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214)

“살살해.”

퍼억!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타격음이 울렸고 오른쪽 다리를 천천히 내리고 있는 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결과로 이지혜라는 여자는 지금 벽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가고 있었고.

쾅!

굉음이 들리며 벽과 충동한 그녀는 마치 영화처럼 벽에 박힌 채 박제라도 된 양 고정되어 있었다.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

광대가 함몰된 채로 피 칠갑을 한 그녀는 전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어?”

어정쩡한 자세로 놀란 음성을 흘리는 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살살하라고 했건만…….

그리고 자기가 때려놓고 놀라긴 왜 놀라?

“내가 살살하라고 한 말 못 들었냐?”

“그게…… S급이라길래…….”

때리는 힘이 과했다는 걸 깨달은 현지는 말끝을 흐렸다.

“공격에 반응도 못 하는 사람을 고블린 패듯 있는 힘껏 때리면 어쩌냐? 저거 죽은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죽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지혜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웅덩이의 크기가 점차 커지고 있는 걸 본 나는 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련님 말씀하세요.

“나 지금 어디 있는지 알지? 최상급 포션하고 구속구 가지고 와.”

각성자들을 제어할 수 있는 구속구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특히 이런 클럽 같은 곳은 각성자로 인해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몰랐기에 구속구와 일정 수준의 경호원이 없으면 허가 자체를 내어주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저 여자 벽에서 빼내서 화장실에 대려다 놔. 아! 살아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네…….”

기가 살짝 죽은 현지는 대답하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아! 살아 있어요!”

“다행이네. 일단 화장실에 옮겨놔.”

“네.”

살아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은근 불안했던 모양인지 지혜가 살아 있음에 안도하며 힘차게 대답하는 현지였다.

벽에 박혀 있던 지혜를 꺼낸 현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행동을 보였다.

머리채를 잡고 그대로 이동하는 현지 덕분에 지혜는 붉은 선을 만들며 현지에게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살살 좀 다뤄라. 그러다 진짜 죽겠다.”

“네.”

다른 행동을 취할 법도 하건만 현지는 걸음이 느려졌을 뿐 그대로 머리채를 잡은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저게 은근히 잔인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현지가 화장실로 사라졌을 즈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도련님 저 성철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던 성철은 방 안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멈춰섰다.

뭉개져 버린 벽과 터져 버린 소파 그리고 화장실과 연결되는 바닥의 핏자국.

“가져왔냐?”

“네? 네!”

내 물음에 성철은 손을 벌벌 떨며 구속구와 포션을 넘겨주었다.

“현지야.”

화장실에 있는 현지를 큰 소리로 부르자.

“네.”

현지가 대답과 동시에 성철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나왔지? 문이 열리는 걸 보지 못했는데?

“으악!”

갑작스럽게 성철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떨리는 눈으로 현지를 보는 성철은 심하게 겁을 먹은 것 같았다.

하긴 놀랄 만도 한가?

“안녕하세요?”

그런 성철에게 밝은 미소로 질문을 던지듯 인사하는 현지였다.

“네? 네! 안녕하십니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성철은 심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인사를 할 정도로.

“뭐하냐?”

“그, 그게…….”

“안 일어나?”

“네? 네!”

현지에게 포션과 구속구를 넘긴 나는 성철에게 고개를 돌렸다.

“잘하고 있지?”

“무, 물론입니다. 도련님 당부대로 철저히 감시하면서 운영 중입니다!”

가볍게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성철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어디까지 먹었어?”

“클럽 같은 경우 수도권은 거진 다 먹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내가 있는 클럽의 주인이 바로 성철이었다.

밑에 있는 애들이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다길래 사업이나 하라고 자금을 지원해 줬더니 클럽을 인수해버린 거였다.

“그럼 앞으로 네가 관리하는 곳에 이정근은 받지 마.”

“네. 알겠습니다.”

“내 말 명심해라. 정근이가 네가 관리하는 클럽에 갔다는 말 들려오면 이정근도 죽고 너도 죽는 거야.”

“네!”

“실수하지 마라. 관리도 똑바로 하고.”

“물론입니다. 동생들에게도 확실히 말해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클럽을 처분하고 제대로 된 사업체를 운영해 보라고 했지만, 성철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런 일들뿐이라며 애원했다.

결국, 성철에게 허락을 해주며 몇 가지 당부를 해야 했다.

성철이 내 밑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거의 없지만, 앞으로의 일이라는 게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었기에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허락을 해 주었다.

특히 약과 성범죄.

유흥에 대해 잘 아는 나는 당연히 이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고 있었기에 철저히 감시하라는 약속을 받았다.

“나가 봐.”

“네.”

성철이 나가고 잠시 후 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 됐어요.”

“그래? 차에 옮겨놔.”

“네.”

현지는 구속구를 양팔에 찬 지혜를 엎은 채로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헉!”

신음과 함께 눈을 뜬 이지혜는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때…….”

통증을 겨우 참아내며 생각을 이어가던 그녀는 유선우의 ‘살살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닫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인지했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던 그녀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의 가운데 누워 있는 자신과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들.

몸이 미끈거리는 걸 느낀 그녀는 자신의 몸에 무언가 잔뜩 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

슬쩍 냄새를 맡아보니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소스 같아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양팔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고개를 숙여 팔을 보곤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 전용 구속구.

몸속의 마력을 빨아들여 허공으로 날려 버리는 범죄자에게나 사용할 법한 물건.

서둘러 몸속을 살핀 그녀는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텅 빈 마력홀.

마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선우 나와!”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에 소리를 지르며 유선우를 부르던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끼익-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일까?

2m를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체구에 우락부락한 초록색 피부.

거대한 오크였다.

“취익!”

“머, 뭐야?! 저, 저리 가!”

상황의 파악이 되지 않는지 당황한 음성으로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오크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올 뿐이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공포가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고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양이 앞에 선 쥐새끼처럼 생각이란 것이 사라졌다.

“히익!”

어느새 다가온 오크가 그녀의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음식을 입속으로 가져가는 걸 본 그녀의 머릿속은 혼돈으로 가득 찼다.

‘설마? 나 잡아먹히는 거야? 내가 음식이 된 거야?’

엄청난 속도로 줄어드는 음식을 보며 공포에 질린 그녀는 차마 눈을 계속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공포는 더욱 증폭되어 평소에는 찾지 않던 신을 부르짖으며 빌고 또 빌었다.

자신을 먹기 전에 저 오크의 배가 가득 차기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오크가 음식을 씹어대던 소리가 멈춘 걸 느낀 그녀는 상황을 살피기 위해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곤 절망을 느껴야 했다.

오크의 커다란 손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은 슬로우 모션처럼 재생된다고 했던가?

지금 그녀가 바로 그 상태였다.

오크의 손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덥석-

오크가 그녀의 한쪽 다리를 덥석 집어 그녀를 들어 올리려 하는 모습을 본 그녀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꺄악! 먹지 마! 먹지 말라고! 으어엉.”

오크의 얼굴을 반대쪽 발로 미친 듯이 후려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고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노란 액체가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커다란 입을 벌린 오크는 그녀가 때리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덥석 잡은 그녀의 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천천히 오크의 입이 닫히는 걸 보던 그녀의 눈이 뒤집혔다.

축 늘어지는 그녀의 팔과 다리를 본 오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녀를 내려놓고 등을 돌려 방을 벗어났다.

* * *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킥킥. 뭐 어때요? 어차피 고문할 거였잖아요.”

“그건 그런데…….”

기절한 이지혜를 보는 내 눈에 안쓰러움이 담겼다.

아직 이 여자가 정확히 어떤 여자인지도 모르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정말 재밌었다.”

화면을 통해 조금 전 상황을 모두 지켜본 현지는 아주 재밌는 영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기지개를 쭉 켜며 밝게 웃었다.

“근데 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

“그냥 떠오르던데요?”

역시 현지는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얘 씻겨서 방에다 데려다 놔. 구속구는 풀지 말고.”

“바로 심문하시게요?”

“그럼?”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요? 되게 재밌는데.”

“안 돼!”

내 대답에 현지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히 보기 좀 그랬다.

한 번 죽어봤던 내가 겪었던 그 상황과 똑같았으니까.

그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지 아는 나였기에 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봤네.’

암살이라는 특성에 고문기술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버린 내 잘못이었다.

이지혜의 머리채를 덥석 잡고 질질 끌고 가는 현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뚱이의 방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겨 뚱이의 방 앞에 도착한 나는 기름이 잔뜩 묻은 손잡이를 손수건을 이용해 돌리며 안으로 열고 들어갔다.

“뚱이야.”

“크웍?”

내 부름에 나에게 고개를 돌리는 뚱이를 보며 당부의 말을 해야 했다.

“사람은 먹는 거 아니야? 알았지?”

“취익!”

콧바람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뚱이를 보며 혹시나 뚱이가 앞으로 사람을 먹이로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한 나는 뚱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 *

지혜가 깨어났다는 말에 그녀를 가둬놓은 방에 도착한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저 옷을 입혀놓은 거야?”

현지가 항상 입고 있던 옷이 그녀에게 입혀져 있었다.

“옷이 없어서 그랬는데 이상해요? 그냥 다 벗길까요?”

“아니 됐어.”

현지에게 대답을 해주며 이지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겁에 잔뜩 질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뚱이를 찾는 것일까?

“괜찮아요?”

“……부, 분명 커다란 오크가?”

“안 좋은 꿈이라도 꾸신 모양이네요.”

친절함을 가장한 나는 그녀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꿈이라고?”

혼란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질문을 좀 해도 될까요?”

“질문?”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내 ‘질문’이란 말을 듣고는 표정을 굳혔다.

“혹시 그 제안이란 것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지?”

조금 전의 일은 꿈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인지 그녀는 나에게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요.”

“흥! 왜 고문이라도 하시게? 내가 겨우 그런 것도 못 참을 것 같아?”

되도록 좋게 넘어가길 바란 내 생각이 잘못된 걸까?

뚱이를 보여주면 편하겠지만 그랬다가는 그녀의 정신이 망가져 버릴 위험이 있었다.

아까 본 그녀의 표정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 방법을 써야 하는 걸까?

“저것 봐요. 제가 한 번 더 하자고 했잖아요.”

“어쩔 수 없나?”

“도련님. 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뭔데?”

“이번에는 짝짓기를 시켜보는 게 어떠세요?”

지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현지를 바라보자 현지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왜요? 걔 수컷이잖아요. 분명 걔 처음 봤을 때 그거 본 것 같은데?”

현지가 말하는 그건 아마도 뚱이의 가랑이 사이에서 달랑거리는 커다란 물건일 것이다.

처음 소환되었을 때는 당황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뚱이는 수컷이었다.

“잠깐? 수컷? 그게 무슨 소리지?”

“당신은 몰라도 되니까 조용히 좀 있어요.”

“지금 당신들 오, 오크 말하는 거지?”

대화를 들은 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닌데? 내가 키우는 강아지 말한 건데?”

“거짓말! 분명 그 오크 말하는 거잖아!”

현지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뚱이의 존재를 자꾸 감추려 했다.

설마 저 여자가 솔직히 다 말할까 봐 저러는 거야?

그 이상한 짓을 또 하고 싶은데 못 할까 봐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현지를 보던 나는 지혜에게 고개를 돌리며 솔직하게 말했다.

“맞아요. 그 오크 말하는 거.”

“히익!”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 상황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심어 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또 당하고 싶지 않으면 묻는 말에 대답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요.”

“이, 이 잔인한…….”

지혜의 크게 뜬 눈동자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눈물을 보자 내가 마치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악당이 맞나?

“빨리 대답해.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이렇게 된 거 그냥 악당을 연기하기로 한 나는 반말을 툭툭 내뱉었다.

“으득!”

지혜는 이를 악무는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좀 불쌍해 보이긴 했지만, 태연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현지야 가서 뚱이 데려와!”

“네!”

환한 미소로 대답하며 등을 돌리는 현지를 본 그녀의 눈동자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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