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렌 외전: 어느 작가의 이야기
#3
내가 썼던 이야기가 어딘가에 실재하느니, 뭐니… 전부 믿기 힘든 이야기들뿐이었다.
“어차피 이제는 근데 삭제돼서… 과거형이지, 뭐.”
“왜? 내가 지워서?”
“비슷해. 정확히는 다른 것 때문이긴 한데, 아무튼 이젠 없어졌어.”
“그럼 아까 한 말은 뭐야? 내가 쓴 글이 남아 있다며.”
“남아 있어. 정확히는 네가 쓴 글이라기 보단…….”
거기서 ‘파생’된 이야기가.
관리자는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 이야기를 너무 좋아서 아쉬워한 사람이 틀을 조금 바꿔서 새롭게 만든 이야기지. 그것도 다른 이야기로 취급당해서 아직 남아 있어.”
“남아 있다고…….”
“그래. 비록 네 세계는 없어졌지만, 저기는 버젓이 존재하는 거지. 기분이 어때?”
한이레는 답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제 작품을 좋아해 줬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후련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작품에 대한 지겨움이 더 컸다.
‘지긋지긋하게 따라 붙네, 정말…….’
그런 한이레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관리자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원작의 작가인 너에게 선택권을 줄게. 단 하나만 명심하고. 저곳은 백 퍼센트 네가 만든 세계가 아니라는 점.”
“…….”
“네가 만든 세계의 명맥을 잇는 곳이야.”
“…….”
“저것도 없어졌으면 좋겠어? 아니면, 저렇게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어?”
선택은 네가 해.
자기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웃는 관리자를 보며, 한이레는 단호히 답했다.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설명해줄게.”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 다 좋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모든 걸, 제 아픔을 담고 있는 다섯의 이야기를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간단해. 너도 이미 아는 방법이야.”
“내가?”
“애정을 버리면 돼.”
그런데, 그렇게 지워버리는 방법이…… 저것일 줄은 몰랐다.
“네가 버린 것처럼, 그 작가도 그곳을 증오하게 만들면 돼.”
어쩐지 마음속 어딘가가 찔리는 느낌이었다.
한때 그렇게 아껴 마지않았던 작품을 내 스스로 버렸다는 게 들킨 것 같아서.
‘아냐, 내가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데. 한창 힘들던 때 그것 때문에 더……!’
짧은 갈등 끝에 마음을 다잡았다.
어딘가 켕기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서.
다섯을 보듬어주는 인물을 만든 사람, 그렇게 좋아해주는 한 독자의 바람을 제가 버리는 것 같았지만.
“자, 그럼 다녀와. 결과가 어떻든 응원할게.”
그래,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한이레는 관리자의 손을 잡았고.
화아악-
제 마음과 달리 눈부시게 빛나는 빛이 걷힌 후에는, 그녀는 ‘사렌 콜하트’가 되어 있었다.
***
사렌 콜하트와 이복동생이자 사생아인 슈네리아 콜하트.
‘그러니까 이 캐릭터가 원래 그 다섯 명을 위해줄 그런 힐링캐였다… 대충 이 말이지.’
한이레는 시큰둥이 거울 속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다섯이 멋있다고 좋아했지, 과거가 안타깝다던 반응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정말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까지 한 걸까, 그 사람은.
비록 곧 만나게 될 테지만, 새삼 궁금하긴 했다.
‘물론 만나고 나서도 좋은 관계를 갖기엔 글렀지만.’
이런 세상에 환멸이 나게 만들려면 가장 좋은 것은 이유 없는 고통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이미 인성이 글러먹은 사렌 콜하트의 아버지와 자신이 맡을 것이고.
‘여기에 들어온단 말이지.’
“어, 언니……?”
그녀는 저와 제대로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슈네리아 콜하트를 무표정히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전형적인 소심하고 유약한 아이지만.
“어떤 사람이 올지 궁금하긴 하네.”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내 이야기를 좋아했길래…….
‘저 다섯이 저렇게 변할 수 있는 거지?’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눈앞의 다섯, 아니, 여섯을 바라보았다.
분명 한없이 괴팍하고 난폭하며, 자유로우면서도 냉정하기 그지없던 다섯이.
“왜 슈넨한테 그따구로 말하냐고. 너희 둘 다.”
“우린 처음부터 슈넨만을 위해 행동했다.”
……저렇게 누군가를 아낄 수가 있었나.
“내가 작가야, 이 미친놈아!!”
시원하게 내뱉고 사라진 슈넨을, 아니, 또 다른 작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한이레는 조금 낯선 기분을 느꼈다.
***
이안의 존재는 사렌 역시 관리자로부터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능력자 천국이네, 천국이야.’
원래 이런 설정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이래저래 세계에 따라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그리고 세계가 슬슬 불안정해지는 것을 체감하며.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바보 같아. 내가 만든 그 다섯이, 아무나 쉽게 마음에 들일 것 같아? 쓸데없이 의심이나 하고.’
자신이 썼기에 제일 잘 알았다.
그 다섯이 슈넨을 아끼는 건 진심이다. 그리고 슈넨‘만’을 아낀다.
그러니, 좀 믿어도 좋을 텐데.
“거기까지. 적당히 얘기해, 이방인 씨.”
봐, 지금도 그렇잖아.
그녀는 제 손목을 잡아챈 하젠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일이 이렇게 되는 것도, 전부 너 때문인 걸 알면서도.
‘그게 슈넨을 상처줄까 봐 내 입을 막지.’
대단한 우정 납셨어.
불길 속에서 끝내 슈넨이 과거로 사라졌다.
‘저 과거에서 그 다섯을 만난다 이거지.’
이미 자신이 짜놓았던 것과 달라진 게 많아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뿌리는 동일할 것이다.
아이작은 고아로 살다 고아원 원장을 죽이고 방황할 거고, 레틸리아는 믿을 어른 하나 없이 검투장으로. 하젠은 모친을 잃고 공동묘지에서 살며 노벨은 무관심한 부친과 저를 학대하는 계모만 있는 저택에 홀로. 그리고 학교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에단.
‘그걸 네가 얼마나 잘 보듬어 줬을까.’
난 그렇지 못했는데 말이야.
괜스레 또 아파오는 속을 무시하며, 한이레는 뒤를 돌았다.
그냥, 빨리 이 전쟁을 가속화시켜 다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 너.”
하젠이 불렀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
증오도, 무엇도 없는 그저 순수한 질문.
내가 만들었던, 내 아픔의 한 조각을 담은…… 그랬던 가상의 인물이, 실제로 살아 숨쉬며 제게 물었다.
한이레는 그 시선을 오래 마주할 수 자신이 없었다.
“난 너희에게 티끌만 한 애정도 없어, 꼬맹아. 이 세계가 이 정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저 작가님 때문이지
“……”
“어디 너희가 바라는 대로 잘 끝내고 오길 기도하고 있으라고. 난 그동안 충실히 여길 망가뜨려 볼 테니까.”
그렇게 몸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제 떨리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난 너희가 싫어. 내 모든 아픔을 담은 너희가 싫어. 너희 때문에 힘들어졌던 그 날들이 싫어.’
그러니까, 그냥 멸망해. 다 멸망해 버려.
창조주에게 버림받은 세계는, 존속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니 지긋지긋하게 내 뒤에 따라다니지 마.’
끝내 보라색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
황궁에 진입하고 나서야 슈넨은 돌아왔다.
“사렌, 우린 잠깐 얘기 좀 할까.”
이전과 달리 차분해진 눈빛과 목소리.
한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정말 서로 터놓고 얘기할 상황이 된 모양이었다. 더불어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답도 들을 수 있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왜 이렇게까지 이 세계를 없애고 싶어 하는 거야?”
질문은 자신에게 먼저 돌아왔다.
“왜 세계를 없애고 싶어하냐, 라…… 앞뒤가 바뀌었네. 내가 왜 원작을 없앴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게 순서 아닌가?”
한이레는 순순히 답했다.
“그 글을 쓰던 당시의 ‘작가’는 행복하지 못했거든.”
이 모든 일의 시작. 원인.
결국 ‘작가’인 자신이, 한이레가 불행했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이 나를 죽일 것 같았지.”
애초에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됐던 거였다.
우울함을 이겨내겠다고, 주인공들에 자신을 투영해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리고 그것에 너무 의지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결국 스스로 의지해야 하는 건 그런 인기나 반응이 아니라, 스스로였음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슈넨은 예상치 못한 답에 꽤 당황한 듯했다.
그게 내심 통쾌해서, 한이레는 신나게 쏘아붙였다.
“내가 작가더라도, 얼마든지 증오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작가 역시 사람인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전부 아껴야 할 의무라도 있나?”
“역시 넌 이해 못 해. 아무런 답도 못 하면서…….”
애초에 이해받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를 막지 마, 그리 말하려던 찰나.
“이해를 못 하는 게 아니라.”
“…….”
“나 역시 그랬으니까.”
제 독자는 그토록 궁금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왜 좋았냐고? 내 힘들던 나날에, 그 이야기가 있어 버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답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고통 속에서 짐처럼만 느껴지던 내 작품이, 누군가의 삶을 이어나가게 해준 생명줄이었다.
‘……나참. 어이도 없고, 한심하고, 황당한데….’
왜, 이렇게 쉽게 마음이 무너질까.
한이레 스스로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욕이 사라졌다.
작품을 쓴 이유조차 몰랐는데, 자신도 모르던 의의를 찾아준 사람이 눈앞에서 제발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해달라 부탁하는데.
“좋아. 졌어.”
어떻게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
결국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한이레는 홀가분하게 웃을 수 있었다.
“고마워. 이 세계를 지켜 줘서.”
“그건 내가 아니라 네가 한 일이지.”
한이레는 웃으며 모든 것을 건넸다.
‘나 같은 작가는 이제 돌아가 줘야지.’
그러니 이 세계는 너의 것이다.
네가 지켜낸, 너의 세계다.
“하나 더. 내 삶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작가님.”
한이레는 부드럽게 웃었다.
“나야말로.”
자신은 이 말로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