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두 배는 산 것 같으신 분이 아직도 세상을 한참 모르시네? 이봐요, 형사님! 분명히 말했을 텐데?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학생은 손을 번쩍 들어 그의 뺨을 향해 내려쳤다.
짝!
“이, 이 살인마 새끼가!”
“잘 좀 잡아보라고. 자꾸 빗나가잖아.”
마치 명령하듯 말하는 청년.
경찰들은 그를 말릴 생각이 없는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명령에 따르고 있었는데.
“남은 가족이라도 살리고 싶으면 아가리 다물고 조용히 살아. 그러다 남은 가족까지 잃어버리면 쓸쓸할 거 아니야?”
자신을 제압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반항하며 욕설로 고함을 치는 남성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귓가에 속삭이는 청년의 목소리는 정말 작았지만, 나에겐 모두 들리고 있었다.
청년이 말했던 남은 가족이라던가 제압된 남성의 입에서 나온 딸을 살려내라는 말에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예전의 누구를 보는 것 같네요.”
“뭐?”
나와 함께 상황을 모두 지켜본 현지는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좀 달랐지만.
“내가 저 정도였다고?”
“네!”
고개를 끄덕이는 현지를 보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누가 더 심하냐가 아니라 똑같은 나쁜 놈으로 보일 테니까.
나는 그저 행패를 부렸을 뿐이지 사람을 죽이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만 가자.”
현지는 가자는 말에 물끄러미 날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도와주지 않을 거냐고 묻는 듯했다.
“도와주라고?”
“네.”
“왜?”
“그게…… 불쌍하잖아요. 보니까 딸을 잃은 것 같은데…….”
“불쌍하다고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순 없어. 그리고 저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도 맞잖아.”
“하지만 그건…….”
그가 총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저 남성이 총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고 해도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렸다는 게 착해졌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아저씨. 그거 알아? 아저씨 딸, 정말 별미더라. 그러니까 남은 딸도 잘 간수해 두고 있어. 곧 맛보러 갈 테니까.”
내 귓가를 파고드는 아주 작은 음성.
그 음성은 내 움직임을 멈추기 충분했다.
청년의 작은 음성에는 아주 진한 살기가 담겨 있었으니까.
아무리 봐도 각성자는 아니었다.
아니 각성자라고 해도 이 정도 살기를 품으려면 상급은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청년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거기다 보통 각성자들은 이런 살기를 품지 않기도 했고.
“별미라고? 맛을 본다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혼잣말.
“저 애 아직 어린데도 살기가 보통이 아니네요. 각성자일까요?”
“지금 저 새끼 분명 별미라고 했지?”
“네? 네. 그렇게 말했어요.”
내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청년이 내린 고급 세단, 폭력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말리지 못하는 경찰, 마지막으로 살기 가득한 놈의 표정.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전생에 돈이 무력에 잡아먹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놈.
그때의 나는 돈은 없지만, 힘은 있었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저놈을 그대로 방치했다가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오면 큰일이니까.
인간 사냥꾼.
돈의 힘을 이용해서 인간을 사냥해 잡아먹은 미친놈.
방금 놈이 살기 가득 내뱉었던 별미라는 말에 멈춘 이유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그 시절 지냈던 곳이 어비스였기에 정확히 놈이 뭐 하는 놈인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저 지나다니며 재벌에 권력이 좀 있는 젊은 놈이라는 것 정도만 들었기에 저놈이 맞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자세히 알아볼걸!
“도, 도련님?”
“응?”
고개를 돌리자 현지가 뭔가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현지에게 대답을 해주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말이라도 섞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다가오는 나를 발견한 경찰이 나를 막아서며 말을 걸었지만 무시한 채로 크게 소리쳤다.
“어이 꼬맹이 장난이 좀 지나친 거 아니야?”
“꼬맹이?”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놈을 보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
놈의 화를 부추기기 위해서.
“그래, 꼬맹이.”
“하! 별 거지 같은 새끼가…… 지금 여기 상황 안 보여?”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놈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나한테 거지라고 한 거야?”
“그럼 여기 너 말고 경찰들밖에 없는데 누구한테 거지라고 했겠냐? 거지새끼야.”
주변을 둘러보자 정말 내 주변에는 경찰밖에 없었다.
경찰이 왔음에도 차에 탑승한 채 차창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이곳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현지도 없었다.
아마 은신을 한 상태일 거다.
“그러네. 나한테 거지라고 한 거네?”
“미친놈인가?”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놈을 보며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도련님!”
멀리서 김 기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사나 봐? 도련님 소리도 듣는 걸 보니?”
“그런데?”
“그럼 내가 누군지 정도는 알 것도 같은데?”
“내가 너를? 그럼 너는 내가 누군지 왜 못 알아보냐?”
“뭐라고? 이 새끼가 돌았나!? 나 로열그룹 장손 한성균이야!”
이놈이 로열그룹 사람이었어?
이제야 경찰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로열그룹 사돈이 경찰청장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어때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냐?”
내가 가만히 있자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비릿한 미소를 짓는 한성균이었다.
“그래? 그런데 이걸 어쩌지? 상황 파악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유명그룹 유선우거든.”
내 입에서 유명그룹이 나오는 순간 주변에서 나를 제압하려고 대기하던 경찰들이 놀라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분명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얼굴임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좀 황당했다.
거기다 이놈 분명 만난 적이 있었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이 어린놈이 나보고 거지새끼라네? 로열그룹 어쩌고 하는데 아는 데야?”
나는 김 기사를 보며 로열그룹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네. 로열그룹이라면 국내 재계서열 2위 기업입니다. 다만 말이 2위지 저희 유명과 비교하면 많이 초라한 기업입니다. 그리고…….”
김 기사를 보는 내 눈에 놀람이 가득했다.
로열그룹에 대해 말하는 김 기사는 그 이후로도 로열그룹에 대해 계속 설명했는데 좀 당황스러웠다.
요즘 운전기사는 이런 것도 알아야 하는 건가?
“그런 로열그룹의 장손이란 사람이 유명그룹을 욕보이다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 직접 보고 드리겠습니다.”
운전기사가 아버지에게 직접 보고를 한다고?
“어? 어…….”
“자, 잠깐? 다, 당신이 그 유명그룹의 유선우라고?”
조금 당황했던 내 귓가로 한성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뭐 잘못됐나?”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너 따위가 유선우라고?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말을 하던 한성균은 주변의 반응에 더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쪽을 바라보던 경찰들과 어느새 차에서 나와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에서 유선우라는 말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걸 듣고는 내가 정말 유선우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왜 꼭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보는 걸까?
“김 기사. 저기 저 아저씨 보이지?”
“경찰들에게 포박당해 있는 사람 말씀입니까?”
“그래. 일단 저 아저씨한테 변호사 좀 붙여줘. 알아볼 게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꼬맹아.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로열그룹의 이름을 곧 거지그룹으로 바꿔줄 테니까.”
혼란 가득한 눈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한성균을 보며 일단은 이쯤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대화를 좀 해보면 알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애매했기 때문이다.
일반 망나니와 별다를 게 없어 보였기에 일단 조사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분명 내가 처음으로 갔던 재벌들의 모임에서 인사를 나눴던 것 같은데 날 왜 못 알아보는 거지? 내 얼굴이 흔한 얼굴인가?
* * *
“어때 알아봤어?”
김 실장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었는데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조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네. 일단 어제 난동을 부렸다는 남성에 대해서 보고 드리자면 이름 신복남, 52세로 강력계 베테랑 형사입니다.”
형사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제 한성균이 분명 그 남자에게 형사라는 말을 했던 걸 들었으니까.
“그리고?”
“한성균은 도련님 말씀대로 로열그룹 자제가 맞습니다. 그런 한성균과 신복남이 얽히게 된 계기가 있는데 이게 좀…….”
“왜? 그냥 말해. 괜찮으니까.”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찰 측에서 조용히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신복남이 그 용의자로 한성균을 지목한 모양입니다.”
“이유는?”
“마지막 살인이 발생했던 장소에서…….”
김 실장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신복남은 이상한 걸 하나 발견한다.
바로 살인이 벌어진 날마다 사건 현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차종은 다르지만, 최고급 스포츠카의 모습이 계속해서 CCTV에 찍힌다는 거였다.
이걸 이상하게 생각한 신복남은 조사에 착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차들이 전부 로열그룹 소유라는 걸 알게 되어 잠복 수사에 들어가는데 그 차를 운전하는 놈이 바로 한성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였다.
“미성년자 아니야?”
“맞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한다고?”
“네.”
내 말에 대답하는 김 실장은 뭐 이런 걸 가지고? 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계속해 봐.”
그때부터 신복남은 한성균을 쫓아다니기 시작하다 마침내 한성균이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는 한성균을 잡아 와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가 가지고 있던 증거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발생했다.
분명 같은 경찰 중 누군가가 증거를 지워버린 거였다.
결국, 한성균은 풀려났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놈이 풀려난 날 두 명의 딸 중 첫째 딸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연히 신복남은 실종신고를 하고 딸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데.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딸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제보가 들어온 위치로 달려간 신복남은 이미 죽어버린 딸을 발견하는데.
“왜 말을 못 해?”
“그게…… 좀 잔인합니다.”
“어떻길래?”
“마치 뭔가에 뜯어먹힌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뜯어먹혔다고? 짐승?”
“그게…… 인간의 치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놈이 확실했다.
산채로 사람을 뜯어먹는 미친놈.
이러니 그 꼴이 난 거겠지.
재계서열 2위라는 기업의 후계자가 그딴 짓을 저질렀으니…….
“그런데 신복남은 왜 그게 한성균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놈이 확실하다는 거네?”
“네. 따로 조사해 보니 범인이 한성균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혼자서 벌인 일이야?”
도움을 준 누군가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도 찾지 않을 만한 사람들을 노렸을 테니 조사부터 납치, 살인까지 분명 도움을 준 놈들이 있을 거다.
“그건 아닙니다. 질이 많이 안 좋은 놈들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하는 놈들인데? 설마 크로우야?”
“크로우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놈들인 것 같습니다.”
김 실장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크로우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놈들이.
다만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그놈들 크로우에서 전부 정리한 거로 아는데? 아니었어?”
“아무래도 본성을 숨기고 사람들 틈에 숨어든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허! 어이가 없네. 그건 그렇고 로열그룹 쪽에서도 이걸 몰랐단 말이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열그룹 쪽에서 손을 쓴 정황이 포착된 걸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알면서도 그놈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말이야?”
황당함이 몰려왔다.
그런 놈을 도대체 왜 후계자로 삼은 거지?
“아마 어린 시절의 방황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지랄하는 걸 방황이라고 생각했다고?”
“워낙 우수하기도 했으니까요.”
아무리 우수해도 그렇지.
그런 놈을 어떻게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는 거지?
만약 천재인 형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정신병원에 가둬버리고 평생을 꺼내주지 않았을 거다.
“내가 로열을 부수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허락해 주실까?”
“지금의 도련님이라면 허락해 주실 겁니다.”
“정말로?”
“물론입니다. 대통령을 끄집어내리신다고 해도 허락하실 겁니다.”
“말씀드려. 그리고 그쪽하고 약속 좀 잡아줘. 선전포고 정도는 해줘야 예의일 테니까.”
“알겠습니다.”
인사를 한 후 나가려던 김 실장은 잠시 멈칫한 후 다시 돌아섰다.
“도련님. 정말 많이 변하셨습니다.”
“그래? 고마워.”
간단히 대답을 해주자 등을 돌리는 김 실장을 보며 ‘내가 정말 변했을까?’란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놈이 아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아니 나서지 않았겠지.
내가 생각하는 나는 결코 좋은 놈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린 척 행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