 트려고 했다.

“어, 어어?”

갑자기 눈앞의 한 혈귀가 검로를 틀어 옆의 혈귀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었다.

동료에게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혈귀가 반격할 틈도 없이 맥없이 고꾸라졌다.

“죽…… 어!”

“죽어! 배신자는 죽어야 해!”

“약속을 지켜라!”

“맹세를…… 지켜…… 크윽!”

“뭐, 뭐야! 대주님! 부대주님! 놈들이 이상합니다!”

마차를 가장 맹렬하게 공격하던 혈귀들이, 갑자기 헛소리를 하더니 서로를 찌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방어는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상대방을 공격하기만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 끼치게 했다.

그중에 몇몇은 왈칵 피를 쏟더니 칼을 거꾸로 쥐고 자결을 하기도 했다.

이 여름에 피가 식고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대주와 부대주는 이런 일에 흔들리지 않았다.

“놈들이 미쳐 날뛴다면 차라리 잘됐다!”

“이놈들아! 넋 놓지 마라! 기회다, 길을 터라!”

“엇! 네! 네네!”

마차 근처에서부터 시작된 혈귀들의 광증은 서서히 다른 혈귀들에게까지 번져 나갔다.

적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니 포위망이 붕괴되는 건 금방이었다.

불길은 완전히 잡을 수 없었지만 더는 지체할 수도 없었다. 단목현요는 망설이지 않고 마차의 마부석에 올라탔다.

“가거라, 마차를 지켜야 한다!”

“예!”

천랑대원 두 사람이 마차 바로 옆에 매달리며 아직 제정신인 혈귀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베어 넘기는 사이에 단목현요가 힘차게 고삐를 휘둘렀다.

“이럇!”

단목현요와 마차가 간신히 혈귀들을 뿌리치며 빠져나갔다. 그사이에 일부는 마차를 쫓아가고, 남은 혈귀들이 그 자리에 빼곡히 들어찼다.

일부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또 일부는 그저 눈앞에 있는 상대의 피와 살을 빼앗겠다는 의지로만 가득 찬 채 움직였다.

“이놈들이 다 어디서 온 것인지, 다 누구였는지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단목천기는 칼을 고쳐 쥐었다.

혈귀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 공멸하는 것, 이와 같이 소름 끼치는 일이라면 단목천기는 최근에 들은 일이 있었다.

바로 경항운련에서였다. 그때 혈귀들과 마주했던 아이들이 증언했었다. 몰려들던 혈귀들이 갑자기 서로를 찌르기 시작했었다고.

그때와 지금, 공통점이라면 딱 하나 있다.

바로 단목세가의 아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무슨 원리로, 어떤 경위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목천기는 그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무림맹이든 무엇이든, 백도 무림이든 무엇이든.

욕망에 협이라는 이름이 덧씌워지면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가 언제나 그 협의 최전선에 서 있었기에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너희는 한 사람도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 이 산이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니.”

* * *

— 히이이잉!

말들은 울부짖으며 불길을 헤치고 달려 나갔다. 특별히 훈련된 말이 아니었다면 무사들이 희생 끝에 혈귀들을 베며 길을 열었더라도 불길을 뚫고 갈 수는 없었을 터였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단목성이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불길을 뚫고 나갑니다.

불길을 피하는 데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지수 46 / 240 (5▼)

불길을 피하는 데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지수 41 / 240 (5▼)

불이 번지는 와중에 여럿을 이끌고서 길을 통과하니,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선경이 알려 주었다. 련이 일주일간 닥닥 긁어모은 행운이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 그르릉…….

련은 품 안의 백련을 바쁘게 쓰다듬었다. 이 작은 고양이가 격변하는 상황 탓에 불안해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성아야, 괜찮을 거야.”

“마, 맞아.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게.”

단목성이 창백한 얼굴, 떨리는 목소리로 련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나가서 싸우고 싶었지만.’

칼날과 비명은 지긋지긋했고 아무런 힘도 못 되는 상황은 진절머리 났다.

그러나 피가 날 만큼 입술을 꽉 깨물고 마차 안에서 몸을 사린 건, 자신이 나서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 어린 몸으로 아무리 실력을 발휘해도 한계가 있을 테다.

자신과 성이 마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사들은 자신의 안위에 앞서 두 아이를 지키려 할 테고, 혈라곡 혈귀 다수를 상대로 그러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불이 너무 빨리 번져. 비라도 왔으면 좋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폭우라도 쏟아지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앗…….”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들어간 것인지 눈이 따끔거려 비비려는데 화륜이 단번에 그 손을 낚아챘다.

“왜요? 어디 아파요?”

“아니 그냥, 눈이 조금 간지러워서…….”

“그래도 비비지 마요.”

화륜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역시 작은 일에도 날을 세우는 것이 느껴졌다.

련은 억지로 웃으며 화륜에게 잡힌 손을 빼내 그의 손을 꽉 쥐었다.

“너무…… 우왓, 륜아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마차가 크게 들썩였다. 그사이에 화륜은 어색하게 손을 빼내곤 대답했다.

“……걱정하는 거 아녜요.”

그러나 단목현요가 모는 마차도 오래가지 못했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것과 함께 마차가 점점 더워지는 것 같더라니, 곧 마차가 멈춰서고 단목현요가 문을 벌컥 열었다.

“어, 어머니!”

온몸에 피칠갑을 한 단목현요가 서둘러 아이들을 끌어냈다.

“마차에 불이 붙었다! 얼른 나와야 해!”

단목성이 먼저 내리고 단목현요와 함께 온 무사가 소청을 들쳐 업는 사이, 화륜이 한쪽 팔에 백련을 챙겨 들고 다른 손으로는 련의 손을 잡고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불붙은 산속을 빠져나오면서 마차에 번진 불길이 더욱 크게 번졌다.

단목현요가 마차에서 말의 고삐를 풀어 주곤 마차에서 멀리 떨어졌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마차에서 시커먼 재가 치솟아 올랐다.

련이 황급히 화륜의 입을 가린 채 정화를 일으키는 사이에 남은 말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확인한 단목현요가 련에게 다가왔다.

“련아야, 북해까지 오는 길에 말 타는 법은 배웠지?”

단목현요가 눈을 아프게 찌르는 핏물을 닦아 내며 애써 다정하게 물었다. 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현요는 련과 화륜을 가리키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너희 둘이 같은 말을 타고, 성아는 뒤에 소청을 싣고 가자. 나와 천랑대가 경공으로 함께 달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어머니가 말에 타시면…….”

단목성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단목현요는 고개를 흔들고는 우선 소청부터 말 위에 싣고 단단히 고정했다. 부상당한 사람에게는 무리이겠으나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단목성을 안아 들고 말에 태우려는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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