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14)

그놈

예약해 놓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던 도중 나는 문득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저란 걸 알면서도 나오신 건가요?”

“네? 네.”

아마 나와 우리 아버지처럼 그녀도 조건을 걸었을 거다.

예를 들면 가디언이 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조건 같은?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아시면서도요?”

“그냥 궁금했거든요. 요즘 세상에 아무리 재벌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쉽진 않잖아요.”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요즘은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중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잘못도 재벌이 저지르면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는 게 요즘이었다.

주식의 하락은 기본이고 엄청난 비난에 불매운동까지 웬만한 기업도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해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욱 조심하는 게 요즘 재벌들의 추세였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대단한 거였다.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대국민 사과니 기부니 뭐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로 인해 아버지가 기부한 금액이 어마어마 할거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가 사고를 치기를 기다릴 정도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전의 나는 끔찍한 인간이었다.

“몰랐으니까요.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걸 몰랐다고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사고를 쳐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간 적이 있나요?”

그녀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곤 입을 열었다.

“없네요?”

“그래서 몰랐어요. 정말 잘못하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거나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

“그, 그런가요?”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설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진실은 아니었다.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거다.

그때의 나는 정말 거칠 것 없는 망나니였으니까.

“근데 이제는 좀 달라지기로 했어요.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철이 들었다고요?”

“네. 다른 건 몰라도 사고는 안 치려고 생각 중이니까요.”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이상하게도 정말 읽기가 쉬웠다.

네가? 설마? 라는 듯한 느낌이 팍팍 전해져 왔는데 그녀는 아무래도 나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띵-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그 잠깐 사이에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지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고 있었다.

“타시죠.”

“네. 그럼”

그녀를 먼저 안내하고 바로 뒤따라 들어간 나는 21층의 버튼을 누르며 그녀에게 말했다.

“안 믿겨 지나요?”

“네. 조금···.”

“그냥 놀고먹고 싶어서요. 이대로 가다가는 아버지가 나를 쫓아낼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풉.”

그녀는 내 말이 웃긴 모양인지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작은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제는 그녀가 그냥 가 버릴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띵-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걸음을 옮기며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으로 움직이며 나와 그녀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는데.

“고객님. 혹시 오늘 12시로 예약해주신 유선우님 맞으신 가요?”

어느새 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해있었다.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예약이 되어 있는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슬쩍 주위를 둘러본 나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직원들을 제외하면 보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데.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음식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내 눈에 처음 보는 음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젤리 같으면서도 그 색감이 특이한 어떤 이상한 것.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그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어 직원에게 물었다.

“이게 뭐죠?”

슬라임 결정.

슬라임은 핵이 파괴되면 몸체가 기화되어 사라지고 딱 한 부분이 남는다.

그걸 슬라임 결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색만 다르지 젤리로 착각할 만큼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손님 혹시 슬리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이어서 입을 열어 설명하려 했지만 민선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슬라임 결정을 정화해서 요리한 거예요. 한번 드셔보세요. 맛이 괜찮아요.”

민성화의 입에서 나온 슬라임 결정이란 말을 듣자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머리를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슬라임 결정이라?

잠깐?

슬라임 결정? 민선화? 선화제약?

이 셋을 연결짓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생체갑옷!

선화제약에서 몇 년 후 발표할 생체갑옷.

아주 큰 젤리 덩어리처럼 생겼지만, 마력을 주입하면 전신을 감싸는 갑옷이 되는 엄청난 발명품.

아주 얇아 착용한 그 자신조차 피부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불편함이 없고 그 강도가 웬만한 금속으로 만든 갑옷보다 견고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마력 증폭 기능까지 있어서 각성자라면 누구나 가지길 희망했었다.

다만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손에 넣은 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가디언들이 아쉬워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슬라임 결정의 부족이었다.

슬라임이 출몰하는 균열의 수가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생체갑옷 하나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결정의 수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수십 수백의 단위가 아닌 수천, 수만의 단위.

하지만 생체갑옷이 나오기 전까지는 결정이 약품이나 포션, 음식 등등 많은 곳에 활용되었기에 그 재고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만약 자신이 지금부터라도 슬라임의 결정을 쌓아 놓는다면?

아! 어차피 돈은 많은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나는 돈이 많았다.

주식, 돈, 부동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가 상속한 재산이 수천억을 가볍게 넘어가는 데 굳이 돈을 더 벌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돈을 펑펑 쓰며 지내도 몇 대가 놀고먹을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잠깐만? 그 돈을 쓰면 아버지가···.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 몰래 주머니 하나 정도는 숨겨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다 나중에 선화제약과 생체갑옷을 가지고 딜을 할 때도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것 같았다.

*

“부회장님이 방문 하셨습니다.”

귓가로 들리는 현지의 말에 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예상했던 일.

나는 곧 작은아버지가 방문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표정관리를 한 나는 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놈이? 왜?”

“그놈이라뇨?”

아차! 나도 모르게 돌아오기 전 사용하던 호칭을 입에 올리고 말았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고 서둘러 호칭을 정정했다.

“아, 아니 작은아버지께서?”

“네. 그런데 도련님을 찾고 계세요.”

“나를? 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현지를 바라보자 현지도 영문을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한다.

“저야 모르죠.”

현지의 말을 들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찾는다는데 가줘야지.

“어디?”

“로비에 계세요.”

나는 놈이 와 있다는 로비로 가기 위해 발을 떼며 머리를 굴렸다.

바로 어제 성철에게 놈과 연결된 끈을 끊었다는 연락이 왔었다.

그에게 연락을 받은 선우는 기다렸다.

사실인지 아닌지를.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이제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작은아버지뿐이었으니까.

다만 생각보다 빨리 움직인 것 같았다?

많이 급한가?

계단을 내려오던 내 눈에 놈이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마음을 굳게 먹고 심호흡을 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개망나니를 연기하는 것.

“왔어요?”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의 반대편에 앉으며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오! 우리 조카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갑구나.”

“저도요.”

나는 전혀 반갑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이거 우리 조카가 나에게 기분 상한 일이 있는 모양인데?”

“너무 오랜만에 온 거 아니에요?”

“미안하구나. 요즘 좀 바빠서 조카에게 좀 소홀했네.”

“내가 집 안에 갇혀있으면 작은아버지가 얼른 와서 빼내 줬어야죠.”

말을 내뱉으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아마 속으로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눈치는 100단이었다.

돌아오기 전 밑바닥을 전전하며 남의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했었으니까.

그게 돌아와서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미리 준비해 왔던 이야기들을 그에게 풀어놓자.

“형님이 너무 하셨네. 내가 형님을 잘 설득해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 거라.”

“내가 아버지가 못 나가게 한다고 안 나갈 놈이에요? 카드나 한 장 줘요.”

괜히 그가 아버지에게 갔다가는 아버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걸 알게 될지도 모르기에 나는 돈이 없어서 나가지 못했다는 티를 내야 했다.

“이상하구나? 얼마 전에 백화점에 갔다고 들었는데?”

역시 내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당연한가?

그에게 나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일 테니.

“아버지가 저년한테 카드를 줘서 할 수 있는 게 그딴 거 뿐이잖아요. 내가 시발 아버지도 아니고 저런 년 눈치나 봐야겠어요?”

현지에게 고개를 돌리며 욕설을 내뱉자 현지가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안하다 현지야.

그래도 그때 아버지 카드를 쓴 게 도움이 되었다.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내 카드 일일 한도가 5억이란 사실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한도를 정해두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카드의 일일 한도를 5억으로 제한해 놨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다.

“며칠 전에 선을 봤다고 들었는데?”

역시 쉽게 의심을 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정말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렇게 쉽게?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이럴 때는 임팩트 있게 한방 질러줘야 한다.

“아, 시발 그래서 어쩌라고요. 왜 이렇게 꼬치꼬치 묻고 지랄이야! 그냥 좀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돼요? 그놈의 선인가 뭔가만 보면 막은 거 다 풀어준다더니 아빠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시발!”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고함을 치자 놈은 깜짝 놀랐는지 등을 쇼파에 바짝 기댔다.

놈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그렇구나.”

내 놀라운 연기에 놈은 홀딱 넘어갔는지 잔뜩 쫄아서는 옆에 대기하고 있는 자신의 비서를 불러 지갑을 가져오라 말했다.

비서가 지갑을 가져오자 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나는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그의 손에 들린 카드를 낚아채며 말했다.

“아니 시발. 내가 쓰면 얼마나 쓴다고. 조카가 돈 좀 쓰는 게 그렇게 아까워요?”

최소 30억 최대 50억은 쓸 거다.

마석 살 거거든. 엄청 많이.

“아, 아니 나는 걱정이 돼서···”

숨기려 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지금 심히 당황한 상태였다.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걸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통쾌했다.

전생의 내가 이놈한테 당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놈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가세요.”

나는 몸을 일으키며 대뜸 놈에게 말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방으로 향했다.

화가 날 거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자신에게 함부로 한다는 것이.

밖에 나가면 떠받들어지는 인생을 사는 자신이 겨우 이딴 망나니에게 수모를 당한다는 사실이 못 참을 정도로 굴욕감을 선사할 거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천천히 말려 죽일 생각이었다.

네가 나에게 한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너를 눈에 담는 순간 떠오른 그 끔찍한 기억에 비하면 이건 예고편일 뿐이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 목을 조여오는 이 지독한 기억은 내가 평생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끔찍한 형벌이니까.

나만 당할 순 없잖아?

그놈

나는 망나니 중에 상 망나니였다.

패륜아.

그렇다. 나는 아버지와 형을 살해한 패륜아였다.

각성한 능력을 이용해 균열을 열어 다른 차원의 독충을 모은 나는 집안에 이 독충을 풀어 아버지와 형을 살해했다.

다른 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나에게는 아주 간단했다.

그럴 수밖에.

나는 아버지와 형의 서재와 방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으니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나만이 가능했다.

극독을 가진 이 세계의 독충을 아버지와 형의 방에 몰래 풀어놓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 후 독충에게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되었다.

형과 아버지 둘 다 집에 있는 날을 노리기만 하면.

그게 바로 내 생일이었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형과 아버지를 죽였다.

정말 이상한 건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 정도의 일을 저지를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아니 그 모든 것은 작은아버지란 놈의 계략이었다.

아버지와 형이 죽고 나는 모든 것을 그놈에게 빼앗겼으니까.

혼자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내가 ‘안티디텍터’를 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그놈 때문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능력을 그놈에게는 말해 주었으니까.

병신같이, 그 시절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바로 작은아버지란 놈이었다.

몰랐다.

그놈이 나와 아버지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사실을.

나를 부추겨 더욱 사고를 치게 만들고 궁지로 몰아넣은 건 바로 그놈이었으니까.

그놈의 부추김으로 난 결국 아버지와 형을 균열을 통해 나온 독충을 이용해 살해했다.

26살 내 생일에···

벌레만도 못한 패륜아였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애도를 표했다.

아버지와 형을 내가 죽인 줄도 모르고 나를 불쌍한 놈 취급했다.

물론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 역시 많았다.

나는 그걸 보며 웃었다.

병신들이라고.

아버지와 형의 재산이 모두 내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유명그룹의 회장이란 자리가 곧 내 것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마 작은아버지란 놈이 없었어도 불가능했을 거다.

차명으로 된 주식이라던가, 비자금이라던가.

드러난 재산보다 숨겨진 돈이 몇 배는 됐을 테니까.

그렇게 꿈에 잠겨있던 사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내가 쳤던 사고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 핑계로 작은아버지란 놈은 나를 금치산자로 만들었다.

나는 작은 방에 갇혔다.

구타를 당해야 했고.

물도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때가 돼서야 깨달았다. 아버지와 형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나는 결국 내가 궁지에 몰려서야 아버지와 형의 소중함을 깨달은 쓰레기였다.

만약 아버지와 형이 살아 있었다면 나는 아마 평생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을 거다.

그렇게 병신 같은 삶을 살던 어느 날 그놈이 찾아왔다.

어떤 서류를 주며 싸인을 하라는 그 말에 나는 녀석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죽도록 맞았다.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절대 녀석의 뜻에는 다르지 않으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풀려난 것이다.

의아했다. 어째서? 왜?

기뻤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어서 들린 소식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유명그룹이란 제국이 무너졌다.

결국, 그놈도 나와 다르지 않았던 거다.

아무것도 아닌 놈이 욕심만 커서 탐내지 말아야 할 것을 탐낸 대가.

나와 그놈의 합작으로 유명그룹이라는 제국이 무너진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얼굴을 숨기고 가디언으로 살았다.

그리고 채 5년도 살지 못하고 죽었다.

*

김성철의 아지트에 도착한 나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지하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하기 때문인데.

중간중간 보초를 서는 녀석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각성자라도 들키지 않고 침입하는 게 쉽진 않았으니까.

코를 괴롭히는 이 퀴퀴한 냄새만 빼면.

“확실하냐? 줄 끊어낸 거 확실하냐고?”

“네. 확실히 끊어냈습니다.”

눈앞에서 낮게 웃으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김성철을 보며 고민에 잠겨야 했다.

내 생각대로 됐다지만, 그렇다고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난 아직 이쪽 일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놈이 작은아버지에게 내 변한 행동을 말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럼 이거 줄 테니까 똘마니들 데리고 마석거래소 가서 마석 좀 사와.”

하지만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놈에게 무슨 대단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네? 마석이요?”

그는 내가 건넨 작은아버지의 카드를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네! 그런데··· 얼마나 사 올까요?”

“글쎄? 한 20억?”

“네?! 이, 이십억이요?”

김성철이 깜짝 놀랐다.

20억이면 평생을 떵떵거리면서 살진 못해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나 기다리는 거 싫어한다.”

“네? 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자 머리가 아파 왔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으니까.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나는 마력을 천천히 주위에 퍼트렸다.

작은 방이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내 마력으로도 방안 정도는 탐지할 수 있었으니까.

마력을 가진 누군가가 숨어서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도 없네?

방안에 나를 감시하는 자가 없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마력을 회수하고 눈을 감았다.

놈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테니 그동안 마나 호흡법이나 할 생각으로.

눈을 감고 천천히 주변의 마나를 느끼며 호흡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반응하는 마나들을 호흡을 통해 빨아들여 천천히 내 마력으로 감싸 마력에 흡수시키는 작업을 반복했다.

나는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대단히 높았다.

늦은 나이에 가디언으로 활동을 시작한 내가 A급 가디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친화력 덕분이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마력을 모을 수 있고 나만의 특이한 능력으로 인해 가디언이 된 지 채 2년이 지나기도 전에 나는 A급 가디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내 부하 1호인 뚱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균열을 통해 소환한 괴물들 덕분에 나름 유명했었다.

정신계열의 특성을 지닌 자들이 괴물을 길들이는 경우는 있었지만, 나처럼 직접적인 소환을 통해 몬스터를 다루는 자는 나를 빼고는 없었으니까.

비슷한 존재들이 있긴 하지만 몬스터는 아니었다.

똑똑-

호흡법을 이어가던 내 귓가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었다.

“들어와.”

내 말이 떨어지자 김성철이 큰 자루를 어깨에 지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련님 사 왔습니다. 정확히 20억은 아니지만요.”

“쏟아봐.”

“네?”

“바닥에 쏟아 보라고.”

내 말에 김성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킨대로 자루를 뒤집어 바닥에 마석들을 쏟아부었다.

색, 크기, 모양 모든 게 제각각인 마석들이 밝은 빛을 뿜으며 바닥에 쏟아지자 어두웠던 방 안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다시 담아.”

“네? 네!”

대충 훑어본 마석은 김성철의 말대로 20억 정도 되어 보였다.

마석은 색, 크기, 형태에 따라 그 가격이 책정되는 게 아니다. 형태와 빛깔이 별 볼 일 없어도 마석에 깃든 마력의 양이 모든 걸 정하기 때문인데.

마력을 느낄 수 있는 나는 대충 살피는 것만으로도 마석의 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드르르릉-

탁자 위에 올려놨던 스마트폰이 진동을 통해 연락을 왔음을 알렸다.

발신인은 역시나 작은아버지.

나는 망설임 없이 폰을 집어 들어 전화를 받았다.

“왜요?”

-선우야 작은아버지다.“

”알아요.“

-별건 아니고 카드로 마석을 구매했다고 나오는데 네가 구매한 게 맞는 거니?”

아마 작은아버지는 모든 걸 알아보고 전화를 했을 거다.

누가 자신의 카드를 사용했는지. 그걸 들고 어디로 갔는지까지.

“왜요? 마석 좀 사면 안 돼요?”

-그건 아니지만··· 마석이 필요한 일이 없잖느냐.

“그냥 사 봤어요. 이게 뭐길래 사람들이 환장을 하나 궁금해서. 그런데 별건 없네요.”

-그, 그러냐?

아마 열불이 터질 거다.

나나 우리 아버지와는 다르게 그에게 20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거 조금 썼다고 지금 전화 한 거예요? 에이 씨! 그럴 거면 카드 도로 가져가든가!”

-그, 그냥 궁금해서 전화한 거란다. 그, 그런 게 아니야. 크흠.

내가 화를 내자 폰을 통해서 전해지는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전해졌다.

당황했든가.

화가 났든가.

아님, 둘 다거나.

나는 마지막에 무게의 추가 기울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아, 아니다. 그런데 선우야 지금 밖이니?

알면서 물어보는 것 봐라.

아마 내가 김성철과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거겠지.

“네. 똘마니 좀 만나고 있어요.”

-이런. 그런 놈들은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를 걱정하는 척하는 게 뻔히 보였는데.

그 말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김성철이 작은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정말 끊어낸 거라는 걸.

그렇지 않으면 작은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김성철과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새로운 놈들을 내 옆에 붙이려 하는 거겠지.

“됐고. 전화 끊을게요.”

-자, 잠깐···

그가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래야 더욱 화가 날 테니까.

비열한 미소가 내 입가에 머물고 있을 거였다.

“들고 따라와.”

“네. 도련님.”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망나니인 내가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작은아버지 입장에서는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아는 게 없는 멍청한 나를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할 테니까.

김성철을 달고 날 기다리며 대기하는 기사에게 간 나는 차 트렁크를 열고 마석이 든 자루를 실으라 명령했다.

그리고 마석 자루를 열어 손에 집히는 대로 마석을 꺼내 김성철에게 건냈다.

“그걸로 대충 버티고 있어라. 또 올 테니까.”

억은 안돼도 그에 근접은 할 테니까 당분간 이놈이 부하들이랑 지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다.

거기다 나름대로 버는 것도 있을 거고.

“간다.”

“안녕히 가십시오. 도련님!”

녀석에게 인사를 하자 김성철과 그 부하들이 허리를 접으며 우렁차게 인사한다.

녀석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집으로.”

집으로 향하는 차에서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던 나는 기사를 재촉했다.

“빨리 좀 가라. 너무 느린 거 아니야?”

내 채근에 기사는 차의 속도를 더욱 올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좌회전.”

“네? 네!”

기사는 당황했지만 내 말에 따라 움직였다.

“좌회전. 빨리!”

그렇게 나는 한 시간가량을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고 결국 원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세우고 기다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네. 도련님.”

기사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흘끔 보고 차에서 내린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는 천천히 걸었다.

사창가.

내가 도착한 곳은 사창가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하고 복잡한 곳.

어느 정도 이동한 나는 고개를 돌려 차를 슬쩍 확인하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분명 아버지가 붙인 놈이 나를 따르고 있음이 확실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준비된 자만이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왔기에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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