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14)

두 번째

지안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녀의 두 눈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니야. 효진이가 그랬을 리 없어 흑흑”

흐느끼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었는데.

배신감에 떨며 분노를 표출할 거란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던 현지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복수를 하자고 할까?

어떤 말이든 해야 했지만 지안의 눈물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현지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모습은 조금 그러네···

전생의 내 앞에서 벌어졌던 천궁의 죽음.

지안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인 현지가 지안의 등을 쓸어내리며 위로하는 모습은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다.

*

*

*

“현태 씨. 이분이 내가 어제 말했던 이지안 씨.”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당분간 지안 씨의 훈련을 담당하게 된 김현태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현태와 지안에게 서로를 소개해 주는 이곳은 우리 집 한편에 위치한 경호팀의 훈련시설이다.

본채와 별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창고와 경호팀의 숙소 훈련시설을 비롯한 엄청난 크기의 정원과 주차장 그 외에 사용인들의 숙소까지 엄청나게 넓었는데.

예전 공원이었던 부지를 사들여 저택으로 개조한 곳이기 때문에 그 넓이는 정말 엄청났다.

“내일부터는 바로 이곳으로 출근해서 훈련을 받으면 됩니다.”

“네!”

힘차게 대답하는 이지안을 보며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된 듯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딱히 복수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믿었던 감정이 큰 만큼 복수심에 불탈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복수할 생각이 없어도 결국에는 그 복수가 이루어질 거란 사실이었다.

가디언으로서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점차 그녀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풀리며 그를 속인 자들은 점차 궁지에 몰리기 시작할 테니까.

“도련님. 정말 활을 가르칩니까?”

현태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의 표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활이란 무기 자체가 그냥 보기에는 대단히 좋은 무기처럼 보이지만 가디언처럼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 자들에게 활을 든 동료는 등 뒤의 적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일까?

활을 무기로 사용하는 각성자는 극소수였다.

0.01%조차 되지 않으리라.

“일단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감각부터 익히라고 하세요. 화살의 정확도가 올라가야 뭘 하든 할 테니까.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가르치세요.”

“네.”

대답은 하지만 꺼림칙한 표정을 버리지 못하는 현태였다.

현태는 대답을 하고는 멀뚱멀뚱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지안에게 다가가 활에 대한 기초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현태가 직접 가르치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별게 없었다.

활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를 수배해 봤지만, 너무 짧은 시간 때문에 아직 구하지 못했다.

거기다 활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가 너무 없어서 찾는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다행히 현태가 조금이나마 활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뻔 했었다.

그가 지안에게 활을 가르치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활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를 구해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었다.

지금은 기본적인 자세와 활을 다루는 방법 같은 정말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었다.

“저도 활 쏠 줄 아는데.”

현지가 현태와 지안을 보며 말했다.

“정말? 배웠어?”

“조금 배웠어요.”

에이~ 좋다 말았네.

좀 쉽게 가나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너무 실망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현지가 고운 얼굴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제 특성이 암살이잖아요. 거기에 활에 대한 재능도 있어서 조금만 배워도 어느 정도는 하거든요.”

“진짜?”

현지는 특성 자체가 너무 사기였다.

이게 메인특성의 이점이었다.

현지의 특성인 암살이나 다른 메인특성들의 경우 그 재능이 단 하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니크라 불리는 것이었다.

유니크라 불리는 특성이 아닌 일반적인 특성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암살에 관련된 특성을 보면 정말 별게 없었다.

은신, 기습, 찌르기 등등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다.

그렇다고 유니크 특성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관련된 특성에 대해 수많은 재능을 보이지만 단 하나에 국한되면 최고가 되지 못한다는 점.

그것이 바로 이 메인특성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물론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을 통해 넘어설 수도 있었지만, 재능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현태 팀장보다는 잘할걸요?.”

“그래? 그럼 니가 가르치는 건 어때?”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안돼요.”

“왜?”

“저는 도련님의 메이드잖아요.”

당당하게 눈을 빛내며 말하는 현지를 보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너 그 메이드란 말 좀 안 하면 안 되냐?”

“그럼 뭐라고 해요?”

생각해 보니 하녀나 시녀보다는 메이드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도우미나 사용인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잠깐! 그냥 경호원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

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려던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싫다고 할 게 분명했으니까.

“됐다. 말을 말자.”

옆에서 꾸준히 시비를 거는 현지를 무시하며 잠시 지안의 훈련을 지켜보던 나는 별채로 향했다.

마력 호흡법을 하기 위해서.

*

*

*

“도련님 영약하고 마력포션 도착했어요.”

TV를 보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던 내 귓가로 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알아서 잘 챙겨둬.”

현지에게 말하던 나는 요즘 생활이 정말 꿈만 같았다.

배고프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TV를 보거나 제한구역에 가서 몬스터를 때려잡는 뚱이와 함께 뛰어노는 생활을 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매일 영약을 먹고 마력을 늘리는 것 빼고는 딱히 일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펜릴의 알 역시 필요한 만큼 마력을 흡수한 것인지 그 양이 점차 줄기 시작했고 지안 역시도 활에 대한 가르침을 줄 선생을 구했기에 걱정거리 또한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균열을 열어볼 생각이었다.

인피니티 링에 저장된 마력도 충분하고 그동안 영약을 통해 쌓은 내 마력의 양도 많이 늘어났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마력포션도 도착한 모양이고.

딱히 준비할 건 없었다.

그저 별채의 수많은 방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 균열을 열고 마력포션을 복용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정말 하실 건가요?”

현지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내가 균열을 연다는 말을 하고부터 저 말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어. 오늘 할 거야. 제발 좀 좋은 게 나와줬으면 하는데.”

“정말 경호팀 안 불러도 괜찮아요?”

“필요 없다니까? 어차피 위험할 일도 없을 거고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네가 내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 필요해?”

내 말을 들은 현지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는데.

“괜찮아. 나를 좀 믿어.”

내가 왜 현지를 안심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몬스터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유명길드에 소속된 가디언 들도 있는데.”

맞는 말이었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유명길드는 내 편이었고 균열에서 나온 뚱이나 앞으로 나올 놈들은 내 것이었다.

내 편과 내 것의 차이.

내 편은 언제든지 남의 편이 될 수 있지만 내 것은 다르다.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내 것은 언제까지고 내 것이었으니까.

전생의 나는 이걸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싸우던 동료들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동료를 친우를 얼마든지 배신했었다.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건 오로지 뚱이와 내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라는 존재였다.

위기의 순간 언제나 나를 지켜주었던 건 뚱이의 커다란 등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내 것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괜찮으니까 가서 식사 준비 좀 해줘. 같이 밥이나 먹자.”

지안이 온 그날부터 현지는 나와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괜찮은 느낌이었다.

물론 아버지와 형이 없는 자리에 한해서지만.

*

*

*

“정말 하실 거에요?”

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균열을 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옆에 마력포션을 두고 균열을 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럼 다른 데서 해요. 왜 하필 여기에서 하는 건데요.”

내가 있는 곳은 별채의 내 방 안이었다.

다른 방에서 균열을 열까 생각했던 나는 놓치고 있던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거였는데.

뚱이야 운이 정말 좋은 경우라 균열을 열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지만 보통 균열을 통해 뭔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말 그대로 랜덤이었다.

1분이 걸릴 수도 있지만 1시간이 될 수도 있었고 10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서 언제 뭐가 나올지 알고 균열을 연단 말인가.

차라리 넓은 내 방에서 균열을 열고 TV라도 보며 기다리는 게 편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그럼 재는 뭐에요?”

현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뚱이가 콧바람을 내쉬며 조용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불안하다며. 그래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데려다 놨는데 뭐 문제 있냐?”

“그건 아니지만··· 냄새가 나잖아요!”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뚱이는 냄새가 좀 심했다.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를 해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몬스터.

오크였기에 냄새가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뚱이를 대려다 논 이유는 서열 때문이었다.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와의 서열을 정해 놔야 앞으로 함께 하는 데 있어 문제가 없을 테니까.

몬스터란 존재는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강자를 알아보기 때문에 금방 서열정리가 될 거였다.

사실 천천히 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기에 미리미리 그 서열을 정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럼 시작한다.”

“네.”

“취익!”

안티디텍터에 마력을 불어넣자 서서히 방안을 감싸는 이질적인 마력이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는데.

방안과 밖을 차단한 것을 확인한 나는 순식간에 균열을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균열에 현지가 심호흡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양손에 든 단검을 이용해 몸을 풀며 긴장을 완화 시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만 현지의 노력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도 뭔가가 나올 기미는 없었다.

나는 최상급 마력포션을 원샷 하고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전원 버튼을 눌러 TV를 켰다.

그런 나를 황당한 눈빛으로 보는 현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이렇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전생의 내가 균열을 열어 몬스터를 소환하는 데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이 약 2시간 정도였다.

물론 몬스터가 빨리 나온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수 시간이 지나야 겨우 한두 마리가 나왔었기에 이렇게 될 거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균열에 관심을 끄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내 눈에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이 보였다.

조금 자극적인 옷을 입고 남성을 유혹하듯 춤을 추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핑크벨벳이란 아이돌이었다.

잠시 멈칫한 나는 그대로 채널을 고정했다.

전생의 나는 삼촌 팬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지금의 나이였을 때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가디언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이상하게 아이돌에 빠져들었는데.

그녀들은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내게 꿈을 꾸게 해주었다.

목소리, 눈빛, 손짓 하나까지도 나를 위로하는 듯한 그 모습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련님? 혹시 저 중에 마음에 드는 애라도 있으세요?”

“응?”

멍하니 TV 화면을 보던 내 귓가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현지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두 번째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이 이렇게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인 거 같아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는 현지의 모습에 순간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이라니! 춤이 화려해서 좀 본 것뿐이야.”

“그러세요?”

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TV를 보다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중에 마음에 드는 애라도 있으세요?”

“그냥 그러네.”

“그렇죠? 별로 이쁘지도 않은데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건 아니지. 다 그럴 만 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냐.”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던 현지는 갑자기 눈을 빛내곤 입을 열었는데.

“불러드려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의문이 들었다.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부르다니?”

“쟤들 중에 마음에 드는 애가 있으면 부르면 되잖아요?”

순간 현지를 바라보는 내 눈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릴까?

“어떻게?”

“김 실장한테 말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이 자리에 서 있을걸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현지는 이상하게도 많이 낯설어 보였다.

“너는 같은 여자로서 그런 말이 정말 쉽게도 나오는구나.”

“그게 왜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 현지였다.

“너는 불쌍하지도 않냐?”

“뭐가요? 도대체 왜 불쌍한지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싫으면 안 오면 그만이잖아요. 근데 분명히 올걸요?”

확신하는 듯 말하는 현지는 내 말뜻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내가 부른다고 하면 싫어도 거절하지 못하겠지.”

“네? 싫어도 올 수밖에 없다고요?”

“그래.”

“왜요?”

“거절하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냐?”

내 말을 들은 현지는 잠시 고민하다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네요. 제가 지금까지 그 생각은 못 했네요.”

만약 저 아이돌 중 한 명을 불렀는데 만약 제의를 거절한다면 그녀의 연예계 생활은 아마 그날로 끝이리라.

내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그녀를 배제할 테니까.

유명그룹이라는 이름값은 그만큼 거대했다.

“알았으면 다행이네.”

“그런데요. 제가 아는 연예인은 대부분 그걸 원하는 것 같던데요.”

“니가 어떻게 알아?”

“저 길드 생활 좀 했잖아요. 그때 보면 이름 좀 있는 가디언들에게 접근하는 연예인들 엄청 많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좀 갔다.

연예인에 대한 현지의 생각이 삐뚤어진 이유.

전생에 가디언 생활을 하며 알게 된 것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좀 한다는 가디언들의 연인이었다.

가디언 옆자리에는 흔히 말하는 연예계 종사자들이 많았는데.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높은 수익과 유명세.

이름있는 가디언을 이용해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려는 자들과 돈을 보고 접근하는 자들.

아름다운 외모와 인기로 유혹하는 연예인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속박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가디언과 사귀는 연예인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불쾌감으로 물들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자들은 소수였다.

다만 현지가 그렇게 받아들였던 이유는 주위에 보이는 연예인들이 대부분 그런 존재들이었던 탓이겠지.

이래서 편견이란 게 무서운 거였다.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면 쉽게 바뀌지 않았으니까.

나는 현지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러··· 억!”

입을 여는 찰나에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마력만 아니었다면.

나는 고개를 돌려 열려있는 균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벌써 나온다고?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뭔가가 나오려 하고 있었다.

뚱이에 비하면 적은 마력이었지만 그렇다고 약한 존재는 절대 아니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말하던 도중 신음을 내뱉은 나를 보며 현지 역시도 균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마력을 잔뜩 흡수하여 점차 빛을 발하는 균열에서 진한 녹색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점차 균열을 뚫고 그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는 바로 고블린이었다.

약 160 정도 되는 고블린 치고는 약간 커다란 모습을 가진 존재였는데.

“크오~”

그 모습을 바라본 뚱이가 고함을 내지르며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기 시작했다.

“키엑?”

균열을 뚫고 튀어나온 고블린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뚱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끝이 아니었으니까.

“도련님 괜찮으세요?”

현지가 나를 걱정하듯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하고 고개를 겨우 끄덕여 준 후 균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계속해서 내 마력을 흡수하는 균열은 또 한 마리의 고블린을 뱉어냈는데.

그동안 영약을 먹어가며 늘려 놓았던 마력이 모두 날아갔다.

결국, 인피니티 링에 저장해둔 마력을 꺼내 써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아직도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고블린이었다면 10마리를 소환해도 내 마력이 반은 넘게 남아있어야 정상이지만 지금 나타난 녀석들은 절대 평범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어서 3마리째 4마리째 가 튀어나왔고.

마지막으로 5마리째가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마지막인 녀석이 나오며 소모하는 마력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뚱이를 소환할 때가 생각날 정도로 마력의 소모 속도가 엄청났는데.

정확히 말하면 뚱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 필적할 정도로 많은 마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마력을 주입하며 균열을 주시했는데.

순간 불쑥 튀어나온 붉은색 피부를 가진 손.

머릿속에 떠오르는 몬스터가 있었다.

홉?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은 180에서 190 정도 되는 체격에 붉은 피부, 뚱이에 비해 날렵해 보이는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홉 고블린이었다.

고블린 4마리와 1마리의 홉 고블린.

들어간 마력을 생각해 보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아니 당장 녀석들이 뿜어내는 마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처음 소환되어 뚱이의 눈치를 보며 눈알을 굴리던 녀석은 마지막으로 홉 고블린이 나타나자 기세등등해져서는 키엑~ 거리며 뚱이를 위협하고 있었는데.

“키엑~”

“키엑~”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녀석들의 반응을 보자 대충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은 모여서 뚱이와 기세 싸움을 하고 있었다.

“도련님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저것들 혹시 싸우는 거 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뚱이의 강함은 저 다섯이 전부 덤빈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고블린들은 모여서 뚱이가 뿜어내는 기세를 버티는 게 고작일 테니까.

물론 싸우게 된다면 뚱이도 상처를 입긴 하겠지만 어렵지 않게 압살할 게 분명했다.

그게 바로 인간과 몬스터의 차이였다.

거기다 녀석들에겐 무기라고 할만한 건 긴 손톱뿐이었고 뚱이 역시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조용!”

내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자 뚱이와 고블린들이 뿜어대던 마력과 기세가 일순간 자취를 감췄는데.

“우와~ 신기해요. 도련님 혹시 진짜 마왕 아니에요?”

하나만 빼고.

현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었다.

“현태나 불러와라.”

“네!”

현태 팀장과 그 팀원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아버지께서 대기 시켜 놓았었다.

현지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열었다.

“이리 와서 앉아.”

내 명령에 조용히 움직여 내 앞에 앉는 고블린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으면 괜찮은 놈들을 얻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균열의 크기에 맞는 놈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놈들이 나와 주다니.

아무래도 요즘 운이 정말 좋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녀석들 덕분에 내 마력과 인피니티 링에 저장해둔 마력 대부분을 소모했지만, 전혀 아깝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탈력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어차피 다시 채우면 그만이었으니까.

누군가는 겨우 고블린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고블린이 마력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반적인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들 중 마력을 사용하는 녀석들에게는 네임드라는 명칭이 붙는다.

고블린의 경우 B급 몬스터가 되는데 그런 놈들이 넷에 홉고블린이 하나.

홉고블린의 경우 최소 A급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고블린은 생각만큼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특히 제한구역에 서식하는 고블린들.

이놈들은 특히 골치 아픈 놈들이었다.

이유는 다른 몬스터들과 다르게 뭔가를 배워 그걸 활용할 줄 아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덫을 만들거나 독을 사용하며 은밀히 움직이는 고블린 때문에 많은 헌터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거기다 이놈들은 그곳의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똑똑한 놈들이었다.

거기다 한 마리지만 홉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 지휘체계 역시 안정적이었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녀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홉일이다. 나머지는 순서대로 고일, 고이, 고삼, 고사야.”

“키엑~”

놈들은 이름이 생긴 게 기쁜지 키엑~ 키엑~ 거리며 기쁨을 표하고 있었는데.

아닌가? 화가 난 건가?

“여기는 뚱이. 뚱이랑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뚱이 너도 시비 걸지 말고.”

괴성을 지르며 알겠다는 듯 행동하는 녀석들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짓던 내 귀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찾으···어?”

현태는 안으로 들어와 고블린들을 발견하고는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찰싹-

“뭐해요?”

문을 가로막고 우두커니 서 있는 현태의 등에 손자국을 남긴 현지가 현태에게 한마디 했다.

“그, 그게···”

“들었지? 이번에 내가 소환한 애들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아. 네···”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현태와 그 팀원들이 뚱이의 관리를 맡고 있었다.

안 그래도 뚱이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수가 더욱 늘어나게 되자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말뿐인 감사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따로 챙겨주시는 것도 있었고 나 역시도 미안한 마음에 영약이나 포션을 자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챙겨주고 있었다.

그래도 좀 꺼림칙 할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네···.”

“그리고 현지야.”

“왜요?”

나는 현지와 현태에게 고블린들의 이름을 알려준 후 현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 부탁이란 것이 고블린들에게 암살기술을 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는데.

“제가 왜요! 그리고 쟤네들이 그걸 가르친다고 해서 알아듣긴 해요?”

“쟤들 암살 일족이라니까?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이 순식간에 습득할걸?”

고블린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이유는 바로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어이없게도 어비스가 열린 후 그곳에 개척도시를 건설하는 데 가장 방해가 되었던 것이 바로 고블린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건 일반적인 고블린이 아닌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고블린이었는데.

모습을 감춘 고블린들이 인부들을 몰래 잡아가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가디언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어떤 흔적조차 발견해 내지 못해 철수를 고민할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인부들의 실종에 고블린이 연관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국내의 고위급 가디언들이 총동원 되었는데.

이 고블린들은 보통 영악한 게 아니었다.

고위급 가디언들이 나서자 이놈들은 뭔가를 느꼈는지 몸을 숨겨버린 것이었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길드들은 게이트 주변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며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2주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게이트에서 10킬로 정도 떨어진 울창한 숲에서 인간의 뼈로 생각되는 것들이 발견되었고.

그 주변을 탐색한 결과 고블린 부락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이후로는 금방 정리되긴 했지만 피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위급 가디언들이 나섰음에도 은신을 사용할 줄 아는 몇몇의 고블린들 덕분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이 사실을 아는 나는 지금 소환된 녀석들이 은신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하지 않았기에 현지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니면 배우면 되는 거고.

‘어차피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현지가 하는 건데 뭐 어때?’란 생각도 솔직히 조금 있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봐.”

“어휴~ 네.”

한숨을 쉬며 인상을 쓰던 현지는 결국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표정이 안 좋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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