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저놈과 아는 사이 더냐?”
“네? 아니요. 그냥 인사만 좀 했어요. 그래도 국내에서는 가장 유명한 가디언이잖아요.”
아버지는 왜 화가 나신 걸까?
왜 형은 저렇게 표정을 굳히고 있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신 만나지 말거라. 위험한 놈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요?”
“알 것 없다.”
“이유를 알아야 만나던 만나지 말던 할 거 아니에요.”
“위험한 놈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위험하다고?
그를 만나면 내가 위험해진다는 소린가?
아니면 그가 위험해진다는 소릴까?
나는 최강준이 있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응?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그를 발견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빛 때문이었는데.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를 닮은 그 눈빛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아버지였다.
분명 내가 자신을 보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어째서? 그가 저런 눈빛을?
일견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지금이 내가 알던 그때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버지를 보던 최강준이 고개를 돌렸지만, 나의 혼란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뭐가 말이냐?”
“아버지 최강준이랑 무슨 일 있죠? 그쵸?”
당황한 내 목소리는 점차 크기를 키워나갔다.
“조용히 해라. 이놈. 궁금하면 서재로 찾아와!”
등을 돌리시며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는 내 머릿속은 점차 복잡해져 갔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 돌대가리로는 답을 내릴 수 없었으니까.
그 이후 연회가 끝날 때까지 나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뿐이었다.
*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도착한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내 방을 나섰다.
“아버지 어디 계셔?”
“서재에 계십니다. 도련님.”
본채로 향한 나는 곧바로 김 실장을 찾아 물었고 답을 듣고는 바로 아버지의 서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 눈은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똑똑-
“아버지 선우예요.”
“들어와라.
벌컥-
문을 급히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 형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굳어있는 아버지와 형의 표정을 보며 급히 자리에 앉은 나는 궁금한 걸 곧바로 꺼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아버지. 선우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는 것이···”
드물게 형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것도 내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내 말에 침묵하는 두 사람을 보는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고 그 안을 불안감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우도 알아야겠지.”
“아버지!”
형의 입에서 큰소리가 나오는 모습을 보자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너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음은 선우 차례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게 좋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이어지는 ‘무슨 일’은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그 무슨 일이란 것은 분명 아버지와 형에게 화가 미칠 수도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 정도라고? 아버지와 형이 몸을 걱정해야 될?
“그럼 제가 말할게요. 아버지는 가만히 계세요.”
형의 말은 적당히 거르겠다는 거였다.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겠다는 거였는데.
그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것만으로 나는 큰 충격에 빠져야 했다.
국내 10대 길드 중 6개의 길드가 연합했다는 말과.
몇몇 재벌 그룹들이 그쪽에 붙었다.
그 힘을 가지고 유명그룹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
내가 선화제약의 손녀딸과 선을 봐야 하고 함께 파티에 참석해야 했던 이유.
그 중심에 최강준이 있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어떻게 과거의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었던 거지?
그래 지금 시절에서는 모를 수도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틀림없이 알았어야 했던 게 정상이다.
숨긴다고 해도 분명 지금처럼 티가 났을 텐데?
그때의 나는 도대체 얼마나 멍청했던 거지?
이런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아버지와 형이 이상하긴 했다.
항상 피곤해하던 모습.
언제나 굳은 표정.
그 시절의 나는 단순히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걸로 우리 유명그룹이 흔들린다고요?”
바로 이것이었다.
조무래기 수준은 아니더라도 유명을 건드리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들어선 정권이 문제야.”
“무슨 말이야?”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그쪽 사람이라고.”
이건 무슨 소리야?
대통령이 그쪽 사람이라니?
아버지는 분명 한쪽만 골라 손잡을 사람이 아니었다.
양쪽 모두에게 선을 만들어 놓았을 텐데?
아버지가 어렸을 적 나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사람이란 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손을 내밀라고.
“그게 가능해?”
“실수였다. 설마 그쪽에서 만든 사람일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어.”
이쪽과 연결된 대권 주자들이 하나하나 침몰하기 시작했고, 이름도 없던 놈이 갑자기 떠 버렸다. 최강준을 비롯한 몇몇 길드들을 신봉하는 국민들의 수가 예상의 몇 배를 넘어섰다고 한다.
급히 손을 내밀었지만 차가운 냉소만을 남겼다고 한다.
“하! 그럼 그게 다 최강준이 계획한 일이라고?”
“그래. 그놈이 중심에 있다.”
돌대가리라고 생각했던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쩐지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
작은아버지.
아무리 유명그룹 부회장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특히 실권이 거의 없는 그런 놈이.
‘안티디텍터’
이걸 어떻게 알고? 어떻게 구했을까?
작은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감시가 보통이 아닐 텐데?
현지급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자를 붙여 놨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 이건 뭐 그냥 넘어간다고 쳐도.
내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법과 마력 호흡법.
직접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었다.
거기다 내 균열 안에서 나오는 작은 독충들을 연구하고 선별해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를 죽일 방법을.
너무 허황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답일 거다.
한 개 정도는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감시 속에서 그 모든 걸 작은아버지 혼자 하기에는 능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금방 들켰을 게 틀림없었다.
누군가를 시켜 ‘안티디텍터’를 구하고 나에게 알려준 것들을 알아보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감시자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를 뛰어넘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것밖에 없었다.
저번에 내가 암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지나쳤던 통로를 지키고 있던 그런 존재를.
그저 나의 능력을 알리기만 하면 알아서 준비를 해주는 누군가가 그의 뒤에 있었을 거다.
예를 들면 최강준 같은?
“혹시 작은아버지가 최강준과 손을 잡은 건가요?”
“그래. 그놈이 지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걸어 들어갔지.”
내가 머릿속에 있던 최강준은 거짓으로 꾸며낸 존재였던 건가?
그놈 역시도 탐욕을 가진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고?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놈이 작은아버지와 나를 이용해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결국, 작은아버지까지 잡아먹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하.하.”
문득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와 형이 있는 자리였지만 참을 수 없었다.
허탈했다.
그런 놈을 영웅이라고 감사 인사까지 했던 내가 병신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놈은 왜 나를 살려두었을까?
살려두었을 뿐 아니라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별 볼 일 없다고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의 명성에 작은 스크레치 정도는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만약 내가 그를 적대하는 길드로 찾아가서 진실을 말했다면 스크레치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이유가 뭘까?
역시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을 거였다.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길게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얼른 생각을 전환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와 형이 있는 한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을 터라 설렁설렁 일을 진행해 왔었는데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형. 저 이만 나가볼게요. 쉬세요.”
서재의 문을 열고 나가며 앞으로는 좀 바쁘게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성철아 나다.”
-네 도련님.
형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잠을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꼴딱 세며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일단 성철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너 우리 집 알지.”
-당연하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집으로 들어와라. 혼자.”
-네?!
성철의 당황한 목소리가 폰을 통해 들려왔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그, 그게···.
성철은 내가 위해를 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너 최근에 나한테 잘못한 거 있냐?”
-아닙니다. 없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쫄아?”
잘못한 것도 없는 놈이 왜 이렇게 쪼는 것일까?
우리 집이 무섭나?
-아닙니다. 언제 방문하면 되겠습니까?
“당장. 나 피곤하니까 최대한 빨리 와라.”
-바로 말씀입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혼자와라.”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그대로 침대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체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다만 안 좋은 머리를 너무 혹사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얼마나 걸리려나?
그렇게 얼마간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낸 나는 몸을 일으켜 현지를 호출했다.
“도련님 찾으셨어요?”
“어. 조금 있다가 손님 올 거다. 경비실에 나 찾는 사람 오면 바로 안내하라고 해.”
“네.”
“나 좀 쉴 테니까 도착하면 좀 알려줘.”
문을 열고 나가는 현지를 보며 얼른 성철이 왔으면 싶었다.
잠을 한숨도 못 잤기에 빨리 끝내고 좀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
“도련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아무도 없던 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니 현지가 보였는데.
응? 잠들었었나?
“괜찮으세요? 피곤하시면 좀 기다리라고 전할까요?”
“아니 괜찮아. 금방 준비하고 나갈 테니까 지하로 보내.”
“지하라고 하시면?”
“아버지가 가끔 임원들 불러서 비밀리에 회의하던 데 있잖아.”
“네. 알겠습니다.”
현지가 곧바로 문을 열고 나서자 몸을 일으킨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대충 다듬고 흐트러진 옷을 대충 정리한 후 걸음을 옮겨 지하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나는 손잡이를 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이지만 나는 딱 한 번 이곳에 와봤다.
마치 대기업의 회의실처럼 U자 형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각각 하나의 모니터와 마이크가 있었는데.
그대로 걸음을 옮겨 누가 봐도 상석이라 생각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의실.
그 어떤 도청도 도촬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안의 소리가 조금도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을 정도로 방음이 철저한 곳이었다.
사실 그를 만나는 건 내 방에서도 충분했지만 그럼 내가 너무 가벼워 보일 것 같았기에 이곳을 택했다.
좀 있어 보이고 싶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현지가 성철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
“오랜만은 무슨. 며칠 전에도 봐놓고.”
약간 겁을 먹은듯한 성철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여기까지?”
침을 꼴깍 삼키는 성철을 보며 나는 밤새도록 고민하며 짠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부를 이유가 한 가지밖에 더 있어?”
“그, 그게···”
성철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마치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너 나한테 잘못한 거 있지?”
한번 떠보기로 하고 그에게 말하며 표정을 없앴다.
“아닙니다. 절대 없습니다. 진 이사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도련님이 시키신 대로 말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말도 아무 부탁도 듣지 않았습니다.”
진 이사가 찾아왔다는 소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철에게 진 이사가 찾아올지도 모르니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었다.
아마 시킨 대로 마석을 사다주고 심부름 값 몇 푼 받았다고 말했겠지.
“부탁?”
“네. 부탁할 일이 있다고 했지만 듣지도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들어보긴 하지 그랬냐?”
“네?”
이상하게 내 주위에는 멍청한 사람들이 꽤 있는 거 같았다.
듣는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듣지도 않았을까?
“됐고 내가 이제 너에게 부탁을 몇 개 할 거야.”
“부탁이라니요. 명령이라고 해주십시오.”
어디서 본건 있는지 충견 흉내를 내는 성철을 보자 괜히 한숨이 나왔다.
계획
최강준을 직접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무력이나 유명세 등등 그와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균열을 열어 몬스터를 끌어모아 그에게 대항한다고 해도 그와 싸우는 건 무리가 있었다.
정의를 내세우는 젊은 영웅과 몬스터를 이끄는 망나니.
누가 봐도 승자를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거였다.
거기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왜 힘들게 직접 그를 상대해야 할까?
그냥 앞으로 그의 것이 될 것들을 하나하나 빼앗기만 해도 알아서 무너져 내리거나 그때의 명성을 얻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래를 알고 그는 미래를 모른다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드문드문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그와의 거리를 많이 좁혔다고 생각한다.
밤새 내가 했던 계획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은‘무엇을 빼앗을까?’였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성철아 애 하나만 찾아봐라.”
“네? 애라뇨?”
“여자애고 나이는 7살. 이름은 수아, 성은 몰라. 고아에 애 엄마가 애를 낳다가 죽었어. 애 아빠는 누군지 모르고.”
내 입에서 빠른 속도로 아이에 대한 정보가 나오자 성철이 눈에 띄게 당황해서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다시 한번 말씀을···”
“이거 받아. 거기 안에 다 저장해 놨으니까 대충 듣고 넘겨.”
나는 김 실장 명의로 된 스마트폰을 하나 개설해서 정보를 넣어놨다.
원래 대포폰을 쓰려고 했는데 구하기 귀찮아서 그냥 현지에게 시켰는데, 현지가 김 실장에게 이 휴대폰을 받아와서 그냥 쓰기로 했다.
“아마 서울 쪽 보육원에 있을 거다. 비슷한 애들이 많으면 사진 보내. 내가 확인해 줄 테니까.”
“네.”
“그리고 그 폰은 나랑 연락할 때만 사용해라. 알겠냐?”
“명심하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성철을 보며 수아라는 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알던 이름은 최수아다.
최강준의 양녀였기 때문에 지금의 성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는데.
내가 아이를 찾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후에 이 아이로 인해 최강준이 자신의 길드를 세계 10대 길드에 올려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시도 최강이란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었다.
최수아란 아이는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인 두 개의 특성을 가진 아이였다.
진화와 정령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일단 진화의 특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였다.
버프 계의 능력이었는데 아이의 버프를 받은 존재가 얻는 것은 바로 잠재력이었다.
잠재력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한계가 분명하지만, 이 아이로 인해 그 잠재력이 조금 풀려버린다는 것이다.
10의 잠재력을 가진 자는 죽을힘을 다해도 11의 힘을 얻을 거란 보장이 없지만.
이 아이의 버프로 인해 쉽게 11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의 길드에 유독 강자들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거기다 두 번째 특성인 정령.
정령을 다루는 사람은 이 아이 말고도 꽤 된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령과 계약해 하나의 계통의 정령만을 다루는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이 아이는 그런 게 없었다.
어찌 보면 나와 비슷한 능력이었는데.
정령계의 문을 열어 나오는 모든 정령을 다루는 것이 이 아이의 힘이었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은 꽝이 없다는 점일까?
일단 열면 나오는 정령.
언제 나올지? 나오긴 할지? 모르는 균열.
이것이 이 아이와 나의 차이였다.
다만 이 아이에 대한 정보가 사실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정령의 문을 여는 것이라던가 진화라는 버프를 사용하는 것을.
두 가지 특성이 있다는 사실은 소문이 퍼져 알고 있었지만, 그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이걸 알게 된 이유는 아이에게 직접 들었기 때문인데.
어비스에 세워진 한국의 도시에 웨이브가 발생해 의뢰를 받고 대기를 하던 도중 만나게 된 아이.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를 하며 먼저 다가온 이 아이는 정말 뜬금없이 나타났다.
밝아 보이면서도 왠지 슬픈 기운이 감돌던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능력이었다.
이때의 나는 이미 내 능력이 무엇인지 많이 알려진 상태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능력과 비슷한 나를 찾아와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하며 내 능력과 비교하며 누군가 그 아이를 찾으러 올 때까지 한참 대화를 나눴었다.
물론 나는 거의 듣기만 했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슬퍼 보이던 눈빛 덕분에 지금도 그 아이에 대한 인상이 잊히지 않았다.
“도련님?”
순간 옆에서 들리는 성철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 대화하던 도중이었지?
성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사람을 세워놓고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미안.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이어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구할 게 좀 있어.”
“혹시 마석을 구하시려고요?”
내가 마석을 수십억 원가량 사들인 걸 떠올렸는지 성철이 물어왔다.
“마석이 아니야. 내가 구하고 싶은 건 슬라임 결정이다.”
“슬라임 결정이요?”
슬라임 결정.
후에 선화제약에서 발표할 생체갑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재료.
나는 이걸 모아 최강준의 길드에 갈 생체갑옷에 대한 우선권을 뺏어올 생각이었다.
“그래. 일단 큰 창고 하나 구해서 그곳을 가득 채울 슬라임 결정을 좀 사들여야겠다.”
나는 성철에게 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국내의 슬라임 결정은 그대로 놔두고 해외의 것을 사들이라는 것과 되도록 이 사실을 숨기라는 것 마지막으로 이 일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건넬 건지도.
물론 성철에게 건넨 스마트폰에 이런저런 정보를 지시해 놨지만 그래도 내가 한 번 정도는 직접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네 부하들 중에도 분명히 끄나풀이 있을 거다. 그놈들 다 쳐내.”
작은아버지 쪽과 연결된 끄나풀이 분명히 존재할 거였다.
그놈들을 쳐내지 않으면 분명 귀찮은 일이 발생할 게 뻔히 보였기에 쳐내라 말했다.
“네? 어떻게···”
“그건 니가 알아서 해. 너 그런 거 잘하잖아? 그리고 보고할 거 있으면 그 폰으로 전화하고 직접 찾아오고.”
끄나풀을 쳐낼 방법을 묻는 성철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너 아직 밥 안 먹었지.”
지금 시간은 오전 8시였다.
내 전화를 받고 이곳에 도착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 걸 생각하면 당연히 밥을 먹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기에 성철이 도착했을 즈음 별채의 식당에 음식을 준비해 놓으라 말해 놓았다.
“네? 네. 아직 식전입니다.”
“그럼 밥 먹고 가라. 차려 놓으라고 해놨으니까. 우리 집 요리사 실력 좋아.”
“그, 그게···”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피하는 성철에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난 이미 먹었으니까. 밥 먹으면서까지 날 볼일은 없을 거다.”
“네!”
걱정이 사라졌는지 우렁차게 대답하는 성철이었다.
“그리고 밥 다 먹으면 김 실장 불러 달라고 해.”
“네? 김 실장이요?”
“차 한 대 가져가. 내 차고에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거로. 말해놨으니까 차고로 안내해 줄 거야.”
어차피 잘 타지도 않는 차들이라 인심 좀 쓰기로 했다.
사람을 부려먹으려면 그 보상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철은 염치가 있는 놈이라 적당한 걸 고를 게 뻔했고.
“감사합니다. 도련님!”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성철의 등을 한번 두드려 주고 방을 나섰다.
“조심히 가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차를 준다는 말에 심하게 오버하는 녀석을 보며 내 방으로 향했다.
“그래. 밥 맛있게 먹고 가라.”
*
눈을 뜨고 시계를 보자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생각보다 오래 잠들어 있던 모양이다.
그대로 몸을 일으킨 나는 현지를 호출했는데 웬일로 현지가 아닌 김 실장이 들어왔다.
보통 직접 찾지 않으면 만날 일이 별로 없던 김 실장이었기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현지 불렀는데 김 실장이 웬일이야?”
“보고할 것도 있고 해서 직접 왔습니다.”
보고란 말을 듣자 성철에 대한 보고임을 알 수 있었다.
“해봐.”
“김성철 씨가 선택한 차종은 벤츠 S클래스 기종입니다.”
생각보다 저렴한 걸 가져갔다.
한정판으로 나온 차들도 꽤 많이 있는 거로 아는데 그런 걸 가져가는 건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 그리고.”
“끝입니다.”
“뭐?”
겨우 저걸 직접 말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왔단 말이야?
요즘 주변 사람들이 좀 변한 걸 느낄 때가 많다.
예전이었다면 어떻게서든 나를 피하려 노력했을 텐데 요즘은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좋은 건가?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잠깐만. 아버지 들어오셨어?”
“네.”
“뭐하시는데?”
“회장님께선 지금 큰 도련님과 함께 식사 중이십니다.”
“그래? 그럼 금방 준비하고 나갈 테니까 내 것도 준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김 실장이 나가자 나는 옷을 훌러덩 벗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본채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형이 벌써 식사를 끝마쳤는지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왔어요.”
“그래. 나를 찾았다면서?”
“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일단 식기 전에 식사부터 들어라.”
“네.”
아버지는 내 앞에 음식이 세팅되는 걸 보고는 느긋하게 등을 의자에 기대시며 말했다.
고개를 돌려 형을 힐끔 보자 서류를 한 손에 들고는 가끔 차를 마시며 목을 적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은 여전하네.
형에게 관심을 끊고 식사에 집중했다.
눈앞에 깔린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입안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돌아온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의 질이었다.
그때는 맛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대충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되었으니까.
갇혀있던 1년간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은 나에게 음식의 맛을 찾는다는 건 사치나 다름없었다.
적당히 먹을 수 있을 정도면 가리지 않았다.
부유한 삶으로 만들어진 까다로운 입맛은 단 1년 만에 사라져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멍청한 것 같았다.
처음 가디언 생활을 시작했을 때야 돈이 없어서 그랬다 치더라도 상황이 좀 나아졌을 때까지도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그럴걸.
생각에 잠겨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집어 먹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식기를 내려놓고 물은 한잔 마시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우미분들이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치우는 소리를 들은 형이 서류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향했다.
아마 내가 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에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회사에 제 자리가 있는 거로 아는데 지금도 있나요?”
“그래. 아직 남아있다.”
“회사 일을 배워 볼 생각이냐?”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바로 형이 물어왔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느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구경 좀 하게.”
“뭐?”
“뭐야?”
황당한 표정을 짓는 형과 약간 화가 난 듯한 아버지.
아버지가 예전처럼 소리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예전이었다면 아마 못난 놈이 날아오지 않았을까?
“아버지 회산데 임원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인사도 좀 하고 구경도 좀 하려고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아버지와 형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냥 하지 말까?
“회사 일을 배울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둬.”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아무렴 임원들 얼굴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형과 다르게 아버지는 내 말에 찬성하는 듯했다.
“그래 언제 회사에 나올 생각이냐?”
“내일이요?”
“김 실장에게 말해 놓으마.”
형이 아버지를 말리긴 했지만 결국 그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나는 아버지가 상속해 놓은 주식 덕분에 대주주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임원들 얼굴도 제대로 모른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였으니까.
물론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