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0/129)

하덴베르크 외전: 그들의 첫 임무


 

#2



 

이미 한참 전에 발견한 한 영혼.

칼에 찔려 사망한 모습을 한, 루스페르투 군복을 입은 한 남성이었다.

“이제 도착했으니까.”

영혼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하젠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뭐야, 어딜 도착했…….”

하젠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던 노벨이 말을 흐렸다.

한 번 갈라졌다 붙은 것처럼 금이 간 땅, 뒤엉킨 잔디. 그리고 묵직한 것이 끌려간 듯한 흔적까지.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따로 있었다.

“……피냄새군.”

노벨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공기 중에 진동하는 피비린내.

이곳에서 생명이 끊어졌음을 알리는 명백한 증거였다.

하젠이 느릿하게 노벨의 손에서 벗어나, 갈라진 땅 앞으로 다가갔다.

“야, 야, 뒤로 물러나. 거기가 뭔 줄 알고 가까이 가? 너 몸도 허약한데, 다치면 레틸리아가 난리 칠 거라고.”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고!”

노벨의 투덜거림은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하젠은 잔디 앞에 쭈그리고 앉아 물었다.

“끌려 들어갔단 말이지, 여기에.”

[네. 저 밑에… 저뿐만 아니라, 저희 대원들이…….]

“죽은 건 너희뿐?”

[저희뿐이라 하시면, 어떤…?]

“여기서 카르틸란 군도 사라졌냐고.”

[아, 아닙니다. 여기선 저희만…… 그들에게 습격당하긴 했지만, 이곳에선 갑작스러운 습격처럼, 그렇게 당했습니다.]

“그래….”

하젠이 가볍게 땅에 손을 짚었다.

“한번 나와 봐, 가능하면.”

병사의 영혼이 순식간에 그의 손 밑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습을 감추었다.

하젠은 땅 밑에서 움직이는 시신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아.”

하젠이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노벨이 비딱하게 물었다. 왜? 뭐 알겠어?

“노벨.”

“뭐.”

“여기, 터뜨려 봐.”

하젠이 땅을 쿡 손으로 찌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에 이상한 게 하나 살고 있어.”

“이상한 거? 뭔데?”

“뭐……. 일단 사람은 아니야.”

“짐승이냐?”

“짐승이라면 짐승이고.”

하젠은 추가로 설명을 이어나가진 않았다. 노벨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하젠을 대충 뒤로 보내곤, 곧장 손가락을 퉁겼다.

콰아앙-!!

그리고, 금이 간 자리 그대로 대지가 다시 갈라지고.

투쾅-!

……추가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솟구친 식물 줄기 같은 무언가, 그리고 튕겨 나온 시신들.

하젠의 명령을 받아 아직까지도 움직이고 있던 것들을 본 노벨이 질색했다.

“젠장, 미친.”

“됐어, 이제 나와.”

하젠의 명대로, 영혼이 떠난 시신들을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야, 저게 뭐야?! 너 알아?”

노벨이 고함쳤다.

무언가를 집어삼키기에 딱 걸맞은 거대한 자루 모양의 식물, 그 밑으로 꿈틀대는 줄기.

세 살짜리가 봐도 괴물 뺨치는 식물이었다.

하젠은 곧장 노벨 뒤로 숨었다.

“식물 형태의 마수야. 이쪽에서 서식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었는데…….”

“그건 마탑이 관리해야 되는 문제 아냐? 그 새끼들은 대체 뭐하고 있대?!”

“뭐, 이전 마탑주가 떠나고 개판이잖아, 거기… 아무튼 잘 됐지.”

“잘 되긴 뭐가?”

“이걸로 두 건 잡았잖아.”

카르틸란에게 빚 아닌 빚을 지워두며 능력자의 위세를 보여줄 수 있고, 동시에 일처리를 못한 마탑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자칫 잘못했으면 양국의 오해로 전쟁이 벌어질 만한 사건이었으니, 두말 못하겠지.’

하젠은 노벨의 등에 매달려 지시했다.

“완벽히 죽이지만 말고… 아, 아니다. 그냥 흔적만 알아볼 수 있게 처리해. 강도 조절 잘 하고.”

“시끄러워. 그 정도는-”

그때, 쩍 소리와 함께 식물의 자루가 둘을 동시에 잡아 삼킬 만큼 벌어졌다.

노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도 안다고!!”

콰콰쾅-!

흙먼지와 함께 휘몰아친 충격파가 일대를 덮쳤다.

***

“……뭐야?”

미세하게 진동하는 대지에 레틸리아가 돌아보았다.

아이작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큰둥이 어깨를 으쓱였다. 뻔하지 뭐.

“우리 단순한 형제 아니겠어? 신나게 터뜨리고 있나 본데.”

“터뜨릴 게 뭐 있다고….”

“글쎄다. 아마 이쪽과 관련된 거겠지?”

아이작의 검은 눈이 발치로 향했다.

레틸리아와 에단, 그리고 아이작의 앞엔 서너 명의 루스페르투와 카르틸란 병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몸 상태가 성하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시선을 끄는 건, 마찬가지로 동굴 속에서 기어 나온 기괴한 생물체.

하젠과 노벨이 발견한 것처럼, 마력석의 기운에 노출돼 변형된 마수의 한 종류였다.

에단이 쪼그리고 앉아 병사 한 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단순히 저거 때문에 휘말린 거 아니지?”

“그, 그건…….”

“됐어. 말할 필요는 없고.”

에단의 눈이 형형히 빛났다.

떠올리게 만든 것으로 충분했다.

에단의 손이 그의 머리를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장 흘러들어오는 기억.

[능력자들이 정확히 어떤 이들인지 확인해야 한다.]

[알려진 것만큼 위협적인 존재가 될 만한지 파악해야 해. 그걸 위해서라면…….]

[국경지대의 검은 숲을 건드려라. 현 황제의 동태로 미루어 보면, 문제가 생기는 즉시 그들이 파견될 거다.]

[작은 미끼면 돼. 그들을 끌어낼 만한…….]

카르틸란 측의 베인스프란 공작의 명령.

[저기 있다. 적당히 산짐승들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처리해.]

[알겠습니다.]

잠깐의 연락 두절 밑 실종, 사망 정도만을 의도했던 습격.

하지만 카르틸란 측도 예상하지 못한 사항이 하나 있었다.

[잠깐, 대장. 여기 뭔가…… 컥!]

[뭐야?!]

[마, 마수입니다! 그림자 늑대예요!]

[안 돼, 자리에서 이탈하지 마! 루스페르투 것들을 던져 넣어라!]

갑작스레 양측을 덮친 검은 늑대.

카르틸란은 당연히 루스페르투를 미끼로 던져 넣고 빠져나오려 들었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었다.

결국 사이좋게 늑대에게 숨이 끊어진 이들이 대다수.

눈앞의 카르틸란 병사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둘 중 하나였다.

“……나참.”

에단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이건 뭐, 지들 꾀에 지들이 당한 것도 아니고.”

“원래 계획은 뭐였는데?”

아이작의 물음에 에단이 짧게 설명했다.

‘말도 안 돼. 정말로 다 알아냈다고?’

병사는 눈앞의 셋을 올려다보았다.

동굴 속에서, 시신들 틈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붙잡고 있었을 때.

-여기 안이라고?-어.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둘밖에 안 살아있는 것 같아.

-죽으면 하젠에게 알아내도록 해도 되니까, 우선…… 음?

-레틸리아!

동굴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늑대는 괴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늑대에게서 흘러나오던 어둠이 걷히고.

-뭐야, 이건.

-이딴 거에 당했다니… 국경을 지킨다는 것들 전투력이 이래서 어디다 써먹어?

순식간에 늑대의 숨통을 끊어버린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처리하지 못했던 걸, 손짓 한 번만에……

역사책에서 남아 있던 능력자들의 힘을 목도한 병사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숨겼다.

“그렇게 된 거란 말이지.”

에단이 설명을 끝냈다. 아이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유일한 생존자 둘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우선 이쪽의 유일한 생존자는 황궁에 데려다 놓고 오는 게 먼저겠어. 에단, 더 살아있는 것들 없는지 더 알아 봐.”

“알겠어.”

아이작은 정신을 잃은 루스페르투 병사를 대충 끌고는 사라졌다.

“자, 그럼.”

에단이 손을 풀며 씩 웃었다.

“네 머리 좀 열어 보자.”

***

하젠이 머리를 긁적였다.

“노벨…….”

“…….”

“이건 형체도 못 알아보겠잖아…… 형제.”

갈가리 찢긴 초록색 줄기들이 사방이 흩어져 있었다.

찢긴 부위는 모두 시커멓게 물들기까지 했다.

노벨이 벌컥 성을 냈다.

“내 뒤에 매달려 있던 놈이 바라는 것도 많네! 폭파 강도 조절하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냐?”

“아이작이 그 능력을 가졌으면 각도까지 계산해서 사용했을걸…….”

“그건 그 녀석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한껏 비웃으며 ‘무식하게 터뜨리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대체 뭘까, 우리 형제는?’하고 빈정대는 아이작이 떠올랐다.

노벨의 등에서 내려온 하젠이 식물 줄기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아이작에게 돌아가자.”

이제 그쪽도 다 끝났을 거야.

그리고 아마, 그쪽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젠의 예상대로, 머지않아 중간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아이작과 레틸리아의 주장대로 한 가지 선택을 내린다.

“지금부터 이 숲에 서식하는 모든 마수들을 토벌한다.”

레틸리아가 그림자 늑대의 사체에 발을 턱 올렸다.

“마탑도, 카르틸란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거야.”

국경 지대에 위치한 마력석 광산의 파장은 간간히 마수들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마력의 산물인 그것들의 처리는 여태껏 마탑의 몫.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능력자인 하덴베르크가 있었고, 마탑의 과실로 발생할 뻔했던 전쟁 역시 막았다.

덤으로 카르틸란에게도 적당한 본보기가 될 것이었다.

이 정도의 일은 해야 원하는 정도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아이작은 그렇게 판단했고, 그건 레틸리아와 하젠도 마찬가지였다.

“자, 전부 잡아서 끌고 가자.”

마탑 앞에 그들의 과오를 보란 듯 선물해줄 시간이었다.

***

하덴베르크는 귀환했다.

양국의 귀족들과 황제를 경악하게 할 만한 소식과 전리품을 가지고.

“……그래서, 이렇게 된 일이었다는 거지.”

아이작이 가볍게 웃었다.

황제와 귀족들은 다섯 하덴베르크의 뒤편에 산처럼 쌓인 마수들의 사체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그러면 이게 전부…….”

“전부 잡아 죽였지.”

“작은 놈까지 싸그리 잡아 족쳤으니 한동안은 잠잠할걸. 또 생기면 어쩔 순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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