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5/129)

사렌 외전: 어느 작가의 이야기


 

#2



 

“아니, 네가 글을 썼다고?”

“일단은… 그렇게 됐다?”

과 동기는 그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거 힘들지 않아?”

“안 힘든 일이 뭐 있겠어.”

“그건 그렇긴 한데… 아니, 근데 갑자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너 이런 쪽에 관심 있었어?”

“아니. 그냥 가볍게 해본 거였는데……. 나도 몰라.”

“그래도 잘 됐네.”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이렇게 잘 돼서 다행이다.”

한이레는 커피잔 손잡이를 꾹 쥐었다.

“병원은 또 언제 가기로 했어? 내일?”

“응. 이번에 약 좀 더 타오려고.”

한이레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

힘든 시기를 이겨내려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덜컥 ‘진짜’ 이야기가 되었다.

한이레는 얼떨결에 작가 비스무리한 길을 걷게 되었지만, 실감은 연재를 시작한 후에도 잘 나지 않았더랬다.

‘내가 진짜 이런 걸 하고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를 뿌듯함과 성취감이 있었다.

적어도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현실을 잠깐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바로 그녀의 작품, ‘멸망의 앞에서’였다.

한이레가 만들어낸 다섯 명의 주인공들. 아이작, 하젠, 레틸리아, 노벨, 에단.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서로의 대적자는 서로가 유일한 다섯 명.

‘나도 모르게 꽤 비슷하게…… 만들었네.’

위험한 매력을 가진 다섯의 과거는 전부 자신의 결핍에서 우러나온 결과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과거 부분을 쓰고 있을 때면 묘한 느낌이 들곤 했다.

쓰다가 괜히 울적해져서 눈물이 나오곤 한다든가, 옛날 기억 속에 빠져 잠시 우울해 한다든가

“괜찮아.”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의 아픔을 본떠 만든 과거를 가진 다섯.

그만큼, 개인적인 욕심을 내서라도 다섯 명의 끝은 해피엔딩으로 만들리라 다짐했다.

'나는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서로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힘든 과거를 가졌더라도.

반드시 이 이야기는 보란 듯이 멋있고 행복한 결말을 맞도록 할 것이었다.

***

그렇게 시작된 ‘멸망의 앞에서’는 한이레 스스로 점점 몰입하게 되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아이작을 등장시켰으니까 마탑 습격 에피는 이걸로 마치고, 마지막 부분에 하젠 떡밥을 넣어서 노벨이랑 연관지으면 되겠다. 좋아, 그럼 오늘 3편은 더 쓸 수 있겠네.’

하루 종일 다섯 명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야기에만 할애했다.

우울한 마음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어떻게 하면 다섯 명의 주인공을 멋있게 그려낼지에 대한 궁리에만 빠져 있었다.

쏟은 정성만큼, 복선은 세세했고 설정 오류도 없었다.

점점 댓글 수가 늘어가고, 반응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한이레는 그 기묘한 열기에 취해 계속 달려갔다. 그 속에서 마음 한구석이 삐그덕대는 소리는 묻혀 버렸다.

“……야, 이레야. 너 괜찮아?”

“응?”

하루 종일 마감에만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가 시간을 줄이게 되었다. 정확히는 그녀 스스로 그렇게 선택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짬을 내서 만난 친구는, 마지막에 만났을 때보다 확연히 여윈 한이레의 모습에 당황한 듯했다.

“아니, 너 요즘 너무… 뭐랄까. 좀 막나가는 느낌인데.”

“내가?”

“너 마지막으로 병원 언제 갔어? 아니, 지난번에 상담은 다 받았어?”

친구는 찜찜한 낯으로 물었다.

한이레는 그제야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탄식했다.

“아… 맞다. 근데 나 이제 괜찮아. 전만큼 안 힘들어.”

“……그래?”

“응. 이렇게 집중해본 게 오랜만이야.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일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덕분에 우울할 틈새도 없다 말한 한이레는 진심으로 만족스러워했다.

친구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네가 그렇다면 다행인데…….

“맨날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뭘 해도 되는 게 없었는데.”

“야… 왜 말을 그렇게 해.”

“사실이잖아. 괜찮아, 이젠 안 그러니까. 봐봐, 나 이렇게 잘 돼가고 있어.”

성취감을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자신이 하는 일이 뭔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중독되어 버렸다.

친구는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열심히 하는 건 좋고, 무슨 일이든 잘 되면 당연히 좋으니까 더 빡세게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한데……

‘근데 왜 불안하지.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좀……?

하지만 한이레의 눈은 전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생기 없고 조용해졌던 전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그래, 그냥 괜한 걱정이겠지.’

들떠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한이레를 보며, 친구는 말없이 웃었다.

하지만 한이레의 생기는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작품에서만 나왔다.

그건 곧 작품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에 의존하고 있던 그녀에게도 타격이 온다는 것을 둘 모두 잠시 간과했다는 게 문제였다.

***

열에 아홉이 명작이라고 치켜세우며 흥행한 작품일지라도, 반드시 비난과 비판은 존재한다.

그중엔 도를 넘는 비난도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한이레는 그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BEST 여기서 아이작이 저러면 캐붕이지… 잘 나가고 있었는데 저기서 제독을 안 죽이고 넘어간다고? 죽이면 레틸리아랑 사이 진짜로 못 돌이킬 것 같으니까 개연성 버린 거 너무 티남;;]

[BEST 이거 결말을 어떻게 내려고 이럼?]

사소한 실수로 시작된 비판성 댓글들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겪는 악의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허둥대며 급히 이미 확정했던 내용을 바꿔가며 노력했지만.

결국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 꼬이는데…… 아냐, 그래도 저 말도 나름 일리가 있잖아. 그러면 이걸… 아, 어떡해.’

충고성 비판과 무논리적인 악플은 구분해야 했지만, 한이레는 그걸 구분하여 수용할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다.

미뤄 두었던 우울이 둑이 터진 듯 밀려왔다.

일상의 활력으로 붙잡고 있던 것이 무너지자, 한이레의 마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과거 에피소드가… 나와야 하는데. 여기선 얘네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설명을 해야……”

애써 주제를 환기하려 예정에 없던 내용을 끼워 넣었지만, 그건 최악의 결정이었다.

“아……”

안 그래도 전전긍긍하며 불안함에 떨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런 불안정한 마음으로 제 모든 우울을 담아둔 다섯 명의 과거를 구체화하려니, 괜히 더 곪아 있는 상처를 건드린 것밖에 되지 않았다.

“못 쓰겠어……”

한이레는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무엇도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화, 한 화가 새로 올라올 때마다 보일 비난이 두려웠고.

다섯 명의 이야기를 쓸 때마다 계속해서 살아나는 제 옛 기억들이 신경 쓰였다.

[담당자님: 작가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원고 때문에 연락드립니다. 어제 마감일에 원고가 안……]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압박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때, 마취가 풀리고 아픔이 덮쳐오듯.

한이레는 그렇게 무너졌다.

더 이상 저 다섯 명과 자신의 이야기를 보기 싫었다.

***

꾸역꾸역 어떻게든 연재를 이어나갔다.

-너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최대한 잘 완결내고, 좀 쉬자. 응?

유일하게 저를 생각해주는 친구는 그렇게 한이레를 달랬다.

한이레는 그 말이 최선임을 알았다.

저 업무가 남아 있는 게 끔찍했다.

그냥 다 싫었고, 다 없어졌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도저히 자신이 만들어낸 다섯 인물들에 정이 붙질 않았다.

처음 정해 놓았던 끝?

정성스럽고 열심히 짠 구성의 해피엔딩?

처음 사랑을 쏟았던 게 거짓말처럼 지긋지긋해졌다.

‘어차피 진짜도 아니고, 내가 만든 이야긴데.’

어차피 내 마음이잖아.

어떤 결말을 내든. 어떻게 만들든, 결국 내 온전한 권리고 내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싫어하는 걸 굳이 좋아하려 노력할 이유도 없지.

한이레는 이미 수십 수백 번 쓰려다가 다시 놓아버린 원고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손이 올라갔다.

‘그러니까, 이건 당연한 거야.’

원고지 위에 멸망이 펼쳐졌다.

***

드디어 끝났다.

한이레는 업로드된 마지막 편을 보고는 핸드폰을 뒤집어 내려놓았다.

이제 끝이야. 끝이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근원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을 끊어내자 훨씬 나아진 기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홀가분함.

한이레는 헛웃음을 흘리며 침대에 누웠다.

‘내일부터 다시 병원에 가자. 가서, 상담 받고… 한동안은 머리 좀 식히고 쉬자. 글은 아예 내려 버려야지.’

그런 내용으로 완결을 냈으니 보나마나 평소보다 더하겠지.

볼 생각도 없었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보지도 않고 조용히 삭제해 버릴 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녀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사라지고, 그간 쌓아 왔던 이야기를 깔끔히 지워 버린 어느날 밤.

“야호, 안녕!”

“……?”

자신을 ‘관리자’라고 칭하는 웬 금발 머리의 남자가 꿈에 등장했다.

“……뭐야, 무슨 꿈이야, 이건 또.”

“어어, 나 무시하지 말고. 그렇게 다시 자려고 해도 못 깬다?”

의욕 없이 돌아눕는 저를 흔들어 깨운 남자의 말.

“네가 쓴 글이 아직 남아 있는데, 잠이 와?”

그 말에 한이레는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네가 쓴 글 말이야. 잘 봤어, 재밌더라. 지금이야 지워졌지만…….”

관리자는 그제야 태도가 변한 그녀를 보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 작가님. 나는 그냥… 그래, 대충 ‘관리자’라고 하자. 기억하기 쉽지?”

“관리자? 뭘 관리하는데?”

“너 같은 사람이 만든 이야기들.”

그로부터 창조된 세계를 관리하는 자. 남자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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