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길드
“준비 끝났나?”
“네. 출발하시면 됩니다.”
“연락은 해 놨지?”
“물론입니다.”
김 실장 옆에서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는 지안의 모습이 보였다.
“저··· 상무님 오늘 어디 가시나요?”
“현지가 아무 말 안 하던가요?”
“네. 아무런 말도 못 들었는데요.”
현지가 깜빡한 모양이었다.
둘은 요즘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현지가 지안에게 말을 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늘 길드에 갈 거예요.”
“네? 저도요?”
“당연하죠. 지안 씨 때문에 가는 건데.”
“저 때문에요?”
지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음을 던졌는데.
별것 아닌 이유였다.
“지안 씨 검사 좀 해보려고요.”
“혹시 제 말을 못 믿으셔서···?”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지안을 보며 급히 입을 열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오늘 지안 씨 등급 테스트를 좀 해보려고요. 물론 마력적성 검사도 하겠지만 주는 등급 테스트에요. 겸사겸사 길드에 지안 씨 이름도 올리고요.”
“아! 그렇군요.”
이제야 표정이 밝아지는 지안이었다.
“그런데 길드에 이름을 올린다고요?”
“왜요? 싫어요?”
“그건 아닌데···”
“걱정 말아요.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니까.”
“그 말씀은?”
“지안 씨가 길드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냥 비서보다는 가디언이 괜찮을 거 같아서요.”
내 비서라 소개하는 것보다 유명길드 소속 가디언이라고 소개하는 게 지안에게 더욱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치만··· 저는 상무님 비서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드는데요.”
“네?”
“저는 비서가 좋아요.”
“그, 그렇군요···”
현지도 그렇고 지안도 그렇고 좀 특이했다.
그도 그럴 게 가디언이라 소개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때문인데.
일단 가디언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호감을 보인다.
대단하다는 인식. 멋지다는 인식. 영웅이라는 인식.
일반인에게 가디언이란 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게 취향 차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이름은 올리지 않는 거로 하죠.”
“네. 상무님!”
밝게 웃는 걸 보니 비서가 정말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
유명길드에 도착하자 마중을 나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길드장인 명철 아저씨가 직접 나를 마중 나와 있었는데.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직접 나오실 필요는 없는데요.”
“오랜만에 보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저번에 봤잖아요.”
“그때는 회장님이 계셔서 인사를 제대로 못 하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고 이 아가씨니?”
“네. 제 비서인 이지안 씨에요.”
“안녕하세요. 상무님 비서 이지안입니다.”
“비서? 분명 오늘부로 소속을 길드로 바꾸기로 하지 않았느냐? 모두 준비해 놨다만?”
지안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던 명철 아저씨는 이어지는 지안의 말에 의문이 들었는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지안 씨가 싫다고 하네요. 비서가 좋다네요. 하하.”
고개를 갸웃거리던 명철 아저씨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는지 입을 열었다.
“설마? 이 아이도 현지랑 비슷한 거냐?”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자식같이 키운 아인데.”
“어떻게 키우셨길래 현지가 그래요? 요즘 현지 때문에 난감한 게 한둘이 아니라고요.”
특히 그 메이드복.
외출할 때마다 그 옷을 입고 졸졸 따라오는데 사람들 시선이 몰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현지가 따라오지 않았는데.
아무리 현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길드에는 현지의 얼굴을 아는 자들이 분명 존재했으니까.
죽음을 위장했기 때문에 함부로 길드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현지 이야기를 이렇게 막 해도 되나?
“내가 어떻게 알아? 분명 전에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본가에 들고부터 애가 좀 이상해져서 나도 요즘 그 아이를 만나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야.”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막 해도 돼요?”
“응? 무슨 말이냐?”
“현지에게 듣기로는 죽음을 위장하고 본가에 들어왔다던데요?”
“뭐? 현지가 그래? 죽음을 위장했다고?”
“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명철 아저씨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게 도대체 어디서 뭘 보고 배우길래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아니에요?”
“기록 자체를 전부 삭제했을 뿐이지 죽음을 위장하진 않았어!”
소리치는 명철 아저씨는 열이 오르는지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있던 길드 사람들이 아저씨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는 게 어떻겠어요?”
“그, 그러자?”
주변을 둘러보라 눈짓한 나를 보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 명철 아저씨는 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하여간 현지가 문제라니까.
명철 아저씨를 따라 도착한 곳은 길드의 장이 머무는 곳이었다.
역시 명철 아저씨답게 담백한 인테리어가 보였는데.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아저씨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 길드가 좀 어수선하지?”
“네?”
잘 모르겠는데?
길드장인 아저씨가 직접 마중을 나와 그런 거 아니었나?
“오늘 10대 길드 회의가 있어서 그러니 네가 이해를 좀 해다오.”
“길드 회의요? 전 그런 말 못 들었는데요?”
분명 김 실장에게 조용한 날을 골라 달라고 말했는데 왜 하필 오늘이지?
“원래 며칠 후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문제가 좀 생겨서 앞당겼단다.”
“아. 그래요? 심각한 일이에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원래 화랑 길드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우리 쪽에 부탁하더구나.”
“그럼 오늘 길드장들이 모두 이곳에 모이는 거예요.”
“너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단다.”
“어쩔 수 없죠.”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명철 아저씨 비서였는데.
차를 내올 거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빈손으로 들어왔다.
“준비 모두 끝났습니다.”
“아 그래? 벌써 모두 모였어?”
비서의 말을 듣고 몸을 일으킨 아저씨는 나를 보며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상황이 이래서.”
“저기···”
비서가 할 말이 있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왜 무슨 문제 생겼어?”
“그게 아니라 이지안 씨 검사 준비가 끝난 걸 말씀드린 겁니다.”
“아, 그 준비가 끝났다고?”
도로 자리에 앉는 아저씨를 보며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저씨가 나이를 좀 먹더니 허당끼가 생겼나?
“그리고 다른 길드 분들은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뭐? 이제 10분도 안 남았는데?”
보통 이런 회의는 미리 와 준비하는 게 예의였다.
아무리 회의 시간을 정해 놨다고 해도 회의 전에 장소를 제공한 이쪽에 감사를 표하거나 서로 인사를 나눌 시간 정도는 필요했으니까.
물론 날짜가 바뀌고 장소 역시 바뀌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네. 아직 도착했다는 연락을 한 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들이 정말!”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던 아저씨는 순간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표정을 바꾸시고 입을 열었다.
“지안 씨 저 비서를 따라가면 안내를 해줄 거예요.”
“아! 네.”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듣던 지안은 아저씨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넌 어디가. 오랜만에 봤는데 그동안 어땠는지 대화라도 좀 해야지.”
“그럴까요. 그럼?”
지안의 검사가 궁금하긴 했지만, 어차피 끝나면 모든 검사결과를 알 수 있을 거였다.
물론 좀 꺼려지기도 했고 말이다.
다른 길드에서 온 자들이 나를 보고 쑥덕거릴 게 분명했기에 조용히 이곳에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 씨 이따가 봐요.”
“네.”
비서를 따라 나가는 지안을 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명철 아저씨에게 지금껏 궁금해 왔던 것을 물었다.
“아저씨는 현지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 것 같은데요?”
“그놈의 만화책 때문이지!”
“만화책이요?”
“본가에 들어가기 전에 현지가 메이드가 나오는 만화책을 좀 구해달라고 해서 구해줬는데 그걸 보고 애가 완전히 변해 버렸어.”
“만화책을 좀 봤다고 현지가 그렇게 변한 거라고요? 지금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그 전의 현지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현지가 얼마나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착하다는 건 모르겠지만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평소의 현지를 떠올리던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현지는 내 방에 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현지도 참 불쌍한 아이야.”
갑자기?
갑자기 현지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아저씨를 보며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그 아이가 말이야.”
아저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말 충격이었다.
현지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부터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할머니가 말려 보았지만, 그때뿐이었고 계속되는 폭행에 견디지 못한 현지는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다.
달리는 차에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차에 치이진 않았지만, 생각만으로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그랬구나.
가끔 현지가 보이는 차가운 표정이 떠오른 나는 현지가 그런 표정을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럼 아버지랑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듣기로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현지를 도와줬다고 들었는데.”
“그 차에 회장님이 타고 계셨거든.”
아! 그런 거였어?
어쩐지 현지가 아버지를 보는 눈빛이 일반적인 주종관계가 아닌 뭐랄까? 가족을 바라보는 눈처럼 따스함이 녹아들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현지를 불쌍히 여겨 현지의 아버지에게 권리를 빼앗고 현지와 할머니 둘이 살 집을 마련해주며 후원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현지가 14살이 되었을 무렵 그녀가 길드에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은혜를 갚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은혜를 갚겠다고 찾아온 현지는 놀랍게도 각성을 했는데 그 능력이 범상치 않아 아저씨가 직접 현지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렇게 길드 소속 가디언이 되었고 뛰어난 재능으로 순식간에 A급 가디언의 자리에 올라선 현지에게 아버지가 찾아왔고 결국 나의 메이드가 된 것이었는데.
그래서 현지가 전생에 최강준을 그렇게나 괴롭혔던 거였다.
단순히 주종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게 아버지 때문이네요.”
“그렇지. 회장님이 현지에게 그런 부탁만 안 했어도 그 아이가 그렇게 변해버리진 않았을 텐데.”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현지의 변화가 나쁘단 생각이 들진 않네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현지의 요즘 모습을 보면 아실 텐데요?”
“요즘 일이 좀 많아서 그 아이를 볼 시간이 없었단다. 설명해 주겠니?”
“항상 웃고 있거든요.”
“항상 웃고 있다고? 그 아이가?”
“네.”
“그럼 다행이구나.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아인데. 물론 그 이상한 집착만 뺀다면 말이야.”
“그건 그렇죠. 하하하”
똑똑똑-
뭔가 다급해 보이는 노크 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아저씨가 말하자 비서가 다급하게 들어와 입을 열었다.
“그게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문제? 왜 도착한 길드장끼리 치고받기라도 하나?”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그래?”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던 비서는 아저씨의 재촉에 전전긍긍하다 결국 입을 열었는데.
“그게 이지안 씨가···”
지안 씨가?
뭔가 사고를 칠 인물은 아닌데?
“왜 문제가 생겼어?”
비서는 말할 결심이 섰는지 눈을 꾹 감더니 외쳤다.
“최강준 씨와 싸우고 있습니다!”
“···뭐?”
뭐··· 라고?
최강준이랑 싸운다고?
비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똑바로 말 못 해?”
“그러니까··· 그, 그게···”
“아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가면서 듣지.”
아저씨는 급히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는데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라 붙었다.
비서 역시도 급히 따라붙으며 입을 열었는데.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지안의 검사가 시작되기 전에 최강준이 도착했는데 아직 어떤 길드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에 길드를 좀 구경시켜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문제는 지안의 검사가 진행되었을 때 최강준이 그곳을 지나던 중이었던 것이다.
안내를 받아 그곳을 지나던 최강준은 지안의 검사 결과를 얼결에 듣게 되었는데 당연히 깜짝 놀랐을 거다.
마력적성 9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에 깜짝 놀란 최강준은 미래의 최강자 중 한 명에게 인사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다가갔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최강준의 인사에 얼결에 인사를 받은 지안은 이어지는 최강준의 말에 솔직히 대답했는데.
그 솔직한 말이 문제였다.
“유명길드가 이런 인재를 숨겨두고 있었군요. 놀랍습니다.”
“네? 저는 유명길드에 속해있지 않은데요?”
“네? 그게 무슨 말이신지?”
“말 그대로예요. 저는 유명길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어요.”
“정말인가요?”
이 대화가 문제였다.
당연히 최강준은 유명길드 소속이 아니란 말에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물론 유명길드에서 검사를 받는 사람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는 건 예의가 아니었지만, 이해는 되었다.
마력적성 9.
아마 지금껏 밝혀진 재능중에 최강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재능이었다.
이미 길드가 있다 해도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그 인재를 빼앗아 버리고 싶은 게 바로 재능이라는 거였다.
다른 길드들 역시 마찬가지리라.
그것이 유명길드라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소속이 없는 지안을 보는 최강준의 입장에선 유명길드에게는 미안하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테고.
그렇게 명함을 주고받은 최강준은 놀랐을 거다.
그녀가 내 비서라는 사실에.
당연히 그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했을 거고 그걸 들은 지안은 당연히 화가 났겠지.
물론 그의 말은 사실이겠지만.
“아니 너희는 그놈이 접근할 때 다들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어떻게든 막았어야지!”
“그, 그게··· 모두 너무 놀라 버리는 바람에···”
“그럼 중간에라도 끼어들어서 막았어야지!”
“죄송합니다.”
화를 잔뜩 내던 아저씨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는지 멈춰버렸는데.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마력적성수치!”
“9가 나왔습니다.”
“9라고? 정말? 확실해?”
아직 아무에게도 지안의 마력적성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물론 변명할 여지는 충분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9라고 했는데 터무니없이 낮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확실히 하고 싶었다.
“선우야 이 말이 사실이냐?”
검사를 직접 목격한 비서가 아닌 나에게 물음을 던지는 아저씨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듣긴 했는데 정말인지는 몰랐어요.”
“말했어야지! 그런 건 나에게 먼저 말을 했어야지! 그럼 비밀리에 검사를 진행했을 거 아니냐?”
나에게 화를 내시는 아저씨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검사를 진행한 진짜 이유는 바로 지안을 속인 협회에게 복수를 해 주기 위해서였으니까.
만약 비밀리에 이 검사를 진행했다면 아저씨는 틀림없이 결과를 숨기자고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럼 너무 늦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힘들게 지낸 몇 년을 모두 보상해 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녀를 속인 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꼴은 보여주기 싫었으니까.
“잠깐 니가 알고 있다는 건 어디선가 검사를 한 적이 있다는 말이 아니냐?”
“그렇죠. 각성했을 때 협회에서 검사를 했죠.”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들이 미쳤다고 그런 짓을 저지르겠느냐?”
내가 원하던 것들이 하나씩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원치 않던 일도 발생했다는 것이었는데.
지안과 최강준의 만남.
전생에 그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최강준에게 첫눈에 반했다던 지안의 인터뷰를 떠올린 나는 약간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명철 아저씨를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까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하죠.”
“그, 그렇구나.”
유명길드
도착한 검사장에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아니 일방적인 고함이었는데.
“이 사람이 말이면 단 줄 아나! 당신이 우리 상무님 봤어요? 상무님이 그러는 거 직접 봤냐고요!”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참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최강준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는 지안의 모습과 묵묵히 듣고만 있는 최강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이가 없을 장면이었다.
“그리고 비서가 뭐 어때서요? 비서가 얼마나 중요한 직업인지 당신이 알아요? 내가 비서 하는데 당신이 뭐 보태준 거 있냐고요? 없잖아! 그런데 뭐? 비서 그만두고 당신이랑 같이 몬스터나 잡자고요? 내가 미쳤어? 내가 왜 그 징그러운 몬스터를 보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요?”
“아니 몬스터를 잡자고는 안 했는데···”
최강준은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그게 그거 아니야. 길드 들어와서 같이 영웅이 되자면서요. 그게 몬스터 잡자는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난 이해가 안 가는데요?”
뭐지 이 통쾌함은?
그동안 최강준 때문에 했던 고민이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기에 일단 지안을 말리기로 하고 지안에게 다가갔다.
솔직한 심정은 지안이 더 최강준을 몰아세우길 바랐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다른 길드들도 도착한 모양이고 최강준의 옆에 있는 그의 동료들도 더 듣고만 있을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안 씨?”
내가 부르자 고개를 돌린 지안은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상무님! 글쎄 저 사람이 상무님보고 망나니라지 뭐예요? 그래서 제가 한소리 하고 있었어요.”
최강준이 나에게 망나니라고 했다고?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닐 텐데?
“아니. 망나니라고는 안 했는데···”
잔뜩 당황해서는 급히 입을 여는 최강준이었다.
그거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 봤을까?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아야 했다.
“당신 뭐라고 했어요. 상무님이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질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서요. 그게 망나니가 아니면 뭐야! 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아요? 다 소문일 뿐이잖아!”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말하는 지안의 말에 내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나를 감싸주는 지안에게는 고마웠지만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그거 내가 한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요?”
“내가 했는데?”
최강준과 함께 있던 사람 중 유일한 여성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게 그거 아니에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지안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부하가 잘못하면 상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니까.
“이봐요 아가씨? 당신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그런 막말을 하는 겁니까?”
“누군데요?”
“아가씨는 TV도 안보나? 최강준이란 이름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뭐 어디서 들어보긴 한 것 같네요.”
아마 지안도 최강준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을 거다.
그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만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게 이상하니까.
“이 사람이 진짜!”
“진짜 뭐요?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무님 비서인 내 앞에서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지 당신은 예의란 것도 없어요?”
“자자! 그만하지 지안 씨도 그만하고.”
순간 아저씨가 끼어들었는데.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는데 아저씨가 끼어드는 바람에 일단락되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순식간에 상황을 풀어버리고 이 자리에 있는 다른 길드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듯싶었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확 화살을 쏴버릴까 보다!”
지안의 혼잣말에 이동하던 최강준 일행이 멈칫했다.
아마 섬뜩했으리라.
무려 마력적성이 9인 사람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본격적으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력이나 활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겁을 먹기 충분했을 테니까.
이쪽을 한번 돌아본 최강준 일행은 이상하게도 나를 한번 쏘아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왜 나를 봐?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최강준으로 인해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로 지금 내 기분은 최고였다.
물론 티를 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안 씨? 괜찮아요?”
나는 아직 화가 덜 풀려 씩씩거리는 지안의 모습에 물음을 던졌는데.
“네? 아 네! 괜찮아요.”
순식간에 표정이 일변하며 빙긋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혹시 지금까지 연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신 거죠?”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기분이 살짝 상하긴 했지만요.”
“그럼?”
“그 사람 태도가 정말 기분 나빴거든요. 마치 제가 그 사람이 한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기라도 할 것처럼 굴잖아요. 거기다 비서가 별것 아닌 직업처럼 말하기도 했고요.”
“하하하”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강준이 지안에게 어떤 자세로 제안을 했는지가 눈에 훤히 보이는 느낌이라서.
아마 최강준도 처음에는 지안이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거다.
하지만 거부를 하자 당황해서는 비서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흉도 조금 봤을 테고.
“왜 웃으세요?”
“그냥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저 근데 상무님···”
“왜요?”
“현지 씨에게 하는 것처럼 저한테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그게··· 저도 도련님 측근이라면 측근인데 너무 딱딱하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아서요.”
딱딱하다고? 내 말투가?
지안의 말은 마치 자신도 현지처럼 대해달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풍겼는데.
“현지처럼요?”
“네!”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에 살짝 당황한 나는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현지처럼 막 대해달라는 건 아니죠?”
“그거에요! 저도 그렇게 해주세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현지에게 하는 내 행동은 기본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조차도 현지를 막 대하면서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는데.
다만 그걸 바꾸는 게 쉽지 않을 뿐이다.
바꿔야지 바꿔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잘 안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게··· 좀 부러워서요.”
“그게 부럽다고요?”
이 여자 제정신인가?
혹시 최강준이 지안에게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분을 보고 있으면 저도 그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거든요.”
“안에?”
“잘 설명할 수는 없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막이 처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뭐랄까? 두 분은 가족 같은 느낌이고 저는 그냥 남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긴 했다.
다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일 뿐.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끄덕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했기에 결국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만.
“천천히 바꿔보도록 노력해 볼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상무님!”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기가 원한다는데.
“그럼 마저 검사를 진행하도록 할···까?”
“네!”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지안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느껴졌다.
뭔가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한 것처럼···
검사실 한편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벗어난 나는 우리가 나오는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연구복 비슷한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검사를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안은 마력양을 먼저 측정하고 특성을 사용한 파괴력과 활용력 등등 이런저런 검사와 측정을 했는데.
그 결과 지안은 최종 B급이라는 검사지를 받았다.
마력양에 있어서는 S급에 근접했지만, 특성의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활용도가 아직은 좀 떨어졌고 마력을 다루는 것 역시 아직은 좀 서툴렀기에 B급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성장 가능성에서 S를 받음으로써 그녀의 재능을 증명했다.
물론 지안은 긴가민가하며 검사지를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주자 결국 받아들였다.
*
“지안 씨가 요즘 정말 열심이네요.”
현지와 함께 지안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길드에서 검사를 받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지안은 자신의 검사 결과를 본 후부터 정말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안이 그전에는 훈련을 게을리했다는 말은 아니다.
전에는 남들과 같은 훈련량을 소화했다면 지금은 남들의 몇 배는 될 정도로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있었는데.
겨우 며칠 만에 그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이제는 화살을 쏘아냄과 동시에 자신의 특성인 분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우 두 발이었지만.
시작이 중요한 거였다.
방법을 찾아낸 그녀는 점차 두 발의 화살을 다섯 발로 열 발로 종국에는 수백 발로 분열시킬 수 있으리라.
그때가 되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랄 거다.
뭐 지금도 국내에서는 연일 떠들고 있긴 하지만.
협회의 비리에 대해서.
그녀가 검사를 마치고 난 후 나는 아저씨를 찾아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녀에 대해 공개해 달라고.
아저씨는 좀 망설였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격분해서는 비서를 호출했다.
“협회가 지안 씨를 숨겼어요.”
“무슨 말이냐?”
“그녀에게 포기를 강요했다던데요?”
“뭐?”
“그래서 지안 씨는 지금껏 자기가 재능이 없는 줄 알고 살아왔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력적성이 무려 9다. 이건 요즘 인터넷? 거기만 뒤져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더냐?”
“물론 그렇긴 한데요. 사실이 그래요. 그녀는 자신에게 아무 길드도 접근하지 않는 걸 보고 자신이 정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녀가 정말 협회의 검사를 받았단 말이냐?”
“물론이죠. 안 그러면 제가 어떻게 지안 씨의 마력적성을 알았겠어요.”
“내 이것들을 당장!”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유명길드의 발표를 시작으로 10대 길드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다 협회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자들과 협회에게 불이익을 당한 자들이 나서기 시작하면서 협회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지안의 친구라는 여자의 아버지인 협회장 역시 쇠고랑을 찰 준비 중이었다.
이어서 드러나는 협회의 비리들이 밝혀지며 협회장의 형량 역시 점차 불어났는데 아마 죽기 전에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협회도 반박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지안의 검사 결과를 지워버린다고 해도 그녀가 협회에서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까지는 지우지 못했으니까.
대한민국 국민에 한해서 각성 검사는 1회 무료가 적용된다.
검사를 받게 되면 그 검사비용을 국가에서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부 부처에 그 정보가 자동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협회에서만 지운다고 그게 없는 사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협회는 수많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사라질 뻔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는지 그 힘을 모두 빼앗겨 버린 채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그렇다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안은 가장 친하다는 여자에게 전화로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 친구라는 여자는 이렇게 될 거란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그래. 적당한 재능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은 천재라는 영역조차 넘어설 정도로 엄청났다.
그녀가 마력적성에 대해 찾아보기만 해도 금방 자신의 재능에 대해 알아챌 거란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 친구라는 여자는 지안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대담한 짓을 저지르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면 그냥 질투에 눈이 멀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가.
여튼 지안은 그 이후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는데.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는 그녀는 그게 좀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나라도 힘들었을 거라 생각될 정도였는데.
지안의 직장인 유명그룹의 본가까지 찾아올 정도로 기자란 사람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를 좀 만나게 해달라는 아우성이 끝없이 들려왔을 뿐 아니라 그녀의 하나뿐인 가족인 이모가 있는 병실에 찾아가 소란을 피울 정도로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지안은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고 그녀의 이모는 기자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VVIP 병실로 옮기기로 했다.
물론 지안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긴 했다.
그녀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진행한 건 분명 잘못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후에 알려지는 것보다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다.
아직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었기에 이 정도로 그친 거지 만약 그녀의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후에 이 사실이 밝혀졌다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녀를 찾아 움직였을 거고 그녀의 모든 것이 전 세계에 퍼져버릴지도 몰랐으니까.
사생활이란 것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