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214)

선화제약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었다.

은밀히 소문을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라 판명이 났다.

거기다 새로 설립하려는 회사의 대표가 민선화가 되리라는 것이라는 것까지 확인이 끝난 상태였다.

이 말은 생체갑옷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기존에 생각하던 것보다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무엇이 그들의 움직임을 가속시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슬라임 결정의 확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전이 없기 때문이겠지.

당연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 쪽은 대부분이 이쪽과 독점으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많이 당황하고 있을 거다.

아마 계약을 한 당사자를 찾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겠지.

“어찌 알았느냐?”

“말씀드렸잖아요. 감이라고.”

“이 아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아버지는 내가 슬라임 결정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을 알고 나에게 물음을 던지신 적이 있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나는 그냥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도움을 주시면 훨씬 수월하게 내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해외의 슬라임 결정은 대부분 이쪽이 차지할 수 있었다.

“슬라임 결정을 보는 그녀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니까요? 아마 아버지도 그 모습을 보셨으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솔직히 억지였다.

아무리 감이 좋은 사람이라도 눈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도대체 어떤 눈을 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보석? 보물? 뭐 그런 걸 보는 눈빛이더라고요. 그녀 정도 되는 여자가 별것도 아닌 슬라임 결정을 그렇게 귀하게 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죠.”

내 말에 아버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곤 입을 여셨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우선 만나 보려고요. 약속 좀 잡아주세요.”

“약속을 잡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쪽에서 많이 서운해할 거다.”

유명과 선화의 관계는 다른 기업들과는 다르게 친밀함을 유지 중이었다.

이번 일로 인해 그 관계가 살짝 어긋날 가능성이 있어서인지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과 이쪽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 테니까요.”

“자신하지 말 거라. 기업 간의 거래는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물론 서로에게 좋은 거래를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어. 그것이 바로 재벌이란 것들의 자존심이란다.”

“명심할게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감을 너무 믿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지금이야 잘됐으니 다행이지 너의 생각이 틀렸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게다.”

“네.”

아버지나 형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미래를 겪었다는 걸.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제약이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불길함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그래 약속은 언제가 좋겠느냐?”

“저야 빠를수록 좋죠. 요즘 많이 바쁘거든요.”

“허허허. 네 입에서 바쁘다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이야. 기분이 나쁘지는 않구나.”

아버지는 기분이 정말 좋으신지 웃음을 터뜨리셨다.

예전의 아버지는 잘 웃지 않으셨다.

아니 웃음이 없으셨다는 게 맞는 말일 거다.

수아가 온 뒤로 웃음이 많아지시긴 했지만, 그것도 수아가 있는 자리에서뿐이었다.

그 외에는 거의 웃지 않으셨던 아버지였는데.

지금의 아버지를 보니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보기 좋으세요.”

“그러냐? 다행이구나. 요즘 말썽을 부리는 것들이 사라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 그런가? 살맛이 좀 나는 것 같구나.”

아버지가 말하는 말썽을 부리는 자들은 아마 중국과 화랑 길드 그리고 작은아버지일 거다.

거기다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이는 나까지.

그렇다고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머지않아 그 날카로운 이빨을 다시 들이밀 테니까.

물론 작은아버지는 빼고.

그는 지금 현세에 존재하는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었으니까.

“이만 나가 볼게요.”

“기다리거라. 아직 이 아비의 용건은 끝나지 않았어.”

그만 일어나려던 나를 붙잡는 아버지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따로 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네?”

“명철이에게 들어보니 특이한 걸 하나 소환한 모양이더구나.”

“아. 왕눈이요?”

“왕눈이? 그놈 이름이 왕눈이더냐?”

“네. 지안이가 지었는데 괜찮은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요.”

“이름만 들어보면 흉악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구나.”

왕눈이라는 이름은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것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왕눈이가 개명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긴 하죠? 혹시 보셨어요.”

“그래. 영상을 좀 봤는데 정말 특이하더구나. 그런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신기하더구나. 아니, 그게 생명체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더구나.”

왕눈이에 대해 살펴본 결과 정말 특이한 것이 하나 발견되었다.

바로 그 커다란 입안에 날카로운 이빨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장기나 심장 심지어 뇌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몸속이 텅텅 비어 있다는 것.

“좀 그렇죠?”

“지금껏 네가 소환했던 녀석들은 그래도 상식이 통했지만, 왕눈이란 녀석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특이한 존재라는 걸 명심하고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왕눈이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저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너무 믿지는 말 거라.”

“네. 그럴게요.”

아버지에게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그건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나와 소환수의 연결은 아버지 생각만큼 그렇게 호락호락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 * *

“오랜만에 뵙네요. 반년만인가요?”

오랜만에 본 민선화에게 반갑게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머! 그런가요? 저는 요즘 선우 씨를 자주 뵌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네?”

“요즘 핫하시잖아요.”

언론에 자주 언급이 되는 걸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요즘 나는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다.

물론 이쪽에서 작업을 들어간 영향이 크긴 하지만.

“일단 앉으시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선화에게 자리를 권했다.

“정말 놀랐어요. 각성하셨다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었거든요.”

선화가 나를 보는 시선은 부러움을 포함하고 있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그녀가 나를 부러워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가디언.

그녀는 가디언에 대한 이상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가 메이드에 집착하는 것처럼 그녀도 가디언에 심한 집착을 보인다는 건 나와 같은 미래를 살았던 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언론에 공개된 내 영상을 본 걸까?

“운이 좋았을 뿐이죠.”

“설마요? 영상 속의 선우 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그런 소리 못 할걸요?”

“하하.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까?

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포기 했었지만, 선우 씨 덕분에 저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선화를 보던 난 그런 결정을 내린 그녀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그녀의 재능은 솔직히 말하면 쓰레기였다.

특성은 괜찮았지만, 그녀의 마나 친화력은 어떻게 각성을 했는지조차 궁금해질 정도로 별 볼일이 없었으니까.

“그런가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저를 보자고 하셨어요?”

대뜸 본론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마음의 준비를 한 나는 약간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번에 선화 제약에서 새로운 사업체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혹시 그 회사에 제 지분을 만들 수 있을까 해서요.”

“지분이요?”

“네.”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뻔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작게 시작할지도 몰랐지만, 앞으로 몇 년, 아니, 1년만 지나도 선화제약에 버금가는 크기로 성장이 가능할 테니까.

지금 설립될 회사가 선화 계열사 중 맨 꼭대기. 그러니까 지주회사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 겁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설마 이 일 때문에 저를 만나자고 하신 건가요?”

순식간에 표정을 돌변해 나를 노려보는 그녀는 전과는 완전히 딴 사람 같아 보였다.

아마 내가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선우 씨에게 정말 실망이네요.”

“제 제안이라도 좀 들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녀가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로선 선우 씨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선화는 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보통 재벌들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비상장 주식을 사들이는 이유는 상속세 때문이었다.

비상장 주식을 사들여 후에 상장했을 때 수십 배로 불리는 방식을 취해 상속세를 버는 게 일상적이었으니까.

아마 내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진짜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리라.

아니 비밀을 안다면 더 큰 화를 내려나?

“저도 이런 방법을 취하게 되어서 정말 유감입니다.”

“혹시 이미지 때문인가요?”

유명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선화의 생각은 충분히 타당했다.

하지만.

“슬라임 결정.”

내 입에서 나온 슬라임 결정이라는 말을 들은 선화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뭐, 뭐라고요?”

“이래도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 그게 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선화였지만 이미 당황한 티가 잔뜩 나고 있었다.

“모르세요? 슬라임 결정을?”

“알긴 하는데 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죠?”

내 물음에 침착함을 되찾은 선화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정말 모르세요? 그쪽에서 이번에 개발 중인 것과 연관이 있을 텐데요?”

“그, 그걸 어떻게? 설마?”

아마 그녀는 스파이란 것을 떠올렸을 거다.

“스파이를 심은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그게 아니고서야 방법이 없을 텐데요?”

그녀는 선화 쪽 사람 중에는 정보를 팔아넘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게 통하려나 모르겠네?

사실 아버지와 형도 믿어주긴 했지만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감추지는 않았었다.

“저와 선을 보셨을 때 기억하세요?”

“네.”

“그때 슬라임 결정 요리가 나왔을 때 선화 씨가 좀 이상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제가요?”

“네. 마치 아주 귀한 보석을 보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이시더군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냥 슬라임 결정 요리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큰 소리를 내는 선화를 보며 침착함을 유지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선화 씨 같은 분이 그 요리를 자주 먹지 못할 이유가 없음에도 보이는 반응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였죠.”

“겨우 그걸 가지고…….”

“운이 좋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그때는 제가 아직 망나니 기질을 벗지 못했던 때라 궁금한 건 그냥 넘어가질 못했거든요.”

차가움을 넘어 살기를 담아 나를 노려보는 선화를 보자 목이 말라왔다.

찻잔을 들어 차를 조금 머금어 목을 축인 나는 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였어요. 그냥 장난삼아 조사를 시켜본 것뿐인데 이상한 게 걸려 나오지 뭡니까? 분명 선화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이름의 연구소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선화 쪽에서 구매한 슬라임 결정이 이상한 방식으로 들어가더군요. 아주 비밀스럽게 말이죠.”

“그래서요?”

선화는 그래서 어쩔 거냐는 듯 나를 보며 당당하게 물어왔다.

이미 모든 게 끝난 지금에 와서 당신이 뭘 할 수 있냐는 듯이 말이다.

결정타를 날릴 때가 온 건가? 요즘 악당이 된 기분이 자주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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