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14)

훈련.

키엑-

이지안을 보기 위해 훈련장으로 향하던 내 귓가에 고블린들의 비명이 파고들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 소리를 듣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현지에게 암살기술을 가르치라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려주지 못했다.

나도 몰랐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뭐,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서 본 그 광경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게 정말 가르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현지는 고블린들을 쥐잡듯이 잡았는데.

고블린들을 창고에 몰아넣은 채, 마치 자신의 암살기술을 시험이라도 하듯 몸을 숨기고 고블린들을 쥐어패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고블린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가 자신들을 공격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본 나는 현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훈련이냐고?

“이게 훈련이 맞는 거냐?”

“네? 당연하죠.”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엔 단순히 괴롭히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대답하는 현지의 입가에는 정말 원초적인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마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것만 같은 티 하나 없는 순수한 미소.

하지만 그런 현지의 모습을 보고도 말릴 수 없었다.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빨라요.”

“아무리 그래도···”

“쟤들에게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고요.”

현지에게 설득당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쪽 분야는 나보다 현지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일단은 지켜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거기다 저것들 벌써 자신들의 기척을 숨기기 시작했어요.”

“정말?”

“네. 도련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 마지막 말에 넘어갔다고 하는 게 정답이었다.

결국, 허락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고블린들은 매일 지옥을 경험 중이었다.

그 미안함에 고블린들이 머무는 창고에 자주 찾아갔지만, 차마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창고 앞에 도착하면 고블린들의 비명이 들려왔기에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요즘 현지는 내 옆에 있는 시간보다 고블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고블린들을 찾아가 괴롭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휴식까지 줄여가며 고블린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품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는데 분명한 것은 나 때문은 아니란 거다.

교육을 위해 자신의 잠까지 줄여가며 고블린들을 교육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녀의 미소.

요즘 그녀는 전과 다른 인위적인 미소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미소를 입가에 달고 살았으니까.

목소리도 나긋나긋 한 것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현지의 요즘 모습은 정말 이상했다.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한 것 같은 찜찜함이 가슴 한편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던 나는 어느새 훈련장에 도착해 있었다.

어휴~ 저 미친년.

여기 또 하나의 미친년이 있었다.

넓은 훈련장에서 홀로 훈련을 하는 이지안의 모습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꺄하하하”

배우라는 활은 바닥에 내팽개쳐 놓고 한 손에 채찍을 들고 미친 듯이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훈련용 채찍을 여러 개로 분열시킨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미친년이 따로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 거야?

활을 가르치는 선생이 좀 엄하게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저 정도로 망가질 정도는 아니라 들었는데?

“흠! 흠!”

헛기침을 하며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내 헛기침 소리가 묻혀버릴 뿐.

어휴~

요즘 한숨이 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건 분명 전생의 내가 알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그때의 내가 동경하던 그 여자와 동일 인물이란 생각 자체가 들지 않을 정도로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저, 저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어느새 나를 발견한 건지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줍은 표정으로.

내가 고개를 들자 그녀는 이어서 말을 꺼냈다.

“혹시··· 보셨어요?”

“뭘요?”

모두 보았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이지안 씨. 요즘 많이 힘든가요?”

“네? 아, 아니요!”

그럼 왜 그러는 건데?

애써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그녀를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했다.

“이거 받으세요.”

“뭔데요?”

내가 건네는 흑색의 나무로 된 고급스러운 상자를 받던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별건 아니고 영약이에요.”

“네?”

“영약을 한 번도 복용한 적이 없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마력양이 현태와 비슷할 정도로 굉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저 각성했을 때부터 건강을 위해 꾸준히 마나 호흡법을 했을 뿐 영약을 복용한 적은 없다는 그녀의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기함했다고 한다.

나에게 보고를 하는 현태의 흥분한 모습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각성자에게는 정해진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영약의 사용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녀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를 모른다는 점이 좀 아쉬웠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성 때문이었다.

영약은 복용하면 할수록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최대한 늦게 복용하는 것이 좋다.

물론 마력의 양이 증가할수록 호흡법의 효율도 좋아지긴 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초반에 영약을 복용해 일정 수준까지 마력을 끌어올린 후 영약의 복용을 중지한 후 자신의 한계치에 가까워졌다 생각하면 다시 영약을 복용해 마력을 한계치까지 빠르게 늘린다.

마력이 한계치에 다다르면 호흡법으로 얻을 수 있는 마력의 양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한계와 상관없이 마력을 늘릴 수 있는 영약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희소성 역시 엄청나기 때문에 일반 각성자들은 꿈만 꿀 뿐이다.

“앞으로 마나 호흡법을 할 때는 이걸 복용하세요.”

“네? 네!”

“이걸 모두 사용하면 현태에게 말해요. 그럼 추가로 지급이 될 테니까.”

“네. 그런데 상무님.”

“왜요?”

“어째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지안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내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력적성이 9 정도면 특성이 없다고 해도 상위권 각성자들을 모조리 씹어먹어 버릴 정도의 재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냥 아까워서요. 지안 씨 재능이요.”

“저랑 아무런 상관도 없으신데···”

“저 유명그룹 사람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재능있는 사람은 무조건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배운.”

솔직하게 말했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내가 망나니가 되기 전에는 나도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친구와 적을 나누지 마라.

누가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적이 될 수도 있고 적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적조차 끌어안아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물론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망나니로 전향했지만, 그전까지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착실하게 생활해 왔었다.

“그, 그래도.”

내 말이 납득이 되지 않는지 그녀는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냥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상무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지안 씨는 다른 사람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게 좋겠어요. 생각해 보니까 지안 씨가 이렇게 된 이유가 주변 사람 이야기만 듣고 확인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으니까. 다음부터는 꼭 직접 겪어보고 이유를 찾아본 후 판단을 내려 보세요.”

충고라면 충고였다.

그녀는 귀가 너무 얇았다.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네? 네!”

내 쓴소리에 오히려 표정이 밝아지는 지안이었다.

“훈련 열심히 받아요.”

말을 마치며 그대로 등을 돌렸다.

“네. 열심히 할게요!”

훈련소를 빠져나가는 내 귓가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다만.

“감사합니다. 상무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그 뒤로도 계속해서 들리는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에 내 미소는 금방 사라졌다.

역시 이상한 여자다.

*

고블린들을 소환하고 약 한 달쯤 지났을까?

현지에게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고블린들이 생활하는 창고의 CCTV를 통해 그 성과를 확인하는 중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뭐냐?”

“보시면 아실 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은신을 사용한 거예요.”

현지의 말은 이해하겠는데···

정말 황당한 것은 고블린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은신을 사용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지만.

이건 참 신기했다.

퍽! 퍽! 하는 타격음이 들리고 아주 잠깐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게 가능해?’ 였다.

내가 생각했던 훈련의 성과와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지는 가능하겠지 괴물이니까.

그런데 이 고블린들은 이러면 안 됐다.

“이게 정상인 거야? 보통 은신을 해도 싸울 때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 게 정상 아니야?”

“에이~ 도련님도 참~ 그건 별거 아닌 것들이나 그런 거죠. 저나 제가 가르친 저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섭섭해요.”

현지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알던 은신 능력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분명 은신을 사용하고 다가가 기습을 가할 때는 모습이 드러났었다.

거기다 공격 후에 바로 은신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그 자리를 피한 후에야 비로소 다시 은신을 사용하던 그들은 그럼 뭐였던 걸까?

진짜 조루였어?

조루.

이것은 은신 능력자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라 할 수 있었다.

1:1에서는 누구보다 강하지만 2:1만 되어도 그 힘이 많이 제약되었던 자들이었는데.

하나를 처리해도 하나가 남아있으면 은신을 사용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했기에 생긴 별명이었다.

그들은 같은 등급의 가디언들에 비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수가 지나치게 적었다.

물론 네임드 같은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최강의 패나 다름없었지만.

강점이 명확한 만큼 그 약점 역시도 너무 분명했기에 지금 화면을 바라보는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너무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은신을 사용하는 고블린들에 대한 사실이 세상 밖에 퍼지면 조용히 넘어갈 수 없으리라.

암살자. 그것도 몬스터로 이루어진 암살자 집단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으니까.

“현지야 이거 모두 지워야겠다. 그리고 창고에 있는 CCTV도 모두 없애라고 해.”

“네? 왜요?”

“너무 위험해. 혹여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이 영상이 세상 밖으로 유출되면 큰 타격을 받을 거야.”

“네···”

내 말에 대답하긴 했지만, 현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 현지는 자신이 키운 고블린들에 대한 애착이 생겨난 모양인지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해는 한다.

내가 이런 대단한 것들을 키워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겠지.

하지만 아직은 안된다.

너무 위험했으니까.

“아무리 사람의 말을 따른다고 해도 저 아이들은 몬스터야. 당연히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클 거다.”

“네. 도련님 말대로 할게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을 한 후 걸음을 옮기는 현지를 보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는 고블린들을 훌륭하게 가르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 잘 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블린들은 분명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

암살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는데도 탁월할 테니까.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은 살기에 민감했다.

아주 미약한 살기조차 캐치해 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키는 데 있어서 이놈들을 따라올 수 있는 자들은 아주 드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암살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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