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8/129)

파델 외전: 마지막 마법사의 제자


 

#2



 

“네가 다음 대의 마탑주구나.”

어렸을 적, 마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전대, 그러니까 당대 마탑주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해 주었더랬다.

그것은 예언도, 이루어질 리 없는 농담도 아닌.

그저 당연히 정해진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파델은 자신이 타고난 재능에 심취되거나 하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마법은 좋았다. 가능한 일들이 즐거웠고, 연구는 적성에 맞았으며 성취는 즐거웠다.

타고난 재능에 만족했다. 사실 그가 만족 못한다면 대체 누가 만족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그는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대신, 다른 부분에서 욕심이 있었다.

“마법에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이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파델은 욕심에 찬 황제에게 그리 말했다.

유약한 황태자였던 카서스와는 달리,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눈이 멀어가는 선대 황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대는 마탑주이면서 그리 생각하는가?”

“마탑주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폐하.”

신념이라면 신념이고, 욕심이라면 욕심인 가치관.

상식을 뒤엎는 것이 마법이고 마법사이지만, 그럴수록 인간으로서 선을 지켜야 한다.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요. 그건 폐하, 당신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그렇기에 인간으로 남아있기 위해, 마지막 염치를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그래서 늘 걱정이고 불만입니다만.”

파델은 얼굴을 찌푸렸다가, 이내 화제를 돌렸다.

“오늘 제가 폐하를 뵈러 온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무엇이지?”

“마탑은 제가 있는 한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황실과 귀족들 역시……”

그 선 안에 남아 주시면 됩니다.

파델은 황제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았다.

부탁이 아닌, 당부하듯 전하는 말은 명령에 가까웠다.

황제는 반사적으로 팔걸이를 움켜쥐었으나, 무례하다 고함치진 않았다.

마탑주가, 정확히는 파델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은 잘 알았기에.

만에 하나 능력자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력이라면 능력의 상쇄를 넘어 무력화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될 정도의 괴물이었다.

파델은 말없이 황제를 바라보다, 이내 정중히 인사하곤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알현실에 홀로 남은 황제는 분노를 삭이다, 이내 조소했다.

“하! 제 밑의 것들은 과연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도 모르는 늙은이 같으니.”

파델의 고지식함에 대해선 마탑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다.

마법사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귀족이나 황실과는 독립된 제3의 존재.

누릴 자격이 충분하고, 또 누리고 싶어 하는 젊은 마법사들을 제지하는 파델의 태도에 반발심이 쌓인 지 오래.

파델은 오랜 세월 나름대로 그들이 엇나가는 걸 막아 왔으나, 그가 마탑의 모든 움직임을 알 수는 없었다.

선대 황제는 보좌관에게 통신구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그쪽에서 요구한 걸 승낙하겠다고 전해라.”

마력석 광산의 지분. 그것만 완벽히 차지한다면, 파델을 제외한 마탑은 분명…

“그 대신, 마탑주를 필히 교체하라는 조건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

선대 황제는 선을 넘었다.

파델은 분노했다가, 기가 차 헛웃음을 터뜨리다가, 이내 황궁으로 쳐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무어냐. 전부.”

그가 황궁으로 향하려던 찰나, 다른 마법사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은 바쁘다. 다녀온 뒤에……”

“황궁엘 가십니까.”

“그래. 무엇 때문인지는 이미 알겠지. 그러니 비키거라. 다른 귀족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막아야-”

“안 됩니다.”

무뚝뚝한 대답.

곧장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가려던 파델의 앞을 막아선 십수 명의 고위 원로 마법사들.

대표로 답한 이와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이번 일은 반드시 저희 마탑에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반대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당장의 이익만 눈에 보이느냐? 이것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는 예상이 가질 않고?”

“마력석만 독점한다면 카르틸란은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먼저 차지하는 쪽이 승자인 겁니다.”

“내가 분명!”

파델이 참다못해 버럭 외쳤다.

슬슬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예상이 갔다.

“-선을 지키라 번번이 교육했었건만.”

“…….”

“눈앞의 이익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돌아오는 것인지 생각하고 판단하라 하지 않았더냐!”

“당신의 가르침은 좋은 인간을 위해 필요한 덕목일지는 모르나, 위대한 마법사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파델의 지긋한 주름 하나하나에 분노가 서렸다.

서슬퍼런 그의 기세에 반응해 방 안의 마력이 휘몰아쳤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았다.

“기어이 반대하시는 게 당신의 뜻입니까.”

“더 말이 필요한가?”

“……알겠습니다. 한때 제자로서 이 방법까지 쓰고 싶진 않았습니다만.”

한 마법사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연한 노란빛의 양피지엔 마력을 박아넣은 잉크와 밀랍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마탑의 고위 마법사 12인의 만장일치로 내려진 사항입니다.”

“…….”

“그대는 지속된 탄압과 억압으로 마법사들의 자유 의지와 요구를 제한하였고, 이에 따라 ‘마탑주는 마탑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대변인이어야 한다’는 덕목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정.”

“…….”

“지금 이 시간부로 파델, 당신을.”

이 마탑에서 제명합니다.

파델은 그가 종이를 꺼내든 순간부터 이미 예상한 듯했다.

분노가 차 있던 그의 눈과 마력에 허망함이 차올랐다, 이내 환멸로 바뀌었다.

그래서, 결국 내린 결정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냐.’

그렇게 할 짓 못 할 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자신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가르치고, 꾸짖고, 또 반복해 말했음에도.

“……변하질 않는구나.”

지독히도 한결같았다.

파델은 허탈함에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파델의 입장에서 모든 인간들은, 마법사들은. 눈앞의 이들과 황제는.

모두 썩은 채 고여 있는 물이었다.

인간은 이렇게나 변하질 않는 존재인 것인가.

파델은 지독한 환멸감에 손을 내렸다. 이젠 허탈함이 전신을 덮쳤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의 마탑주로서의 모든 권한을 박탈합니다. 불명예스러운 직위해제니, 본격적인 세대교체는 잠시 뒤로 미루어 드리지요.”

“……그래. 이해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결국 바뀌지 않을 것들임을 잘 알았으니.”

파델이 짓씹듯 중얼거렸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거라.”

파델은 그 순간 생각했다. 권위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탑이고, 황실이고. 전부 어찌 되든 이제 상관없으니.

다 등지고 떠나 버리고 싶다고.

***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실행하려던 황제는 사망했다.

하지만 파델의 마음은 여전했다. 이미 뼈저리게 느낀 환멸과 허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새 황제께도 요청해 봅시다.”

“암, 선대 황제께서 마지막까지 바라던 일이었고, 약조하신 것 아니었나.”

“분명 들어주실 거예요.”

오히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파델은 유약하고 젊은 황제에게 이전의 요구를 반복하려는 이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몸을 돌렸다.

그들은 파델을 마탑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파델이 버티고 선다면 실행은 불가능했다.

물론 파델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지겹고 지긋지긋한 것들을 전부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의 ‘에우디움’이 탄생했다.

속세의 이해관계도, 권력도, 그 무엇도 없는 독립된 장소.

하지만 그만큼 고립된 곳.

파델은 시간과 공간을 뒤틀어 저만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일평생 향유하던 모든 지식을 갖고 그곳으로 숨어들었다.

물론 대가는 존재했다.

‘한 번 들어가면, 모든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파델은 이것을 대가로 지정했다.

그가 캐스팅한 모든 마법을 깨고 모습을 드러낼 게 아닌 이상 절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며, 타인도 들어올 수 없다.

스스로 영원일지 모를 세월 동안, 늙지도 않는 몸으로 시간 속에 갇히는 것.

‘딱 좋군.’

하지만 파델은 오히려 그것을 원했다.

끼익-

황금빛 문고리가 돌아갔다.

파델은 책으로 파묻힌 자신의 완벽한 감옥 속으로 발을 디뎠다.

자신이 이 진절머리 나는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테다.

***

‘행복하군.’

파델은 정말, 정말 오랜만에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파델은 누군가를 이끌고 대변해야 하는…… 그런 ‘높으신’ 자리엔 관심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마탑주 자리를 거절하기엔 그만한 인재가 없음을 객관적으로 알았다. 마법사들의 고삐를 잡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가 필요할 수도 있었고.

결국 때려쳤지만.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은둔한 그는 드디어 마음껏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따뜻한 홍차 한 잔가 함께하는 느즈막한 독서 시간.

몸의 시간마저 멈추었으니 무언가를 섭취할 이유는 없었기에, 도서관 안에 준비된 음식의 양은 단순 입가심용으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황금빛 잔 안에 홍차를 다시 채우려 막 손을 들어올렸을 때.

우우웅-

“…!”

파델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곡된 공간이, 멈춘 시간이.

그가 억지로 붙잡아둔 이 ‘공간’ 자체에 무언가가 억지로 틈을 내고 있었다.

‘……내 마법을 파훼하는 자가 있다고.’

마탑에 이만한 실력자가 있었던가.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곱게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기어이 자신을 귀찮게 만들다니.

‘지긋지긋한 것들.’

파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뚫렸던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메워지고, 무너진 책더미 속엔 아주 오랜만에 보는 타인이 존재했다.

“마탑에서 새 애송이를 들였나?”

저를 배제하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잠적해 버리자 아까웠던가.

아니면 보이는 곳에 두고 감시하고 싶었던가.

어느 쪽이든 궁금하지 않았지만, 파델은 의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도, 민간인도 아니라면. 그땐 말이 되나?”

아이작, 훗날 아이작 ‘하덴베르크’가 되는 공간 능력자.

“……능력자.”

그가 파델의 인생에 끼어든 역사적인 날이었다.

***

마법사, 그것도 마탑주이자 대마법사로 오랜 세월 살아온 파델로서도 능력자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제국에도 더 이상 남아 있는 이가 없겠지만…….’

역사서에서나 명맥이 이어지는 존재들.

마법사의 마력을 상쇄하고, 타고난 힘의 양 자체가 압도적인지라 마법사의 카운터라 불리는 존재.

마법사는 다양한 마법을 다룬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지만, 능력자와 맞붙으면 패배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능력자가 아주 어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마법사 쪽이 특출나게 강한 경우만 제외하면.

그리고 현재 아이작과 그는 정확히 그 조건에 걸맞았다.

“능력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여긴 어쩐 일로 온 거냐? 그것도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쫓기던 중이라서.”

아이작은 몸 상태가 최악이었고, 파델은 대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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