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19/129)

하덴베르크 외전: 그들의 첫 임무


 

#1



 

어느 날 황궁 정문을 뜯어버리며 존재를 드러낸 다섯 명의 능력자들은 스스로를 그리 칭했다.

그리고 그들은 황제와 계약을 체결했고, 충분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나.

“첫 번째 임무라네, 하덴베르크.”

그것이 말뿐인 지위가 아님을 인정받기 위해선, 그만한 가치를 내보여야 했다.

“근래 서쪽 바다에서 상선을 습격하는 해적들이 등장해 말썽이다. 그들을 소탕하도록.”

아이작과 레틸리아는 황제를 올려다보고는, 이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뒤편에서 저들을 향한 귀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이제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을 듯했다.

***

쏴아아-

제국의 서쪽, 항구 도시.

햇빛을 받아 청명하게 반짝이는 바다는 명화처럼 아름다웠다.

바닷바람에 하젠의 붉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여길 이렇게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레틸리아가 맞장구쳤다.

슈넨과 헤어진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던 둘이 머물던 지역이었다.

둘의 사정을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에단과 노벨이 저 멀리 지평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경치 좋은 데서 살았네. 이런 거 보고 살고 말이야.”

“누구는 뼈 빠지게 굴렀는데.”

“노벨 너는 약과지. 난 아이작 저 새끼한테 끌려 다녔어. 같이 몇 년 살아봐라, 용병단은 천국이지.”

“에단, 향후 몇 년이 똑같길 바라는 게 아니면 입 좀 다물고 일이나 하지 그래?”

아이작이 웃으며 뼈 있는 말을 던졌다.

그의 미소를 본 에단이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후, 미친놈. 괜히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뭐.”

에단이 중얼거렸다.

밝은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녹안이 지평선 저 너머의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오래 찾을 필요도 없겠는데. 이미 한바탕 하는 중이야.”

“…….”

“레틸리아.”

여기 좀 갈라봐, 저 끝까지.

에단이 햇살에 파묻혀 빛나는 바다를 가리켰다.

레틸리아의 금안이 에단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무심하게 훑었다.

그리고, 손이 가볍게 허공을 가르자.

촤아아악-!

바다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공중에 드리워진 물의 장벽은, 레틸리아의 금빛 시선이 향한 끝.

그곳에 위치한 상선 위에 정통으로 쏟아져 내렸다.

***

“……허어.”

황제는 기가 막히다는 듯 탄식했다. 보좌가 올린 보고에 따르면, 분명 해적 소탕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완료됐지만…….

“상선까지 박살을 내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자네들!”

“뭐, 원래 힘 좀 쓰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어차피 안에 있던 물건들은 다 멀쩡하잖아. 아이작이 미리 빼돌려서.”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황제는 시큰둥이 대꾸하는 노벨과 에단의 작태에 뒷목을 잡았다. 어쩐지 근육이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작이 가볍게 웃었다.

“뭐, 배 부순 건 우리 실책이니까, 인정하지. 대신 수습할 방책도 준비해 뒀다고.”

“수습을?”

“보고서 끝까지 읽은 거 맞아?”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보고서를 훑었다.

분명 놓친 내용은 없었다. 물건은 멀쩡하지만 배 두 척이 가라앉았고, 해적들은 깡그리 소탕했으며 인질들도 구출 완료.

‘하지만 배와 관련된 내용은…… 음?’

[해적선 탈취 성공. 총 다섯 척, 상태: 매우 좋음.]

……설마?

황제가 진심이냐는 듯 아이작과 보고서를 번갈아 보았다.

아이작은 은은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하젠이 쐐기를 박았다.

“……다섯 척 새로 가져왔으니까, 세 척 이득이지?”

황제의 손에서 보고서가 떨어졌다.

***

이처럼 비록 소소한 부작용(?)은 존재했지만, 하덴베르크는 황제가 명령한 일만큼은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 과정이 다소 과격해 추가적인 손실이 간간히 따라오더라도, 애초에 일반 병사들의 힘으로는 해결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이득인 건 사실.

결국 황제고, 귀족들이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하덴베르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석 광산에서 채굴 도중 길이 무너져 고립된 이들이 많아. 그들을 구출해오도록.”

그들은 원한다면 땅을 들어낼 수도.

“……암살자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심문을 부탁하지.”

혀를 자른 이의 진실을 캐낼 수도.

“이번에 황후궁의 시녀들 중 독살당한 이가 있네. 전말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죽었던 이마저 되살려 심문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능력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각자 특화 분야가 다채로운, 다섯 명의 단체이기 때문에.

황제가 내리는 크고 작은 일들을 화려하게 해치우는 그들의 인기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악동 같고 자유분방한 면모도 일종의 매력으로 다가올 무렵.

그들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줄 결정적인 일이 생겨났다.

“카르틸란과 국경에서 분쟁이라.”

레틸리아가 중얼거렸다.

황제의 전언은 이미 제국 전역에 퍼져나갔을 정도로 무거운 주제였다.

국경 지역에서 루스페르투와 카르틸란 군이 충돌했고, 일부는 사망. 남은 일부는 실종되었다.

문제는 카르틸란마저 자기 측의 상황도 비슷하다며 루스페르투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는 상황.

“이거 전쟁 나는 거 아닌가 몰라.”

어느 쪽이든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전쟁이 시작됐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잠잠한 것은 루스페르투의 황제가 확실한 진상 밝히기를 이유로 참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라멜? 거기도 여기랑 엇비슷하게 큰 데 아니야. 그런 제국 황제라는 게 전쟁 날 확률도 계산 못 해? 바보 아냐?”

“그렇게 따지자면 이쪽도 할 말이 없긴 한데……”

“이쪽?”

아이작의 말에 노벨은 루스페르투의 황제, 카서스를 떠올렸다.

“…뭐. 여기도 정상은 아니긴 하지.”

“한쪽은 등신, 한쪽은 호구라……”

“이거 괜찮은 거냐. 대륙 최고라는 두 제국 황제들이 쌍으로 상태가……”

에단마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하젠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망하든 말든 우리가 알 바는 아니잖아~ 슈넨이 왔을 때 멀쩡하기만 하면 되지.”

“하긴. 그건 그래. 어쨌든 하나 확실한 건, 이대로 가다간 전쟁 터질 건 불 보듯 뻔하다는 거지.”

“그럼 더 좋겠네! 전쟁 나면 이렇게 자잘한 거 처리할 필요 없이 바로 인정받는 거 아냐.”

노벨이 맞장구쳤다. 에단이 웬일로 네가 거기까지 생각했냐며 감탄했다.

“야, 됐다! 다 정했네! 아이작, 가자! 가서 다 쓸어버리고 오자고!”

“좀 닥쳐 봐, 넌.”

레틸리아가 노벨을 땅에 처박았다.

하젠과 아이작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전쟁은 아직은 일렀다.

전쟁은, 슈넨을 만난 후에야 일어나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

“……전쟁까진 번지지 않는 선에서 막아 보지.”

“뭐야, 왜?!”

“의외다? 너 같으면 전쟁 나든 말든 가서 일하고 오자고 할 줄 알았는데.”

노벨과 에단을 무시한 아이작이 공간을 갈랐다.

“가자. 우선 실종된 이들부터 구출하고 오자고.”

“전투는?”

“뭐…… 아주 참지는 말고.”

그가 씩 웃었다.

“적당히만 상대해 주는 선에서 그치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 말에 투덜거림을 멈춘 노벨과 에단은 망설임 없이 검은 허공 속으로 뛰어들었다.

남은 셋 역시 차례로 발을 디뎠고, 그들은 순식간에 어두운 숲속에 떨어졌다.

“에단과 내가 실종자들을 찾으러 갈게. 레틸리아, 같이 갈래?”

“좋아. 하젠, 너는 노벨과 여기서 있었던 일을 살펴봐.”

아이작과 레틸리아의 말대로 둘로 찢어진 그들은 곧장 수풀 새로 섞여들었다.

국경 지대,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어둠이 물든 숲.

시야가 탁 트인 황무지와는 달리 폐쇄적이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굉장히 드문 곳이었다.

다섯 역시 초행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에겐 에단이 있었다.

“들려?”

“찾는 중이야. 일단 이 근처엔 없네.”

“계속 해 봐. 우선 이동한다.”

아이작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계속 공간을 열었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에단의 검은 앞머리 밑으로 보이는 눈이 선명히 빛났다.

수색 능력에 특화된 건 에단과 하젠.

에단이 인근 인간의 생각을 잡아낸다면, 하젠은 남아 있는 영혼이 있다면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아내는 쪽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숲의 한가운데 부근에 다다랐을 때.

[살려-]

“…!”

에단이 급히 외쳤다.

“야, 멈춰!”

“찾았어?”

끼익, 아이작이 급정거했다.

그가 움켜쥐었던 에단의 옷자락을 놓아주었다.

레틸리아가 물었다.

“어느 쪽이야?”

[안 돼. 죽기 싫어, 여기서 죽을 수는……]

“기다려 봐. 지금 계속 말이 들리는데……”

[빌어먹을 카르틸란 것들…!]

에단이 입가를 손으로 매만졌다. 이거, 아무래도.

“일 커지겠는데.”

“음?”

“얘네 실종된 거 말이야.”

카르틸란이 엮이긴 한 것 같다.

***

한편, 하젠과 노벨 쪽은 둘 나름대로 상황 파악에 주력하는 중이었다.

노벨은 반쯤 감긴 눈으로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는 하젠을 노려보았다.

“야, 뭐 없어?”

“찾는 중이잖아…… 좀 기다려 봐, 노벨….”

“아오, 졸지 말고! 네가 자꾸 그러니까 믿음이 안 가는 거 아니야!”

그가 기어이 하젠의 어깨를 돌려 세웠다.

이번 일로 사망한 병사나, 기존에 잔류한 영혼을 찾겠다고 해서 잠자코 기다렸더니. 이거 원 몽유병 환자도 아니고.

하젠 특유의 모습은 이제 꽤 적응이 됐지만, 답답한 걸 싫어하는 노벨에게 하젠은 아이작과는 다른 의미로 상극이었다.

“내가 아무리 졸아도 노벨보단 제정신일걸……?”

“……때리고 싶게 만들지 마라. 넌 한 대 때리면 뼈 박살나게 생겨서 엄두도 안 나니까.”

“레티 때문에 못 때리는 거겠지….”

“내가 레틸리아를 무서워 할 것 같냐?”

“아무튼 조용히 해~ 안 그래도…….”

흘끔, 하젠의 은회안이 옆쪽으로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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