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214)

제한구역

“현태야! 그쪽도 출발해!”

“네!”

“가자! 뚱이야!”

“쿠왁!”

수아가 집에 온 뒤로는 직접 뚱이를 데리고 사냥을 온 적이 없었기에 그 역할을 지금껏 현태가 수행해 왔었다.

뚱이는 내 명령 덕분인지 현태의 말에 반항하지 않고 잘 따르는 모습을 보였는데.

사실 내 명령보다는 현태가 뚱이에게 매일 밥을 가져다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고 있었다.

“지안 씨 가죠!”

“네? 네!”

뚱이가 뛰쳐나가자 현태가 지안과 함께 그 뒤를 바짝 따라서 달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던 나는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자리에 앉아 화면을 보며 기다렸다.

현태 팀과 현지 팀이 몬스터를 마주칠 때까지.

현지에게 부착한 카메라를 통해 영상을 보던 나는 살짝 감탄이 나왔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휙휙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은 현태에게 부착해놓은 카메라의 영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저희도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이곳 역시 제한구역의 안입니다.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

나를 경호하는 인력조차 모조리 빼서 수거팀에 합류시켰기에 그들이 나를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소 제한구역을 오던 것에 맞춰 팀을 구성했기에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뚱이의 흔적만을 지우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현지가 이끄는 고블린들쪽도 정리를 해야 했기에 평소 인원으로는 힘겨울지도 몰랐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이 대기하던 인원들까지 모조리 수거팀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창이나 한 자루 놓고 가.”

“한 명이라도 도련님을 경호하는 게···”

“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아.”

사실이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면 아마 이들의 팀장인 현태보다 강할 거다.

어비스를 경험한 내가 약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전성기 시절의 내 등급은 A급이었다.

어비스가 열리고도 수년을 버텨낸 노련한 사냥꾼.

그게 바로 나였다.

지금으로 치면 S급 중위권에서 최하위권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뚱이가 있었기에 얻을 수 있는 등급이었지만 그 당시에 받았던 등급 테스트에서는 뚱이를 비롯한 내 소환수들을 거의 배제하고 측정을 했기에 확실한 A급은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내 측정 기록은.

마력 S급.

무력 B급.

특성 S급이었는데 소환수 그러니까 특성을 거의 배제했기에 A급이란 평가가 나왔다.

만약 소환수들을 배제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S급을 받았을 거란 게 내 생각이었다.

간간이 의뢰를 받았을 때 나에게 지급하던 금액이 S급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만 봐도 내가 약하지 않다는 건 당연했다.

물론 이들은 모르겠지만.

거기다 지금의 나에겐 최상급 유물인 인피니티 링도 있었다.

아직 그때의 마력을 되찾진 못했어도 링에 저장해둔 마력이 있기에 전성기 시절의 힘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경호팀은 내 말을 믿지 않는지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나는 몸속에 잠들어 있던 마력을 깨워야 했다.

우웅-

마력의 방출.

벌 떼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며 내 몸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오자 경호팀의 얼굴이 굳어졌다.

생각도 못 했을 거다.

내 수준이 이 정도라고는.

“가봐!”

“네!”

이제야 납득이 되는지 대답을 한 후 곧바로 두 갈래로 나뉘어 사라지는 경호팀을 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화면을 응시했다.

그러길 잠시!

“아! 창 한 자루 놓고 가라니까!”

한숨이 나왔다.

주변에는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B급 이상의 몬스터가 나올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나온다면 맨손으로 때려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밖에 안 나왔다.

뭐 상관없나?

오우거 정도는 맨손으로도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다만 몬스터의 몸에 닿는 감촉이 싫을 뿐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뭔가가 좀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던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지는 이상한 장면.

갑자기 목에 구멍이 나고 피를 뿜으며 쓰러지거나 걸어가던 도중에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거나 하는 그런 기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어디서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와! 근데 이것들은 동족의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따버리네?

그렇다. 지금 화면 속에서 죽어가는 몬스터는 바로 고블린이었다.

-현지야! 작은 것들 말고 큰 애들 좀 잡아봐.

한쪽에 놓여있던 무전기를 들고 말하자 현지는 깜짝 놀랐는지 화면이 살짝 흔들렸다.

-네. 그럼 좀 깊이 들어갈게요.

-그래.

이후로 현지는 소형 몬스터는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갔다.

잠깐? 이러면 뒤를 쫓는 수거팀이 힘들지 않을까?

다시 무전기를 든 나는 수거팀을 불렀다.

-현지 쪽 수거팀?

-네.

-철수해. 현지 쪽에서 소형 종은 무시하기로 해서 따라가기 힘들 거야.

-괜찮습니다. 알아서 처리하면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들 역시 B급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형 몬스터 정도야 어렵지 않게 처리가 가능할 테니까.

어디 보자 뚱이는 잘하고 있나?

현태 역시 카메라를 몸에 장착하고 있었기에 그쪽의 영상 역시 이쪽에서 볼 수 있었다.

화면을 한참 응시하던 나는 현지 쪽 영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단순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보이는 몬스터를 족족 몸통박치기로 날려버리는 뚱이의 영상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는 오우거조차 그냥 몸통박치기로 끝내 버릴 정도였기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었다.

예전과 다른 거라곤 뚱이가 들이박기 전에 가끔 화살이 먼저 몬스터를 꿰뚫어 버리는 것 정도일까?

생각보다 뚱이의 성장 속도가 빨랐다.

-도련님?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현지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울렸다.

-왜?

고개를 돌려 현지의 화면을 본 나는 의문이 들었다.

화면은 그저 풍경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아요.

-그게 왜? 깊이 들어가기로 했잖아.

-그게··· 히드라가 있네요.

-뭐? 히드라?

히드라란 말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머리가 9개 달린 거대한 뱀.

설마 내가 아는 그 히드라를 말하는 건가?

-머리 9개 달린 뱀 말하는 거야?

-네.

히드라라면 명실상부한 S급 몬스터다.

그중에서도 정확히 따지면 S급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녀석.

그 히드라가 제한구역에 있었다고?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히드라는 현지나 고블린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당장 나와.

-그게 안 되겠는데요.

현지의 목소리에는 살짝 당혹이 섞여 있었다.

-애들이 들켜서 도망 중이거든요.

-뭐? 어쩌다가?

-그게 늪에서 커다란 뱀 대가리가 나오길래 한 대 때렸는데 알고 보니까 그 뱀 대가리가 히드라의 머리 중 하나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다.

히드라랑 자이언트 스네이크가 구별이 안 되나?

-니가 나서서 이목을 좀 끌고 빠질 순 없어?

-그럼 아마 제2의 몬스터 웨이브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데요? 제 은신 위치를 대강 눈치채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엄청 빠르기도 하고요.

뱀 계열의 몬스터는 이게 문제였다.

시각으로 적을 파악하는 게 아니었기에 은신을 사용하는 암살자 계열은 상대하기가 힘들다는 것.

거기다 현지 말대로 이동속도가 엄청 빠르기도 하고.

-그럼 시간 끌면서 기다려 뚱이하고 지안이 보낼 테니까.

-넵!

나도 가야 하나? 가야겠지?

-다들 들었지? 현지 위치 파악되면 곧장 그쪽으로 향해!

-네!

무기가 어딘가에 있을 건데?

나는 세워져 있는 트럭들을 뒤지며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예비용으로 준비해둔 무기들을 발견한 나는 그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창을 손에 쥐고 곧장 현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으아- 씨발!”

나는 짜증이 많이 난 상태로 숲을 질주하고 있었다.

설마 내가 뚱이의 방식을 따라 하게 될 줄이야.

온몸에 마력을 둘러치고 보이는 몬스터들을 무시하거나 몸통박치기로 날려버리며 질주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간중간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멈춰 설 때마다 몸에 잔뜩 묻은 몬스터의 체액에서 나는 악취는 나의 짜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손에 든 창을 단 한 번도 휘두르지 않고 내가 이러는 이유는 이 방법이 지금 상황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데 이만한 게 없었다.

효율도 괜찮았고.

빠른 속도 때문에 내가 무시하고 지나치는 몬스터가 따라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변을 살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이동하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늦었다가 고블린들 중 한 마리라도 잃게 되면 속이 아주 쓰릴 거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현지의 위치를 확인하며 질주하던 나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순간 저 멀리 갈색 피부의 커다란 괴물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트롤이었다.

재생력이 끔찍할 정도로 좋은 놈.

하필 튀어나와도 저딴 게 튀어나오냐!

이놈은 이걸로 안 되겠는데?

“크르르-”

다행이 놈은 나를 보고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내 몸에 잔뜩 둘러친 마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덤벼들었으면 시간이 좀 걸렸을지도 몰랐으니까.

나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는 창에 마력을 잔뜩 주입하며 팔을 들어 올렸다.

달리던 자세 그대로 투창 자세를 취한 나는 내딛는 발에 무게중심을 실으며 그대로 트롤의 머리를 겨냥하여 창을 쥔 팔을 크게 휘두르며 힘차게 뿌렸다.

쿠아앙-

마력이 잔뜩 실린 창은 바람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푸른빛의 꼬리를 남기며 트롤의 머리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펑!

다음 상황은 안 봐도 뻔했기에 곧장 창이 떨어질 곳을 예측해 달려나갔다.

트롤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내 눈에 머리통이 사라진 트롤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트롤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창은 힘을 잃지 않고 수많은 나무에 구멍을 남기며 계속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십여 개가 넘는 나무를 뚫고 나서야 힘을 잃은 채 멈춘 창에 다가간 나는 펄쩍 뛰어 나무에 박혀 있는 창을 빼냈다.

착지한 후 현지의 위치를 확인한 후 챙겨왔던 최상급 마력포션을 단번에 마시고 무전기를 들었다.

-상황은?

-돼지가 도착해서 좀 편해졌어요.

-지안이랑 현태는?

-돼지만 왔어요.

-저희도 거의 다 왔습니다.

현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쪽에 잘 숨어서 기다려 나도 곧 도착하니까.

-네?

-네?

둘의 멍한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뭐지 이 반응은?

-왜 나는 오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도련님 지금 어디십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제가 당장 그리로 갈 테니까 안전한 곳에 숨어 계세요.

현지의 태연한 물음과 현태의 다급한 음성이 동시에 울려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대충 저런 말인 듯싶었다.

-조용히 해. 일단 내가 도착할 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기다려!

-네!

-도련님! 안 됩니다. 제가 그리로 갈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현태는 내가 많이 걱정되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무전기로 떠들고 있었다.

-어?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현태의 멍한 음성에 현태가 내 위치를 확인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무시한 채 마력이 회복된 걸 느낀 나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쾅- 쾅-

얼마나 이동했을까 귓가로 굉음이 들렸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거대한 뱀 대가리 몇 개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제한구역

저걸 어떻게 자이언트 스네이크랑 착각할 수가 있지?

크기부터가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을 선사하는 무시무시한 히드라의 모습.

그 생김새부터가 일반 뱀 계열의 몬스터와는 차이가 컸다.

마치 동양의 용이 떠오를 정도였기에 현지의 뱀 대가리라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

딱 봐도 나 일반 몬스터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생김새였기 때문이다.

-현태 어디야?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끼어들기가 좀···

현태는 아직 A급이었기에 저 싸움에 끼어들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아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리라.

-내 위치 파악되지? 지안이 데리고 이쪽으로 와.

-네? 네!

현태는 내가 이미 도착했다는 걸 확인하고 잠시 놀랐다가 곧바로 힘차게 대답을 했다.

둘이 도착할 때까지 전투의 전황을 살펴보기로 한 나는 조용히 뚱이와 현지의 전투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뚱이는 히드라의 이목을 전부 자기에게 집중시키고 히드라의 머리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방어해 내고 있었다.

아니 방어와 동시에 공격을 하는 뚱이의 모습.

가끔 뚱이의 공격에 머리가 튕겨 나가거나 터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내 생각보다 뚱이의 성장 속도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지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마치 날아다니듯 공중에서 모습을 잠깐 드러내는 현지는 히드라가 내뿜은 독무를 뚫고 들어가 기어코 히드라의 머리를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다만 둘의 공격에도 히드라는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순식간에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내가 온 거였다.

히드라의 머리는 아무리 잘라내도 계속 재생된다.

물론 신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수가 늘어나지는 않지만 저래서는 정말 삼일 밤낮을 싸워도 부족할 거다.

히드라의 마력이 전부 떨어져 더는 재생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싸우는 게 지금 시대의 히드라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던 미래에는 조건만 충분하다면 어렵지 않게 히드라를 처리할 수 있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바로 몸통을 노리는 거다.

다만 그 몸통을 공격하는 건 생각보다 위험했다.

몸통을 공격하다 히드라의 수많은 머리 중 하나에게 뒤라도 잡히는 날에는 그대로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테니까.

거기다 머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비늘 덕분에 공격이 성공해도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히드라의 약점이 어디인지.

문제는 히드라가 눈치를 채느냐 못 채느냐인데 그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안티 디텍터.

내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안티 디텍터 때문이었다.

“도련님!”

“상무님!”

지안과 현태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몬스터의 채액과 살점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으니까.

“이게 무슨···”

현태는 당황해서 굳어버렸고 지안은 혹여나 내가 다치진 않았는지 살피기 위해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네? 네.”

“수거팀은?”

“멀리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잘했어.”

“아! 그리고 드론 띄어놨습니다. 영상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알았어. 일단 이동하자.”

나는 현태와 지안을 데리고 히드라의 정면으로 이동하며 뚱이를 지켜봤는데, 뚱이가 생각보다 히드라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탱커의 역할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는데.

넘실거리는 붉은 마력이 뚱이의 몸을 확실하게 보호하며 돌진하는 히드라의 머리를 하나하나 튕겨내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은 생각보다 멋있었다.

전생에는 뚱이를 잃을까 걱정되어 일정 수준 이상의 몬스터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을 쳤기 때문에 뚱이의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이쯤이면 될까?”

“저기 도련님? 뭘 하시려고요?”

히드라를 원거리에서 요격하기 위한 자리를 살피던 나에게 현태가 물어왔다.

“뭘 하긴? 히드라 처리해야 할 거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세요?”

말도 안 되는 말이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현태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안이하고 내가 여기서 히드라 요격할 거야.”

“네? 안됩니다! 혹여나 히드라가 마력을 감지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기 있는 도련님과 저희 다 죽습니다!”

“이거나 받고 말해.”

나는 손가락에 껴두었던 반지를 현태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안티 디텍터.”

“이게 안티 디텍터라고요? 아!”

이제 안 모양이다.

이걸로 우리의 마력을 차단하면 히드라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마력을 감지하는 일을 없을 거다.

“준비해. 지안아.”

“네!”

“현태야 마력 잘 차단해!”

“네!”

이제야 내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챈 현태는 내가 건넨 안티 디텍터를 착용하고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나는 창을 들어 올렸다.

“도련님 뭐 하세요? 설마?”

“왜? 나는 하면 안 돼?”

“아니 그게 아니라 도련님의 공격은 좀···”

내 공격은 히드라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적어도 지안이 보다는 강할 테니까.

내 마력뿐 아니라 인피니티 링의 마력까지 사용해서 창에 쏟아부을 거다.

창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까지.

“지안아 히드라 머리들이 갈라지는 곳 봐봐.”

“네.”

“잘 보면 붉은 비늘이 모여있는 곳이 보일 거야.”

“보여요.”

“거길 조준하는 거야. 알았지?”

“그런데 뚱이가 위험하지 않을까요?”

“걱정마. 쏘기 직전에 피하라고 할 거니까.”

나와 뚱이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뚱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

“네!”

눈을 살며시 감는 지안을 보며 나 역시도 눈을 감고 천천히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력을 흡수하던 창이 옅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내 몸속에 있는 마력이 모두 소모된 걸 확인한 나는 인피니티 링의 마력까지 꺼내어 창에 꾸역꾸역 담아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까워라!

아깝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야 뚱이가 잘 버티고 있지만 아마 곧 있으면 한계에 도달할 거다.

뚱이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 마력이 점차 옅어지는 게 보였는데.

이건 뚱이의 마력이 대부분 소모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점차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과 지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으로 인해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소용돌이가 두 개 생겨나 몸싸움을 하듯 충돌하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현태는 내가 뿜어내기 시작하는 마력의 양에 심하게 당황했는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고 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이쪽 찍어! 이쪽!

-도련님 있으신 곳 말씀인가요?

-그래. 적어도 두 대는 할당해 이쪽에.

-네. 알겠습니다.

들리는 소리는 전부 무시하고 집중력을 키워나갔다.

마력을 천천히 창에 담아가기 시작한 나는 어느새 창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까지 마력을 흡수시켰다.

이거론 안 되겠는데?

살짝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면 힘으로 커버해야지 별수 있나?

리미트의 해제.

미래의 각성자들은 버프포션을 하도 많이 마셔서 스스로 리미트를 해제하는 방법을 알아낸다.

물론 극소수의 각성자들이지만 나 역시도 가능했다.

내 재능이 어디 가서 꿀리는 건 아니었기에.

“준비됐어?”

지안을 보며 물어보자 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는 게 보였다.

“현태야 카운트해 10부터.”

“네!”

“동시에 쏘는 거야.”

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서서히 리미트를 해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어둠 속에 하나의 선이 생겨났다.

이 선이 바로 육체와 정신을 제어하고 있는 연결고리였다.

각각의 방법은 다르지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이 선을 끊어버림으로써 육체를 제약하는 리미트를 해제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걸 모두 끊어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최대한 얇게 만들어 육체가 견뎌낼 수 있을 정도까지만 해제할 생각이었다.

집중력을 높이며 카운트가 5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린 나는 현태의 입에서 5라는 숫자가 나왔을 때 선을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으로 집중했다.

‘뚝’

어?

시발! 너무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선을 완전히 끊어버렸네?

다시 선을 연결할 틈이 없었다.

이미 현태의 입에서 3이라는 숫자가 나왔기에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발끝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 팔에 집중했다.

“2!”

뚱이야 지금!

급히 뚱이에게 신호를 보내며 시선을 히드라의 약점에 고정했을 즈음 괴성이 터져 나왔다.

“뚱!”

뚱이의 필살기!

양손을 깍지낀 상태로 도약해 적을 타격함과 동시에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내는 기술.

이 소리는 뚱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마력을 폭발시킴으로서 만들어 지는 소리였다.

뚱이의 이름이 뚱이가 된 이유.

콰앙!!

히드라의 몸통에 직격한 뚱이의 깍지낀 손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충격파에 히드라의 모든 머리가 높이 튕겨 올라갔고 거대한 몸통 역시도 뒤로 밀려나며 적중당한 곳의 비늘들이 모조리 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충격파의 영향으로 뚱이 역시 멀리 튕겨 나감과 동시에 현태의 입이 열렸다.

“발사!”

쿠와앙-

내가 팔을 크게 휘두르며 창을 놓는 순간 지안 역시도 최대한으로 당겨진 활의 시위를 놓아 버렸고 마치 소닉붐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을 찢는 굉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히드라의 몸통과 연결되는 두 개의 굵직한 푸른 선이 생겨났다.

마치 히드라의 몸속으로 흡수되듯 푸른 선들이 사라져 가던 그때!

꽈앙!

히드라의 몸통이 폭발했다.

전의 와이번이 폭발한 것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높이 떠 있던 히드라의 머리들이 순간 생명력을 잃고 땅으로 추락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히드라가 어떤 모습이 될지 예상하였기에 놀라진 않았지만, 문제는 내 몸이었다.

내 육체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하며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통증이 뼈를 타고 온몸을 뒤흔들었다.

“크윽!”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는데 그 소리에 현태와 지안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왜 이러세요?”

“상무님 괜찮으세요?”

“좀 무리를 했나 봐. 내 입에 포션 좀 부어줘.”

지안은 매고 있던 작은 가방을 급히 내려놓고 안에서 포션을 꺼내 마개를 따고 내 입에 부어주었다.

꿀꺽꿀꺽 받아먹던 나는 천천히 통증이 가라앉긴 개뿔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극심한 통증에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크윽!”

“괜찮으세요?”

몸이 급속도로 회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증이었기에 극심했던 통증은 금방 가라앉았다.

“휴우~ 이제 좀 괜찮네.”

아직 통증이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움직이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였기에 팔과 다리를 돌려보며 스트레칭을 했다.

포션은 이게 문제야.

상처가 심할수록 회복되었을 때 급격하게 무기력해진다는 것.

몸이 나른해지고 집중력과 의지력이 급속도로 감소하기 때문에 마력의 운용이 생각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회복포션은 전투 중에는 최대한 복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생각과 마력의 움직임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까딱 잘못했다가는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련님 부산물을 처리하려면 좀 전문가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의문을 제시하며 히드라의 사체로 고개를 돌리자 현태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극독을 품은 히드라의 사체는 너무 위험했다.

“그러네? 독 때문에 다가가기 힘들겠네.”

“그것뿐이 아닙니다. 무려 히드라입니다. 몸통이 박살 났다고 하지만 히드라의 사체는 정말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귀하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혹여 이쪽에서 실수라도 하면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그렇네.

히드라의 비늘 하나만 해도 그 가격이 엄청날 텐데 혹여 보관이라도 잘못해서 못쓰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물론 내가 그걸 아까워할 정도로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저 뱀 대가리들의 비늘을 모두 떼어내면 아마 못해도 길드의 많은 자들에게 최상품의 갑옷을 지급할 수 있을 거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게 S급 몬스터의 부산물이었으니까.

“그럼 불러.”

“저 그게 이곳 위치가 너무 깊어서 이곳까지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는 길드원들 싹다 불러서 호위하라고 해.”

“그래도 될까요?”

“어차피 저걸로 걔들 갑옷 하나씩 만들어 줄 거야. 좋다고 달려올걸?”

“저,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그럼 내가 저걸 팔기라도 할까 봐?”

“혹시 저희도···”

“너희 것 먼저 맞춰줄게. 고생은 너희들이 다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자는 현태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팀원들 역시 환호하고 있었다.

“도련님 저는 독니로 단검 하나 만들어 주세요!”

“깜짝이야!”

갑자기 옆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치는 현지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 얘는 뭔데 멀쩡하냐?

현지의 모습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었다.

“너는 좀 기척이라도 내면서 다녀라. 매번 내가 이렇게 놀라야겠냐?”

“독니로 단검 만들어 줄 거죠? 제발···”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현지는 독니로 만들 단검에 눈이 멀어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만들어 줄게. 대신 보관 진짜 잘해야 한다.”

독니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뛰어난 무기였다.

히드라 자체가 독을 품고 있지만, 독니는 그중 가장 강한 극독을 품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싸움의 양상을 한순간에 변화시킬 만큼.

문제는 저 독니를 제련할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냐는 건데···

“보관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 독도 잘 다뤄서 문제없어요.”

“저는요?”

현지의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지안이 자기는 뭐 없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이 좋겠다.”

“가죽이요?”

“그래. 그리고 힘줄 가공해서 활시위로 쓰면 좋겠고.”

“가죽은 비늘보다 별로일 거 같은데···”

지안은 약간 실망한 것 같았다.

“강도는 비늘이랑 비교해도 별 차이는 안 날 거야. 오히려 무게도 더 가볍고 움직이기도 훨씬 편해서 아마 착용해보면 마음에 들 거야.”

내 말은 사실이었다.

아주 질길 뿐 아니라 높은 항마력에 가볍고 양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히드라의 독니보다 오히려 더욱 귀한 부위였다.

문제는 그 가죽이 흔히 말하는 배설물을 배출하는 부위라는 거다.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오히려 더 귀한 부위니까.”

“네!”

거짓이 아니었다.

그 부분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이미 착용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메리 톰슨.

미국의 가디언 중 한 명으로 무적의 탱커라 불리는 그가 평소에 착용하고 있던 가죽 갑옷이 바로 이 물건이었다.

원소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대단히 뛰어나고 탄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충격흡수량도 장난 아니었다.

지안에게는 정말 딱 맞는 방어구였다.

근데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네? 저렇게 폭발해 버려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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