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내가 청하제약을 인수했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유명그룹 막내 유선우가 청하제약을 인수했다는 기사였다.
수많은 기사 중 단 하나.
하지만 하나였던 기사는 점차 수를 불리기 시작했고 그 내용 역시 점차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유선우 그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대한민국의 자랑! 알고 보니 악의 축?
등등 악의적인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지금껏 내가 벌였던 망나니짓과 이번 청하제약의 인수건을 다루며 정말 악질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몸집을 불려가기 시작한 기사들은 점차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나는 흉악한 범죄자일 뿐 아니라 빌런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말 그대로 악의 축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청하제약의 뒤에서 지금의 사태를 조장했을 뿐 아니라 블랙마켓 7인의 관리자 중 하나로 나를 지목할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다.
사실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막 나가고 있었는데.
추측성 기사는 명예훼손의 죄를 물을 수 있음에도 거침이 없는 걸 보니 분명 뒤에 누군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청하제약에 작업을 걸었던 세력일 수도 있었고.
최강준일수도 있었다.
아니면 둘 다던가?
다만 대형 언론사의 경우 나에 대한 악질 기사를 쏟아내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다른 곳들은 M&A에 대한 기사만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모두 유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 언론사 꼭대기부터 일반 기자까지 수십 년간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지 않은 자들이 없을뿐더러 지금껏 그들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 바로 유명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특이한 것은 한곳.
이곳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을 텐데 이러는 것을 보면 분명 누군가에게 매수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좀 심한데?
나를 욕하는 건 예상했지만, 형과 아버지의 기사도 간간이 보이는 걸 보니 저쪽에서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총력전을 펼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론 역시도 유명에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뿐이리라.
이제 곧 이쪽에서도 대응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TV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자 속보로 유명그룹 해명 기자회견이란 문구가 뜨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곧 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련님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지금 언론이 심상치 않아요. 이러다 도련님 구속되시는 거 아니에요?”
현지는 지금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껏 올라온 기사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했다.
“너 설마 저 기사들을 믿고 있는 거야?”
“다른 건 모르겠는데 하나는 어쩌면? 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
“어쩌면? 뭐가?”
“그게··· 저번에 블랙마켓 들리셨잖아요.”
“그게 왜?”
“저 그때 봤어요. 칠악 중 한 명한테 무언가를 건네는걸요.”
서창렬에게 입장료 건네는 걸 보고 내가 블랙마켓 관계자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어이가 없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필 서창렬이 나와 있었던 것도 그렇고 입장료지만 무언가 건넨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잠깐? 그걸 볼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고?
“너 그 안에 들어왔었어?”
“당연하죠.”
현지를 보는 내 눈에 혼란이 가득 찼다.
도대체 현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칠악이라 함은 블랙마켓의 관리자 4명과 국내에서 활동하는 빌런들의 정점에 올라있는 셋을 의미한다.
그 중 서창렬은 최정상에 올라있는 자였다.
길드나 정부가 블랙마켓을 건드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어마무시한 놈이었는데.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벌써 그 정도라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너 도대체 수준이 어느 정도인 거야?”
“네? 뭐가요?”
“서창렬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면 적어도 그와 비슷한 수준은 된다는 건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 그 사람 저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지. 어느 정도 눈치는 챘을걸요?”
“조용하던데?”
“에이~ 도련님도 참! 그건 당연한 거죠. 제 수준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먼저 움직이겠어요? 은신을 사용한 상태인데?”
“무슨 소리야?”
“아마 제가 움직임을 보일 때까지 기다렸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공격할 생각 자체도 없고 도련님을 따라 들어갈 자신도 없어서 그냥 빠져버린 거고요.”
현지의 말을 듣고 나자 이해가 되었다.
다만 현지의 수준이 벌써 그 서창렬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정도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칠악! 그들은 후에 칠성으로 불리는데 현지 역시 그중 한 명이 된다.
살성이 바로 현지였으니까.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칠악이 칠성이 된 계기였다.
황당하게도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칠악이 칠성이 되어버린 거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일본에게 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어비스가 열린 후 국내의 S급 각성자의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를 가지고 일본이 비웃자 국민들은 칠악을 칠성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정식 S급 각성자로 만들어 버렸다.
국가기관에선 인정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자기들 맘대로.
그리곤 말했다.
우리가 더 많다! 우리가 더 뛰어나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도련님 시작해요.”
현지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TV 속에 김 실장이 나타났는데.
응? 저 아저씨가 왜 저기 있어?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명그룹을 대표해 인사드리겠습니다. 비서실장 김건우입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김 실장을 보며 내가 모르던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김 실장이 비서실장이었어?
나는 김 실장이 매일 집에만 있어서 원래는 집사인데 명칭을 실장으로 부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비서실장이라니?
“비서실장이셨구나? 집사님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김 실장이라고 부르라고 하셨던 거였구나.”
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쩐지 모르는 게 없더라니.
“우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한 번 고개를 숙이는 김 실장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닫고 집중했다.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저런 자리에 저런 차림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그의 외모가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중년의 멋이 저런 건가?
“우선 저희 유명그룹이 청하제약을 인수하면서 그 어떤 불법행위도 없었음을 먼저 표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또한 청하제약의 뒤에 유선우 상무님이 있었다는 말 역시 허위사실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김 실장은 이어서 내가 청하제약을 인수한 이유로 버프 포션의 가능성 그리고 포션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디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뜻을 밝혔다.
“어째서 유명그룹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가디언들에게 배상을 해주시는 겁니까?”
기자들이 질문하자 김 실장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네?”
“그들은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나라를 더 나아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영웅들에게 그 정도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네. 그저 보호받는 입장에서 보호하는 자에게 도리를 다하는 것뿐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자선 사업이란 말씀입니까? 그럼 청하제약을 인수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분명 포션의 가능성 역시 발견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치열한 공방이 오가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어떻게든 유명을 깎아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김 실장은 반대로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쇼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기자회견 전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질문과 답변을 모두 정해 놓았다는 말이었다.
지금 이들이 하는 것은 모두 연기였다.
그렇다고 대중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저곳에서 말하는 모든 말들은 대부분 사실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지금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계신 분들은 각오하십시오. 저희 유명은 절대로 그분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 용서를 바라지 마세요. 없는 사실을 만들어냄으로써 국민들을 선동하고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당신들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악의적인 기사를 써왔던 언론사를 악으로 규정하며 기자회견은 끝을 맺었는데.
이로 인한 파장이 장난이 아니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사실이다. 아니다.’를 놓고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언론사들은 전문가를 섭외해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명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미 유명의 자금이 움직이며 법정까지 갈 필요도 없이 배상을 시작했고 유명 계열의 요양원과 병원들이 피해를 본 가디언들에게 무료로 개방을 시작하면서 점차 대중들이 유명의 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상황이 바뀌자 급해진 것은 지금껏 유명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던 언론사들이었다.
유명이 명예훼손소송에 들어간다는 말이 퍼지자 그들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수습하려 정정 보도를 하고 사죄문을 발표했지만, 그냥 넘어갈 아버지가 아니었다.
뻔했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기사들로 인해 유명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손해배상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의 언론사 대부분은 망해버릴 테니까.
이미 유명의 주식은 원상복귀 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높은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의 손해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미지 추락으로 인한 매출급감과 불매운동, 거기다 대규모 리콜사태까지.
악의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온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어야 했다.
물론 그 정도로 유명이 타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명의 주 수입원은 수출이었고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전체 매출의 5%도 되지 않았기에 유명 입장에서는 별 타격이 되지 않았지만, 손해배상청구가 들어갈 언론사들의 입장은 달랐다. 5% 매출 중 단 1% 정도만 되어도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으니까.
유명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움직일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유명의 무대는 국내가 아닌 전 세계.
정부가 유명의 눈치를 보는 진짜 이유는.
대한민국 전체를 유명이 먹여 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까 좀 이상하네.
전생에 유명이 무너졌을 때 어째서 나라가 망하지 않은 거지?
물론 나라가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뿐 이었다.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 같은데?
*
“찾았다고?”
성철과 통화 중이었는데 내가 부탁한 수아라는 아이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서울 쪽 보육원 중에 7세 여아에 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희망보육원에 있는 이 아이 하나뿐입니다.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벌써 찾다니?
성철이 생각보다 쓸모가 있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아이의 엄마가 출산 중 양수 색전증이란 것 때문에 사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양수 색전증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낳다가 애 엄마가 사망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 역시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네? 그것뿐인데요?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네?”
-혹시 몰라 경기도 쪽도 찾아봤는데 비슷한 조건의 아이가 둘 있었지만, 아이의 부모가 버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부모 역시 둘 중 하나는 생존해있고요.
“그래? 그럼 일단 애 사진 가지고 한번 들려”
-네. 일단 사진은 먼저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구나? 사진을 폰으로 전송하면 되는구나?
아차 한 나는 성철에게 사진만 전송하고 들릴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보고 받을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래. 그리고 슬라임 결정 수입 건에 대한 진행 상황도 자세히 들을 거니까. 준비해와.”
-네? 네. 곧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아! 밥 먹지 말고 와라.”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현지를 불러 성철이 도착하면 식사 준비를 해 달라고 말하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슴이 떨렸기 때문이다.
이제 곧 만나게 될 그 아이를 떠올리니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거리며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왜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