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
“아버지? 이게 다 뭐에요?”
수아와 쇼핑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수행 비서들이 들고 오는 물건과 그 뒤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트럭? 들의 향연에 당황함을 넘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응? 뭐가 말이냐?”
“저 물건들 다 뭐냐고요?”
“별거 아니다. 그냥 수아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몇 개 가져와 봤다.”
“몇 개라고요?”
전혀 아니었다.
마치 백화점에 있는 아동복 전부를 털어온 모양새였는데 제일 황당한 건 아동복이 아닌 성인 브랜드의 쇼핑백이 아주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보석류도 상당한 것 같았는데.
“그럼 이건요?”
누가 봐도 수아 나이 또래가 입을 만한 옷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10년 단위는 지나야 수아가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옷이었다.
“아 그건 수아가 커서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다. 왜 마음에 안 드느냐?”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런 건 수아가 성인이 돼서 사도 되는 것들이잖아요. 거기다 수아가 그 나이가 되면 이미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다고요.”
“그런가?”
별것 아닌 투로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자 황당함이 몰려왔다.
아니 허탈하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나에게 항상 낭비를 하지 말라시던 아버지 본인이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낭비를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선우야 일은 잘 마무리되었느냐?”
갑자기 화제를 돌리시는 아버지를 보자 아버지도 자신이 좀 지나쳤다는 걸 알고 계신 모양이었다.
“네. 잘 해결됐어요.”
“그래 잘 됐구나.”
은근슬쩍 본채로 드시려는 아버지를 보니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
내가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근데 수아는요?”
“못 봤어? 너에게 자랑한다고 별채로 뛰어갔는데?”
“아. 그래요?”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별채에서 본채로 가는 길이 한두 군데는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저걸 다 어쩌지?
수아의 드래스룸은 이미 꽉 찬 상태였는데 저 물건들을 별채에 두려면 방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설마 부족하겠어?
불안감이 살짝 들었는데.
도대체 몇 대야?
정원으로 통과해 주차되고 있는 커다란 트럭의 수가 벌써 5대를 넘어서고 있었기에 내 불안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본채로 드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수아를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나는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어차피 수아가 못 입는 옷이나 물건들은 수아를 이뻐해 주시는 도우미 분들에게 드리면 되지 않나? 설 선물로 드리면 괜찮겠지?
갑자기 떠오른 거지만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현지.
외출할 때조차 메이드복을 고집하는 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옷이 그거밖에 없냐고.
그때 현지의 대답에 옷을 사줘야 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네. 외출복은 이것밖에 없는데요.”
당당하게 말하는 현지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현지는 그 도둑년 복장과 트레이닝복 몇 벌 그리고 여벌의 메이드복을 제외하고는 딱히 옷이 없다고 대답했었다.
그럼 연말 파티에 참여할 때 입은 옷은 뭐냐고 물었더니.
김 실장이 준비해준 옷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근데 현지한테 맞는 옷이 있으려나?
현지는 은근 글레머러스 했기에 아버지가 사 온 옷들 중에 맞는 옷이 있을지 모르겠다.
안 맞으면 그냥 현지를 데리고 쇼핑을 한번 하든가 해야겠어.
“아빠!”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고 있던 그때 수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멀리서 나를 보며 손을 흔드는 수아의 모습이 보였다.
경호원들과 함께.
“천천히 와. 다쳐!”
멀리서 날 발견하고 뛰기 시작하는 수아의 모습에 급히 소리친 나는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수아의 품에 쏙 안겨 있는 거였다.
은색 털을 가진 강아지.
저걸 자랑하려고 했던 건가?
“헤헤~”
가까이 다가온 수아는 강아지를 안고선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수아 너무 이쁜데? 할아버지가 좋은 거 많이 사주셨어?”
“응! 그런데 아빠. 나 얘 주서써요.”
은색 털을 가진 강아지를 내미는 수아를 보자 내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주웠다고? 강아지를?
아버지가 강아지를 선물한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수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에 새끼를 낳은 개가 있었나?
아니 개가 있긴 한가?
“주웠어? 어디서?”
“아빠 침대 위에서요.”
그건 주운 게 아닌 것 같은데?
“그, 그렇구나? 수아가 침대 위에 있던 강아지를 주웠구나?”
“응! 그런데 수아가 얘 키워도 되여? 친구하고 시퍼요!”
“그럼~”
수아자 주웠다고 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내 방에서 발견했다는 말에 깨달았다.
이 조그만 강아지처럼 생긴 생물이 바로 펜릴이라는 걸.
분명 내가 방에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화할 징조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내 손바닥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의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펜릴을 보던 나는 펜릴의 이마에 있는 털을 살짝 젖혀보았다.
털 사이로 보이는 금색의 점 같은 게 보였다.
이게 뿔이 되는 건가?
그나저나 귀엽긴 하네?
수아의 경호원들도 그 앙증맞은 모습에 슬쩍슬쩍 펜릴을 보는 게 보였다.
“이 아이 이름은 펜릴이란다. 아빠가 수아를 위해 준비한 친구야.”
“펜릴? 히히~”
수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을 가득 채우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놈은 자는 건가?
펜릴은 수아의 품에 안겨 세상 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엽네?”
귀여운 모습에 펜릴을 쓰다듬어 주었는데 갑자기 눈을 감고 있던 펜릴의 눈이 번쩍 떠졌다.
눈을 뜬 펜릴은 이어서 고개를 들더니 나와 눈을 맞추고는 수아의 품에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캉캉!”
마치 나에게 안아 달라는 것처럼.
“움직이지 마아~ 떨어진단 말이야.”
수아는 발버둥 치는 펜릴이 버거운지 달래보려 했지만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
땅으로 떨어지는 펜릴의 모습에 수아가 안타까운 음성을 내뱉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공중을 박차며 허공에서 뛰어오른 펜릴은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품에서 나를 보며 눈을 빛내는 펜릴에게 마력을 살짝 흘려보내 주자 기분이 좋은지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는 모습을 본 내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조용히 내 마력을 받아들이는 펜릴의 모습은 충분히 귀여웠지만, 그 깜찍한 모습보단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요즘 영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마력을 쌓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는데, 앞으로 요 녀석이 내 마력을 먹어치울 걸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아마 알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먹어치우겠지···
펜릴은 음식을 먹긴 하지만 그건 그냥 먹는 거고 성장을 위해서는 마력이 필요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도련님 위험합니다.”
들리는 소리에 펜릴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리자 수아를 보호하듯 둘러쌓고 있는 경호원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 전 상황이 떠올랐다.
펜릴이 허공을 박차는 순간 마력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펜릴의 앙증맞은 발에 어렸던 푸른 불꽃이 잠시 나타났었다.
그 모습을 본 경호원들은 당연히 이 작은 아이에게 경각심을 갖게 되었을 거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위험도 없으니까요.”
“도련님. 아무리 새끼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건 몬스터입니다.”
수아의 경호팀은 아직 나의 능력과 소환수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기에 그들의 지금 행동은 당연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펜릴의 방금 모습은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던 그녀들의 눈빛에는 차가운 살기가 어려있었다.
“나중에 설명해 드릴 테니까. 이쯤 하죠.”
“하지만!”
“그만! 분명히 말했습니다. 위험하지 않다고.”
“···네”
표정을 보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내 강경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경호원들이었다.
“아빠 릴이가 위험해여?”
“수아야 아빠가 뭐라고 했지?”
“수아 친구!”
“맞아. 수아 친구인데 위험하겠어?”
“아니!”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수아의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미소를 보였지만 머릿속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이걸 또 뭐라고 설명하지?
정말 요즘엔 변명만 늘어가는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이 개새끼가 네가 백화점에서 구매한 그 알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 개새끼가 뭐예요. 적어도 강아지라고 해주세요.”
“그래. 그런데 정말 위험하지 않은 거냐?”
“네. 제 소환수랑 같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신기하구나.”
“그냥 보는 순간 알겠더라고요. 아마 각성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거 참.”
아버지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어렸을 적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떼를 썼다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펜릴을 안고 있는 내 모습에 인상을 쓰고 계시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수아 곁에 두는 건 좀 위험하지 않겠느냐? 안전하다고 해도 몬스터가 아니냐?”
“수아를 지켜주면 지켜줬지 위험하게 만들 놈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 아비는 왠지 내키지 않는구나.”
아버지는 수아가 펜릴과 함께 있는 게 싫으신 모양이었다.
동물을 싫어하시는 아버지는 펜릴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하실 게 분명했고 수아는 펜릴과 떨어지지 않으려 할 테니까.
똑똑똑-
그러던 때에 다급해 보이는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김 실장이었다.
급히 들어온 김 실장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문제?”
“네. 주변에서 균열이 열린 모양입니다.”
“그게 문제가 될 게 있나? 가디언들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게 아닌가?”
“그것이··· 균열을 담당하는 길드 측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놓친 모양입니다.”
“설마 그 길드가 우리 유명은 아니겠지?”
“저희 길드는 아니고 천하 길드랍니다. 그런데 놓친 몬스터가 하필 와이번이라고 합니다.”
“와이번이라고? 하늘을 나는 그 몬스터?”
“네. 문제는 와이번이 향하는 방향이 이곳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하늘을 나는 몬스터에다 그것도 A급.
A급 정도 되면 처리하는 데 문제가 좀 있었다.
현대 병기로는 피해를 입히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현무급 미사일 정도는 돼야 타격을 가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곳이 도심이라는 것이었다.
실수로 미사일이 지상에서 폭발하게 되는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급히 자리를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할 것까지 있나?”
“전투기가 출격한 모양입니다. 혹여나 이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질 경우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잠깐?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진다고?
그러다 잘못해서 미사일이 집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이 미친 새끼들이?
정말 만약의 경우 놈들이 이걸 노린 거라면 지금 상황은 정말 위험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와이번을 이쪽으로 몰아넣고 실수인 척 미사일을 투하해 버리는 미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너무 나간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좀 해보자 이상한 걸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전생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것.
내가 바뀜으로 인해서 미래가 변하기 시작한 거다.
나를 이용하지 못하니 방법을 바꾼 거였다.
씨발!
“김 실장 지하벙커가 충격을 어디까지 버티지?”
“이론상으로는 핵폭탄이 떨어져도 견뎌낼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아버지 수아하고 먼저 벙커로 가시겠어요?”
“너는?”
“저는 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안된다. 너무 위험해. 너도 같이 가자꾸나.”
역시 아버지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신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사일 떨어지면 균열을 열어서 먹어 치워버리면 되니까.”
“뭐? 그게 가능하냐?”
불가능하다.
미사일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거짓말이라도 해서 아버지를 안심시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네. 당연하죠. 그러니까 먼저가 계세요.”
“믿으마.”
아버지는 김 실장에게 수아가 어디 있는지 묻고는 경호원들을 불러 서재를 벗어났다.
“김 실장 혹시 전투기 철수시킬 수 있어?”
“가능은 합니다만, 다른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뭔데?”
“전투기를 철수시켰다가 민간에 피해가 가게 되면 여론의 비난이 천하가 아닌 이쪽을 향하게 될 겁니다.”
“그럼 집에 근접했을 때 철수시키면 되겠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로서는 와이번을 잡을 방도가 없습니다만.”
김 실장이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왜 없어? 지안이 있잖아.”
“···가능할까요?”
“못 맞춰도 상관없어. 이목만 끌면 되니까.”
“준비해 놓겠습니다.”
“현지하고 현태 좀 불러줘.”
“네.”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생길 게 뭐람?
차라리 아버지와 수아가 쇼핑 중일 때 이랬으면 좀 좋아?
그랬으면 서창렬의 도움으로 쉽게 상황을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