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14)

첫 소환

블랙마켓에 다녀온 후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요즘 참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역시 마력을 쌓는 일이었다.

영약을 이용해 마력을 쌓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그 순수한 마력의 결정체를 이용해 마력의 홀을 키우는 건 정신력의 소모가 크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키운 마력홀에 마력을 가득 채운 후 이번에 구하게 된 유물인 인피니티 홀에 마력을 채워 넣어야 했다.

텅 비어버린 마력홀을 다시 채우기 위해 마력포션을 복용하고 다시 인피니티 홀에 마력을 채워 넣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거기다 저번에 구한 펜릴의 알이라 추정되는 것에도 마력을 주입해야 했는데.

처음 껍질에만 흡수되던 것이 막대한 마력을 쏟아붓고 나서야 이제 조금씩 그 안을 채워가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A급 각성자의 마력을 몇 배는 넘어설 정도였다.

그 덕분에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마력을 키우고 소모하고를 반복하는 중이었기에 마력홀에 가해지는 과부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고통에 요즘 잠을 자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얻는 게 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자신을 학대하는 나에게서 부서지지 않기 위해 마력홀 스스로가 회복을 시작하면서 점차 견고해지고 있었고, 조금이지만 그 크기를 스스로 불려가기 시작해 기쁜 마음으로 그 고통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현지라는 존재였는데.

그녀가 가디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녀 앞에서 마력을 쌓거나 알에 마력을 주입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그녀를 쫓아내야 했다.

하지만 금방 일을 처리하고 오는 통에 여간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었다.

결국, 마력 호흡법을 하는 건 현지가 있건 말건 상관하지 않기로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각성자라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알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이 능력으로 회귀 전과 똑같은 짓을 저지를 것도 아니었기에 대충 아버지에게 털어놓고 편하게 마력을 쌓으며 능력을 키우자는 마음이 들었다.

“현지야. 김 실장한테 가서 아버지 언제쯤 오시나 물어봐라.”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런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일단 각성을 했다는 사실과 내 능력이 균열을 여는 거란 것까지는 말할 생각이었다. 다만 조금 축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균열의 크기를 적당히 조절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해야 할 것 같았다.

당연히 내가 회귀라는 것을 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고.

물론 말한다고 해서 믿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도 없다.

벌컥-

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도련님. 회장님 지금 집에 계셔요.”

“뭐? 아버지가 집에 있었어?”

“네. 지금 서재에서 보고 받고 계셔요.”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온 것 같았다.

“그래? 그럼 먼저 가서 내가 할 얘기 있다고 곧 찾아뵙는다고 전해줘.”

“네. 도련님.”

현지가 나가는 것을 보며 입고 있던 잠옷을 벗어 던지고 일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지금껏 해왔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하고 어떤 게 필요하고 등등 생각을 정리했다.

*

똑똑-

“아버지 저 선우예요.”

“그래 들어오거라.”

방 안에서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져 문고리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서재 안에는 아버지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는데.

형이 함께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형도 있었네. 중요한 일 의논 중이셨어요?”

“아니다. 거기 앉아라.”

“네.”

형의 맞은편에 앉는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형에게도 말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아버지에게만 따로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좋지도 않은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을 시작했다.

말했을 때의 이득과 말하지 않았을 때의 이득.

그런 걸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버지야 내가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반기시겠지만, 형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선우 네가 무슨 일이냐? 나를 다 찾아오고.”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버지에게 말하던 나의 머릿속에 한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끼리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을 백 퍼센트 신용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형의 관계라면 틀림없었다.

내가 물어보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형이 물어보면 뭐든 가르쳐 주실 게 뻔했다.

아마 내가 각성했다는 걸 형도 분명 알고 있을 거였다.

“네가? 설마 또 돈 이야기냐?”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사실··· 저 각성했어요.”

아버지와 형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역시 둘 다 알고 있었다.

전혀 놀라지 않고 있었다.

“···아시고 계셨어요?”

“그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네가 지금처럼 언젠가 말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형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나를 믿고 있었다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어째서?”

“돈이 필요하면 돈을 달라고 솔직히 말했잖느냐?”

“겨우 그거 때문에요?”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는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니까 돈 필요할 때마다 몰래 쓰지 않고 아버지에게 돈 달라고 한 것 때문에 나를 믿었단 말이야?

“사고를 쳤을 때도 너는 진실을 털어놓고 먼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거야··· 어차피 들킬 게 뻔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미 알고 계셨잖아요.”

그랬다.

사고를 치면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게 뻔했다.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하느니 먼저 말하고 혼나는 게 훨씬 편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었다.

전생의 나는 그런 걸 못 견뎌 했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지.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고 만약 그 비밀을 들키면 어떻게든 입을 막으려 하지. 절대 누군가에게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단다. 너처럼 자신의 잘못을 쉽게 털어놓지 않아.”

내 고개가 형을 향해 돌아갔다.

초점이 흔들리듯 내 눈동자는 시야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기에.

분명 아버지도 형도 나란 존재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치부라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절대로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나를 나 자신보다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전생의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를 믿었기에 나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돌아가신 거였다.

겨우 이런 말 때문에 그런 사실을 깨달은 게 아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많은 장면이 내게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형이 거의 매일 내 방에 찾아와 내 얼굴을 보고 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집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가끔 형이 내 앞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보기 싫을 텐데도 굳이 거기서 그러는 이유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내 생일만 되면 아버지와 형이 일찍 집에 들어오던 이유가···

A급 가디언인 현지가 내 옆에 있던 이유가···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나를 미워하던 것이 아니었어.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계셨구나.

아버지와 형 둘 다.

“···죄송해요.”

결국,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뚝뚝 떨궜다.

전생의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흠흠-”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까.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먹먹한 내 가슴을 깨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네가 이러는 것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너에게 변화가 될 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했으니까.

아들이 수면제를 왕창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거다.

“그냥 꿈을 꿨어요. 제 곁에 아무도 없는 꿈을···”

“겨우 꿈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아버지는 내가 철이 든 모습보다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허! 꿈 몇 번 잘 못 꿨다가는 생목숨이 그냥 날아가겠구나.”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됐다.”

“그것보다 아버지. 제 능력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나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내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뭐, 보나 마나 별것 아니겠지. 그러니 자존심 강한 네가 지금껏 숨기고 있었던 것 아니더냐.”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설마. 너는 이 아비를 너무 쉽게 보는구나. 내가 누군지를 잊어버린 게냐?”

“제 아버지시죠. 망나니의 아버지.”

“쿨럭- 그, 그렇구나. 이 아비가 그걸 잊고 있었어.”

“큭-”

분위기를 좀 풀기 위해 한 농담이 효과가 있던 모양인지 형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제 능력은 바로 균열이에요.”

“잉? 균열? 그게 무엇이냐?”

내 말에 아버지와 형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보여드릴게요. 잠시만요.”

나는 ‘안티디텍터’에 마력을 불어넣어 활성화를 시키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번에 돈 좀 쓴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 돈으로 이걸 샀어요.”

“그게 무엇이냐?”

“‘안티디텍터’요.”

“뭐라고! 이, 이놈이!”

꽝-

아버지는 내 말을 들음과 동시에 탁자를 내리치시며 화를 내셨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 ‘안티디텍터’ 였으니까.

아무리 유명그룹이라도 이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정부는 물론 가디언들과 대중들까지 엄청난 비난을 쏟아낼 게 틀림없었으니까.

자칫 일이 커지면 유명그룹이 흔들릴 수도 있을 정도로 이 물건은 위험한 물건이었다.

블랙마켓의 경우만 봐도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때 사상자가 수천 명이라 그랬던가.

매달 적어도 한번은 ‘안티디텍터’로 인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걸 내가 샀으니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으니까.

“죄송해요. 근데 어쩔 수 없었어요.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들어볼 것도 없다. 당장 없애버려. 그딴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그놈들에게 빌미만 제공할 뿐이야.”

“그놈들이요?”

아버지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놈들이라니?

“아버지. 일단 선우 말을 좀 들어보시죠.”

“듣긴 뭘 들어. 이놈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하는 소리냐?”

“일단 말을 들어보고 조치를 하시죠. 이미 저지른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형이 내 편을 들어주었기에 나는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제 능력이 균열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게 필요했어요.”

“설마··· 균열을 열 수 있다는 말이냐?”

아버지는 내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 들어셨다.

“네. 제 능력이 균열을 여는 능력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꿈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

“직접 보시죠.”

나는 ‘안티디텍터’가 완전히 활성화된 것을 느끼고 천천히 마력을 움직였다.

“잠깐! 위험하진 않은 거냐?”

형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마력을 허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뚱이같은 놈이 딱 하고 나와주면 정말 괜찮을 것 같은데.

허공에 집중한 마력의 성질을 천천히 변화시켰다.

나는 바뀐 마력의 성질이 파괴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공간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 가능한 거겠지.

순간 허공에 금이 주르륵 가기 시작했다.

“허!”

그 모습을 본 아버지와 형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구라는 별에 존재하는 존재 중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점차 허공에 간 금이 그 크기를 키우다 마침내 공간이 깨져버렸다.

불길한 색을 가진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평범한 성인 남성이 쉽게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균열이.

이것이 지금의 내 전력이었다.

날 믿는 아버지와 형 앞에서 내 힘을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내가 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냈다.

“정말이었구나···”

“이럴 수가···”

둘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뭐랄까? 좀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어때요. 대단하죠?”

어린아이가 상을 받고 아버지의 칭찬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대단하구나. 그런데 이거 정말로 위험한 건 아니냐?”

“네. 아버지.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안전할 거에요.”

일단 균열을 열고 나면 딱히 힘이 들일은 없었다.

그저 열린 균열에 마력만 주입하면 되었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우야.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는 거냐? 위험하지 않다는 걸 보니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 모양인데.”

쓸모가 있냐는 형의 물음에 약간 자존심이 상하려고 했다.

나는 그런 형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위험하지 않다고 했지. 몬스터가 안 나온다고는 안 했는데?”

“뭐?! 그럼 위험한 게 아니냐. 어서 없애버리거라.”

아버지는 깜짝 놀라셔서는 어서 균열을 닫으라고 성화셨다.

“괜찮아요. 아버지 몬스터가 나와도? 큭!”

순간 균열을 통해 급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무언가 균열을 통해 나오려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설마?

첫 소환

“거, 걱정 크윽!”

보통 놈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이 정도 마력을 소모하게 만드는 놈은 지금껏 단 한 번밖에 없었다.

“빨리 닫거라! 지금 뭔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냐?”

놀라신 아버지는 어떻게든 나에게 균열을 닫게 하실 생각이신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보통 있으나 마나 한 녀석들이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양을 보니 보통 놈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오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보통 균열을 유지하고 평균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나가 튀어나올 정도였기에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좀 난감하긴 했지만.

“신우야 안 되겠다. 빨리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오너라.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

“네. 아버지.”

형은 아버지완 다르게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는 아버지의 말대로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아마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현지를 불러오려는 것이리라.

“안돼요!”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마력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 이미 내 마나 홀은 텅텅 비어있었다.

결국, 인피니티링에 모아둔 마력을 끌어다 쓰고 있었기에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링에 있는 마력을 내 몸에 채우고 다시 균열에 제공하는 건 극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 끈이 끊어져 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아버지 선우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좀 지켜보도록 하죠.”

다행히 형은 아버지를 설득하려는 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안심이 되지 않으신 모양인지 다급하게 말을 내뱉으셨다.

“그럼 너라도 피해 있거라. 이 아비는 너희들이 잘못되는 꼴은 절대 못 본다.”

형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긴 모습이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도련님! 무슨 일 있으세요?”

현지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방음이 잘된다고 해도 큰 소리를 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현지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저 아이라도 들어오라고 하거라. 믿을 수 있는 아이다.”

아버지의 믿을 수 있다는 말은 아마 사실이리라.

사람 보는 눈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나만 빼고.

형은 방문 앞으로 다가가 아주 조금만 문을 열고는 입을 열었다.

“현지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자리를 좀 피해줬으면 하는데.”

담담한 형의 말투는 아마 다른 사용인들을 안심시켰으리라.

곧이어 사용인들이 모두 물러난 걸 확인하고는 문을 열자 현지가 들어왔는데.

현지는 서재에 들어와 균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곧이어 현지에게서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지의 마력을 느낀 나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는데.

이 정도 마력이라면 S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모두 피하세요. 나오려는 놈이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아요.”

침착하게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리던 현지는 나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작은 도련님은 왜 그러고 계세요?”

“일단 지켜보자꾸나.”

아버지가 현지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현지는 갑자기 메이드복의 치마를 걷어 올렸는데.

허벅지 부분에 하나씩 단검을 찬 벨트가 보였다.

단검을 꺼내어 양손에 하나씩 쥔 현지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 균열에서 커다란 손이 툭 튀어나왔다.

녹빛을 띠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순간 어떤 장면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뚱이!

그래 그때도 이랬어.

뚱이가 나올 때와 반응이 똑같았다.

다만 균열의 크기가 조금 달랐을 뿐.

“오크?”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은 오크였다.

다만 그 모습이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보통 오크는 덩치가 180에서 190사이였는데 지금 튀어나오는 놈은 아무리 작게 봐도 2미터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오크가 이만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현지는 놀란 모양이었다.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오크의 모습에.

“피, 피하셔야 해요. 네임드! 네임드예요.”

우리에게 소리치는 현지는 크게 당황한 모습으로 우리를 재촉했다.

“어서요. 밖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주세요. 저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강한 놈이에요.”

“건.드.리.지.마!”

아마 내 모습은 꽤나 볼만할 거라 생각한다.

시야가 붉게 보이는 것이 눈의 실핏줄이 다 터져버린 듯했고 입을 떼느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기에.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놈은 전생의 내 파트너 뚱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한 확신이 내 머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순간 엄청난 마력이 한순간에 소모되며 오크가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취익?”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그 얼굴은 분명 뚱이가 확실했다.

균열에 공급하던 마력을 완전히 끊어버린 나는 뚱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헉.헉.헉. 앉아.”

뚱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말대로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이, 이게 어떻게...”

그 모습을 본 모두는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오크가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게 신기한지 나와 뚱이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해주겠느냐?”

“잠, 잠시만요. 수, 숨 좀 돌리고요.”

뚱이를 꺼내느라 진이 다 빠진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바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놈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좀 늦었네요.”

“설명이나 하거라.”

“네. 그러니까 제가 만든 균열을 통해서 나온 놈들은 다 제 명령을 듣는다는 거죠. 저놈처럼.”

“마, 말도 안 돼요!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현지의 목소리였다.

많이 놀란 모양인지 더듬거리며 소리치는 현지의 마음이 이해가 가긴 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자는 전생에도 나 혼자뿐이었다.

물론 소환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령을 소환하는 존재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를 소환하는 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되려나?

“사실이야 현지야. 균열에서 나오는 순간 나한테만 보이는 선이 연결되었다고 해야 할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면 균열에서 나오는 모든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인데 저런 게 계속 튀어나오면 마왕이랑 다를 게 없다고요! 세계 정복도 가능할걸요?”

그건 좀 너무 나간 이야기 같은데?

마왕이라니···.

“방금 봤잖아. 내가 뚱이를 꺼내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봤으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

“뚱이요?”

이런 실수를···.

“아니 그냥··· 이름 좀 지어봤어. 어때 괜찮아?”

“말 돌리지 마시고요.”

아버지와 형이 있는데 왜 얘랑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걸까?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형을 바라보자 우리가 대화하는 걸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쨌든 쟤를 꺼내는 게 엄청 힘들다고. 거기다 저런 놈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런데 각성했을 때부터 제가 항상 옆에 붙어있었는데 언제 연습해서 그런 걸 아신 거예요?”

점차 현지에게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각성할 때 한 번에 알게 됐는데?”

내 말은 보통 각성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이었다.

각성하게 되면 자신의 특성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다만 나처럼 특성으로 인해서 또 다른 뭔가를 얻게 되는 경우는 직접 사용해서 알아봐야 했기에 현지의 물음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검술에 대한 특성을 각성한 자를 예를 들어 보자면 뛰어난 검술에 대해 알게 되지만 검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요?”

근데 얘가 왜 이리 꼬치꼬치 캐물어.

“선우야 그럼 정말 위험하지 않은 것이냐? 이 아비는 걱정이 된다만.”

아버지는 못마땅한 얼굴로 뚱이를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간보다는 믿을 만할 거예요.”

인간을 가장 많이 속이는 건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

아버지와 형 그리고 현지를 설득하는 데 정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내가 왜 현지까지 설득을 해야 하냐고.

“그런데 현지야. 너 가디언이었냐?”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물음을 던졌다.

“네? 그게···”

“그럼 너 지금까지 나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왜요? 메이드가 가디언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요? 그리고 감시 같은 거 안 했어요.”

당황했던 얼굴에 순식간에 철판을 깔며 현지가 말했다.

뻔뻔한 모습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너는 내 메이드라며. 메이드가 모시는 분에게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안 물어보셨잖아요.”

“물어봤으면 대답을 했을 거라는 거야?”

“당연하죠.”

걸렸다.

내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내가 물어보는 거에 대해서 솔직하게 대답을 해준다는 거네?”

“그럼요.”

“그럼 너 A급 가디언이야?”

“네? 그게···”

순식간에 치고 나온 내 물음에 현지의 표정은 심히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라.”

“네···.”

“능력은?”

여전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지는 쉽게 내 말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며 현지를 재촉하자 그제야 말이 나왔다.

“그게··· 암살이요.”

“뭐?!”

“암살이라고요.”

“진짜? 암살이라고?”

현지를 보며 순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네!”

정말이라고?

그 암살을 말하는 건가?

귀로 똑똑히 들었음에도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정말 놀라버렸다.

내가 알기로 암살의 특성을 가진 자는 단 한명 뿐이었다.

바로 미래의 살성이라 불리는 흉악한 범죄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민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최강자를 유일하게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인물이 바로 암살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의 이름은 최강준

대한민국 최강이란 호칭뿐 아니라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길드의 주인이었던 사내.

미래가 아닌 지금도 대한민국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자의 유일한 대적자라 불리던 존재가 바로 살성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살성이라 불리던 자는 최강준을 수도 없이 괴롭혔다.

그와 연관이 있는 자들 수백을 암살해 버린 존재가 바로 살성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거기다 그가 암살한 자들은 하나같이 강자들이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천궁이라 불리던 여자였는데 그녀는 최강준의 연인이었다.

최강준은 그전까지는 신경을 쓰긴 했지만 직접 나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는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다만 살성에 대해서 알려진 건 단 하나뿐이었다.

능력.

어떻게 알려졌는지는 모르지만, 암살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다만 이름도 나이도 심지어 성별조차 불분명했기에 아무도 살성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 살성이 내 눈앞에 있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제가 도련님을 암살이라도 할 것 같아서 그러시는 거예요?”

내 표정이 많이 심각했는지 현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나는 급히 표정 관리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뭐랄까? 위험한 능력 같아서.”

“제 특성이 암살이긴 해도 위험하기만 한 능력은 아니에요.”

“그럼?”

“호위에도 쓸모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도련님 메이드로 있는 거고요.”

“어떻게?”

이상하게도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암살에는 은신이나 기척을 죽이거나 하는 조용히 누군가를 미행하는 기술들이 있거든요.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보호하기에는 이만한 특성이 없어요.”

현지의 말에 한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