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스마트폰을 보던 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누가 보면 사악해 보인다고 할 정도로 활짝 미소 지었는데.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이라 상관없었다.
아니 혹여 누가 있다고 해도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나타났으니까.
아니 나타났다기보다는 이제야 내가 원하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맞으리라.
마나 호흡법을 제외하면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였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매일 올라오는 기사들과 정보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아버지에게 부탁해 대중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고급 정보들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기다리던 것에 대한 정보와 미래의 기억을 전부 기억할 수 없기에 놓치고 있는 게 있는지 확인도 해야 했기에 틈틈이 살펴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주시하던 중 드디어 내가 원하던 회사가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동시다발적으로 그들의 발명품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분명 누군가 조작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 물건은 아주 먹음직스러웠을 테니까.
각성자 전용 마약.
각종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는 그 물건을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복용했을 시 순간적으로 마력을 증폭시키고 육체의 리미트를 해제해 강한 힘을 주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흥분상태로 유도해 계속 복용하게 된다면 결국 미쳐버리는 중독성과 부작용이 엄청난 약물.
물론 이 사실은 개발사 측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 위험 상황이 아니라면 복용을 자제하라는 설명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강한 위험 문구가 적혀 있었던 거고.
하지만 인간이 괜히 인간인가?
알면서도 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거기다 이 약물을 한 번이라도 복용한 각성자는 그 고양감과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컸다.
당연하지 마약이나 다름없는데.
아마 개발사 측은 그들이 가디언이기 때문에 약물의 중독성을 이겨 낼 거라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각성자에게 마약이란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마약중독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각성해라! 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각성자에게 마약은 아무런 위험도 효과도 없었다.
아니 사실 이건 모두 핑계였다.
그들은 자금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물건을 제대로 된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채 발표했을 뿐이다.
이 말이 나올 거란 걸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가디언과 헌터들에게 필요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는 길드들과 정부가 그들을 옹호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뒤에서 이 일을 조작하는 놈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변수가 될만한 것들을 모두 차단해 버린 후 폭탄을 터트린 거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이 회사가 몰락하길 기다리고 그들의 작품을 뺏으려는 걸까?
그건 아주 간단했다.
결국, 완성품을 만들어 냈으니까.
궁지에 몰린 끝에 그 효과는 좀 줄어들었지만 가디언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포션을 결국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부작용이 거의 없는 각성자 전용 버프포션을.
물론 이런 이유만으로 기다린 건 아니었다.
마약이라는 약품을 제조하는 회사를 그것도 인류의 방패라 불리는 각성자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드는 악독한 기업이라고 대중들이 손가락질하는 이곳을 진작에 인수했다면 지금쯤 그 손가락이 나를 혹은 유명그룹을 향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기다려야만 했다.
작업 중인 곳에서 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포션의 제조 방법뿐이다.
그 회사. 청하 제약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망하기 직전 그 제조법을 빼돌리고 그 제조법을 아는 자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자신들이 모든 걸 차지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작용을 없앨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이 어쩌면 자신들에게 독이 될지도 모르는 그 엄청난 위험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마약을 선택할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면 말이지.
거기다 화가 난건 대중들만이 아니었다.
그 포션을 복용하고 정신이 망가져 버린 가디언들의 길드가 화가 났다는 게 맞겠지.
아니. 그런 척하고 있는 거다.
대중들의 편에 서기 위해.
그 전에 이들을 옹호했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여튼 그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들어간 상태였는데.
내 생각으로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되었다.
처음에는 욕을 좀 먹겠지만 손해배상을 제대로 하고 그 포션으로 인해 피해를 본 가디언들을 물심양면 도와주겠다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그 포션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가?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이것으로 내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어 버릴지도 몰랐으니까.
아니 내 이미지뿐 아니라 유명의 이미지 역시 좋아질 거다.
물론 처음엔 엄청난 손해를 입겠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이득이었다.
이미지 상승으로 인해 주가는 금방 원상복구 될 거고 그룹의 위상과 함께 매출 역시 급상승할 테니까.
거기다 후에 약이 완성되면?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생각처럼 흘러갈까?
아마 믿지 않는 자들도 있을 거고. 내가 그 회사를 인수했다는 핑계로 나를 끝없이 물어뜯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내 생각대로 흘러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버지를 좀 만나봐야겠네···”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막막했지만 일단 부딪혀 봐야겠다.
*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온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일단 부딪혀 봐야겠다고 무작정 찾아온 것이 실수였다.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저기 아버지···”
“그래. 말해 보아라.”
“저를 얼마나 믿으세요?”
“머리가 시키는 말을 해줄까? 아니면 가슴이 시키는 말을 해줄까?”
내 물음에 아버지는 뜬금없이 머리와 가슴 이야기를 꺼냈는데.
“둘 다 해주세요.”
“내 머리는 너를 믿지 말라고 하고 가슴은 너를 믿어보라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떻냐?”
나는 고민하는 척을 한 후 듣는 순간 이거다! 라고 선택한 대답을 내놨다.
“가슴을 믿어보시는 게 어떠세요?”
“허허허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응? 뭐지? 아버지의 기분이 왜 이렇게 좋아 보이시는 거지?
“그냥 제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결정해 주세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길래 이러누?”
나는 아버지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무표정하시던 아버지는 내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표정이 많이 변하셨는데.
그 표정은 분명히 놀람이었다.
“이걸 네가 생각했다는 말이냐?”
“네. 왜요? 이상해요?”
“좀 그렇구나.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씀하세요.”
“도대체 그것이 너에게 필요한 이유가 뭐냐?”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결국 약이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의문은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었다.
“제 아이들. 그러니까 제 소환수들에게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거든요.”
“뭐라고?”
그렇다.
내가 소환한 뚱이와 고 시리즈 그리고 앞으로 내 균열에서 나올 몬스터들은 그것을 복용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그저 버프만 될 뿐이었다.
물론 그 효과가 좀 줄어들지만.
이건 전생의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몬스터.
이미 이성이란 것이 희미한 몬스터들에게는 그 약의 부작용이 인간보단 덜 하다는 것이 그때의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또한, 내 몬스터들은 나라는 절대 명령자가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좀 이상해져도 아무런 문제도 될 게 없었다.
“그 아이들이 제 말에 따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애초에 이성이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런 애들이 그런 거 좀 먹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구나. 그런데 말이다. 혹시 선우야 예상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겠지?”
“당연하죠. 이미 복용시켜 봤어요.”
“뭐라고?!”
갑작스럽게 화를 내시는 아버지.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그런 실험을 한 걸 아버지가 모른다는 건 아무도 몰래 했다는 말이니까.
그런 실험을 몰래 그것도 혼자서 했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전생에 했던 거지만.
일단 이건 넘어가고.
“죄송해요. 그런데 좀 궁금했거든요.”
“그런 일은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 했어야지. 잘못했다가 큰 사고라도 나면 어쩔 뻔했느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거기다 뚱이에게는 복용시키지 않고 고블린들에게만 차례차례 복용을 시켰을 뿐이라 안전한 상태였어요.”
“뚱이라면 그 오크 말이냐?”
“네.”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는지 조용히 계시다가 말을 이었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서 그것을 얻을 필요가 있느냐?”
아무래도 아버지는 손해배상의 비용과 여론의 움직임이 조금 걸리시는 모양이었다.
아마 적어도 수백억의 비용이 들어갈 거다. 아니 수천억이 될지도 몰랐다.
그 수가 적다고 해도 손해배상의 대상은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였으니까.
“저도 이미지를 좀 바꿔보고 싶어서요.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바뀌지 않을까요?”
바뀌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었으니까.
“이대로 조용히만 있어도 사라질 텐데?”
“기다려야 하잖아요. 요즘 생각이 좀 변해서 그런가?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말들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아버지는 이제야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시는 모양인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래 생각해 보자꾸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런데 좀 빨리 결정을 내려 주셨으면 해요.”
아직 허락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분명 허락하실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항상 사고만 치던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는 기쁘실 거다.
그런 아들을 위해 수천억 정도 쓰는 건 아버지에겐 별것 아닌 일일 테고.
*
“내가 원하는 건 청하 제약 그 자체입니다. 운영에 참여할 생각도 없고 자리를 빼앗을 생각도 없습니다. 포션에 대한 특허와 그 연구팀만 확보한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소리입니다.”
“네.”
나는 아버지가 붙여 준 M&A 전문가인 그룹의 컨설팅팀 앞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말했다.
아버지는 생각을 좀 해보신다고 하셨지만.
이미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서재에서 나가자마자 곧바로 김 실장에게 지시해 그룹의 컨설팅 팀을 불러들였고 곧바로 나에게 붙여 주셨다.
이미 그쪽과 진행될 M&A에 대한 준비를 순식간에 끝내버리신 아버지는 나에게 직접 그들과 협상을 진행하라 말씀하셨다.
물론 직접 협상을 하란 소리가 내가 주도적으로 이 팀을 이끌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주도적으로 협상을 진행한단 말인가?
그냥 그 자리에 참석해 보고 배우라는 소리겠지.
“출발할까요?”
“네!”
조용히 대답하는 컨설팀장은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스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팀장뿐 아니라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킬러 집단의 수장과 정예 요원들이 떠오를 정도로 그들의 분위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룹 최고의 컨설팅팀을 불러들이셨다길래 한 열 명은 될 줄 알았는데 그 수는 고작해야 넷이었다.
근데 이 사람들 정말 컨설팅팀 맞아?
그들을 보는 내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인수합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청하제약 사장 김수한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선우입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자들이 있었는데 사장과 협상을 진행할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근데 영광이라니? 내가 아버지도 아니고 인사가 좀 과한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의 눈에는 내가 구세주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모시겠습니다.”
“네.”
그는 곧바로 협상이 진행될 커다란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회의실에 도착한 나와 컨설팅팀은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려야 했다.
협상에 참여할 모든 인원이 모였지만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않은 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사장 때문이었다.
마치 나를 찬양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에 대한 거짓 칭찬을 늘어놓는 그를 보며 어이가 없어진 나는 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으며 그 이야기를 경청하는 그의 모습에 황당함이 몰려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아버지의 최측근인 자들 대부분이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이 하늘을 뚫을 정도란 말은 들었지만, 내 칭찬도 기분 좋게 들을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는 오히려 기분만 상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어이없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 연구소장 소연구입니다.”
“푸흡- 흠!흠! 죄송합니다.”
그의 인사에 내 뒤에서 대기하던 지안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는데.
근데 왜 웃은 거지?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해도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이런 걸 좋아하나?
하얀 가운을 입은 그는 누가 봐도 연구원이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간 청하제약 사장이 귓속말로 작게 말하는 게 보였는데 다 들렸다.
“이 사람아 왜 이렇게 늦었어? 그리고 옷차림은 이게 뭐야! 좀 차려입고 오라고 했잖아!”
“아니 연구원이 연구복 입고 있으면 차려입은 거지. 뭘 더 바래?”
소연구의 말을 들은 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어서 말했다.
“알았으니까. 준비한 거나 좀 잘 해줘.”
“걱정마.”
둘은 마치 친한 친구 사이처럼 보였는데.
이어서 소연구는 내가 청하제약을 원하는 직접적인 이유인 포션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쪽의 마음을 확실히 잡기 위해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이런 걸 준비하지 않아도 내가 청하제약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그들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내 고개는 끄덕여졌고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쪽과 관련된 용어를 남발했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무슨 말인지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내가 원하던 내용이 나왔다.
“그래서 지금은 그 효과를 낮추더라도 안정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진행은 어느 정도 됐죠?”
내 질문에 그는 눈을 빛내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러 방면으로 실험을 해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솔직한 답변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아무런 성과도 없다는 말이잖아?
상대 쪽 여기저기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내가 상대 쪽이었어도 똑같을 거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없어도 있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분명 완성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자신하는 이유는요?”
“처음부터 성능을 너무 높게 잡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난 거지 애초에 성능이 아닌 버프에만 집중했다면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은 좀 더 걸렸을지 몰라도 부작용이 거의 없는 포션이 탄생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버프에만 집중하겠다? 성능은 그 후고?”
“네. 정확합니다.”
“그럼 그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뭐가 다른 거죠?”
“다릅니다. 이미 개발한 결과물도 있고 또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전보다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사장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사장은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만 들었지 그 내용까지는 확인하지 않은 듯했다.
지금 대화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약간의 거짓이 들어간다 해도 성과가 있었다는 식으로 발표를 했을 테니까.
“그럼 협상을 진행해 볼까요?”
나는 사장을 비롯해 상대 협상단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질문과 그 답변이 협상에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내 일도 아니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후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는 몇 시간째 자리에 앉아 그들의 협상을 지루한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들과의 조율이 쉽게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우리 쪽에서 제시한 금액과 조건이 그들의 마음에 차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쪽은 손해배상 금액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만큼 큰 금액을 제시할 수 없었고 그쪽은 책임을 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들은 분명 제품을 복용했을 시 나타날 증세와 부작용을 정확히 표시했고 그 이후의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경고성 문구를 포션에 분명히 적어 두었기 때문에 왜 그 금액을 우리가 배상하겠다는 건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로서는 그게 최선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배상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저희는 그 위험성을 분명하게 표시해 두었습니다. 그걸 확인하고도 복용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말입니다.”
“도의적인 책임입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배상하겠다는 것은 지금 떠들고 있는 저들의 말을 인정하겠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서로의 생각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대화야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 외에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대화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다행히 지안은 경영학과 출신이란 게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나에게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게 그거였다.
설명을 해줘도 이런 일에 있어서 무지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냥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정도?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저희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쪽이 이렇게 만든 것 아닙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괜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만든 거란 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다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기업사냥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상대측 대표자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팀장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악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어차피 망할 회사 아닙니까? 끝에 가서 숟가락 하나 얻는 방법도 있습니다.”
“뭐라고?!”
벌떡 일어난 그는 컨설팀장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는데.
“앉아! 지금 누구 앞에서 그딴 태도를 보이는 거지?”
순간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컨설팀장의 눈빛과 목소리는 마치 최상위 포식자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어떤 분이 계신지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순간 상대측 사람들의 고개가 나를 향했는데 모두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컨설팀장의 말은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나란 존재를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신경 쓰지 말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기세를 타기 시작한 우리 측 협상단에게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무표정을 유지하고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우리 좀 솔직해지는 게 어떻습니까?”
“무슨 말이죠?”
“채권이 돌아오고 있다는 걸 여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그, 그건···”
“어차피 이대로 가다가는 회생이고 뭐고 그대로 끝이라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주들을 비롯한 투자자들과 협상을 진행하면 그만입니다.”
아무 말도 못하는 상대측 협상단은 고개를 떨구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지금 그 투자자들과 주주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놈들이 있었다.
채권을 사들이고 주식을 조작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쪽도 시간이 없었다.
“자 여기서 아주 괜찮은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안이요?”
“네. 들어보시겠습니까?”
침을 꿀꺽 삼키는 사장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는 합병 후에 인사권과 운영에 대해서 어떤 권리도 행사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아주 약간의 참견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들 아시죠?”
“그,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겁니까?”
그러네? 왜 이제야 저 말을 꺼내는 거지?
이 점만큼은 팀장에게 반드시 어필하라고 했었는데 왜 지금껏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일까?
괜히 관여했다가 포션의 완성이 늦춰질 수도 있었고 이쪽의 참견에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제작방법을 빼돌릴 수도 있었기에 그에 대한 감시를 제외하면 별 상관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버프 포션의 생산과 판매는 포션이 완성되기 전까지 중지할 거다.
공식적으로만.
다른 아무 문제 없는 약품과 포션은 그대로 판매를 하겠지만 버프 포션은 판매 중지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참 특이한 게 언론이 그렇게 때리고 있음에도 버프포션은 아직도 판매가 진행 중이었다.
아니 없어서 못 팔고 있다는 게 맞으리라.
더는 생산이 되지 않고 있었지만, 재고들에 한해서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하려는 자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협상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밝아진 듯 상대의 표정에 살짝살짝 보이던 어둠이 사라졌다.
아마 자신들의 자리를 보존해 준다는 말 때문인 듯했는데.
진작 말을 했으면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팀장도 생각이 있었기에 지금에서야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다.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연기였을 수도 있었다.
앞으로도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그들이겠지만 그들을 보조해야 하는 컨설팅 팀의 입장으로는 고삐를 걸어둘 필요가 있을 테니까.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일단 기술에 대한 모든 정보와 연구는 유명 쪽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네. 당연합니다. 저희보다야 유명이 훨씬 안전할 테니까요.”
“그리고 생산시설도 모두 유명 쪽으로 이전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네요.”
“마지막으로 인수 후 감사가 이루어질 겁니다.”
팀장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인수 전에 발생했던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도가 지나치다 생각되는 자들은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럼 어떤 감사를?”
“혹여 있을지도 모를 기업 스파이에 대한 감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분명히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 없을 수가 없다.
뒤에서 이 사태를 조작한 자들뿐 아니라 다른 기업, 길드, 심지어 정부에서조차 스파이를 심어 놓았을지 몰랐다.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팀장의 말에 상대측의 얼굴에 안심이 나타나는 게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인수 후에는 비리를 저지르고 싶어도 저지를 수 없을 테니까.
유명의 감시망을 피해 비리를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은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 마냥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물론 세세하게 파고들면 조율할 게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건 그들의 일이었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