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14)

첫 사냥

“허~”

현태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뚱이가 십여 마리의 리자드맨을 말 그대로 찢어버리는 모습에 그뿐만 아니라 현지 역시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뚱이의 주먹에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가 터져 나갔고 양손에 잡히면 그대로 찢어져 버리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지만, 내 눈에는 뚱이가 즐거워하는 모습만 보였다.

뚱이는 투쟁본능이 강했다.

싸우는 걸 즐긴다고 해야 할까?

특히 자신과 대등한 상대나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더욱 흥분했었다.

아마 그 미소를 본 사람은 뚱이가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안다.

뚱이가 기뻐한다는 것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흉악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그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 반대였다.

뚱이는 지금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만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리자드맨을 처리한 뚱이는 아직 흥이 식지 않았는지 방향을 정해 또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에게 뒷정리 철저히 하라고 해.”

“네. 안 그래도 지금 뒤에서 정리하며 따라오고 있습니다.”

뒤처리를 하지 않으면 뚱이의 학살 현장을 발견하게 될 헌터들이 이상한 소문을 낼지도 몰랐기에 뒤처리를 철저히 시키라 말했다.

지금껏 일직선으로 달리며 뚱이가 처리한 몬스터의 수는 수십 마리였는데, 하나같이 그 모습이 잔인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찢겨 죽고 터져 죽어 그 육편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그 모습을 헌터들이 발견하게 되면 위험등급의 몬스터가 출현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마석이나 부산물을 챙겨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깟 얼마 하지도 않는 것들은 오늘 뚱이를 위해 수고해준 현태와 팀원들에게 회식비로 챙겨줄 생각이었다.

물론 따로 더 챙겨주겠지만.

“탐색 범위를 넓혀서 강한 놈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뚱이를 따라 이동하며 현태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탐색 드론을 날려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그런데 그 강함을 어느 정도로 상정하고 찾아볼까요?”

“A급 이상으로.”

뚱이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긴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그 강함이 진화를 한다.

활용할 수 있는 마력이 늘어나고 육체가 더욱 강하게 변화한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상대와 맞붙어 이겨내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전생의 나는 뚱이를 마음껏 싸우게 해줄 수 없었다.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가 뚱이가 죽기라도 하면 그때의 나에게는 정말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뚱이는 지금의 뚱이 두 마리가 덤벼도 가볍게 찢어버릴 정도로 강했었다.

지금의 뚱이도 그때의 뚱이도 S급에 필적할 정도로 강하다고 하지만 그때는 어비스가 열린 후라 각성자의 등급이 하향조정 됐는데,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지금의 뚱이가 그때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현재의 S급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자들조차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도련님. 발견했습니다. 블랙 오우거입니다.”

블랙 오우거는 일반 오우거보다 강한 개체였다.

일반 오우거가 A급 중 하위에 속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블랙 오우거는 중급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뚱이 멈춰!”

현태의 말에 곧바로 뚱이를 멈추고 현태에게 물었다.

“방향은?”

“저쪽으로 약 5km 정도 됩니다.”

현태가 대각선 왼쪽으로 팔을 뻗으며 방향을 설명해주었고, 나는 곧바로 그 방향으로 뚱이의 진로를 변경했다.

“그런데 도련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블랙 오우거면 A급 중에서도 중위권에 랭크된 녀석인데요.”

“괜찮아. 위험해지면 어차피 너희들이 있으니까 상관없잖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뚱이에게 위험이 발생할 일은 없을 거다.

아직 이들은 뚱이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으니까.

빠르게 질주하는 중간중간 몬스터들이 출현했지만 뚱이가 순식간에 육편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기 시작했다.

아마 영역이라는 거겠지.

블랙 오우거 정도 되면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뚱이의 뒤를 따라 달리던 그때 멀리 검정색의 커다란 실루엣이 나타났다.

블랙 오우거의 출현이었다.

“쿠오오~”

블랙 오우거를 발견한 뚱이는 곧바로 함성을 지르며 블랙 오우거를 도발했다.

까만 피부를 가지고 가볍게 6m를 가볍게 넘어서는 몸뚱이를 가진 녀석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뚱이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쿠워어~!”

터질듯한 근육을 가진 녀석은 뚱이를 발견하자마자 커다란 포효를 터트리며 뚱이를 향해 큰 발을 떼며 곧장 달려들었다.

2m 대 6m.

그 모습만 보면 뚱이가 압살당할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갈 거다.

어느새 뚱이와 근접한 녀석은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는데 그걸 본 뚱이 역시도 마주 주먹을 날렸다.

“아!”

현태의 목소리였다.

아마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이 생각났으리라.

블랙 오우거의 주먹이 커다란 바위라면 뚱이의 주먹은 계란이라 생각할 정도로 뚱이의 주먹은 너무 작았다.

다만 그 결과가 현태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지만.

쾅-

주먹이 맞부딪치자 땅이 울릴 정도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는데.

블랙 오우거의 주먹이 하늘 높이 튕겨 올라갔다.

“헉!”

“아!”

내 옆에서 둘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마 멀리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길드 소속 가디언들 역시 마찬 가지리라.

하지만 나는 좀 아쉬웠다.

전생의 뚱이였다면 아마 저 내 뻗어진 주먹을 몸과 분리해버렸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뚱이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뚱이는 블랙 오우거의 주먹이 튕겨 올라간 순간 바닥을 박차며 순식간에 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콰앙-

주먹과 주먹의 충돌음보다 커다란 울림이 터져 나왔다.

블랙오우거의 품으로 파고든 뚱이가 그 속도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날린 거였는데.

소리와 함께 블랙오우거의 커다란 몸뚱이가 튕겨 나갔는데.

거의 10m는 날아가며 숲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블랙오우거는 충격이 심한지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뚱이는 그대로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축구공을 차는 스트라이커처럼 강렬한 사커킥을 날렸다.

푸확-

블랙오우거의 머리통이 짓뭉게지며 몸과 분리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충격적인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숲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우거들중에서도 그 강함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인 블랙 오우거는 뚱이의 공격을 단 3번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목 위의 것을 잃어버린 채 그 생을 마감했다.

쿠오-

표효하는 뚱이의 모습을 보며 현지와 현태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놀란 것이 이해가 가긴 했다.

하지만 몬스터와 몬스터의 대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마 뚱이와 현지가 싸운다면 그 결과가 이렇게 쉽게 나오지는 않았을 거다.

뚱이가 강하긴 하지만 그건 힘과 힘의 대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에 비하면 그 기술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다음 표적은?”

“네, 네! 찾아보라 하겠습니다.”

현태는 블랙오우거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표적을 찾아 놓으라 지시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련님. 저 무서워요. 저게 그 돼지라니···”

“나는 네가 더 무서워.”

현지는 누가 보면 진짜 두려움에 떠는 듯한 표정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더 무서웠다.

아마 현지가 뚱이를 표적으로 잡고 암살을 시작하면 뚱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멱이 따일 테니까.

“너무해요. 도련님! 저는 연약한 여자라고요.”

현지를 보는 현태의 얼굴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현태는 마치 오우거가 애교를 부리는 장면을 목격이라도 한 것처럼 충격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현태 표정이나 보면서 그런 말을 해라 좀.”

“응?”

현태에게 고개를 돌린 현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근데 너희 둘 중 누가 상관이야?”

“당연히 현지 님이 저보다 상관이십니다.”

정신을 차린 현태가 현지에게 존칭했는데.

“너는 부하 앞에서 쪽팔리지도 않냐?”

얼굴이 점차 빨개지던 현지는 어느새 얼굴을 홍당무로 만들어 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저 삐졌어요!”

“헉!”

깜짝 놀랐다.

현지가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린 현지의 모습에 순간 당황을 해버렸다.

분명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혼잡한 곳에서나 가능한 거였다.

현태와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게 가능한 거야?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게?

순간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나와.”

정말 현지가 그 살성이 맞는 모양이었다.

은신을 특성으로 가진 각성자조차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을 때 은신을 사용해 봤자 뻔히 보이기 때문인데.

지금껏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나면 이년은 정말 괴물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살성의 기술은 이미 완성된 걸지도 모르겠다.

같은 급인 현태 역시 놀라는 걸 보니 그도 이 정도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와라. 안 나오면 너 해고할 거야.”

“해보세요.”

“억!”

귀 바로 옆에서 현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일 줄이야··· 소문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현태가 마력을 끌어올려 현지를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는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현태의 이어폰으로 또 다른 몬스터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왔다.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바질리스크입니다.”

이어서 현태가 바질리스크의 방향과 거리를 보고했는데.

나는 오우거의 시체를 가지고 놀던 뚱이에게 곧장 명령을 내리고 그 뒤를 쫓아갔다.

일단 현지는 무시하기로 하고.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달리던 와중에 현태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뭐가?”

“분명 뒤를 따라오고 있을 텐데 아직도 그 기척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네. 이 정도 속도면 흐트러질 만도 한데 전혀 기척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금 전 했던 생각이 정말인 모양이었다.

살성의 기술은 이미 완성한 게 틀림없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S급들도 암살이 가능하겠는데?

“이미 S급에 도달한 모양입니다.”

“아직 비밀이에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회장님께는 보고 드렸으니까.”

“으헉!”

순식간에 현태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는 현지를 본 현태는 깜짝 놀라며 비틀거렸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계속 제 옆에 계셨습니까?”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며 달리는 현태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니요. 도련님 옆에 있었는데요.”

“대, 대단하시네요.”

맺혀 있던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현태의 얼굴은 정말 어두워 보였다.

“현지야 너 해고야. 이제 우리 형이나 따라다녀라. 난 무서워서 널 옆에 둘 수 없을 것 같아.”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몰랐는데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안 될 말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서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

옆에 두었다가 혹시 원한이라도 사면 큰일이었으니까.

“아! 왜요? 그냥 저 도련님 옆에 있을게요.”

현지는 내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확실히 말하는 게 좋다.

“난 진심이야.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걸 보니까 무서워서 안 되겠어.”

“아, 이제 안 그러면 되잖아요. 도련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면 안 그럴게요.”

애교를 부리는 현지의 모습을 보며 약간 의문이 들었다.

날 싫어하지 않는 건가?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따라다니는 거로 생각했었는데?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변하셨잖아요. 지금은 좋아해요.”

현지의 대답에 넘어질 뻔했다.

설마 이년이?

“너 나 좋아하냐?”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 이 생활이 좋다고요.”

다행이다.

나는 현지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다.

못생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지는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미인 중에서도 미인이라고 하는 게 정답이리라.

다만 좀 무서울 뿐.

“어, 보인다. 도련님 저기 바질리스크에요.”

현지의 말에 고개를 들자 멀리 초록색 비늘을 가진 엄청나게 커다란 눈이 3개인 뱀인지 도마뱀인지 모를 요상한 것이 보였다.

첫 사냥

“쿠오오~”

바질리스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뚱이는 이번에도 포효를 터트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다만 반응이 오우거 때와는 좀 달랐는데.

바질리스크는 긴 혀를 움직이며 마치 제 발로 굴러들어온 먹이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그 모습 때문일까?

뚱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마력을 내 뿜으며 땅을 발로 내려찍었다.

쾅쾅-

땅을 내려찍는 뚱이의 마력을 느낀 바질리스크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이 알던 오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도련님 자리를 옮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바질리스크의 반응에 현태 역시도 반응했다.

현태의 말에 바질리스크의 정면에서 측면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놈의 세 번째 눈이 열리면 직선에 있는 우리에게 그 광선의 여파가 미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질리스크의 최대 무기인 회색빛의 광선.

세 번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노출되면 그 부위가 석화되어 버리는 흉악한 공격이었다.

S급 가디언이라고 해도 그 빛에 노출되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이번에는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는데요.”

“일단 좀 지켜보자.”

현지의 말에 대답을 해주며 나 역시 약간의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한 번도 저런 놈들과 뚱이를 붙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번 기회에 뚱이가 특수기술을 사용하는 놈들에게 얼마나 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멈출 수는 없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분명 바질리스크의 회색빛 광선 같은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있을 테니까.

문제가 생겨도 상관없었다.

이 둘이 있었으니까.

자리를 옮기고 다시 뚱이에게 시선을 두었을 때는 이미 싸움이 시작된 후였다.

주로 바질리스크가 공격을 가하고 있었는데.

마치 뿔처럼 튀어나온 온몸의 가시들을 쏘아내는 모습은 정말 흉푝하기 짝이 없었다.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커다란 가시들을 피하고 쳐내며 한 발짝씩 바질리스크를 향해 전진하는 뚱이의 모습은 힘겨워 보였는데.

아직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뚱이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분노와 즐거움이 범벅된 일그러진 표정에 나를 제외한 둘은 걱정이 되는지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전투 중 뚱이가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은 바질리스크가 자신보다 급이 낮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감히 너 따위가 나에게?

라는 생각과 비슷한 감정일 거였다.

바질리스크가 자신보다 강하다 생각했다면 뚱이의 얼굴은 즐거움만이 표출되고 있어야 정상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뚱이가 방심하는 일은 없을 거다.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녀석이니까.

꽝!

조용히 지켜보던 순간 뚱이가 쏘아져 오는 가시들을 무시한 채로 바닥을 박차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엇!”

위험해 보이는 상황.

현태가 당황한 음성을 내뱉는 것도 당연했다.

무시했던 가시 중 하나가 뚱이의 뱃가죽을 꿰뚫기 직전이었으니까.

퍽-

하지만 다음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커다란 가시는 뚱이의 뱃가죽에 작은 상처만을 남긴 채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 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가시가 뚱이의 전신을 두드렸지만 작은 상처만 남긴 채 모조리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든 가시를 받아내며 바질리스크의 앞에 나타난 뚱이가 주먹을 들어 올렸고.

올라갔던 주먹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바질리스크의 감겨있던 세 번째 눈이 번쩍 떠졌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빛에 뚱이가 노출되었는데.

“아, 이런...”

“아-”

현지와 현태로부터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쾅-

하지만 그들의 탄식과 다르게 회색빛을 잡아먹는 붉은 빛이 뚱이의 몸에서 터져 나오며 그대로 들어 올렸던 주먹이 내리쳐졌다.

꽥-

바질리스크의 세 번째 눈은 언제 떠졌냐는 듯 다시 감기며 회색빛이 사라졌고.

쾅- 쾅-

지금부터는 자신의 시간이라고 말하듯 뚱이의 공격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바질리스크의 몸이 뚱이의 주먹에 따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질리스크는 역시 상위의 포식자였다.

그 와중에도 커다란 입을 벌려 날카로운 독니를 드러내며 뚱이를 물어뜯으려 했는데.

덥석-

뚱이가 벌어진 입을 덥석 잡아버렸다.

다만 아직 바질리스크의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목구멍을 통해 보랏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연기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 뚱이는 그대로 바질리스크를 집어던졌다.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십 미터를 가볍게 넘기는 그 커다란 몸체가 나무를 부수며 수 미터를 날아 땅에 처박혔고.

집어 던진 바질리스크를 곧바로 뒤쫓는 뚱이의 주먹에 핏빛의 마력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했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담은 주먹은 뒤집힌 바질리스크의 배에 작렬했다.

꽈앙-

지금까지와는 다른 커다란 울림이 퍼져나가며 바질리스크의 배가 폭발했고, 뱃속에 존재하던 장기들이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뿜어져 나왔다가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오오-

바질리스크를 밟고 선 뚱이의 입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정말··· 대단하네요. 저런 오크가 있다니.”

둘은 오우거때와는 다른 감탄을 터트렸다.

나 역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전생에 뚱이를 연구해보고 싶다던 자에게 들었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각성자와는 차원이 다른 항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회복력, 항마력, 독에 대한 저항력 등등 엄청나게 뛰어난 신체 능력까지.

인간의 기술만 터득한다면 능히 S급을 넘어설 거라던 그의 말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저놈한테 어떻게 기술을 가르쳐?

전생에도 녀석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은 실패했었다.

오로지 본능에만 의존해서 싸우려 하기 때문이다.

“사냥 끝 이제 돌아가자. 뚱이야 이제 그만하고 와라.”

모두에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뚱이는 바질리스크의 사체를 밟고 서서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있다가 내 말을 듣고는 얼른 나에게 뛰어왔다.

“마석하고 부산물들은 따로 챙길 필요 없어. 알아서 처리해.”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리고 이거 받아. 모두 고생했다고 전해줘.”

나는 미리 준비해놨던 봉투를 꺼내 현태에게 전해줬다.

“도련님이 이런 걸 챙기다니··· 너무 변하신 거 아니에요?”

“시끄럽고 너 내일부터 형이나 따라다녀라.”

“싫은데요. 전 언제까지나 도련님의 메이드로서 도련님을 모실건데요?”

“넌 부하 앞에서 쪽팔리지도 않냐?”

옆에서 조용히 나를 따르는 현태를 보며 현지에게 핀잔을 줬다.

“어때요? 사실인데···.”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니 지도 쪽팔리긴 한 모양이었다.

*

나는 뚱이 때문에 방을 별채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내 모든 시중은 현지가 들기로 했는데.

우리 집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별채에 출입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 놨다.

물론 아버지가.

별채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형 그리고 사냥에 따라왔던 가디언들로 한정되었다.

나는 새로 내 방이 된 곳에서 현지가 구해온 영약을 통해 마력을 늘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뚱이를 데리고 사냥을 하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냥에서 한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아직도 마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뚱이를 따라 달리는 것조차도 마력의 부족함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피니티 링에 저장한 마력을 사용해야 했기에 지금의 목표는 마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런 내 귓가로 방문이 슬며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도련님 방해해서 죄송한데요.”

현지였다.

조용히 들어온 현지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아버지가 나 찾으셔?”

나는 호흡법을 중지하고 눈을 떴다.

“그게 아니라··· 오크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뚱이가?”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랄까?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뭐라고? 잠깐? 뚱이를 소환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10일 정도? 지났어요.”

“이런!”

요즘 생각할 게 많아 깜빡해 버렸다.

뚱이에게 마석을 먹여야 하는 사실까지 잊어버리다니···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힘들게 되찾은 뚱이를 잃어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 거예요?”

“잠깐만.”

나는 작은아버지의 카드를 사용해 구매한 마석을 욕실에 깔아 놓았다.

나중에 작은아버지란 인간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 깔아 놓았던 마석을 한 움큼 집어 들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뚱이가 있는 방으로 이동하는 내내 안일했던 자신을 탓했다.

등신같이 그걸 잊어먹어?

현지가 느끼지 못했으면 뚱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을 질책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겨 뚱이가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리를 들은 뚱이가 나에게 뛰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취익~ 취익~”

내 앞에 도착한 뚱이는 콧김을 내뿜으며 나를 재촉했다.

마석을 달라고.

나는 손에 든 마석을 뚱이의 입속에 넣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한번 소환하면 끝이지 왜 마석이 필요한 거냐고!

“도련님? 지금 마석을 먹인 거예요?”

“그래. 앞으로도 뚱이가 계속 저러면 마석을 먹여. 내 욕실에 많이 깔아놨으니까.”

“네.”

현지는 대답을 하긴 했지만, 이유가 궁금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석을 안 먹이면 뚱이가 사라져 버려서 그래.”

“네?! 그게 정말이에요?”

나는 놀라는 현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런 페널티가 있었네요. 그럼 그냥 사라지게 하고 다시 소환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안돼. 뚱이를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맘대로 소환하고 싶은 놈을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무작위라고.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몰라.”

“그럼···”

“그래 뚱이가 나온 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야. 보통 별 볼일 없는 놈들이 튀어나온다고.”

그제야 현지는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가 잊더라도 니가 꼭 뚱이한테 마석을 먹여.”

“그냥 뚱이 방에 마석을 두면 안 돼요?”

안된다.

뚱이 방에 마석을 두면 녀석이 그냥 다 먹어치워 버릴 거다.

한 번에 많이 먹는다고 그 유지시간이 늘어나는 게 아닌데도 이놈은 멍청해서 그런지 마석을 보이는 대로 처먹는다.

“그건 안돼. 그냥 보이는 대로 처먹을 놈이라.”

뚱이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뚱이는 이제 좀 안심이 되는 모양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음식을 집어 먹고 있었다.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시간이 늘어나는 게 아니에요?”

“아니야. 몇 개를 처먹든 시간은 같아.”

내 말에 현지는 역시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요. 근데 도련님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무리 각성하면 자신의 특성을 알게 된다고 하지만 이런 건 모를 거 같은데?”

역시 현지는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몰라. 그냥 각성하면서 다 알게 되던데.”

내 말에 현지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는 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현지야. 너 뚱이한테 밥 제대로 주고 있는 거 맞지?”

화제를 돌리기 위한 말이었다.

“그냥 사료 같은 거 주면 안 돼요? 무슨 몬스터한테 사람도 먹어보기 힘든 저런 요리를 줘요?”

“내가 언제 저렇게 만들어서 주랬냐? 그냥 익히기만 하면 된댔잖아.”

생고기만 아니면 상관없다.

내가 현지에게 말한 건 그것뿐이었다.

그 이유는 뚱이에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주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피는 뚱이의 본능을 자극해 녀석의 전투본능을 일깨워 버린다.

그게 심해지면 녀석을 돌봐주는 현지에게 달려들지도 모르고.

마력을 가진 현지는 녀석에게는 아주 좋은 전투 상대일 테니까.

물론 내가 참으라고 명령하면 참겠지만, 욕구불만의 상태가 되어 사냥을 갔을 때 미쳐 날뛸 가능성이 있었다.

“저도 안다고요. 근데 이 집 요리사가 어디 보통 양반이어야지. 그냥 익혀서 달랬더니 요리의 미학 어쩌고 하면서 미친 듯이 요리를 하는데 어쩌라고요.”

“그게 내 탓이야?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탓할 거면 그 요리사한테 가서 따지든가!”

“그럼 밥 주는 건 다른 사람한테 하라고 하던가요.”

지금 현지가 짓고 있는 이 표정을 언젠가 봤던 기억이 났다.

아! 분명 TV 예능프로그램 중 먹방을 보다 지었던 표정!

그런 거였어?

얼마 전 현지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했던가?

그런 현지 앞에서 저런 맛좋은 요리를 맛있게 먹는 뚱이의 모습은 그녀에게 고역이었을 거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너 다이어트 아직도 하냐?”

“네? 아 그게···.”

당황하는 현지의 표정을 보자 내 예상이 적중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현지를 놀릴 게 한 가지 더 추가되었단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