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구역
“지금까지 날 밖에서도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야?”
이것이었다.
S급에 육박하는 힘을 가진 현지가 아무도 모르게 나를 미행했을 수도 있다는 것.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현지의 표정을 보니 틀림없었다.
설마 블랙마켓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긴 아닐 거야.
그놈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현지라도 지금으로서는 들키지 않고 그곳을 통과하진 못했을 테다.
“현지야.”
“죄송해요. 하지만 회장님 명령이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현지의 모습을 보자 괜스레 혼자 심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아버지와 형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지금 그 사실을 알았다고 뭔가 변하는 건 없을 테니까거기다.
미래의 살성이라는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건, 실보다는 득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됐다. 고개 들어. 아버지 명령이라는데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용서해주시는 거예요?”
“용서할 게 뭐 있어 아버지 명령인데. 뚱이나 보러 가자.”
“제가 모실게요. 헤헤”
내 말에 현지가 밝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그 웃음이 마냥 밝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천궁을 어떻게 죽였는지 알기 때문일까?
온몸을 난자해버리고 사지를 찢어 발겨놨던 그 모습을 본다면 아마 누구든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나 괜찮은 거 맞나?
*
우걱우걱-
별채의 커다란 방안은 원래의 화려했던 모습 대신 거지소굴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두 뚱이 때문이었는데.
놈이 먹어 치운 음식물의 파편이 여기저기 튀어 있을 뿐 아니라 살덩이를 싹싹 발라먹고 남긴 뼈들이 방안을 굴러다니며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으~ 냄새.”
“캬오?”
목소리를 들었는지 뚱이가 음식을 집어 먹던 행동을 멈추고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날 발견한 뚱이는 한 손에는 닭 다리를 반대 손에는 족발을 든 채로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다가오려 했는데.
“손에 든 거 마저 먹어.”
서둘러 입을 열어야 했다.
온갖 음식물 찌꺼기들을 몸에 묻힌 상태로 나를 건들기라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현지는 여전히 내 말에 따르는 뚱이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내 능력이 균열을 여는 것이 아니라 소환계열이라 그럴 거다.”
전생에도 이렇게 나를 소개했었다.
소환능력자라고.
“정령사는 몇 번 봤는데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다는 사람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모르지 그거야. 나처럼 숨기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그런가?”
없을 거다. 아마.
전생에도 몬스터를 소환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 비슷한 능력을 가진 자가 한 명 있긴 하지만 그 역시도 몬스터는 아니었다.
사실인지는 확인을 하진 못했지만.
“그나저나 얼마나 먹은 거야?.”
“30인분 정도 넣어 놨는데 거의 다 먹은 거 보니까 30인분을 먹어 치웠다고 봐야죠?”
30인분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다행이다. 먹을 거라도 실컷 먹을 수 있게 해줘서.
전생의 나는 뚱이가 정말 안타까웠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주인을 만나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먹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고작해야 하루 치킨 한 마리 정도가 전부였다.
녀석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석의 비용이 장난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걸 제외하고 뚱이의 밥값을 해결해야 했으니까.
거기다 그 치킨 한 마리를 제외하면 사료가 전부였다.
뚱이의 식사 대부분을 사료로 충당했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이렇게라도 맛있는 걸 실컷 먹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지야 뚱이 운동 좀 시키게 트럭 좀 준비해달라고 해. 뚱이가 불편하지 않을 만한 크기로.”
“운동이요? 하지만 저 오크는 아직 들키면 안 된다고···.”
“내가 언제 사람들 있는 데서 뚱이 운동 시킨다고 했어? 위로 갈 거야.”
“위면? 설마?”
“그래 제한구역.”
내가 말한 제한구역은 예전의 북한이라 불렸던 나라였다.
지금은 망해버린 그곳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 되어 각성자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주로 헌터들이 그곳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현세의 마계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망해버린 이유는 북한의 욕심 때문이었는데.
마석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균열을 닫지 않고 쏟아지는 몬스터를 계속 사냥하는 방식을 취하던 북한은 점차 늘어나는 균열을 막아낼 인력이 부족해 지면서 부랴부랴 균열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한계를 벗어나 버리고 말았는데.
결국, 몬스터들에게 나라 전체가 점령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주변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와 강한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아버린 것을 확인한 주변국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뿐 아니라 여러 국가가 이런 식으로 망하게 되었는데 이런 곳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들이 생겨나면서 가디언이라는 호칭으로만 불리던 각성자들에게 헌터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했다.
“네. 준비하라고 할게요.”
“그래.”
현지가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잠깐 보고 뚱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맛있냐?”
“취익.”
콧김을 뿜어내며 긍정하는 걸 보니 정말 맛있나 보다.
“그래. 실컷 먹어라.”
뚱이가 먹는 모습은 남들이 보기에는 인상을 찌푸리게 할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귀여웠다.
내가 믿을 수 있는 딱 하나 남은 내 것.
그게 뚱이였으니까.
*
“저도 여기 와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너 헌터 생활도 했었어?”
현지의 말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가디언은 헌터들의 사냥터인 곳에는 웬만해서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이 가디언.
그 반대로 사람이 없는 곳의 몬스터를 청소하는 게 헌터였는데.
둘의 사이는 이상하게 좋지 않았다.
주로 가디언이 헌터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았는데.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니요. 3년 전에 웨이브 발생했을 때 왔었거든요.”
“아! 그때?”
자세히는 모르지만 3년 전 수많은 몬스터가 남하한 사건이 있었다.
새로 열린 균열에서 엄청난 놈이 나타나서 그놈을 피해 몬스터들이 남쪽으로 남하한 사건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너 드레이크 봤겠네?”
드레이크를 처음 발견한 헌터들이 그 모습을 보고 드래곤이라고 착각을 했을 정도로 이 녀석은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고 들었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체구에 엄청나게 단단한 비늘 덕분에 A급 각성자의 전력을 다한 공격조차 비늘에 작은 흠집만 낼 수 있을 정도로 두려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 웨이브가 문제가 아닌 이 드레이크가 진짜 문제였다.
이놈을 막던 헌터, 가디언 가리지 않고 엄청난 사상자가 생겨났고 결국 S급이라 불리는 각성자 다섯이 투입되고 나서야 간신이 놈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봤죠. 저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정말로 그렇게 무시무시했어?”
“그럼요. 아마 S급이 한 명만 없었어도 큰일 났을걸요? 지가 무슨 드래곤도 아니면서 브레스를 내뿜는데 저는 무슨 불지옥에 떨어진 줄 알았어요.”
뚱이가 타고 있는 트럭 쪽으로 이동하며 현지에게 드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새 도착한 트럭 앞에는 몇몇 인원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것 확실하죠?”
이미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기에 사람이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 다시 한번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도련님. 확인 마쳤습니다.”
뚱이의 모습이 노출되는 걸 피하고자 아버지에게 믿을 수 있는 자들을 붙여달라고 했는데 그들이 지금 주변을 철저히 살피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럼 문 열어주세요.”
“네. 도련님.”
내 말에 대답하며 트럭의 문을 여는 자는 김현태였다.
수면제를 먹고 병원에 입원했던 나를 경호했던 경호팀장.
알고 보니 현태는 우리 집을 경호하는 팀 중 하나였다.
그가 문을 열자 안에서 뚱이가 아직도 뭔가를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뚱이야. 그만 먹고 좀 나와볼래?”
내 말을 들은 뚱이는 좀 아쉬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는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다가왔다.
“조금 있다 실컷 먹게 해줄 테니까 얼굴 좀 펴라. 안 그래도 흉악해 보이는데 얼굴까지 찌푸리면 아무리 나라도 못 견디거든?”
“취익.”
가까이 다가온 뚱이를 달래며 말하자 뚱이가 콧김을 내뿜었다.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출발해볼까?”
내가 천천히 앞에 보이는 숲이 우거진 곳으로 천천히 발을 옮기기 시작하자 현지와 현태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너는 왜 안 따라와?”
멀뚱멀뚱 내 뒷모습만 쳐다보는 뚱이에게 말하자 그제야 몸을 걸음을 떼는 뚱이였다.
“취익.”
콧김을 내뿜으며 내 뒤를 따라 움직이는 뚱이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그때도 이랬었지?
“그런데 정말 안전한 게 맞습니까?”
현태가 뚱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도 현지처럼 오크가 사람의 말을 따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누구라도 그렇겠지.
“안심해. 네가 생각하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네.”
내 말에 대답 하면서도 전혀 경계를 풀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뚱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세 때문에 그가 이러는 거라 생각되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네? 무슨···.”
“가라 뚱아~!”
“크와악-”
쾅!
내 말뜻을 알아들은 뚱이는 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괴성을 지르며 땅을 박차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본능적으로 이곳에 온 이유가 사냥이라는 것을 아는 뚱이였다.
정말 뜬금없는 모습이지만 이게 뚱이의 사냥방식이었다.
“그럼 따라가 볼까요?”
입을 염과 동시에 뚱이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는 나를 현태와 현지가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옆에 바짝 붙어 속도를 맞추며 달렸다.
둘은 아직도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지 한참을 달렸음에도 그 표정이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미친 듯이 질주하며 보이는 모든 몬스터를 학살하는 뚱이와 그 뒤를 따르는 나.
그리고 내 균열에서 튀어나온 약한 개체들이 죽은 몬스터의 부산물과 마석을 챙기며 뒤를 따르는 게 전생의 내 사냥방식이었다.
아니 이건 뚱이의 사냥방식을 채택한 거였다.
효율이 높았으니까.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의 몬스터를 잡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다만 언제까지 뚱이의 질주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아마 뚱이는 마음에 차는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몬스터가 출몰하진 않았지만, 곧 있으면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렇게 뚱이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뚱이의 앞에 작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블린?”
퍼억-
내 입이 열림과 동시에 뚱이가 고블린을 들이박았는데, 고블린의 몸이 순식간에 육편으로 산화해 버렸다.
후드득 떨어지는 고블린의 육편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대로 쏘아져 나가는 뚱이를 보며 현지와 현태가 잠시 움찔거렸지만, 나는 달랐다.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뚱이에게 고블린은 지나가는 개미와 다를 게 없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나오는 잡몹들을 박살내며 전진하는 뚱이였다.
“지금부터 위험단계가 한 단계 올라갑니다.”
옆에서 들리는 현태의 목소리에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는 계속해서 뚱이를 쫓아갔다.
“아~ 정말 오랜만이네.”
전생에는 뚱이와 함께 거의 매일 이곳에서 살았었다.
경계선을 넘어 뚱이의 질주를 따라다니며 마석을 줍고 부산물을 챙기던 생활을 했던 그때는 정말 힘들었었는데.
돌아온 지금은 이상하게도 상쾌한 기분만을 전해주었다.
이 생활을 그리워 한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네? 오랜만이요?”
그 말을 들은 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이렇게 상쾌한 기분을 느낀 건 좀 오랜만인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대며 뚱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게 추억이란 것일까?
옛 생각을 하는 나는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도련님 앞쪽에 리자드맨 무리를 발견했는데 괜찮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