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왕눈이와 마주한 명철 아저씨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현지보다 더욱 심한 반응을 보이셨는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굳어버린 명철 아저씨는 결국 실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한참을 굳어 계시던 아저씨는 정신을 차린 후 난리를 치셨다.
저 괴물을 당장 없애버리라고.
아저씨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나로서는 정말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새끼가 된 듯하더구나. 저건 너무 위험해. 마력을 끌어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아저씨는 현지와는 약간 달랐다.
현지는 그래도 아저씨보단 괜찮았으니까.
“현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그 아이는 이미 내 수준을 넘어섰으니까.”
아저씨의 말대로라면 지금 아저씨의 위치는 S급 상위.
현지는 S급 최상위였다.
후에 조정될 등급으로 생각하면 아저씨는 S급의 경계에 해당할 거다.
아저씨가 돌아간 후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왕눈이의 무력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지는 공포감은 들지만, 왕눈이에게 꼼짝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곧바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현지 vs 왕눈이.
이 넓은 공간에는 지금 나와 현지, 뚱이, 왕눈이뿐이었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몰랐기에 고블린들과 샤벨 그리고 지안까지도 자리를 피한 상태였다.
현태와 그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전투를 관리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도련님, 정말 해요?”
“부탁 좀 할게.”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해요?”
“서로 다치지 않을 정도?”
현지는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단검을 꺼내 들었다.
히드라의 이빨로 만들어진 단검을.
왕눈이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런 현지를 주시하고 있었고.
“시작해!”
내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자 현지가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왕눈이는 현지의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촉수들을 빠르게 움직이며 현지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쾅!
조용히 왕눈이를 주시하던 그때 굉음이 울리며 왕눈이의 뒤쪽에 현지의 모습이 드러났다.
단검을 찌르는 자세로 멈춰 있는 현지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았다.
염력인가?
잠시 후 모습을 다시 감춰버린 현지와 빠르게 움직이는 왕눈이의 촉수들.
쾅- 쾅- 쾅-
굉음이 연속적으로 울리며 왕눈이의 주변에서 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분신술을 쓰기라도 하는지 여러 곳에서 동시에 모습을 보이는 현지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왕눈이의 앞, 뒤, 측면에 동시에 나타나 공격하는 현지의 모습.
지금 내가 왕눈이를 테스트하는 건지 현지를 테스트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현지는 굉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왕눈이는 여유롭게 촉수의 절반만을 사용해 현지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상태가 유지되었을까?
굉음이 멈추고 침묵만이 흐르던 그때 내 앞에 현지가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계속해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주자 현지는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힘을 조금 더 써 볼까요?”
현지의 말을 들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가볍게 말하는 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조금 말고 많이도 되냐?”
“많이요? 그러다가 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처음과 달리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현지는 왕눈이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았는데.
마력이 육체만 보호해 주는 게 아니라 정신도 보호해 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걱정하지 마. 왕눈이도 여유로워 보였으니까.”
“그럼 다시 시작할게요.”
처음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던 것과 달리 현지는 신나 보였다.
은신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모습을 감추지 않은 채 자세를 잡는 현지를 보며 조금 긴장한 채로 눈을 부릅떴다.
둘 중 하나는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꽝-
조용히 지켜보던 그때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커다란 굉음이 울리며 현지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급히 고개를 돌리자 왕눈이의 앞에 막혀 있는 현지의 모습이 보였는데.
조금 전과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현지의 위치가 전보다 더욱 근접해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단검이 왕눈이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왕눈이 역시 전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모든 촉수가 방어하듯 촉수 끝에 달린 모든 눈을 현지에게 향하고 있었다.
잠시 후.
“허!”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현지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기 때문이다.
처음 현지가 왕눈이를 공격할 때만 해도 서넛으로 보였던 현지가 지금에 와서는 십여 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점차 속도를 올리기라도 하는 건지 현지의 잔상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왕눈이에게 상처를 입힐 거리까지도 접근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만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쿠웅-
입을 열려는 찰나 왕눈이가 불길해 보이는 거대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흐읍!”
현지 역시도 거리를 벌리고는 기합을 내지르며 마력을 끌어올렸는데.
쾅-
어디선가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뚱이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 뚱이를 짓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력을 조절하는 건가?
“쿠어~”
이후 뚱이는 마력을 뿜어내더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짓누르는 무언가에서 벗어나 바닥에 앉더니 다시 구경하기 시작했다.
기본 베이스가 힘인 녀석이었기 때문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현지도 그럴 수 있을까?
현지의 기본 베이스는 속도였다.
당연히 뚱이처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마력을 잔뜩 주입한 단검을 양손에 하나씩 쥔 현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허공을 베어내며 왕눈이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공간을 베어내는 것 같았다.
공간? 아니 마력을 베어내는 건가?
그건 그렇고 저게 암살자 특성이 맞는 거야?
투사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투기를 발산하며 전투를 벌이는 현지를 보자 황당함이 몰려왔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하긴 은신이 안 통하니 현지도 어쩔 수 없겠지…….
점차 가까워지는 현지를 주시하던 왕눈이의 작은 눈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힘을 합치려는 듯 모여든 작은 눈들이 옅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마치 유리를 긁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현지의 전진이 멈춰버렸다.
아직 현지에게도 무린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만 중지하려던 그때 내 귓가로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흐읍!”
현지가 숨을 삼키는 소리였다.
쩡!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멈춰 있던 현지가 순식간에 치고 나가 왕눈이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만!”
거리낌 없이 손에 쥔 단검을 내지르는 현지를 보며 다급해진 나는 급히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는지 현지의 단검이 왕눈이의 눈과 1~2c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분명 현지는 내가 멈추지 않았으면 왕눈이의 큰 눈에 단검을 쑤셔 박았을 거다.
현지의 분위기를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리라.
“아오!”
그 정도로 현지의 지금 표정은 안 좋았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중간부터 현지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는데.
전진이 힘들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래?”
왕눈이에게 등을 돌린 채 나에게 다가오는 현지는 고운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겨놓고 왜 그러는 거야?”
“제가 이겼다고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쟤가 나를 가지고 놀았다고요!”
현지의 화난 목소리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긴장감 넘치는 전투였으니까.
“무슨 소리야?”
“쟤, 힘을 숨기고 있다고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싸워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정말이야?”
“네. 분명 마지막 벽에 막혔던 그때 작은 눈들이 뭔가를 하려고 했어요. 갑자기 멈췄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허공에 둥둥 떠서 느릿하게 다가오는 왕눈이를 보며 물었다.
“왕눈아, 현지 말이 사실이야?”
삐-
왕눈이에게서 긍정의 텔레파시를 받은 나는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어?”
내 물음에 왕눈이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촉수 중 하나를 길게 빼고는 바닥을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잉-
순간 작은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광선.
마치 레이저라 불리는 것을 떠오르게 만드는 그 광선을 봄 나와 현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헉!”
그 작은 광선에 집약된 마력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속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빛난다 싶은 순간 이미 강철로 만들어진 바닥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는 것을 본 나는 천천히 다가가 구멍의 깊이를 확인했다.
어이가 없었다.
1초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 바닥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구멍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현지야 너 저거 방어할 수 있어?”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어요.”
“피하는 건?”
“가능은 할 거 같긴 한데요…… 대련 도중에 갑자기 쐈으면 못 피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현지가 저 광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몰랐다면?
아마 현지의 몸에 새로운 구멍이 하나 생겨났겠지.
“쿠어!”
“응?”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뚱이가 쿵쾅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넌 또 왜?”
“쿠워~ 쿠악!”
내 말을 무시한 뚱이는 왕눈이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 같이 행동했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건가? 어?
왕눈이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 같던 뚱이는 갑자기 거리를 벌리고는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왜 저래?”
“제가 어떻게 알아요?”
내 혼잣말에 대답하던 현지는 뭔가를 깨닫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혹시 자기도 싸워보고 싶다는 게 아닐까요?”
뚱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떠올린 순간 말렸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잉-
이미 늦어버렸다.
왕눈이의 작은 눈에서 보랏빛 레이저가 발사된 후였으니까.
뚱이를 향해.
“와!”
현지의 감탄을 들으며 나 역시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왕눈이의 레이저가 뚱이의 마력을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잉- 지잉- 지잉-
왕눈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뚱이를 향해 여러 발의 레이저를 동시에 발사했지만 뚱이의 마력을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서 중력을 사용해 뚱이를 눌러보기도 하고 모든 촉수를 이용해 동시에 레이저를 발사하기도 했지만, 그 무엇도 뚱이의 방어를 뚫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 커다란 눈을 벌려 뚱이를 씹어 먹으려고까지 했는데 뚱이의 양손에 잡혀 그것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와! 저 돼지는 도대체 얼마나 튼튼한 거예요? 이 정도면 히드라는 이제 상대도 안 되겠는데요?”
“그러게?”
뚱이의 성장 속도는 예전 내가 알던 뚱이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마력친화력이 9인 지안이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기에 많이 놀라는 중이었다.
물론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와 매일 치고받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현지 같은?
“응?”
“엑?”
왕눈이가 촉수를 움직여 나와 현지를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마치 자리를 피해달라는 듯이.
왜 저러지?
걸음을 옮겨 거리를 살짝 벌리자 왕눈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쟤 진짜 열 받았나 봐요? 저 큰 눈에 실핏줄 올라온 거 보세요.”
“진짜네?”
티 한 점 없던 큰 눈동자에 실핏줄이 잔뜩 올라온 것이 보였다.
이어서 왕눈이는 촉수에 달린 작은 눈으로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감싸는 이상한 모습을 취했다.
마치 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해바라기의 꽃잎처럼 커다란 눈을 둘러싼 작은 눈들이 커다란 눈의 눈동자 바로 앞의 한 점에 동시에 레이저를 발사했는데 그 모습을 본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한 점에 모이는 보랏빛 광선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엄청난 속도로 증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 저거!”
“크왁?”
뚱이도 그 흉악한 마력을 느꼈는지 잔뜩 당황한 상태로 모든 마력을 끌어올리곤 양팔을 교차시켜 막을 준비를 했지만 아무리 봐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저걸 발사하면 뚱이의 존재가 지워지리라.
이어서 왕눈이의 커다란 눈동자에도 마력이 어리기 시작했는데 그걸 느낀 나는 급히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머, 멈춰! 왕눈아 그만!”
내 말을 들은 왕눈이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멈추었다.
그 모습에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왕눈이의 촉수 중 하나가 빠르게 움직였는데.
퍽-
뚱이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고는 등을 돌려 텅 빈 곳을 유유히 떠다니기 시작하는 왕눈이를 보며 뚱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뚱이야. 앞으로 쟤한테 까불지 마라. 잘못하다간 골로가겠다.”
“킥킥킥.”
뚱이도 많이 당황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현지는 그 모습을 보며 웃기 바빴고.
“그나저나 방금 그거 뭐냐?”
이놈은 도대체 능력이 몇 개나 되는 거야?
염력과 텔레파시에 중력조절까지 거기다 현지의 은신을 꿰뚫어 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마지막으로 레이저까지 하면 총 5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게 끝이 아닐 거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