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29/129)

파델 외전: 마지막 마법사의 제자


 

#3



 

“어쨌든, 좋다. 적어도 마탑에서 보낸 놈이 아니란 건 알겠으니, 적어도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진 머물러라.”

물론 파델은 굳이 아이작과 싸울 생각이 없었지만.

꽤 많은 것을 아는 파델에게도 아이작은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리고 꽤, 아니, 많이 똑똑했고.

“이걸 읽은 거냐? 이해는 하고?”

“그럼 이해를 안 하는데 여기까지 읽었겠어?”

“……마법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더니.”

“없는 게 맞아. 그러니까 알려고 배우는 거지.”

모르는 내용도 이해한다. 그리고 곱씹으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영감, 저쪽 서고는 개방이 안 되나?”

“저쪽 말이냐? 네가 잘못 손댈까 봉쇄해둔 곳이다만.”

“내가 손대기엔 위험해?”

“……금지된 책들이 많아서 그랬지만. 왜, 무어가 더 알고 싶어서?”

“뭐든 좋아.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당연히 낫지 않겠어?”

“…….”

“아쉽지만 난 지금 모르는 게 많거든.”

거기에 지식욕까지.

“……꽤 똘똘하구나.”

썩 마음에 드는 애송이.

파델은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내심 인정했다.

아이작은 제 나이또래답지 않았지만.

“어떤 삶을 살 건지도 확실치 않으면서 싸울 가정부터 하는구나.”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기에 안타깝고도.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 너는.”

아까웠다.

정처없이 목적 외의 곳에 허비될 저 재능이.

아이작의 인생이.

저 아이 자체가.

“언제 잘 생각해 보거라. 네 목표는 무엇인지.”

그렇기에 세상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에우디움은 세상을 등진 저 같은 늙은이에게나 어울리는 곳이지, 아이작 같은 아이에겐 감옥이 될 테니까.

‘아쉽구나. 아쉬워.’

파델은 생각에 잠긴 아이작을 등지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만약 아이작이 마법사였다면.

‘……내가 이렇게 모든 걸 포기하진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제 유일한 제자로 받아들여 아껴 마지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의 유일한 희망이 될 인재를 놓지 않았겠지.

비딱하지만 냉철하고, 비판적이면서도 막무가내지만 선을 지킬 줄 알며.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지식욕과 재능을 가졌으니 분명 마법사로서도 이름을 날렸으리라.

‘하지만 어울리지 않아…… 어울리지 않지.’

아이작은 지금 모습이 가장 어울렸다.

그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누빌 수 있는 능력자인 지금이.

‘쯧, 기껏 찾은 괜찮은 아이가 하필 능력자라니.’

참 인복은 지지리도 없는 운명이었다.

“이 늙은이는 세상에 질려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이곳에 구속되었다만, 너는 다르다. 아이작.”

“…….”

“그 능력에 걸맞은 삶을 살거라.”

그렇게 생각하고 떠나보냈건만.

그 잠깐 사이에 피투성이로 돌아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더랬다.

***

아이작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머물렀다.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로암 버크로델 때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파델은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그저 전보다 더욱 독하게 구는 아이작을 도와주었다.

“난 이제 떠날 거야.”

그렇게 몇 년 뒤.

아이작은 다시 한 번 선언했다.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한 아침 식사 도중에.

파델은 덤덤히 대꾸했다.

“목적지는?”

“있어.”

“목표는.”

“당연히 있고.”

“그래.”

“이번엔 내 힘으로 나갈 거야. 도와줄 필요 없으니까, 영감은 여기서 기다려.”

아이작이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찾아올게.”

“…….”

“그동안 잘 지내, 영감.”

아이작이 드물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리색과 똑같은 빛 속으로 사라졌다.

파델은 언제 사람이 있었냐는 듯 텅 빈 맞은편 의자를 바라보며 시큰둥이 한숨 쉬었다.

“고얀 놈.”

다 먹지도 않고 떠나는 건 무슨 심보냐.

파델의 일상은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갔다.

나갈 수 없는 적막한 곳에서, 홀로 연구하고. 사색에 잠기고, 취미 생활을 즐기고.

그러다 드문드문 아이작을 생각한다.

분명 한참을 그렇게 살아왔었는데, 아이작이 다녀간 이후로는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오랜만이야, 영감.”

아이작이 다시 돌아왔을 때.

“잘 지냈어?”

그동안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누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

“……제국에 시한폭탄들이 굴러다니는구나, 아주. 그것도 다섯씩이나.”

“나름 잘 어울리는 표현인데?”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흡족했다.

다시 나타난 아이작이 제 생각보다도 훌륭히 성장한 것 같아서.

“제국의 창이라.”

거창한 별칭이 따로 없어.

파델은 코웃음치며 정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다 안다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꽤 멋진 변화지?”

“…….”

“나한테도, 이 제국에도 말이야.”

“…….”

맞는 말이었다. 아이작을 통해 모든 건 천천히 바뀔 터였다.

능력자를 넷씩이나 더 모았고, 황제에게서 능력이 아닌 순수한 ‘약속’을 따냈다.

정말이지, 역사에 길이 남을 일 아니겠는가.

‘하덴베르크랬나. 능력자가 다섯에 황제의 비호까지 업었으니, 마탑은 분명 기세가 확실히 죽을 거고.’

로암 버크로델도 아이작이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파델은 처음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자유를 포기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어리석인 일이라는 것은 알았고, 그럼에도 나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런 파델을, 아이작은 처음으로 다시 세상에 나가고 싶게끔 변화시켰다.

“……꽤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그때 처음 봤던 애송이가 한 일 치고는.”

“이렇게 갑자기 그때 얘기를 꺼낸다고?”

“그 싸가지 없던 꼬맹이가…….”

그를 바꾸었다.

아이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감이야말로 그 능력으로 스스로 길을 선택하지 그래.”

“…….”

“먼지 쌓인 책들이랑 낡아가지 말고.”

중상을 입은 제 형제자매를 맡긴 아이작은 이 말만을 남기곤 훌쩍 떠났다.

“…….”

파델은 말없이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가 손을 휘저었다.

거대한 마력이 요동쳤다. 얽힌 시간과 왜곡을 끊어 버리는 난폭한 움직임이었다.

“이 정도면 오래 물러나 있었지.”

그러니 아이작이 말한 대로, 다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네가 바꾼 세상이라면, 한번 봐봐야 하지 않겠어.”

그 바뀐 세상 위에서라면, 지긋지긋한 것들도 참을 만할 것이다.

“이놈의 제국은 정상인 적이 없구나. 안 그런가, 황제.”

엉망진창으로 부서지고 피로 물든 홀에 들어선 파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아마도 그렇겠지.

전쟁이 끝나고, 파델은 다시 마탑주의 자리로 돌아갔다.

억지로 마탑주 자리를 떠맡았던 마법사는 곧장 수긍하곤 냅다 제국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엉망이야, 엉망! 이렇게 될 때까지 대체 무얼 했느냐!”

“죄, 죄송합니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나아진 구석이 하나도 없어!”

포기하고 떠난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새삼 눈으로 수치를 파악하니 속상해 언성이 높아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파델이 은둔을 선택한 원인들은 전쟁 도중 죽었거나 로암과 결탁한 것이 드러나 줄줄이 잡혀간 뒤였다.

물론 파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대적인 물갈이를 실시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던 무렵.

“그렇게 보니 또 좀 색다른걸.”

“아이작?”

“그날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잘 지냈나, 영감?”

불쑥 찾아온 아이작은 태평히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파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늙은이를 밖으로 끌어내놓곤 얼굴 한 번 안 비쳤으면서. 태평하기도 하구나.”

“그야 잘 지낼 걸 아니까. 전보다 더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안 그래?”

“한 마디도 안 지는 놈. 그래서,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뭐…… 좀 봐두고 싶어서.”

아이작이 애매하게 웃었다. 파델은 미심쩍은 낯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 봐두고 싶다는 게 날 뜻하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뭐라도 잘못 먹었느냐?”

“나답지 않은 말인 건 알겠는데, 아무튼 진짜야. ‘내가 아는’ 영감을 좀 잘 봐두려고-”

아이작이 허공에서 와인병 하나를 꺼냈다.

“이렇게 왔잖아.”

한잔 기울이자며 병을 흔드는 아이작에, 파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몰라도,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밤에 시작된 대화는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을 건너 동이 트기 직전에야 끝날 기미가 보였다.

솨아아-

탑 꼭대기답게, 창문 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꽤 서늘했다.

아이작은 아직 검푸르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끝에, 어슴푸레한 붉은빛이 섞여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태양이 떠오르면.

-망가진 게 없는 세계로.

슈넨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작은 고개를 돌려 파델을 바라보았다.

옅은 취기에 몸을 맡긴 파델이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이작에게 1순위는 당연히 하덴베르크와 슈넨이다. 하지만 파델도 그의 인생에 짙은 자국을 남긴 사람이었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엔 파델의 흔적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만큼 파델은 ‘아이작 하덴베르크’에게……

“영감. 영감이 보기에, 여태껏 삶은 어땠어?”

“…….”

“썩 괜찮았어. 아니면… 여전히 지긋지긋한가?”

아이작은 생각을 끊고 주제를 돌렸다.

슈넨의 뜻대로, 지금의 세계는 ‘없던 일’이 된다.

물론 새로운 미래에서도 파델과의 사이는 유지된다고 했지만, 파델은 ‘지금’의 기억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파델’은 아이작이 아는 ‘파델’과 같지 않을 것이다.

-어쩔까, 아이작. 파델 님도 우리처럼 이제껏 있었던 일을 기억하시도록…….

-아니. 아냐, 슈넨. 파델, 그 영감은… 그냥 기억하지 않는 편이 나아.

그럼에도 그가 왜 모든 것을 버렸을 정도로 힘들어했는지를 알기에.

아이작은 다른 길을 택했다.

“나의 삶이라.”

파델이 되뇌었다.

그의 짙푸른 눈동자가 와인잔으로 향했다, 이내 우주처럼 검은 아이작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너 같은 녀석을 만나, 썩 나쁘지 않았지.”

“…….”

“그러니까 답지 않게 둘러 말하면서 궁상 떨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이제 해라. 이만큼 어울려 줬으면 충분한 거 아니냐.”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참.

“……눈치 빠르네.”

창틀에 햇살이 와닿았다.

아이작의 오른쪽 뺨에 여명이 와닿았고.

아이작은 활짝 웃었다.

파델은 그 모습을 똑똑히 두 눈에 담았다.

“고마웠어, 파델 영감.”

붉은 주홍빛 햇살에 황금색이 섞여들었다.

사라락-

햇살이 닿은 곳을 황금빛 불결이 뒤덮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그 속에서 놀란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파델을 향해 웃어 보였다.

“좋은 아침이야.”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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