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214)

“선화 씨 혹시 요즘 슬라임 결정의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구하기도 좀 어렵고.”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는 선화가 놀라며 물었다.

“설마?”

“네. 저희 쪽에서 미리 선점을 좀 했습니다.”

“정말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요? 유명이 뭐가 부족해서 저희 것까지 눈독을 들이시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네요!”

드물게 흥분한 티를 내는 그녀를 보며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털어놓는 게 이번 협상을 좋게 풀어갈 열쇠라고 생각했으니까.

“죄송합니다. 다만 꼭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낀 일이었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저 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그냥 밀어붙여도 저쪽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까.

다만 저쪽이 작정하고 시간을 끌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슬라임 결정의 유통기한이 무한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저희 선화가 크는 것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건 아니고요?”

그녀는 화가 잔뜩 나서는 나를 보며 비아냥대듯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선화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요.”

내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쉰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쪽에서 연구하는 물건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각성자 전용 무구가 아닌가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획기적인 물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죠.”

“흥! 그래서요?”

코웃음 치는 선화의 화는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약간의 지분과 그쪽에서 출시되는 물건의…….”

“독점권과 유통을 원하신다고요?”

내 말을 끊으며 들어오는 선화를 보며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솔직히 저게 가장 베스트였으니까.

“아니요. 저희는 홍보를 위한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에 대한 우선권을 원합니다.”

“우선권이라면?”

깜짝 놀라는 그녀를 보며 이제 좀 화가 풀리려나 싶었다.

독점권과 우선권은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좀 다른 의미의 말이었다.

독점권은 독점계약을 체결한 업체 이외의 업체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의미이지만, 우선권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상황이나 계약조건에 따라서는 같은 말이 될 수도 있었지만, 똑똑한 그녀가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저희 유명 쪽에 먼저 공급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는 거죠.”

“비율은요?”

역시 가디언이 될 재능과 다르게 이쪽으로는 계산이 빠른 여자였다.

“저희가 원하는 건 국내에 풀릴 물건의 80%입니다. 물론 저희 길드 쪽에 제품이 어느 정도 풀렸다 생각되면 비율은 점차 낮출 생각이고요. 물론 가격은 시중에 풀리는 금액에 맞춰 드릴 겁니다.”

“80%요?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전체가 아닌 국내에 풀릴 제품의 80%입니다. 만약 이 조건을 수락하신다면 제품을 테스트할 샘플도 저희가 구해드리죠.”

샘플이란 말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샘플이라면 임상시험 대상자를 구해주신다는 말인가요?”

“네.”

“혹시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물건은 마력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런데도 임상시험 대상자를 구해주시겠다는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죠?”

“물건을 넘겨주시면 저희 쪽에서 테스트를 해보고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에게도 비밀이라는 것이 조금 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설마?”

그녀는 우리가 생체갑옷을 분석해 훔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선화 쪽에 뚱이나 고블린들을 보여줄 수가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마 저희가 그런 짓까지 벌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것이 가능한 제품이었다면 선화 쪽에서 이렇게 몰래 움직이시지도 않으셨겠죠.”

“혹시 모르죠. 유명의 기술력이라면 가능할지도.”

“농담이시죠?”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어서 물음을 던졌다.

“일단 그건 넘어가기로 하죠.”

“네. 혹시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신가요?”

“그럼 비율을 낮춘다는 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쪽에 어느 정도 보급이 끝나면 많은 양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기껏해야 10% 미만일 겁니다. 아! 물론 신제품의 경우에는 처음 제시했던 조건으로 거래를 해 주셔야 합니다.”

“조건은 마음에 들긴 하네요. 하지만 알고 계시다시피 제가 이 일의 책임자가 아니라 확답을 드릴 수는 없어요.”

이제 좀 화가 풀렸는지 굳어 있던 표정이 점차 풀어지기 시작하는 선화였다.

“화가 좀 풀리셨나요?”

“네? 그, 그게…….”

선화는 살짝 당황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하하하. 선화 씨가 이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 저 놀리세요?”

새침한 표정을 짓던 선화는 이어서 나에게 물어왔다.

“그런데 선우 씨는 이쪽에서 준비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모르신다고 하셨죠?”

“네.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이런 제안을 하신 거라고요? 그러다가 별것 아니면 어쩌시려고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 선화에게 미리 준비해 놨던 변명을 늘어놓았다.

“설마요? 아버지에게 들어보니 요즘 선화 씨 할아버지가 날이 갈수록 웃음이 많아지신다던데요?”

“할아버지가요?”

“네. 연락도 잘 안 하시던 분이 요즘 연락을 자주 하시는 모양이에요.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죠.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경우.”

“하! 그렇게 입조심 하라더니…….”

눈앞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떠는 선화는 살짝 귀여워 보였다.

“선화 씨? 진정 좀 하시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으시겠어요?”

“본론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선화의 눈에는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네. 이쪽에서 확보한 물량을 확인하셔야죠.”

“아! 그렇네요.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선화는 아마 잠시 후면 깜짝 놀라리라.

“일단 국내에 들어온 물량은 약 200톤 정도입니다.”

“2, 200톤이요?!”

“네. 그리고 앞으로 들어올 물량과 계약이 체결된 것까지 하면 그 두 배가 조금 넘어갈 예정입니다.”

“두, 두 배면 400톤이요?!”

그녀가 놀라는 이유는 당연했다.

슬라임 결정은 나라마다 그 가격이 달랐지만, 평균치가 100그램당 약 30만 원 선이었다.

그런 슬라임 결정이 400톤이면 억이 아닌 조를 넘어서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운송비와 보관비까지 따지면 가격이 순식간에 배는 널뛸 테고.

“어떠세요? 이 정도면 제가 제시한 조건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대, 대단하네요. 아무리 유명이라지만 그 짧은 시간에 400톤이라니…….”

솔직히 성철이에게만 맡겼다면 10분의 1도 모으지 못했으리라.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그녀에게 제안조차 못 하고 그냥 오른 가격에 만족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요즘 슬라임 결정 가격이 그렇게 뛰었던 거네요.”

“그래도 잘 숨기지 않았나요? 근래 들어서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잖아요.”

슬라임 결정의 쓰임새는 많았지만, 사용되는 양이 워낙 소량이었고 대부분이 식자재로 쓰였기에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국내의 것은 건들지 않았고 아버지가 잘 조절을 해왔기에 선화를 속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어쩌다 알게 된 것인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슬라임 결정을 폐기하는 나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사기 아닌가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뭐라 드릴 말이 없네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 다라? 유명의 방식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정말 이럴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는데. 덕분에 많이 배웠네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는 선화를 보자 미안함이 살짝 들었다.

그녀는 아마 모를 거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생체갑옷이라는 희대의 발명품이 내 손에 완전히 들어온다는 걸.

생체갑옷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슬라임 결정의 양은 500kg 정도라고 알고 있다.

물론 이건 이쪽에서 공급할 생각이기 때문에 문제는 되지 않는다.

다만 온전한 생체갑옷이 탄생할 확률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5개를 만들면 4개가 실패작이라는 말이었다.

실패한 제품은 재활용도 되지 않아 전부 폐기처분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성공률은 거의 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제조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었다.

제조의 70%가 정밀한 수작업이 필요했고, 그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 역시 일반인이 아닌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각성자로 한정되기 때문에 집중력이 조금만 떨어져도 실패할 확률이 대폭 늘어난다.

그 덕분에 1개월 동안 선화에서 만들 생체갑옷의 완제품은 많아 봐야 20개 전후일 뿐이었다.

거기다 생체갑옷은 국내의 전력을 급상승시킬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덕분에 당분간 생체갑옷은 수출 불가 제품으로 등록된다.

결국, 서너 개를 제외한 모든 생체갑옷은 우리 유명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상 독점이나 다름없었다.

* * *

“무슨 일이야?”

“사고가 난 모양입니다.”

“사고?”

민선화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오랫동안 차가 움직이지 않는 걸 느낀 나는 김 기사에게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네.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고 올까요?”

“됐어. 금방 끝나겠지.”

내 말과는 다르게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차는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큰 사고가 났나?

“현지야!”

“네!”

차의 창문을 열며 외치자 현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현지가 지금껏 나를 호위할 때 차 안에 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현지는 지금껏 나를 호위하는 동안 차 뚜껑에 앉아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뭐라고 했더라? 내가 움직이다 자기를 만지면 어쩌냐고 했던가?

그 말을 들은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운전석이 아닌 앞자리는 항상 비어 있었으니까.

물론 그곳이 대처가 빠르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보고 왔지?”

“네.”

“뭔데 이렇게 오래 걸려?”

“사고가 난건 아니에요. 그냥 좀 이상한 사람이 있을 뿐이죠.”

“이상한 사람?”

“네. 큰 트럭으로 길을 막아버리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

현지의 말을 듣자 궁금증이 생겨났다.

길을 막아버리고 난동을 부린다고?

“이유도 알아? 경찰은?”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아마 맨 앞에 있는 차에 탄 사람인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경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왜 부르는데?”

“강아지를 찾는 모양이에요.”

“강아지?”

이게 무슨 소리야.

강아지를 찾는데 왜 길을 막아놓고 이래?

“계속 개새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거든요.”

“큭!”

순간 운전석에 있던 기사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고.

“그러냐? 그럼 어디 개새끼 좀 구경하러 가볼까?”

시간이 없었다.

수아를 마중 나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상황을 보고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다른 이동수단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차 문을 열고 나오자 나처럼 차에서 나와 앞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틈으로 조용히 스며든 나는 그들의 뒤에 붙어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이 개새끼야 당장 나와!”

뭐야? 총을 가지고 있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딱 봐도 값이 많이 나갈 것 같은 검은색 세단에 권총을 겨눈 상태로 나오라고 소리치며 차의 문을 강제로 열기 위해 난동을 부리는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같이 앞을 향했던 자들은 손에 든 총을 보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남은 사람은 나와 현지뿐이었고.

“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그 정도야 도련님도 가볍게 피할 수 있으시잖아요.”

아닌데? 나 총알 못 피하는데?

물론 못 피한다고 해서 죽거나 크게 다친다는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B급 이상만 되면 총은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피부에 상처를 낼 정도?

마력이 담기지 않는 현대 무기는 마력 앞에서는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반응하지 못한다고 해도 피부에 닿는 순간 마력이 자동으로 방어를 하기 때문에 각성자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마력이라는 건 만능의 에너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요?”

“무슨 억울한 일이 있나 보지.”

등을 돌리며 택시라도 잡아서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련님. 조금만 더 구경하면 안 돼요?”

“안 돼! 수아 데리러 갈 시간이야.”

“네? 오늘은 회장님이 데리러 가신다고 했는데요?”

“무슨 소리야? 난 아무 말 못 들었다고.”

내 말에 화들짝 놀란 현지는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모르는 음모의 냄새가 났다.

“나와라.”

“그, 그게 회장님이 오늘은 아가씨를 직접 데리러 가신다고 김 기사님한테 좀 둘러서 오라는 소리를 하시는 걸 들었어요.”

“뭐? 정말이야?”

다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는 현지를 보며 한숨을 내 쉴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아버지가 오늘따라 좀 들떠 보이셨는데 아마 이것 때문인가 보다.

“네…….”

현지의 대답에 그럼 좀 느긋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등을 돌리려던 순간 난동을 부리던 남성으로부터 큰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내 딸 살려내 이 개새끼야!”

내 딸?

딸이란 말에 멈칫한 나는 결국,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가 이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기에.

안타까운 눈으로 난동을 부리던 남자를 잠시 지켜보던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순찰차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난동을 부리던 남성은 경찰에 의해 금방 제압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확실하게 제압되자 차 문이 열리고 앳된 남성이 내렸는데.

교복? 고등학생인가?

학생으로 보이는 남성은 결박된 남성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걸 보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