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할아버지가…….
정근의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연한 거였다.
내가 저놈 할아버지였다면 충분히 죽이고도 남았을 테니까.
평생을 일군 기업이 저놈 하나 때문에 박살이 난 걸 생각하면 가만히 놔두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였을 거다.
“집안싸움에서 나는 좀 빼줄래? 내가 미래 회장이었으면 너는 진작에 뒤졌어!”
물론 내가 우리 아버지였어도 난 진작에 죽었을 거다.
-그, 그게 아니야! 하, 할아버지가 살해당하셨어! 아버지도! 전부!
이게 무슨 소리야? 살해를 당했다니?
누가 미래의 회장과 부회장을 죽였단 말이야?
정근의 말이 솔직히 믿기지는 않았다.
분명 거짓일 확률이 높았지만, 특이하게도 놈의 목소리를 듣는 나는 이상한 확신이 생겨났다.
“자세히 말해 봐.”
-지, 집에 있는데 갑자기 경호원들이 집 안의 모두를 죽였다고!
“경호원이? 그럼 넌 어떻게 살아 있는데? 너도 집 안에 있었을 거 아니야?”
-모, 몰라. 그놈들이 나는 건들지 않고 풀어줬어.
이것 봐라?
조금만 생각해 보자 답이 나왔다.
놈을 살려둔 이유는 아마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거다.
다만 그 방법이 궁금할 뿐.
솔직히 이놈이 죽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일단 내가 알려주는 데로 가. 지금 당장.”
그런데도 내가 이놈을 도와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분명 그쪽과 관련이 있을 테니까.
최강준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연합과는 연결고리가 있을 거다.
-아, 알았어.
나는 놈에게 블랙마켓의 위치를 가르쳐 준 후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정근을 범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정근이로 변신이라도……?
잠깐 변신이라고?
나는 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한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시죠?
“급히 부탁할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그 부탁이란 게 설마 저번에 말했던 그 부탁인가요?
“아니요. 이건 좀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내가 전화를 건 상대는 바로 서창렬이었다.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제가 무슨 흥신소도 아닌데 개인적인 부탁이라뇨?
“정말 급해서 그래요. 부탁 좀 합시다.”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죠.
“그쪽으로 사람 하나 보냈는데 보호를 좀 해줬으면 합니다.”
-지금 겨우 그런 일 때문에 저에게 연락하신 건가요? 이건 아무리 봐도 저를 무시하는 처사 같은데요?
“절대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를 위협하는 자들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어쩔 수 없네요. 급해 보이시니 일단은 들어드리죠. 대신 저한테 빚을 졌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서창렬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면서 빚을 졌다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정확하다면 이건 그놈을 몰락시킬 단초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래서 누굽니까? 숨겨줘야 하는 사람이.
“당신도 아는 사람입니다. 이정근이라고 미래 그룹 부회장 둘째 아들입니다.”
-미래 그룹이면 그쪽이 작업하는 곳 아닙니까? 혹 그와 관련된 거면 이쪽에서 움직이는 게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걱정은 감사하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애들 풀어서 찾아보도록 하죠.
“아! 그리고 혹시 그를 뒤쫓는 자를 발견하면 생포 부탁드립니다.”
-그 정도는 서비스로 해 드리죠.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정근이 무사히 그곳까지 도착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정근에게 위치를 말해주었지만, 블랙마켓이라 말하지도 않았고 그저 그 주변을 가르쳐 줬을 뿐이니까.
내가 위치를 말해준 곳은 유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이었고, 혹시 내가 직접 그를 만난다면 오히려 그들에게는 아주 큰 이득이라고 생각할 거다.
이 사건에 나를 엮을 기회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가만히 서서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기사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마 녀석들은 모든 준비가 끝나면 이걸 터뜨릴 거다.
스크롤을 계속 내리며 실시간 뉴스들을 살펴보던 나는 아직은 모든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에 관한 기사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좀 걸리겠지? 조작하려면 그놈이 직접 움직여야 할 테니까.
내가 말한 그놈은 바로 세계에 단 하나뿐인 변신 특성을 가진 놈이었다.
무력적인 측면에서는 정말 별거 아닌 놈이지만 사건을 조작하기에는 이만한 놈이 없었다.
후에 변신이라는 특성을 가진 각성자가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게 밝혀진다.
S급 가디언과 별것 아닌 B급 가디언이 시비가 붙게 되면서 일이 시작되는데.
모두가 B급 가디언이 나가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갑작스럽게 기습한 B급 가디언에게 무려 S급 가디언이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으니까.
이것만 보면 그냥 어이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S급 가디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자가 죽자 그 외형이 서서히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소문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그 장면을 찍은 영상까지 퍼져 나가며 그가 누구인지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확실하지 않은 정보들이 나돌아다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최강준의 길드에서 그를 본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다.
한동안 그 소문으로 인해 그 시대 최강의 길드인 최강준의 길드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었다.
만약 그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이건 나에게 둘도 없는 기회였다.
그를 몰락시킬 수 있는.
* * *
“들었지? 애들 풀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부탁을 들어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옆에 있던 친위대 대장인 이현우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서창렬에게 물었다.
“빚이라고 할까?”
“이건 제 생각이지만 이쪽이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서 그쪽이 딱히 이걸 빚이라고 생각할지 의문이 듭니다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안 들어주기가 참 곤란했단 말이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 물건을 받기 전이잖아. 그쪽에서 이걸 핑계로 계약을 취소하면 우리만 X 되는 거 알잖아?”
서창렬은 선우가 부탁이란 말을 꺼낼 때부터 이미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이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걸 그쪽도 잘 알 텐데요?”
“알잖아. 그쪽에 나와 비슷한 수준의 각성자가 있다는 거.”
“그래 봤자 하나 아닙니까?”
“그래. 하나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에 그런 수준의 각성자가 더 있다면 어쩔래?”
“네?”
이현우는 서창렬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그런 수준의 각성자를 왜 그놈에게 붙여 주었을까?”
“당연히 보스와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놈들도 겁이 났겠죠.”
“내 말은 그게 아니야. 확실하진 않은데 그놈 이곳에 온 적이 있었던 것 같단 말이지.”
말을 하며 고개를 기우뚱하는 서창렬을 보며 이현우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네? 이곳이라면? 블랙마켓에 말입니까?”
“그래. 처음에는 몰랐는데 잘 생각해 보니까 언제 한번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것 같더라고. 그래서 잘 생각해 보니까 떠오르게 있더라고.”
“설마? 이곳에 왔다는 게 유선우가 아니라 그 호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창렬은 이현우에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같이 왔었어. 유선우가 먼저 들어오고 뒤따라 들어왔다고. 그때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해. 그놈이었어.”
“그런? 설마 그런 놈이 적어도 둘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놈에게 그런 존재를 붙여놨다는 건 적어도 유명의 회장과 부회장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존재들이 붙어 있다는 말이니까.”
서창렬은 정말 무서운 착각을 하고 있었다.
현지 정도 되는 암살자가 둘이 더 있었다면 최강준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야 정상이었으니까.
“찾았습니다!”
문으로 들어오며 보고하는 친위대의 말에 둘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럼 부탁을 들어주러 가볼까?”
“직접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하지. 그래야 생색이라도 낼 수 있을 거 아니야?”
“따르겠습니다. 안내해!”
“네!”
이현우는 서창렬의 말에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서창렬의 예상이 단순한 예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 * *
“여보세요?”
-서창렬입니다.
“어떻게 됐나요?”
-이정근이란 자는 보호하고 있고 그를 감시하던 둘을 잡긴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놈들 대체 뭐 하는 놈들입니까?
“네? 왜요?”
-제게 잡힐 것 같으니 곧바로 자결하려고 하더군요. 보통 놈들은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죠.
직접 움직였단 말이야? 그 서창렬이?
이거 생색을 제대로 내겠다는 거네.
“저도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러는데 혹 녀석들에게 배후를 캐 주실 수 있을까요?”
-고문을 해 달라는 말씀입니까?
서창렬의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네.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거 정말 저를 무슨 흥신소처럼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어차피 들어줄 거면서 자꾸 튕기는 서창렬이었다.
그가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건 나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제시한 조건들이 아직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는 절대로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사례는 후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후~ 제가 사례를 바라고 도와 드린 것 같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 도움을 주신걸. 하지만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일에 대해 도움을 요청할 곳이 그쪽밖에 없다는 거.”
분명 서창렬은 이정근을 확보한 후 바로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으리라.
아마 이정근에게 무슨 상황인지 모두 확인을 마쳤겠지.
-알고 있다뇨? 저희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발뺌하는 서창렬의 목소리에는 거짓이라곤 없어 보였지만, 그가 어디 그럴 사람인가?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우리 좀 솔직해지는 게 어떨까요? 제가 그쪽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미 정근이에게 다 듣지 않았습니까?”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한참을 나와 실랑이하던 그는 결국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항복을 선언했다.
이미 잡은 두 놈을 티 나지 않게 고문하고 있을 거다.
서창렬은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성격이니까.
“그럼 당분간은 그들을 그쪽에 맡겨 두겠습니다.”
-네. 이왕 시작한 일이니 확실하게 처리해 드리죠.
전화를 끊은 나는 안심이 되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창렬이 관리하는 블랙마켓이었기 때문에 그쪽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아니 정근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 서창렬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별채를 벗어난 나는 아버지의 서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에게 물어볼 게 잔뜩 생겨났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움직여 서재 앞에 도착한 나는 노크를 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형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며 혹시 미래에 대한 일을 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와 형은 단순히 수아의 입학식에 부를 사람들을 선별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아는?”
아버지는 내 뒤를 한번 쓱 살피시곤 내게 물어오셨다.
“방에서 TV 보고 있어요.”
“그러냐? 근데 웬일이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혹 영상 때문이냐?”
“아니요. 다른 것 때문에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