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214)

천하 길드

“정말 올려도 되겠습니까?”

지안의 영상을 촬영한 태환이 물어왔다.

“올려요.”

“네.”

태환이 촬영한 지안의 영상을 뉴튜브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리려 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올리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나 멍한 표정을 짓는 현지의 모습이나 갑자기 출연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뚱이의 모습은 삭제했고 지안의 마지막을 장식할 영상을 새로 촬영해 편집한 영상을 올리는 것이었다.

“저기 그런데 이런 제목을 써도 괜찮을까요?”

“왜요?”

“엘프 출현이라니···”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좋죠. 안 그러면 묻혀버릴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괜찮을 거다.

전생의 지안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칭호 중 하나가 바로 엘프였으니까.

“올렸습니다.”

“영상에 대한 수익은 지안 씨와 상의해서 처리하세요.”

“저,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죠.”

영상의 수익은 대단히 괜찮게 나올 거라 생각한다.

단 한발의 화살로 와이번을 격추시키는 지안의 영상은 정말 멋졌으니까.

거기다 지안의 아름다운 외모까지 겹쳐지면 폭발적인 반응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아마 못해도 수억의 조회 수를 기록할 거라고 예상 중이었다.

물론 이쪽에서도 어느 정도 조작을 하겠지만.

“그건 그렇고 내가 말한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아. 지금 분석팀에서 열심히 분석 중입니다.”

나는 김 실장에게 전투기가 와이번을 이곳으로 몰아넣었다는 정황이나 증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서로를 이간질하기 위해서.

길드 연합과 천하 길드 마지막으로 정부.

지안의 영상을 촬영하고 뉴튜브에 올리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분명 놈들은 어떻게든 와이번과 관련된 이번 일을 숨기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영상을 올려 이슈를 만들 생각이다.

그럼 자연히 와이번이 왜 서울 상공에 나타났는지 대중들은 궁금해할 테고 이유가 밝혀지면 천하 길드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릴 거다.

그때 우리 쪽에서 나서서 정부가 와이번을 이쪽으로 몰아넣은 것에 대한 증거를 발표하며 불난 집에 기름을 투척할 거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겠지.

하지만 금방 활활 타오를 거다.

정부가 유명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적어도 국민 중 3분의 1은 들고 일어날 거다.

대중들이 유명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 만큼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유명이 화가 나면 그 화가 직접 미치는 곳이 바로 자신들. 그러니까 일반 서민이란 걸.

해외에서 벌어들여 국내에 푸는 유명의 자금을 조금만 막아도 서민들에겐 엄청난 타격이 된다.

이건 나도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아버지는 서민들을 지원하는 많은 일을 하고 계셨다.

작게는 결손 가정의 후원부터 서민을 위한 저금리의 대출이나 유명과 관련이 있는 자들에 대한 복지가 있고, 크게는 적자를 보더라도 싸게 개방하는 리조트나 놀이동산, 워터파크 등의 유희시설들이 있다.

그뿐 아니었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나 재해로 인해 피해를 본 자들을 후원하는 시스템까지 갖춰있을 정도였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금액을 국내에 푸는 유명은 사실상 정부가 해야 할 것들까지도 유명이 책임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대중들은 이상하게도 유명을 대한민국에 없어선 안 되는 중요한 기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유명을 그리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유명의 탓을 하며 선동하는 자들과 유명에 대해 거짓을 일삼는 자들 때문이었는데.

아버지는 그들이 해외의 어떤 세력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예를 들자면 일본 같은?

*

-엘프다. 진짜 엘프가 나타났다!

-이거 리얼임? CG 아니야?

-저분 누군지 아시는 분?

-뭐 하냐 네티즌 수사대! 당장 밝혀내라!

-나 이분 누군지 아는데 말해주기 싫어. 나만 알 거야.

└ 너부터 찾아낸다.

└ 같이 좀 알자!

-지렸다 진짜.

-우리 누나임 ㅋㅋ.

└ 내 여자친군데?

└ 소개 좀···

-유명길드 소속이라던데?

└ 정말이지? 나 오늘부터 그 앞에서 노숙한다. 파티구함!

└ 나도 껴줘!

뉴튜브에 올린 지안의 영상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 8천만 뷰를 달성한 상태였다.

영상에 나온 지안이 누군지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고 하루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미 팬클럽의 회원 수가 10만을 넘어설 정도로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해서 그런지 조회 수가 상승하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었고 댓글들 역시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영상 속 여성이 지안이라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얼마 전 지안은 마력 친화력 덕분에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긴 했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언론에서는 지안이 유명길드 소속의 가디언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하는 상태였다.

당연히 길드 앞은 난리가 난 상태였고.

나는 스마트 폰으로 지안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댓글이 지안을 찾는 글과 그녀를 찬양하는 글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궁금하겠지.

영상은 처음 지안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점차 클로즈업되면서 멀리서 날아오는 와이번의 모습을 비춘다.

잠시 후 그녀에게 시점이 돌아가고.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활에 맞는 화살을 시위에 거는 지안에게서 푸른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활과 화살에 마력이 스며들기 시작함과 동시에 상체를 들썩이기 시작하던 지안이 순간 모든 움직임을 정지하는데.

이때부터가 장관이었다.

순간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푸른 마력이 순식간에 화살로 빨려 들어가며 화살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그때 괴성과 함께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와이번의 모습이 영상 속에 다시 한번 출현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활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활과 와이번을 연결하는 거대한 푸른 선이 화면을 꽉 채우며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결과조차 확인하지 않고 등을 돌리는 그녀의 등 뒤로 와이번이 추락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온전히 드러나면서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쑥스러운 듯 옅게 미소짓는 지안은 엘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며 영상을 보던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심어주고 영상은 끝이 난다.

물론 약간의 CG와 편집의 힘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대로 내보냈어도 반응이 다르진 않았을 거다.

진짜 멋있긴 하네.

여자가 멋있긴 참 힘든데 그녀는 정말 멋있었다.

똑똑-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내가 방금 보던 영상 속의 주인공인 지안이었다.

“어? 엘프다!”

“그럼 너는 다크 엘프!”

“왜? 나는 피부가 검지 않다고!”

“대신 검은 복장을 하고 다니잖아.”

현지와 지안의 대화를 잠시 지켜보던 나는 둘의 유치한 대화를 빨리 끊어버리고 싶었다.

저놈의 입만 안 열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현지나 지안이나 그놈의 입이 문제였다.

“무슨 일이야?”

“아! 맞다. 상무님 저 이모 병원에 좀 다녀오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괜찮긴 한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곤란해질 수도 있어.”

“변장하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괜찮으려나? 근데 갑자기 왜? 어제도 다녀오지 않았어?”

“이모가 영상을 보셨나 봐요. 갑자기 찾으시네요.”

“알았어. 차 대기시켜 놓으라고 할 테니까 다녀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오히려 내가 고맙지. 영상 올릴 수 있게 허락해 줘서 고마워.”

인사를 꾸벅 한 지안은 준비를 좀 해야겠다며 방을 나섰다.

“현지야 김 실장한테 알바들 풀라고 해.”

“벌써요?”

“어차피 알바들 풀어도 노출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생각보다 지안의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

알바들은 이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지안의 영상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하기 시작할 거다.

갑자기 서울 상공에 나타난 와이번.

사람들은 이 와이번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궁금해할 테고, 그 궁금증이 극에 달했을 때 천하 길드가 와이번을 놓쳤다는 기사를 내면 게임은 끝난다.

거기다 지금 분석 중인 와이번을 몰았다는 정황에 대한 기사를 퍼트리면 대중들은 활활 타오를 거다.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는 바로 음모론이었으니까.

왜 정부는 유명의 본가에 와이번을 몰아넣었을까?

여기서 또 한 번 알바를 풀어 하나의 시나리오를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트리면.

정부는 결국 천하 길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

최강준과 연합한 6대 길드 연합에서 천하 길드를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도련님.”

“왜?”

“그들은 왜 이런 실패할 게 뻔한 계획을 세웠을까요?”

“실패할 줄 몰랐을걸?”

“어째서요? 그쪽도 지안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서요.”

현지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지안이가 훈련을 받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됐냐?”

“3개월 조금 안 될걸요?”

“그들은 그걸 놓치고 있었던 거야.”

“그거라뇨?”

“지안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쪽에 뛰어든 게 겨우 3개월이야. 그들도 조사했을 테니 이건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그들이 과연 지안이 각성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마나 호흡법을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까? 활에 대한 재능은?”

나조차도 지안의 재능을 과소평가할 정도였는데 그들은 오죽할까?

솔직히 강기는 너무하지 않아?

물론 단 한발의 화살을 쏘고 탈진을 할 정도였지만···

“아! 지안이의 마력 수준을 당연히 낮게 잡고 있었겠네요.”

바로 그거다.

그들은 지안이 유명길드에서 마나 친화력 검사를 진행했을 때 이쪽 업계로 뛰어든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지안을 신인 중에서 대단한 정도라고만 생각했겠지.

거기다 지안의 등급 테스트 결과는 곧바로 폐기해 버렸으니 더더욱 알 턱이 없었을 테고.

“그래. 어떤 각성자가 가디언이 될 생각도 없는데 마나 호흡법을 꾸준히 하겠냐?”

“할 수도 있죠!”

“너는 일반인들의 사회를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가디언이나 헌터가 아닌 각성자는 일반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고.”

“왜요?”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일반인에게 위화감을 심어주거든.”

“정말요? 왜 난 몰랐지?”

“넌 특성 자체가 특이하잖아.”

그래서 가디언이 되길 포기한 각성자들 대부분이 그쪽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이 담긴 시선을 견디지 못해서.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다.

현지처럼 능력이 특이한 자들이나 마력의 운용이 뛰어난 사람들은 마력의 방출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데.

아마 지안이 후자의 경우일 거다.

*

일주일이었다.

10대 길드로 중 하나인 천하 길드가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것은 아니고 자신들의 담당 구역을 대부분 빼앗겨 버린 것이었지만.

천하 길드를 믿을 수 없다는 대중들의 외침에 결국 정부는 천하 길드의 밥줄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길드 연합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싸주었지만, 점차 이쪽에서 풀기 시작하는 정보와 알바들의 활약 덕분에 정부조차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거세지자 지금에 와서는 천하 길드를 감싸주기는커녕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는 데 급급해 졌고.

결국, 천하 길드는 자신들의 모든 것을 빼앗겨야만 했다.

“반갑습니다. 유선웁니다.”

눈앞의 상대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지만, 눈앞의 사내 그러니까 천하 길드의 주인인 이창현은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크흠- 좀 무안하네요.”

“무슨 일이지?”

나를 보며 말하는 이창현은 마치 상처 입은 맹수가 으르렁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별거 아닙니다. 제안을 하나 하려고 만나 뵙자 청했습니다.”

“제안이라고! 지금 그게 당신 입에서 나올 소리라고 생각하나? 내 길드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말은 바로 하시죠. 내가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무덤을 판 거겠죠.”

“이익!”

이창현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어떻게 할까요? 저 그냥 돌아갈까요?”

내 초대에 응했다는 것은 적어도 내 제안 정도는 들어보겠다는 뜻이라 생각했는데?

“흥! 내가 이곳에 나온 이유가 뭔지 아나?”

“내 제안을 들어보고 싶어서 나온 거 아닌가요?”

“아니. 복수라는 걸 좀 해보고 싶더군.”

“나한테요? 왜요?”

“내가 평생을 일군 길드를 망가트린 장본인이 감히 나에게 그 이유를 물어?”

나를 위협하며 말하는 그를 태연하게 바라보던 나는 앞에 있는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보세요. 당신이 마력을 움직이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뭐라고? 내가 누군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10대 길드 말석에 겨우 들어가던 길드의 주인.

S급이라는 등급을 가지고 있지만, 어비스가 열리고 각성자의 등급이 새로 개편되는 순간 A급으로 곤두박질 치는 비운의 길드장.

부길드장에게 배신당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도 알고 있다.

“혹시 등 뒤가 서늘하거나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천하 길드

“뭐, 뭐라고?”

“당신 등 뒤에 날카로운 비수를 하나 숨겨두었는데 느껴지는 게 정말 없어요?”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감히 그따위 장난이 나한테 통···”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던 창현은 순간 목에 닿는 차가운 날붙이의 감촉에 얼어붙어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장난이요? 내가 이런 자리에서 장난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요?”

그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낸 현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목에 차가운 단도를 들이대고 있었다.

현지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자 단검을 치우며 한 발짝 물러나며 모습을 감춰버리는 현지였다.

“이, 이게 무슨?”

창현은 정말 놀란 듯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내 제안을 들어볼 생각이 좀 들어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지 창현은 놀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눈을 감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마 현지를 찾으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의 수준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현지를 찾지 못할 게 뻔했다.

그래도 좀 기다려 줘 볼까?

“내,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암살자가 국내에 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이 정도 암살자는 그밖에 없을 텐데?”

“혹시 어쌔신 마스터를 말하는 건가요?”

“설마? 어쌔신 마스터가 유명의···”

“그럴 리가요.”

창현이 말하는 자는 중동 쪽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암살자 집단의 수장으로 세계 최고의 암살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당연히 현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아니라고? 그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지?”

나를 추궁하듯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내 메이드요.”

“무, 뭐? 메이드?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정말인데? 현지야! 나와서 소개 좀 하고 들어갈래?”

“네!”

“헉!”

순간 창현의 바로 옆에 모습을 드러낸 현지를 보고 경악을 하던 그를 보며 현지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메이드인 이현지라고 해요.”

“바, 반갑소. 천하 길드의 이창현이요.”

“저도 반가워요. 그럼 이만.”

“아!”

다시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지를 본 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난기 어린 미소로 대답하는 현지와 최대한 격식을 차리려는 창현의 모습은 좀 재밌었다.

매일 현지가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메이드라고 소개할 때마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는데, 내가 직접 소개를 해보니 현지가 왜 자기를 그렇게 소개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상대의 반응이 재밌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제안을 좀 들어볼래요?”

“드, 들어봅시다.”

전과 달리 나에게 반 존대를 하는 그를 보며 역시 현지의 존재를 알린 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 때문에 현지의 존재를 드러낸 건 아니었다.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내 제안을 거부할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될 수 있다는 압박을 심어 준 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제안을 수락했을 때도 마찬가지.

현지의 존재는 그에게 배신이라는 선택지를 없애버릴 테니까.

한 마디로 그는 지금 독 안에 든 쥐의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유명의 2군으로 들어오세요.”

“2군? 지금 우리 천하 보고 유명의 2군 길드가 되란 말을 하는 것이오?”

“네. 마음에 안 드세요?”

“당연하지 않소. 지금은 비록 상황이 좋지 않지만, 아직 10대 길드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소. 무력 역시 그대로고!”

“하지만 곧 사라지겠죠. 벌써 길드원들이 다른 길드들과 접촉하기 시작한 모양이던데요?”

“크흠-”

“그리고 말이 2군이지 실제로는 유명길드와 큰 차이가 없을 거예요. 그저 대중들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뿐이죠.”

“정말이오?”

“네. 물론 크기는 좀 줄어들겠지만.”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원하는 건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예요. 무력은 두 번째 문제죠.”

당연히 연합에서 아니 최강준이 심어놓은 간자가 있을 거다.

특히 그 부 길드장이란 놈.

그의 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이번에 빼앗긴 담당구역도 천천히 돌려 드릴 예정이고.”

“어떻게 말이요?”

그는 내 말에 눈을 빛냈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드는지 방법을 물어왔다.

“이번에 정부가 천하에서 회수한 구역을 우리 유명이 먹을 거거든요.”

“어떻게 확신하죠? 다른 길드들 역시 입찰을 할 텐데?”

“이쪽이 가진 카드가 아직 하나 남아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협상을 해 봐야죠.”

“카드라면 정부가 와이번을 몰았다는 거 말이오?”

“네. 그거라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그는 고민이 되는지 생각에 잠겼다.

“내 생각으로는 힘들 것 같소만?”

“어째서죠?”

“무시하면 그만이잖소. 어차피 이 일도 금방 잠잠해질 테니.”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이쪽에서 계속 그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그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다 이쪽 손을 들어줄 관계자들도 적지 않고요.”

정부는 결국 포기할 거다.

이번 사태로 이쪽으로 돌아선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자들과 새로 이쪽으로 돌아선 자들을 합치면 반은 될 테니까.

거기다 계속 이 일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남은 자들 역시 버텨내지 못할 거다.

구설수에 오르면 오를수록 표가 감소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었으니까.

손을 잡았다고 해도 최강준의 길드와는 애초에 걷는 길이 다른 자들이었다.

“그럼 방식은 어떻게 할 거요? 분명 말들이 나올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유명에서 모두 먹고 하청 형식으로 천하에 전해주면 되니까요.”

대형길드들이 하는 방식이었다.

일정한 급이 되는 균열은 자신들이 담당하지만, 그 이하는 중소길드에 하청을 주는 방식.

“처음에는 급이 낮은 균열을 담당하겠지만, 소문이 잠잠해지면 점차 급을 높이는 방법을 취할 겁니다.”

“그래서는 이쪽의 수익이 너무 낮아 불만을 가지는 자들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2군으로 들어오라고 한 겁니다. 유명의 유니폼을 입으면 되니까.”

유명의 유니폼을 입으면 대중들은 그들이 유명길드 소속이라고 생각할 거다.

천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천하 길드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다만 과연 그들이 다시 천하라는 이름에 속하길 원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아! 알겠소. 내 유명의 품으로 들어가리다.”

“생각 잘하셨어요.”

그와 나는 악수를 하며 미소를 나눴다.

서로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는 방향이었으니까.

“아! 그 부길드장은 쳐내세요. 그 사람 연합 사람이니까요.”

“뭐라고요?! 그, 그 새끼가!”

창현은 내 말에 화가 잔뜩 났는지 이를 꽉 무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그도 부길드장을 의심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내 말에 화를 내는 거겠지.

천하보다 연합의 편에 서는 그의 태도가 이상했겠지.

알아보니 이번에 담당구역을 포기한 것도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장한 모양이었고.

*

천하가 유명의 품에 들어오고부터는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천하의 담당구역 입찰도 생각보다 쉽게 손에 들어왔고, 천하 길드의 부길드장도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두말없이 길드를 나갔으니까.

거기다 어비스게이트가 열릴 곳에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어느 정도 틀이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였다.

균열을 열어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

내가 목표로 했던 마력량을 달성했기에 이제는 본격적으로 균열을 열어놓은 채 생활할 생각이었다.

거기다 펜릴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고.

펜릴에게 마력을 주입할 생각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저번 와이번 사태 때 펜릴이 내 마력이 아닌 마석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와이번을 산산조각낸 뚱이가 당당하게 포효를 내지르던 그때 어디선가 캉캉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은색의 무언가가 펄쩍펄쩍 뛰며 빠른 속도로 뚱이에게 돌진했는데 바로 펜릴이었다.

뚱이의 주변에 도착한 펜릴은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았는데 바로 와이번이 남긴 커다란 마석이었다.

마석을 발견한 펜릴은 펄쩍 뛰어 마석의 앞에 착지하고는 황당하게도 그 단단한 마석을 그대로 씹어먹기 시작했다.

작은 입으로 마석을 깨물며 조금씩 씹어먹는 모습을 본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펜릴은 아주 맛있는지 캉캉거리며 계속해서 마석을 씹어먹을 뿐이었다.

“맛있냐?”

“캉캉!”

내 말에 대답하듯 캉캉거리는 펜릴은 지금 마석을 맛있게 씹어먹는 중이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수아는 펜릴이 마석을 오도독 씹어먹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마석을 입에 넣은 적이 있을 정도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물론 내가 급히 말려 수아가 마석을 깨무는 일은 없었지만.

또 얼마나 많이 먹는지 벌써 작은아버지 카드로 구매한 마석의 반이 펜릴의 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와! 진짜 돈 먹는 기계네 기계야!”

물론 내가 그것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펜릴은 그 작은 입으로 쉬지 않고 마석을 깨물어 먹었다.

수십 개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해치우고 내 침대로 훌쩍 뛰어 올라가서는 자리를 잡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빨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내가 다가가 펜릴을 쓰다듬어주며 마력을 흘려보내면 그제야 잠에 빠져든다.

일어나면 또 마석을 먹고.

먹고 자는 게 하루 일상인 녀석이었다.

그러면서도 성장은 전혀 하지 않아 그 크기가 처음과 차이가 없었다.

2주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통 짐승들은 금방 크던데? 얘는 왜 그대로지?

한참 펜릴을 보고 있던 그때 문이 열리며 수아가 들어왔다.

“아빠 이거 봐! 내가 우리 릴이 밥 구해왔어!”

“어이구! 잘했어요!”

수아에게 장난감을 선물하지 못하게 했더니 마석을 선물하기 시작하는 경호원들이었다.

펜릴의 먹이가 마석이란 걸 안 그들은 수아가 마석에 대해 궁금해하자 때는 이때다. 하고 마석을 잔뜩 구매해서 하나씩 선물하며 버프를 받아가곤 했다.

물론 모두 최하급 마석이지만.

“릴이야 이거 먹어봐.”

“캉캉!”

수아가 펜릴에게 가져온 마석을 주자 펜릴은 먹던 걸 중지하고 수아가 주는 마석을 작은 앞발을 이용해 하나씩 곁으로 끌어다 놓은 후 먹던 마석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릴이야 맛있어?”

“으르르-”

수아가 자기가 준 마석을 건드리려 하자 으르렁거리는 펜릴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도대체 욕심이 얼마나 많은 거야?

“아빠! 릴이는 언제까지 밥 먹고 잠만 자?”

“그, 그게···”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펜릴을 보고 있으면 오크인 뚱이보다 더 돼지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것 빼고는 아무것도 안 한다.

“아직 애기라 그래. 조금만 더 크면 릴이랑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야.”

“정말?”

“그럼~”

“그럼 수아는 릴이가 클 때까지 열심히 마나 호흡법을 해야겠다.”

왜 갑자기 마나 호흡법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나 호흡법을?”

“응! 그래야 수아가 릴이의 밥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수아의 말에 마나 호흡법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경호원들이 자기에게 마석을 주는 이유가 버프를 받기 위해서라는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 그래. 우리 수아 참 장하네···”

그렇다고 말리지는 않았다.

마력은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병에도 잘 걸리지 않을뿐더러 힘도 세지고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거기다 날씨의 영향도 줄어들고 정신을 맑게 유지 시켜주기 때문에 머리 회전도 빨라진다.

물론 적어도 B급 정도의 마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수아라면 금방 그 수준에 올라가겠지.

*

“자! 시작해 볼까?”

제한구역에 도착한 나는 현지와 고블린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고블린들의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고블린들의 능력이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오늘 그 능력을 정확히 테스트해 보려고 제한구역에 직접 오게 되었다.

“도련님 꼭 이걸 차고 다녀야 하나요?”

“당연하지. 그게 없으면 내가 고블린들의 능력을 어떻게 확인해?”

현지의 몸 여기저기에 촬영용 카메라들이 부착되어 있었고 고블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접 싸우지 않는 현지에게는 총 5개의 카메라가 현지의 전 후방 모두를 촬영할 수 있도록 부착되어 있었고 고블린들은 머리에만 하나씩 부착해 두었다.

“너무 불편한데···”

“어쩔 수 없어.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그러니까.”

“키엑-”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들은 괜찮다는 의사 표현을 전해왔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 고맙다.”

“키엑-”

내 말이라도 알아듣는 게 어디야?

“저기··· 상무님 저는 뭘 하죠?”

지안은 긴장한 듯 표정을 잔뜩 굳히고 있었다.

“너는 오늘 뚱이 파트너로 실전연습을 할 거야.”

“뚱이면 저 오크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안이 가리키는 곳에는 뚱이가 잔뜩 흥분해서는 빨리 사냥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며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래. 현태가 같이 따라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으으~”

지안은 뭔가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서는 뚱이와 함께 있는 현태에게 다가갔다.

“너는 알지?”

“네.”

현지는 자칭 부하들을 데리고 알아서 사냥을 진행할 거다.

나는 이곳에서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그들의 수준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출발해.”

“네.”

현지는 일렬로 정렬하고 있는 고블린들에게 몸을 틀었다.

“너희들 똑바로 해! 알았어?”

“키엑!”

하나의 홉과 넷의 고블린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에 고블린들에게 현지가 어떤 존재로 보이는지 예상이 되었다.

아마 고블린들에게 현지는 일개 병사가 장군을 앞에 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가자!”

현지가 말과 함께 모습을 감추자 고블린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순간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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