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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6)화 (196/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6화

지금 당장 홀로 달리는 것도 버거우면서 련을 업고서라도 가려고 한다. 고작 몇 달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적의 눈앞에 먼저 서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시간 속에서 단목성은 단목비보다 몇 년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가 자신의 사촌 동생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이유들로 동생을 지키다 죽는 걸 선택했다.

힘이 없어도, 여유가 되지 않아도, 버겁고 고되고 두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집으로 가자, 성아야. 가서…… 고모한테 예쁜 옷 골라 달라고 하자.”

단목성은 이런 위중한 때에 이런 짓이나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고 웅얼거리다가 련을 마주 안았다.

그 팔이 파르르 떨리고 있어서, 련은 한 번 더 힘을 준 다음에야 놓아주었다.

단목성의 눈이 조금 빨갰다. 단목성이 애써 얼굴을 감추려고 하는 사이에 화륜이 입술을 삐죽였다.

“다 했어요? 그럼 이만 가요.”

“우리 찹쌀 경단도 해야지!”

“아 진짜! 저 해 달라는 거 아녔다고요!”

화륜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련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한번 꼭 안겼다가 겨우 풀려났다.

“이 누이랑 같이 집까지 돌아가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

련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앞서나갔다. 뒤따라가는 화륜의 얼굴 위로 다소 복잡한 기색이 어렸으나 련이 뒤를 돌아본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곧 없어졌던 길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산의 가장자리를 타고 가는 길이라 한쪽이 가파른 절벽이긴 했으나 조그만 마차 한 대가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불이 자꾸 번지는데 비라도 왔으면…….”

그 순간 눈이 또 따끔했다. 련이 눈을 비비려니 한 걸음 뒤에 있던 화륜이 단숨에 손을 잡아챘다.

“왜요? 눈에 뭐 들어갔어요?”

“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순간이었다.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 수치 : 20/240 (20▼)

‘뭐? 갑자기 왜?’

오는 길 내내 애써 벌어온 행운 수치가 갑자기 왜 이렇게 큰 폭으로 떨어진단 말인가?

련은 내장이라도 베인 사람처럼 허망해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라…… 비구름…… 이?”

하늘에서부터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구름이 회오리 모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산신이 구름을 끌어당기는 듯 신묘한 모양새였다.

련의 심안이 천천히 깜박거렸다.

아마 비구름은 련이 비를 소망한 시점부터 몰려오기 시작해서, 완연히 비를 내릴 준비가 되었을 때 행운을 차감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행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행운까지 쓰여야만 했던 것에 가깝다.

련은 자신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정말…… 청룡이 된다고 해도 뭐라하지 않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정말 됐구나, 홍린…….’

본디 수목과 비바람, 천둥과 번개를 관장하는 것이 청룡 아니던가.

흑월의 깃털 덕에 불길은 련의 뺨을 할퀴지 못했고 홍린의 비늘 덕에 오늘 산속 지리를 꿰뚫어 보며 길을 헤쳐 나와서 비구름까지 불러온 것이었다.

련이 잠시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화륜이 련을 홱 돌아보았다. 반쯤 노려보는 눈빛이었다.

‘방금 또 뭔가 했어요?’

라고 묻고 있는.

련은 황급히 양손을 휘휘 흔들었다.

“음, 일단 얼른 가자! 비가 쏟아지면 정말 다행이지만 우린 큰일이니까…….”

비가 오길 간절히 기원했을 때는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기에, 비를 피할 데를 찾아가려는 순간이었다.

꽈르릉!

갑자기 산 반대편에서 천둥소리 같은 울림이 퍼져 나오더니 위에서부터 돌멩이들이 요란하게 굴러오기 시작했다.

쩍! 쩌적!

그리고 고개를 들자 저 산 위쪽 벼랑에서 돌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 언뜻 보였다.

‘고모네 싸움이 격렬했나?’

멀쩡하던 산에서 갑자기 산사태가 일어나려고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피해야 해!”

돌이 우수수 떨어질 텐데 넋 놓고 있을 새가 없었다.

련은 우선 두 아이의 손을 양쪽에서 낚아채곤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계속 심안을 썼더니 눈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앞에도 뒤에도 낙석…… 저기다!’

꺾어지는 산길 끝자락, 두꺼운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안에 작은 굴과 같은 모양새를 만들고 있는 게 보였다.

“뛰자!”

련이 어딜 목표로 하는지 바로 알아챈 화륜은 두 사람을 떠밀면서 휙 꺾어낸 나뭇가지로 위에서 떨어지는 돌멩이들을 쳐 내며 둘의 뒤에 따라붙었다.

후두둑!

타다닥!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 수치 : 15/240 (5▼)

그리고 세 아이가 나무뿌리 밑으로 넘어지듯 굴러간 순간, 바로 그 위로 거대한 낙석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 * *

“아니…… 무슨, 뭐, 뭐야?”

단목현요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백사검은 충분히 위협적인 상대였으나 떨어지는 낙석 사이로 갑자기 멈칫하는 틈을 타서 곧장 검을 찔러 넣었다.

복부에 박힌 검에 비명을 지를 법도 했는데 백사검은 꿈쩍도 하지 않고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그 칼을 움켜쥐었다.

날을 맨손으로 잡았으니 그 손끝으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니…….

“죽여야…… 해…….”

“뭐? 너를?”

실컷 긁어 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그 순간 백사검의 눈이 핏빛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래!”

“뭐? 진짜?”

“그래!”

광기에 절어 득득 긁히는 목소리였다. 단목현요도 소름이 쭈뼛 돋았다.

“이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배신자는 죽어야 해…….”

단목현요가 칼을 빼내려고 하는데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 것인지 조금 빠졌다가, 백사검이 당기는 대로 다시 들어갔다.

칼이 더 깊숙이 박혀 자해를 하는 꼴이었다.

“현요 아가씨, 조금 전에도 혈귀들이 이러다 저들끼리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단목현요는 검병을 쥔 손에 힘을 준 채 백사검을 노려보았다.

혈라곡의 혈귀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나 뭐라도 캐낼 수만 있다면!

“배신자는 죽어야 한다고? 누가? 누가 배신자냐? 뭘, 누굴 배신한 거야?”

순간 백사검이 울컥 피를 토했다. 그와 동시에 백사검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혈루에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백사검이 뒷걸음질 쳤다. 검이 반쯤 뽑혀 나갈 찰나 그의 눈빛에 다시 핏기가 번졌다.

“나는…… 죽어야 해……!”

“네가 배신자라서? 배신자가 누구냐?”

“피의 주인을 배신한 자들…… 맹세를 어긴 자들…….”

“맹세? 무엇을 맹세했느냐?”

“맹세…… 지켜야 한다…….”

“지켜? 무엇을? 맹세를?”

“주인을…….”

“곡주 말하는 것이냐? 혈라곡주?”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어야 해! ……죽여야 해!”

백사검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를 기세인지라 단목현요가 내공까지 운용해 검을 뽑았다. 피가 무서운 기세로 솟구쳤지만 백사검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피해!”

단목현요의 외침과 동시에 천랑대 무사들도 황급히 백사검의 공격을 피했다.

이런 공력이 아직도 남아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로 강맹한 검기가 솟구쳐 주위를 중구난방으로 후려쳤다.

콰아아앙!

그리고 마지막으로 휘두른 공격이 산과 부딪혀 하늘을 깨부수는 듯한 소리를 낸 것과 동시에, 선천지기(先天眞氣)까지 모두 끌어다 쓴 백사검이 피를 한 번 더 토하곤 그대로 절명했다.

“이게…… 무슨…….”

격렬했던 대치의 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허망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단목현요와 무사들이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낯선 노인 두 사람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그들 앞에 내려섰다.

황급히 검을 고쳐 쥐었던 단목현요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경공으로 빠르게 다가오던 무시무시한 기세, 불티에 여기저기 타긴 했으나 온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두 노인이었다.

하나는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새카만 머리카락을, 하나는 노인이라고 해도 놀라울 만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노인들은 단목현요의 기세에도, 죽어 있는 백사검의 시체에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단목현요에게 다급히 말했다.

“아해야! 네 딸과 조카는 어디 있느냐?”

“우리가 지금 급하다! 어디 있느냐? 왜 네가 지키고 있지 않았느냐?”

순간 단목현요의 검날 위로 기가 날카롭게 스몄다.

“너희는 누구냐!”

“아이고, 이 어린 것아! 너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 낯선 노인네 둘이 내게 내 조카와 딸의 위치를 묻는데 싸우려는 게 아니라고?”

“듣고 보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 대거리가 귀찮아진 백담이 미간을 모았다.

“손을 쓸까?”

“썼다간 도련님이 우리한테 손을 쓸 것이다!”

“어디의 마두들이냐! 너희도 혈귀더냐?”

“한 번만 더 그따위 모욕을 했다가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입조심하거라!”

백담이 버럭 소리쳤다. 단목현요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정체를 밝혀! 너희들은 누군데 내 딸과 조카를 찾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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