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214)

하루였다.

지혜가 모든 걸 실토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현지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보게 된 그녀는 나를 보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많이 수척해진 모습으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모두 말할 테니까 제발 눈앞에서 오크와 저 악마를 치워달라고.

그녀가 말한 악마는 현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마나독이란 걸 먹은 자들에게 마나 포션을 먹이면 알 수 있다고?”

“그, 그래요. 그들의 몸에 남아 있는 독성이 차오르는 마나를 계속 배출해버리기 때문에 마력을 느낄 수 있는 각성자라면 구별할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은?”

“짧으면 일주일에서 길면 10일까지도 독성이 남아 있어요.”

겁에 잔뜩 질려 내가 묻는 말이라면 그게 뭐든지 전부 대답을 해주는 지혜였다.

그녀는 중국인이었다.

고아였던 그녀는 각성하게 되면서 어떤 단체에 들어가 교육을 받으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국으로 파견을 오게 된 거라고 한다.

주로 하는 일은 최강준을 감시하고 단체가 내리는 명령을 최강준에게 전달하는 정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접근한 이유는 이번 정근의 일이 실패하면서 시작되었다.

단체에서 자신을 대체할 사람이 온다는 이야길 듣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녀는 무슨 수라도 내야 했다.

특히 이번 일은 그녀가 제안했던 일이기 때문에 나를 포섭해서라도 자신이 아직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단체의 이름이 뭐냐니까?”

“저, 정말 모, 몰라요.”

“너 S급이라면서? 그런데 자신이 소속된 단체의 이름도 모른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녀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S급 각성자는 정말 귀한 존재였다.

그런 S급에게 단체의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 한국에 오기 전에는 A급이었어요. S급이 된 건 비교적 최근이고요.”

“허! A급은 뭐 널려 있는 줄 알아?”

“그, 그곳은 그럴지도 몰라요.”

“뭐? A급이 널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지혜의 말에 황당함이 몰려왔다.

“네. 저랑 함께 교육을 받은 동기들 대부분이 A급이었어요.”

“몇 명이었는데?”

“끝까지 남아 있던 동기들은 100명 정도였어요. 그리고 교육 시설은 그곳 한 군데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게 만약 사실이면 정말 충격적이었다.

만약 그 교육 시설이 한 곳만 더 있어도 A급이 200명씩 늘어난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국내에 존재하는 A급 각성자의 수는 공식적으로 500면이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은퇴한 자들이나 각 길드가 숨기고 있는 가디언 또는 빌런들을 모두 포함한다면 두 배 가까이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저 수치는 말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이야?”

“네. 정말이에요.”

“나 겁주려는 거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믿고 싶지 않았다.

한국을 밀어 버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밀어 버릴 수 있다는 말이랑 다를 게 없었으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그녀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중국 정부가 아니라 단체라고?”

“네? 네!”

이게 무슨 소리야?

중국에 존재하는 모든 각성자는 전부 군인일 텐데?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중국의 모든 각성자는 군대에 소속이 될 텐데?”

“아! 그, 그게…….”

지혜는 내 물음에 잔뜩 당황해서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협박을 살짝 섞어가며 추궁을 하자 결국 입을 열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내용을 들은 나는 충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중국 정부의 위에 존재하는 단체라고?

중국의 고위 관료가 막 단체의 교육기관을 수료한 그녀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그 단체가 적어도 정부와 비등하거나 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얘 지금 말을 지어내고 있는 거 같아요. 중국 정부가 지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는 건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저, 정말이에요.”

“아무래도 돼지랑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 정신을 차릴 거 같은데 돼지 다시 데려올까요?”

지혜의 말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현지가 그녀를 다시 고문하는 게 어떤지 물어왔다.

“화, 확인을 해보면 되잖아요. 저, 저를 대신할 사람이 중국에서 곧 입국하기로 했으니까 그를 찾아서 확인을…….”

뚱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지혜는 겁에 잔뜩 질려서는 확인할 방법을 제시했다.

“현지야, 잠깐 나와봐.”

“네.”

문밖으로 잠시 자리를 이동해 현지와 대화를 나누려는데 지혜가 발작하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지만 무시한 채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저 여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너무 괴롭히지는 말고 적당히 겁만 주고 있어.”

“네.”

그녀가 말한 정보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중국 쪽에 정보원들을 많이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녀가 교육을 받았다는 곳을 중심으로 조사를 해보면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금방 알 수 있을 테니까.

* * *

조사 결과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교육을 받았다는 곳을 살펴본 결과 그곳에 많은 인원이 머무르며 생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입국하는 중국인들 전원에게 입국 심사 전에 물이나 음료에 미량의 마력 포션을 섞어 복용하게 한 결과 정말 그들 중에 각성자가 섞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중국 쪽도 지금쯤이면 눈치를 챘으리라.

자신들이 보낸 각성자들 모두가 사라졌다는 걸.

잡아들인 중국 쪽 각성자들을 심문하고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좀 문제였다.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는지 자신들이 발각됐다는 걸 안 순간 자결을 해 버릴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한 놈들이었다.

그 결과로 지금 이쪽에서 잡아들인 각성자 중 생존해 있는 자들은 10% 안쪽이었다.

아마 그들도 예상 중일 거다.

대부분이 죽었다는 걸.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이 사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면 그들이 각 나라에 몰래 입국시킨 각성자들을 모두 잃어버릴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몰랐으니까.

물론 지금도 대부분의 나라가 중국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긴 했지만.

이 사실을 가지고 아버지는 직접 중국 쪽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들은 우리가 제시하는 모든 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심한 타격을 받을 테니까.

그 결과로 현지는 지금 집에 없었다.

항상 내 옆에 있던 현지는 오늘 진행될 협상을 위해 고블린들과 함께 아버지의 경호를 담당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지혜는.

현지가 얼마나 괴롭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정신이 붕괴하여 백치가 되고 말았다.

외부에 대한 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생 제정신으로 돌아올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 평생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하겠지.

* * *

“협상은 어떻게 끝나셨어요?”

“이쪽의 조건을 대부분 수락하기로 했다.”

“그럼?”

“그래. 국내에 남아 있는 각성자들을 모두 철수시킨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화랑 길드에서도 손을 떼기로 했다.”

화랑 길드는 최강준의 길드였다.

“정말 그들이 그러겠데요?”

“어쩔 수 없겠지.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큰 타격을 받을 테니. 물론 그놈들이 완전히 손을 떼진 않을 거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좀 놀라웠다.

고작 하루였다. 아니,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빨라 봐야 1개월은 걸릴 협상을 반나절 만에 끝내시고 온 아버지.

아버지가, 유명의 회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거대한지 이제야 좀 체감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대국을 상대로 반나절 만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렇고 네가 심문했던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구나.”

“네?”

“정말 중국 정부의 배후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 말씀은?”

“그래. 이번 협상 때문에 국무원 총리가 조용히 국내에 입국했다는 걸 들었을 게다. 당연히 그가 협상 책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더구나. 웬 시커먼 놈이 옆에 서 있는데 그의 눈치를 보더라 이 말이다.”

국무원 총리면 중국 서열 3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경호원으로 보이는 자의 눈치를 봤다는 아버지의 말에 이지혜의 말이 사실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 대기하고 있는 현지에게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야?”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저번에 봤던 서창렬에게 살짝 못 미치는 정도로 보여요.”

“들켰어?”

“저는 들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부하들은 모두 들켰어요.”

“홉일이도?”

홉일이는 요즘 그 성장세가 정말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히드라와의 전투에서는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 어떻게 된 일인지 명철 아저씨조차도 홉일이를 찾아내는 것에 애를 먹을 정도였다.

“네. 바로 들키지는 않았는데 협상 중간에 찾아낸 것 같더라고요.”

“확실해?”

“홉일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곤 깜짝 놀라던데요?”

“허허허.”

현지의 말에 아버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셨다.

“대단하더구나. 강압적으로 나오던 녀석들이 갑자기 저자세로 태도를 돌변하더라 이 말이지.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단다.”

“그, 그런가요? 하하하.”

처음으로 소환한 몬스터들을 칭찬하시는 아버지를 보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뭐랄까? 뿌듯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아마도 그놈들은 최후에는 나를 인질로 잡을 생각이었던 것 같더구나. 그런데 생각보다 강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세를 낮춘 게지.”

“너 생각은 어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면으로 싸우면 반반? 기습이라면 어렵진 않을 것 같아요.”

“허허허. 현지가 아주 많이 변했구나. 처음 봤을 때는 울보였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꼬?”

“회장님!”

현지를 놀리는 아버지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건 그렇고 현지 이것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파악이 안 된단 말이야?

최강준조차 암살이 가능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급히 생각을 지워버려야 했다.

현지는 지금 내가 가진 가장 강한 패였다.

설령 최강준을 암살하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실패를 염두에 둬야 했기에 함부로 실행할 수 없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현지를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 * *

“상무님!”

“어?”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지안의 모습이 보였다.

“회장님이 찾으세요.”

“그, 그래.”

지금 나는 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오늘이 바로 수아의 입학식이었는데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뭐야? 혹시 아버지가 대한민국의 국왕이라도 되나?

내 생각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이곳은 분명 초등학교였다.

그런데 왜 내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자들뿐일까?

우리나라 요직에 앉아 있는 자들 대부분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황태자 책봉식이라도 되는 것 같은 모양새에 황당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저건 도대체 뭐야?

여기가 무슨 파티장이야?

운동장의 잔디 위에 늘어져 있는 수많은 테이블과 그 위를 장식하는 음식들은 이곳을 파티장으로 만들기 충분해 보였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건 도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입학식을 치르는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이 많은 사람을 무슨 생각으로 부른 거야?”

“회장님이 초대하신 분들은 열 분 정도일 걸요?”

“뭐? 그럼 이 사람들은 다 뭐야?”

“부르지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온 거겠죠. 회장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기도 할 테고 또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이런 자리가 흔한 것도 아니니까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지안의 설명을 듣던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연합이 깨지면서 이쪽으로 붙은 자들에게 이 자리는 많은 기회를 제공할 테니까.

“아빠!”

환한 미소로 나를 부르는 수아에게 다가가려던 나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뭘 저렇게 잔뜩 들고 있는 거지?

가까이 다가간 나는 수아가 들고 있는 것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돈이었다.

대충 봐도 수백은 가볍게 넘어갈 것으로 보이는 수표 다발.

“수아야 이건 어디서 났니?”

“아저씨들하고 아줌마들이 용돈을 잔뜩 줘 써요!”

“뭐하다 이제 왔느냐? 너 때문에 사진도 찍지 못하고 기다렸지 않느냐!”

“화장실에 좀 다녀왔어요.”

아버지는 심기가 살짝 불편하신지 호통을 치셨는데.

아마 놓치고 있던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실 거다.

그건 바로 수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수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사직을 좀 찍어야 하니 자리를 좀 마련해 주게.”

“네. 회장님.”

김 실장에게 지시를 내리자 경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우리의 가족사진 촬영을 시작했는데.

“현지 언니하고 지안이 언니도 가치 찍으면 안 돼요?”

수아의 말에 아버지는 아차 싶었는지 급히 입을 열었다.

“허허허. 우리 수아가 할애비보다 낮구나. 당연히 그래야지. 김 실장도 이리 오게.”

“현태야, 너도 이리와.”

뭐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다 같이 찍자는 마인드로 현태도 불렀다.

그런데…….

“당신도 이리 와.”

“어머! 그래도 돼요?”

형이 누군가를 부르기에 고개를 돌렸더니 익숙한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물음을 던지며 형이 아닌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는 여성.

바로 형의 연인인 김신혜 씨였다.

“크흠. 그렇게 하려무나.”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얼른 형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형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자 찍겠습니다!”

플래시가 터지고 그렇게 유명일가의 새로운 가족사진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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