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큭!”
인피니티 링에 저장해둔 마력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을 통해 균열에 흡수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인피니티 링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이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낀 나는 등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섬뜩한 감각을 느껴야 했다.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렸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고.
하지만 내 의지를 무시하는 인피니티 링의 마력.
“지금 이 마력 도련님의 마력이에요?”
마력의 움직임을 느낀 현지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목격한 것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현지뿐만 아니라 지안이와 고블린들 뚱이, 샤벨까지도 날 보며 놀라워했다.
거대한 마력의 움직임.
내가 지금껏 인피니티 링에 저장해둔 마력의 양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링 속의 마력이 한꺼번에 터지면 작은 도시 정도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정도였기에 지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양은 엄청나다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규, 균열이…….”
지안의 떨리는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려 균열을 향하자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붉은색을 띠는 균열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의 파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뚱이를 소환할 때조차 빛을 뿜어내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균열의 의지가 지금 나오려는 존재를 막기 위해 마력을 빼앗아 가는 것만 같았다.
“크르르르~”
샤벨과 고블린들이 균열을 바라보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며 마력을 잔뜩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뚱이만이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소환해서는 안 될 것을 소환하고 있는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필사적으로 마력을 차단하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균열의 울렁임이 갑작스럽게 멈추며 처음 보는 괴생명체가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링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 역시도 더는 빨려 들어가지 않았고.
촉수?
그랬다.
튀어나온 것은 기다란 촉수 같았다.
끝에 성인남성의 주먹만 한 눈이 튀어나와 있는.
이어서 하나의 촉수가 또 튀어나왔고.
계속해서 촉수가 튀어나오며 수를 늘려갔다.
수가 열을 넘어설 때쯤 한 번에 수십 개의 촉수가 균열을 통과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30여 개 정도 되어 보이는 촉수들은 이곳을 살피듯 이리저리 움직이다 나를 발견하고는 촉수 끝에 달려 있던 모든 눈을 나에게로 향했다.
순간 나에게 모이는 많은 시선에 섬뜩함을 느낀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미동조차 없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꺄아악!!”
어느새 균열 속에서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존재 덕분에 현지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안은 두려움에 먹혀 버렸는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것 같지만, 현지는 달랐다.
그 괴상한 모습에 혐오감 가득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균열에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정말 흉측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괴상했다.
둥그런 몸체.
한쪽 면을 전부 차지하는 커다란 눈.
마치 머리카락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십 개가 넘는 촉수를 넘실거리며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은 마치 게임 속에서나 보던 비홀더를 연상시켰다.
솔직히 너무 징그러웠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였기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고 고개가 그 존재를 피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갔다.
“머, 멈춰!”
보이지 않음에도 괴생명체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나는 큰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내 명령이 먹히는지 다가오던 괴생명체가 자리에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안심한 나는 심호흡을 한차례 한 후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돌려 그 존재를 직시했다.
“도, 도, 도, 도, 도련님 저, 저게 무, 뭐에요?”
“몰라 나도.”
나도 모르는 존재.
저런 존재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게임 속이나 소설 속이라면 모를까 지구에 열린 균열에서도 어비스에서도 저런 존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계속해서 침을 삼키던 나는 내 소환수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뚱이를 제외한 고블린들과 샤벨은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벌벌 떨고 있었는데.
뚱이만 태연했다.
호승심이 느껴지는지 예의 그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귀…….”
지안의 말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귀?
“귀여워~!”
뭐……라고?
방금 내가 귀엽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상무님! 저 애 제 부하 시켜주세요.”
혹시 공포감에 미쳐 버린 걸까?
나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지안의 모습에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란 의심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것 같았는데?
“쭈쭈쭈. 착하지~ 이리와!”
지안은 마치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목격한 새끼고양이를 부르는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괴생명체는 지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그 큰 몸을 대각선으로 기울이곤 촉수들의 움직임을 멈춘 채로 지안의 움직임을 살필 뿐이었다.
“지안아! 그만해!”
현지가 속삭이듯 힘있게 말하며 지안을 말려보았지만, 지안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이제는 아예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박수까지 쳐가며 괴생명체를 부르기 시작했다.
“괜찮아. 겁먹을 거 없어.”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때 괴생명체가 천천히 지안을 향해 다가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둥실 떠오른 상태로 천천히 이동하는 괴생명체를 보던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괴생명체가 지안의 곁에 도착하자 지안이 몸을 일으키며 괴생명체의 ‘턱?’을 쓰다듬으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무님. 이 아이에게 이름을 좀 지어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으, 응? 그래. 마음대로 해.”
소환한 나조차 다가가기가 껄끄러울 정도로 기괴하게 생긴 녀석에게 이름까지 지어주고 싶다는 지안이 솔직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런 특이한 걸 좋아하나? 설마 부하가 가지고 싶어서 모두 감수하고 있는 건가?
“왕눈이 어때요?”
“왕……눈이라고?”
“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안 어울리는 모순된 이름이었다.
다만 앞으로 왕눈이가 될 녀석은 이름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촉수를 활발하게 움직이며 기뻐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지안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왕눈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왕눈아!”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왕눈이가 튀어나온 순간 느껴져야 했을 연결이 느껴지지 않았었기에 좀 당황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안정되어서인지 왕눈이와 내가 연결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된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왕눈이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얘는 마석을 어떻게 먹이지?”
아무리 찾아봐도 입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아 의문이 들었다.
일회용인가?
“현지야, 가서 마석 좀 가지고 와봐.”
“네? 네!”
내 등 뒤에 숨어서 벌벌 떠는 현지는 내 말에 대답한 후 허공에 몸을 녹이며 사라졌다.
딱히 은신할 필요는 없을 텐데?
현지가 사라지자 왕눈이의 촉수 중 몇 개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게 보였다.
마치 은신한 현지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마?
촉수의 끝에 달린 눈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밖으로 통하는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 보였다.
정말로 은신한 현지를 볼 수 있는 거야?
놀라웠다.
정확한 측정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현지의 수준은 아마 못해도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각성자 중 열 손가락 안에는 충분히 들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간파할 수준이라고?
아니 간파가 아니라 그냥 보이는 것 같았다.
“왕눈아?”
왕눈이라는 말을 하자 녀석도 자신의 이름이 왕눈이라는 것을 아는지 나에게 커다란 눈동자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혹시 방금 현지가 보였어?”
삐-
“응?”
순간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삐- 소리와 함께 긍정이라는 정보가 머릿속으로 주입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텔레파신가?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상무님 왜 그러세요?”
“왕눈이가 텔레파시를 쓰는 것 같아서.”
“정말요?”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능력자가 있긴 있었다.
수가 많진 않지만…….
“그런데 좀 다르네. 왕눈이는 그냥 자기감정? 같은 걸 주입하는 것 같아.”
“감정이요?”
“어. 그냥 삐- 하는 소리에 감정을 실어서 보내는 것 같아.”
“왕눈아 나한테도 보내줘!”
지안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왕눈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련님. 여기 마석이요.”
어느새 마석을 가져온 현지는 나에게 마석을 건네곤 곧바로 몸을 숨겼다.
그런다고 왕눈이가 안 보이는 건 아닐 텐데?
“왕눈아. 너 이거 먹을 수 있어?”
왕눈이에게 다가간 나는 마석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내 말에 가만히 손에 들린 마석을 보던 녀석의 커다란 눈의 중심부에 실금? 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점차 굵어지던 선을 의아하게 보던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열렸어?
날카로운 이빨을 품고 있는 입이 눈 안쪽에 숨겨져 있다는 말이었다.
“히익!”
어디선가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현지 역시도 왕눈이의 기괴한 모습에 놀란 모양이었다.
“상무님 뭐 하세요? 왕눈이 기다리잖아요.”
“어? 어. 그래”
오직 지안이만 태연함을 유지했다.
나는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마석을 녀석에 입속에 넣어주며 한 발짝 물러났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은데?
설마 이놈이 말로만 듣던 악마종이란 괴물인가?
어비스가 열리고 나타난 새로운 괴물.
심연 가장 깊숙한 곳에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진 악마종은 가장 약한 개체조차 S급에 랭크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녀석들.
장기는 물론 뇌조차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상한 생명체들이 바로 악마종이었다.
물론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악마종이 출현하면 일단 주변 일대의 모든 생명체의 씨가 말라버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녀석이었으니까.
거기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과 교활함을 가진 개체도 있었는데.
솔직히 이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악마종이라는 것 그 자체였다.
이 존재들을 악마종이라고 규정한 진짜 이유는 그 존재들이 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 * *
“도련님 도저히 안 되겠어요!”
“뭐가?”
“제 부하들을 그 추악한 존재와 함께 둘 수 없다고요!”
현지는 왕눈이를 본 후부터 내가 알던 현지와는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껏 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던 현지였기에 왕눈이 때문에 떼를 쓰는 듯한 지금 현지의 모습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블린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자고?”
“네! 그거예요.”
“그냥 네가 왕눈이를 보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네?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제 부하들이 걱정되는 건데요?”
속마음을 들켜버린 현지는 당황해서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 내 메이드잖아.”
“그렇죠.”
“그럼 어차피 나 따라다닐 거고?”
“네.”
“나는 왕눈이한테 매일 갈 건데?”
“네? 저, 정말요?”
멍청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현지의 모습에 문득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라. 그냥 왕눈이가 보기 싫다고.”
내 말에 우물쭈물하던 현지는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네. 솔직히 말하면 저 그 괴물 싫어요.”
“왜? 징그럽긴 하지만 가디언으로 살면서 그런 건 진작에 이겨냈잖아?”
가디언이란 존재는 처음부터 가디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들은 각성을 통해 힘을 얻고 경험을 통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게 훈련받은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몬스터의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무기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도망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가 걔 생긴 것 때문에 이러시는 것 같으세요?”
“아니란 말이야?”
“당연하죠.”
“그럼 왜 그러는데?”
“도련님은 그 괴물을 소환하신 당사자라 못 느끼시는 것 같은데 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고요!”
누구나 그 모습을 보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처음 균열에서 모습을 온전히 들어냈을 때 전 분명히 느꼈다고요. 공포심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공포심을 자극했다고?”
현지의 말에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회귀 전 악마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분명 현지가 말한 공포심을 자극한다던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고양이 앞에 선 생쥐가 된 기분이라고 했던가?
설마 진짜 악마종이란 말이야?
“그럼 지안이는 뭔데?”
솔직히 말하면 인정하기 싫었다.
악마종이라는 존재는 인류의 재앙 중 하나였으니까.
“저도 처음에는 지안이의 반응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현태나 걔 부하들이 그 괴물을 보는 걸 보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뭘?”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면 그 괴물의 흉악함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걸요.”
강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근데 그럼 뚱이와 다른 애들의 반응이 반대였어야 되는 거 아닌가?
“너 그냥 왕눈이 징그러워서 그러는 거지? 솔직히 말해라.”
“아니라고요! 제 수준의 각성자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면 다 저랑 비슷한 반응을 보일걸요?”
“그럼 명철 아저씨 부른다? 아니면 진짜 각오해라. 알았어?”
“네.”
일단 명철 아저씨도 최상위권 가디언이니까 확인은 가능할 거다.
“나중에 우기지 마라. 만약 명철 아저씨가 아니라고 하면 너 왕눈이랑 대련시킬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