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이게 선우란 말인가?”
명철이 건넨 영상을 보던 유 회장은 화면에 비친 선우의 모습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저도 영상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게 각성한 지 2년도 되지 않는 아이가 보이는 힘이라고?”
“선우가 이쪽으로는 천재가 아닌가 합니다.”
확신하듯 말하는 명철이었다.
이 영상을 보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각성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그가 보인 위력은 정말 대단했으니까.
일격에 히드라를 해치울 정도로 강한 파괴력은 S급 가디언이라고 해도 힘들었다.
물론 홀로 해치운 건 아니었다.
지안과 함께 공격한 것도 있고 시간을 끌어준 현지와 뚱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일단 파괴력만 본다면 충분히 천재라고 생각할 만 했으니까.
“내가 내 아들을 정말 모르고 있었구나!”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유 회장은 조금 후회가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우의 천재성을 진작 알았다면, 길드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 오크에 대해서는 회장님께 듣긴 했지만 설마 저 정도 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홀로 히드라의 공격을 버텨낸다는 건 최소 S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오크가 S급이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건가? 물론 나도 이걸 보면 강하다는 건 알겠네만 그냥 막는 것뿐이지 않은가?”
“히드라를 홀로 탱킹할 수 있는 각성자는 전 세계를 다 뒤져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국내에는 한 명도 없을 테고요.”
“허! 정말인가?”
유 회장은 솔직히 뚱이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뚱이 정도 되는 힘을 가진 각성자는 유명길드에 넘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매일 먹고 자는 것 빼고는 하는 게 없는 뚱이가 정말 이 화면 속의 자신이 알던 그 돼지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으니까.
“확실합니다. 히드라와 힘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괴력과 히드라의 독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는 모습만 봐도 국내의 S급 각성자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할 정도입니다. 거기다 현지가 가르쳤다는 고블린들은··· 솔직히 말하면 믿기 싫을 정도입니다.”
명철은 뚱이보다는 고블린들이 더욱 두려웠다.
저런 존재들이 균열에서 튀어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균열에서 나오는 순간 은신으로 몸을 감추고 도심 속에 스며들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참상이 펼쳐졌을 거다.
“고블린들은 내가 봐도 좀 위험해 보이더군.”
“직접 보셨습니까?”
“두 눈으로 확인은 못 했지만, 소리는 확실히 들었어.”
유 회장은 명철에게 전에 있던 와이번 사태 때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벙커에 찾아온 현지가 뜬금없이 “잘 지켜드려!”라고 말하자 들려오던 소리.
키엑!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디서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던 고블린들 때문에 소름이 돋았었다.
자신을 호위하던 경호원들에게 한번 찾아보라 했는데.
A급인 자들조차도 찾아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죄송하단 말만 되풀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팀장급들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들도 찾아내지 못하더군.”
“이것들이!”
“놔두게. 그들도 보고하기가 난감했을 거야.”
“안됩니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합니다.”
“괜히 자네에게 말했구먼.”
명철은 이를 갈며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은 그들을 문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 회장이 말렸지만, 이 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실책을 감췄다는 건 상황이 어떻든 문제였으니까.
“일 얘기나 하세.”
“네.”
“자네가 생각하기에 이 영상을 풀면 선우의 이미지가 많이 변할 것 같은가?”
“물론입니다. 무려 히드라입니다. S급 상위 몬스터인 히드라를 처리했다는 것만으로 영웅 대접을 받을 겁니다.”
“나도 생각은 그리하는데 말이야. 혹시 그놈들이 장난질을 칠까 겁이 난다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이걸로 시비를 걸다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건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 테니까요.”
“그래도 다행이구먼. 이런 시기에 선우가 대견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유 회장은 곧 수아를 세상에 알릴 생각이었다.
유명의 천금.
아마 많은 자가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며 선우를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유 회장은 수아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게 최대한 차단할 생각이지만 수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무리 차단한다 한들 결국, 사람들이 선우를 욕한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그것도 자기 때문에.
유 회장은 그 작은 아이가 상처받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자신들 때문에 지금껏 버린진 줄 알고 커왔던 아이다.
분명 티를 내지 않으려 하겠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될까?
“차라리 좀 늦추시는 게 어떠신지요?”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네.”
“그 말씀은?”
“어디 이런 일이 숨긴다고 되는 일인가? 분명 어디선가 소문이 새나가겠지.”
수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이쪽의 통제하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언제 어떻게 이 사실이 세상 밖으로 흘러나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비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철저히 준비를 해 놓은 후 터트리는 게 통제하기가 수월할 테니까.
수아를 걱정하는 유 회장을 조용히 지켜보던 명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래도 보기 좋으십니다. 그 아이가 그리도 좋으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나? 내 손녀일세.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이제는 그 아이가 없는 삶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라네.”
“하하하. 회장님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저로서는 심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여자 좀 만나라고. 자네가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었으면 내 마음을 이해할 텐데. 어떤가? 이 늙은이가 지금이라도 중매를 서줄까?”
“됐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결혼입니까?”
“자네 나이가 어때서 그런가? 요즘 세상에 나이 오십이면 아직 창창할 나이 아닌가? 설마 자네?”
“어딜 보십니까! 저 아직 팔팔합니다.”
“허허허”
*
“아빠다 아빠!”
TV를 보던 수아의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나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니 저게 왜 저기서 나와?
각성자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몬스터의 체액을 덕지덕지 묻힌 지저분한 모습으로 창을 들고 마력을 뿜어내는 모습은 분명 나였다.
며칠 전 히드라를 잡던 모습.
저게 왜 저기서 나오고 있을까?
“저거 아빠 마자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내 귓가에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린 나는 수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빠?”
“으, 응?”
“아빠 아니에요?”
“아빠 맞아.”
“우와! 아빠 멋있어!”
수아의 칭찬에 뿌듯함이 살짝 느껴지긴 했지만, 역시나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누굴까?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런 영상을 풀어버릴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아버지.
“릴아 우리 아빠 멋있지?”
“캉!”
“헤헤~”
이유를 생각해야 했다.
어째서 아버지는 저 영상을 풀어버린 걸까?
저 영상으로 얻는 이득이 뭘까?
내가 각성자라는 걸 밝힘으로 인해 얻는 이득은?
-요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저 둘이 누구인지에 대해 많은 설전이 오가고 있다고 하죠.
-네. 그렇습니다. 둘에 대한 많은 추측이 나돌고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의견이 유명그룹 유진우 회장님의 아들인 유선우 군이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유선우 군이라면 혹시 그?
-네. 맞습니다. 보영 씨가 생각하시는 그분입니다.
-정말요? 저는 그분이 각성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나는 조용히 화면 속의 두 MC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보영 씨의 말대로 그분이 각성자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는데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유명그룹에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답은 들으셨나요?
-다행히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빨리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하하. 보영 씨가 많이 궁금한 모양이네요.
-무지무지 궁금해요!
-영상 속의 주인공은 바로~! 광고 보고 와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정말!
이런 시발!
하마터면 수아 앞에서 육성으로 욕을 할 뻔했다.
항상 중요한 장면에서 저러는 걸 방송사가 돈독이 올라도 심하게 오른 모양이었다.
광고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갔지만 아마 아무도 채널을 돌리지 못했을 거다.
나란걸 아는 나조차도 채널을 돌리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저 영상 속의 두 인물은 바로 유명그룹 본사에서 근무하시는 유선우 상무님과 이지안 비서님이었습니다.
-상무님과 비서님이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동명이인은 아니시죠?
-당연하죠. 보영 씨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습니다.
-와! 그럼 정말 각성자이신 거네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따로 있었습니다.
-요즘 엘프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비서님 말씀이죠?
-물론 그것도 놀랍지만, 더욱더 놀라운 건 유선우 씨가 각성한 날짜였습니다.
-각성한 날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보영이라는 여성의 눈에 의문이 한가득 담겼다.
-네. 이 사실을 알고 모두가 깜짝 놀랐답니다. 각성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네에? 2년밖에 안 됐다고요?
둘은 이어서 내 자랑을 은근슬쩍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안보다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이 기회에 내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
조금 있으면 수아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기 때문에 미리 내 이미지를 세탁해 욕을 조금이라도 덜 먹게 하려는 게 분명했다.
-드르륵~
누구지?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본 내 눈에 번호만 달랑 떠 있는 화면이 보였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을 만큼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냥 무시했지만, 이어서 도착한 문자를 본 나는 궁금증이 들었다.
[나 정근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전화 좀 부탁해.]
내 번호는 또 어떻게 안 거야?
이놈이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으려고 전화한 걸까?
나는 TV에 나온 내 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수아를 피해 방을 나와 방금 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궁금했으니까.
이놈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궁금했다.
-여보세요?
“나다. 선우.”
-아! 선우야 오랜만이다.
응? 이놈이 왜 이리 친한 척을 하는 거지?
나를 죽이고 싶을 텐데?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부탁이 있어서···
부탁? 이놈이 나한테?
“무슨 부탁?”
-아!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닌데 혹시 만나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정말 수상했다.
특히 만나자는 말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수상했다.
함정인가?
“그냥 말해.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을 거 아니야.”
-그게··· 도청당하고 있을지도 몰라서 그래.
“도청을 당한다고?”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놈이 도청을 당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가?
말이 재벌 3세지 거의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놈이었다.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발 부탁이다. 이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너 지금 어디냐?”
-그게··· 말하기가 좀···
아! 도청당하고 있다고 했지?
잠깐만?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건 위치도 안다는 거 아니야?
“야. 어차피 도청당하는 거면 네 위치도 다 알고 있다는 건데 무슨 상관이야?”
-그, 그런가?
이 새끼 진짜 멍청하네?
“아! 모르겠고 그냥 부탁이나 말해봐. 들어보고 들어줄지 말지 결정할 테니까.”
-선우야 제발···
“야 이정근. 솔직히 너랑 나랑은 옛날에 끝난 사이 아니냐? 아니지 애초에 너랑은 친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네. 그냥 끊을게 잘 지내라!”
-서, 선우야 아, 알았어. 말할게.
급히 소리치는 녀석의 목소리는 다급함과 애처로움이 섞여 있었다.
도대체 이 새끼가 왜 이러는 거지?
“말해봐.”
-나, 나 좀 살려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