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펜릴의 알을 보는 내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베여 있었다.
알의 색이 약간이지만 옅어졌기 때문이다.
색이 모두 사라져 티 하나 없이 하얘지면 알이 부화한다는 걸 아는 내 표정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전과는 좀 다른 기대감이었지만.
전에는 오롯이 펜릴이 내 것이 된다는 기대를 품었다면 지금은 수아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컸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멋진 선물을 줄 수 있고 그 덕분에 수아가 좋아할 걸 생각하니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어렸다.
이 넓은 집에는 수아의 또래가 없었으니까.
모두가 수아에게 잘 대해 주었지만, 또래가 없다는 건 ‘좀 외롭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는 더더욱.
어린이집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곧 있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시기상으로 그건 불가능했다.
물론 가끔 보육원의 아이들을 초대해 수아의 곁에 붙여주긴 했지만, 어느 날 한 아이가 수아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내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도 수아네 아빠처럼 대단할 거야!”
밝게 웃으며 소리치는 아이.
다른 아이들 모두가 수아를 부러워하며 자신들도 이런 멋진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하면 안 될 짓이었다.
지금이야 어려서 이런 생각을 하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 자신들과 수아의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아이들은 절망에 빠져 버릴 거다.
아무리 기다려도 찾지 않는 부모님.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절망감.
결국, 수아와 아이들 간의 관계가 깨져버릴 거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나와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라고 부를 수 없는 이상한 관계가 되어 버렸었다.
나를 이용하기도 했고 나에게 아부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 정도면 다행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부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그들은 나를 뒤에서 험담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며 나를 괴롭혔다.
내가 망가진 이유가 그들 때문이라고 단정 짓진 못하지만, 그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그랬기에 오롯이 수아만을 위한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내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펜릴의 알이었다.
말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누구보다 수아를 아껴주고 수아가 좋아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빠!”
사색에 잠겨있던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수아가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뛰어와 내 품에 쏙 안겨왔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나에게 안긴 수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이쿠 우리 수아 깨끗이 씻었어요?”
“네!”
깜찍한 수아의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
수아는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흘리며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수아의 눈동자는 정말 티 하나 없이 맑았는데.
너, 너무 귀여워.
“수아야! 할애비 왔다.”
문이 또 한 번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할아버지!”
수아는 순식간에 내 품을 빠져나가 이번에는 아버지의 품에 속 안겨들었다.
수아에게 약간이지만 서운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던 수아였고 아버지나 형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던 모습을 보였었기에 지금의 모습은 안심이 된다.
모두 아버지와 형의 노력 덕분이었다.
다만 아주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수아가 나보다 아버지와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 저 미소···
아버지의 저 미소는 정말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항상 근엄하고 위압적인 표정만 짓고 있던 아버지는 수아가 온 뒤로 항상 인자한 미소를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었는데.
문제는 나였다.
지금껏 살면서 아버지의 저런 미소를 본 적이 거의 없던 나였기에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색한 느낌을 숨기지 못했으니까.
“응? 그런데 수아가 왜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었을까?”
“몰라요. 언니가 이 옷 줘써요!”
“어이쿠 그랬어요.”
“네! 히히.”
활짝 웃는 수아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아버지가 나를 보며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셨다.
“외출하려고요.”
“뭐라? 지금 뭐라고 했느냐?”
“수아 데리고 외출할 거라고요.”
“이놈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수아를 데리고 밖에 나간다고?”
“네.”
아버지는 뭔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듯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나와 수아를 번갈아 보다, 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나도 금방 준비하마. 아, 아니다. 그냥 이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구나. 그래 어딜 가려고 하는 거냐?”
아버지가 뭔가 횡설수설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지. 금방 돌아올 거에요. 그냥 집에서 기다리시죠. 날도 추운데.”
“싫다 이놈아. 내가 왜!”
소리를 빽 지르는 아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 수아가 학교라도 다니게 되면 어떻게 참으실 건지 걱정이 앞섰다.
물론 나 혼자 다녀와도 상관없긴 했지만, 지금껏 집 밖을 벗어나지 않은 수아였기에 같이 가기로 정했다.
마침 수아 경호팀도 새로 왔고 하니.
“처리하실 일 많으시잖아요.”
“그거와 이건 상관없는 일이다.”
“그럼 대신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앞으로 며칠간 제가 수아를 데리고 아버지 서재로 출근하는 건 어떠세요?”
“저, 정말이냐?”
사실 아버지가 매일 별채의 내 방으로 출근하다시피 오는 건 문제가 많았다.
보고를 받는 것이나 회사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서재가 편하실 테니까.
거기다 요즘 아버지가 일에서 손을 거의 놔버리는 바람에 형이 매우 곤란해진 모양이었다.
“일주일!”
“네? 그건 너무 길지 않아요?”
“그 정도는 돼야 내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네··· 그렇게 할게요.”
오늘 다녀와야 할 곳에 대해 아버지와 상의할 것도 있고 부탁할 것도 있기 때문에 일주일이란 시간이라면 나쁘지 않다 생각되었다.
좀 귀찮긴 하지만 말이다.
“수아야 재미있게 놀다 와야 한다.”
“네! 할아버지 빠이빠이~”
“허허허”
아버지는 수아가 웃는 것만 봐도 기쁜 모양이었다.
*
“동물원이네?”
“와아~ 동물원이다~”
수아의 기뻐하는 모습과 다르게 나는 좀 황당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작은 동물원이었는데···
망한 건지 망해가는 건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 동물원에 내가 온 이유는 이곳이 앞으로 1년만 지나면 아주 중요한 곳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약 1년 후에 이곳 어딘가에 어비스 게이트가 열린다.
제한구역에 하나 여기에 하나 총 두 개의 게이트가 국내에 나타난다.
정 재계뿐 아니라 특히 길드에 있어 정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 부를 수 있는 게이트.
앞으로 게이트가 열릴 곳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가능하다면 이곳을 매입해 오롯이 유명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건데 그곳이 바로 이 동물원이었다.
정확한 주소도 몰랐고 게이트가 열린 후 많이 변하기도 했기 때문에 한참을 헤매긴 했지만 분명 이곳이 틀림없었다.
“수아야 우리 동물원 구경할까?”
“네! 수아 동물 조아해여!”
나는 수아와 현지 그리고 수아의 경호팀을 데리고 동물원에 들어갔다.
좀 매니악한 옷을 입고 있는 현지와 경호팀까지 포함한 우리 일행의 모습은 많은 시선을 끌기 충분했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태연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호원들도 여자, 현지도 여자, 수아도 여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분히 이상한 모습일 거다.
그중에 내가 가장 이상하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현태 팀도 데리고 올걸···
“와~ 아빠 저것 봐 호랑이에여! 호랑이!”
“그래 호랑이구나. 어흥!”
“꺄하하~”
동물들을 구경하며 신이 난 수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게이트는 돈과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시발점이었다.
무력만을 가지던 길드가 재물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바로 게이트였다.
게이트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몬스터와 아티펙트라 불리는 보물.
거기다 게이트 안에 존재하는 마석 광산.
힘을 가진 자들을 지금껏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금의 지원 덕분이었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힘과 돈 둘 모두를 손에 쥐게 되어버리면서 영향력이 점차 커져 나간다.
그 결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에게 무릎을 꿇게 되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재벌들 역시 잠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그들에게 먹혀버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강준이 유명을 먹어치워 버렸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드들의 혁명은 최강준을 주축으로 움직였으니까.
나는 그런 최강준에게 조금의 가능성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내가 그를 밟기 쉬울 테니까.
그렇기에 이곳을 찾아온 거다.
이곳을 선점한 후 게이트의 존재를 유명의 이름으로 먹어치워 버리기 위해.
사실 수아가 내 딸이란 걸 알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국내 각성자의 힘이 타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져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게이트는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어비스가 열린 후부터 각성자의 힘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함부로 게이트를 차단해 버리면 후에 발생할 재앙들을 막아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지만, 그딴 건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길드를 부숴버리고 유명으로 흡수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물론 잘 될지는 미지수지만.
거기다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갑작스럽게 열리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의 수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거의 수천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순식간에 쏟아냈고 뿐만 아니라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악마종이라는 처음 보는 마수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나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머? 아가씨 저기 보세요. 돼지예요. 어떤 돼지와는 다르게 정말 귀엽게 생겼네요.”
현지가 나 들으라는 듯이 돼지를 가리키며 말하는 모습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러네? 뚱이와는 정말 다른데? 근데 누굴 좀 닮은 것 같지 않아?”
“누굴 닮았는데요?”
“저 돼지가 먹는 모습이 내가 아는 어떤 메이드랑 꼭 닮은 것 같아서 말이야.”
“히히~”
“이익-”
수아의 웃음소리와 현지의 이 악무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수아와 웃고 떠들며 동물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와 정말 많이 변했지만, 게이트가 열렸을 초창기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거기다 큰 동물원은 아니었지만, 수아가 좋아할 만한 동물들도 많았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부터 돼지, 캥거루, 미어캣, 오리, 닭, 나무늘보 등등 수많은 동물이 있었는데.
그중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바로 늑대가 있는 곳이었다.
새끼 늑대를 발견한 나는 수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수아야 저 새끼늑대 귀엽지?”
“응! 귀여워! 이리와~”
수아가 오란다고 올 새끼늑대가 아니지만, 수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펜릴 역시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펜릴은 기본적으로 마수였기에 수아가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구석에 남아있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저기 보이는 새끼늑대도 귀여웠지만 펜릴에 비할 바는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물들을 구경하며 때론 먹이도 줘보고 쓰다듬어 보기도 하며 이동하던 내 눈앞에 커다란 유리온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동물원이었지만 식물원도 겸하고 있었다.
대충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게이트가 열릴 곳은 바로 저 유리온실 안이 틀림없었다.
“수아야 저기도 가 볼까?”
“네!”
유리온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포근한 온기였다.
“아빠~ 저기 봐 바나나야 바나나!”
바나나가 열린 나무를 보며 뛰어가는 수아를 보던 나는 슬며시 눈을 감고 이곳의 마나를 느껴보았다.
집중에 집중을 더하며 마나를 느끼던 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대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에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의 작은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찾았다.
바로 이곳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장소가.
외출
“도련님 왜 그러세요?”
“아니야 아무것도.”
“설마 마나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에 그러세요?”
응? 어떻게 알았지?
“너도 느꼈어?”
“네.”
“어떻게 생각해?”
“좀 특이하긴 한데 신경 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아닌가? 좀 어두운 느낌이 드는 거 같기도 하고?”
역시 마나 친화력이 깡패인 현지였다.
사실을 아는 나조차도 겨우 잡아낸 걸 아무렇지 않게 파악하고 있었다.
“도련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주변 마나 좀 느껴봐요.”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현지가 경호 팀장인 미연 씨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잠시 눈을 감고는 마나를 확인하던 그녀는 한참이 지난 후에 눈을 뜨곤 팀원들에게 급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를 모셔!”
“네!”
대답과 동시에 순식간에 이동해 수아를 둘러싼 그녀들은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란 떨 거 없어요. 별일 없을 테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해주며 진원지를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도련님. 아가씨께서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지님이 계시니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겠지만 아가씨께 못 볼 꼴을 보여드릴 수가 있습니다. 자리를 피하시길 권해 드리겠습니다.”
나를 재촉하는 경호 팀장의 모습에 아버지가 경호팀을 정말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문제가 생길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나도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상황을 설명할 생각도 없었고.
단지 위치를 확정하고 싶을 뿐이었다.
대충 이쯤인가?
천천히 눈을 뜬 나는 이제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는데.
표정이 살짝 굳어있는 수아가 보였다.
수아가 경호원들의 모습에 겁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입가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수아에게 다가간 나는 재빨리 입을 열어 수아를 안심시키려 했다.
“수아야 배고프지? 이제 그만 갈까?”
“응!”
수아는 내 목소리를 듣고서 안심이 되는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수아를 번쩍 들어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히히~”
“이제 수아가 좋아하는 햄버거 먹으러 갈까?”
수아가 가끔 어디선가 작은 햄버거를 가져와 맛있게 먹던 것이 생각났다.
“수아는 쉐프 아저씨가 해주는 햄버거가 좋아요!”
누가 준 건지 몰라 의아해했었는데. 주방장이었던 모양이다.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를 일하시는 분들에게 잔뜩 받아오던 수아였기에 햄버거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수아를 위해 밖에서 사 왔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럼 집으로 가야 하는데?”
“응! 수아는 집이 좋아요!”
“그럼 집으로 갈까?”
“네!”
나는 고개를 돌려 어비스의 게이트가 열릴 장소를 한번 보고는 온실을 벗어났다.
*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수아와 함께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고 곧바로 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아버지. 저 동물원 하나만 인수해 주세요.”
“응? 동물원은 뭐에 쓰게?”
수아를 품에 안고 계신 아버지는 내 말에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셨다.
몬스터가 출현하는 시대에 동물원은 별 구경거리가 아니었으니까.
매일 흉악한 몬스터가 TV를 장식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던 동물들에게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렇구나? 우리 수아가 동물원이 갖고 싶구나?”
“응! 수아 동물 좋아해요!”
“그럼 동물원을 인수할 필요가 무에 있겠느냐. 그냥 집에 동물원을 지어주마. 수아가 매일 볼 수 있게.”
수아를 보며 말하는 아버지를 보자 그 말이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 그게 아니라 제가 좀 필요해서 그래요.”
“네가 필요하다고?”
“네.”
“네가 동물원이 왜 필요한 것이냐? 설마 니가 소환한 몬스터들로 동물원을 꾸미기라도 하려고?”
어?
아버지의 말에 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그거 좋은 방법인데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 거라. 잘못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인수한 후에 리모델링을 핑계로 개장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제 소환수들도 점점 늘어날 텐데 계속 집에만 둘 수도 없고요.”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되시는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앞으로 내 소환수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거다.
지금은 수가 적어 상관없지만, 이제 조금만 더 마력이 쌓이면 내 소환수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다.
그놈들을 모두 집에 모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 소환수가 모예요?”
“응?”
그러고 보니 수아는 뚱이와 고블린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네?
안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수아에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건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들이지~”
나는 수아에게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괴물을 연기했다.
“나두 보고 싶어요!”
“보, 보고 싶다고?”
활짝 웃으며 괴물을 보고 싶다는 수아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괴물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수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이유였는데.
오히려 수아의 궁금증을 증폭시킨 모양이었다.
“보여주면 안 돼요?”
고개를 갸웃하며 귀엽게 말하는 수아의 모습은 너무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수아가 좀 더 크면 보여줄게요.”
“정말?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수아와 약속을 하던 그때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그거 좋은 생각 같구나.”
“네?”
“동물원을 인수해 그곳에 네 소환수들을 몰아넣으면 한동안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사라지겠구나.”
“허락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럼 이참에 그 주변 땅들도 매입해서 길드도 그쪽으로 옮기는 게 어떠세요?”
“길드를?”
후에 어비스가 열리면 어차피 각성자들은 모두 그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균열의 수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애초에 균열이 연결되는 곳이 어비스이기 때문이다.
얻는 것이 다르다.
균열은 한정되어 있지만 어비스는 한정되어 있지 않으니까.
무한하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어비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다양하고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어비스에 존재하던 문명의 흔적.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법이었다.
각성자가 존재하는 지금 시대에도 마법은 상상속에만 존재하고 있었는데.
어비스가 열리고 수많은 서적들이 발굴된다.
서적들을 해독하던 사람들은 그중 극소구의 서적이 마법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마법의 시대가 열린다.
물론 마법은 엄청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각성자들이 마법에 도전하는데 그중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마법사의 탄생이었다.
그들 덕분에 잠시 주춤했던 문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다.
마법과 과학의 결합을 통해.
또한 아티펙트라 불리는 것들 역시도 발굴되는데.
지금은 마력 전도가 뛰어난 무기가 대세지만 이때부터는 아티펙트라 불리는 마법이 각인되 무기가 대세가 된다.
각성자들에게 신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거지만.
“그건 안 되겠구나.”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아버지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네? 왜요?”
“지금 길드가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 아느냐?”
“중요한 곳인가요?”
“당연하지. 담당구역인데.”
“아!”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각 길드가 위치한 장소는 길드에게 배정된 균열을 처리하는 담당구역이란 걸 잊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구역 같은 것은 아무런 필요도 없어진다.
모든 길드가 어비스로 향하기 때문인데.
아! 그럼 되겠구나.
“아버지. 그럼 기숙사를 그곳으로 옮기는 게 어떠세요? 훈련시설이나 편의시설도 좀 제대로 만들고요.”
유명에 속해있는 길드원들은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지낸다.
아니 대부분의 가디언은 자신의 길드 기숙사에서 살아간다.
이유는 정말 별게 없는데.
바로 마나의 농도 때문이었다.
기숙사에는 마석을 사용해 마나의 농도를 높이는 시술을 해놨기에 대부분의 길드원은 기숙사 생활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특히 이제 성장하는 자들과 벽에 막혀 있는 자들은 기숙사를 절대 포기할 수 없으리라.
개인용으로 설치하기에는 그 가격이 엄청났기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이곳에도 설치가 되어있다.
본채와 별채 거기다 훈련장과 경호원들의 숙소에까지.
“기숙사를?”
“기숙사가 오래돼서 불만이 좀 있다던데요? 저번에 명철 아저씨가 그러던데?”
“그렇긴 하다만 길드와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겠느냐?”
아버지는 내 의견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유 역시도 생각해 뒀다.
“그렇긴 한데. 혹시 들킬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그곳에 길드 소속의 가디언들이 상주하게 되면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가디언들의 터전은 시찰이 불가능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법이 그랬다.
정부가 함부로 감찰을 하지 못하는 유일한 곳이 바로 길드였으니까.
길드의 감찰은 협회만이 가능하지만, 이미 협회는 유명무실해진지 오래였다.
그러니 감찰을 한다고 해도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었고.
“생각을 좀 해볼 문제 같구나.”
“부탁드려요.”
고개를 끄덕이신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을 지우시곤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수아 앞에서 해버렸구나.”
“수아는 괜찮아요. 그런데 소환수가 뭐예요?”
수아는 소환수란 말이 궁금한 모양인지 아버지에게 물어봤는데.
“수아가 불러오는 작은 아이들 있지?”
“아빠가 정령이라고 했던 거요?”
“그래. 그게 소환수란다.”
“그럼 아빠도 수아랑 똑같은 거야?”
“그럼. 누구 아빤데 당연하지.”
내 말에 해맑게 웃던 수아는 나에게 향하던 눈을 아버지에게 돌리곤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럼 할아버지도 수아랑 똑같은 거 할 수 있어요?”
“그, 그럼~ 당연하지.”
“정말요?”
“그런데 이 할애비는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럼 삼촌은요?”
“그, 그게···”
수아의 물음에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
서울 외곽에 있던 동물원을 인수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리모델링이란 핑계로 동물원의 공사와 주변 땅을 대량으로 매입해 길드의 기숙사를 건설 중이었다.
완전히 싹 밀어버리고 동물원과 길드의 기숙사를 짓고 있었지만, 그것과 관련된 기사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유명에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벌 때처럼 몰려들던 기자들조차 잠잠했다.
내 생각이지만 동물원과 그 주변 땅이 유명에서 매입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포로로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했을 때조차 언론이 연신 떠들어 댔던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손을 써둔 게 분명했다.
드르르륵-
탁자 위에 놓인 스마트 폰의 진동에 마나 호흡법을 중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전화가 올 만한 사람이 성철 뿐이었기에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자 역시나 성철이었다.
딱히 연락할 만한 일이 없을 텐데?
그가 나에게 연락할 일이라고는 슬라임 결정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것 빼고는 없었다.
바로 어제 연락이 와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들었기에 의아함이 들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탁자로 다가가 멀뚱멀뚱 전화를 보던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클릭했다.
방 안에는 나밖에 없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련님 저 성철입니다.
“무슨 일이야?”
-저, 그게···
성철의 망설이는 말투에 의아함이 들었다.
심각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성철을 재촉했다.
“그게 뭐? 빨리 말 안 해?”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어? 어?
순간 성철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폰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유선우 씨?
그 목소리는 절대 성철일 수가 없었다.
“누구시죠?”
-혹시 서창렬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칠악의 그 서창렬?”
-네. 그게 접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서창렬이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