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214)

“그건 자네가 내 핏줄을 죽이겠다는 뜻인가? 살인을 하겠다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 거리는 부회장과는 다르게 한 회장은 침착한 모습으로 물어왔다.

“살인이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살인이 아니면 뭔가?”

“살인이란 건 사람을 살해하는 걸 말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지금 내 손자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한 회장은 화가 치솟는 모양인지 단어와 단어 사이에 공백이 길어지고 있었다.

“사람을 사냥하고 잡아먹는 그런 걸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짐승 혹은 괴물이라고 부르지!”

“이익!”

한 회장은 반박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 뿐이었다.

“자! 저는 선택지를 드렸습니다. 한성균을 내놓으시던가 로열그룹이 망한 후에 한성균을 빼앗기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어? 그러고 보니 두 가지 선택지 모두 결과는 같네요?”

“……이러는 이유가 뭔가?”

“이유라면 진작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정말로 그 아이가 자네에게 한 말 때문이라는 건가?”

이유를 알아야 한성균을 내놓든 말든 할 것처럼 말하는 한 회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낸 대가라고 하면 대답이 될까요? 그저 운이 좀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겨우 그런 이유로 내 핏줄을 죽이겠다는 건가?”

“당신들에겐 ‘겨우’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아니거든요. 당신의 손자가 사냥하고 잡아먹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혹은 지인들이 과연 당신들처럼 그 일을 한 아이의 방황이라고 생각할까요? 그거랑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겠네요.”

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는 한 회장을 보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택 잘하세요. 괜히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 때문에 힘들게 일군 기업 날려 버리지 마시고. 아! 그리고 저녁은 다음에 하도록 하죠.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을 핏줄이라고 키운 당신들을 보니 구역질이 나서 밥은 못 먹겠네요.”

문을 열고 나가는 내 귓가로 부회장의 분노한 음성이 들려왔지만, 무시한 채로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저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손해를 감수하기 위해 혹은 이익을 위해 자식을 팔아넘기는 일은 재벌들에게는 일상이었으니까.

좀 다른가? 죽음을 강요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차분히 걸음을 옮기던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가 원래 이렇게 말을 잘했나?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다.

과거로 돌아온 후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살펴보니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변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아마 내 경우가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전에는 떠올리지 못하던 발상을 쉽게 떠올리기도 했고 계획을 세우는 것도 더 치밀해진 것 같았다.

거기다 침착함까지.

“응?”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핸드폰의 진동을 느꼈다.

현태?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야?”

-도련님. 급히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전화를 받자마자 현태의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도련님이 이번에 소환하신 왕눈이라는 놈이 머물던 공간을 벗어났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네임드. 그러니까 마력을 사용하는 존재들끼리 따로 모아놓은 방에 있던 왕눈이가 거길 벗어났다는 건데.

말이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홍채인식을 통해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왕눈이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스터 카드가 있어야 한다.

설마?

“문을 부수고 나왔다는 말이야?”

-그건 아닙니다.

“허! 그러니까 부수지 않고 문을 열었다는 거야? 어떻게?”

-저희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일단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바로 갈 테니까 왕눈이가 밖으로 나가려 하면 최대한 막아봐.”

-네!

전화를 끊은 나는 황당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이런 놈은 처음이었으니까.

잠깐? 설마 내가 그곳에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 맘대로 나간 건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김 기사를 호출했다.

빨리 차를 대기시켜 놓으라고.

“현지야!”

“무슨 일이세요?”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현지가 불쑥 나타나자 그걸 본 몇몇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지안이 불러와. 빨리.”

“오늘 외식시켜주신다면서요. 그래서 이렇게 차려입고 왔는데!”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는 현지는 화가 좀 났는지 드물게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애초에 로열일가와 밥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내 할 말만 하고 나올 생각이었으니까.

오늘은 현지와 지안에게 지금껏 수고했다는 의미로 밥이라도 사주려 했는데.

왕눈이 놈이 하필 오늘 말썽을 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안한데 밥은 다음에 사줄게. 그러니까 지안이 데리고 바로 로비로 와! 늦으면 먼저 출발할 거야!”

내 통화를 다 들었으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현지는 정말 아쉬운 모양인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 * *

“저게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냐?”

“그게…… 체스를 두는 것 같습니다.”

왕눈이 때문에 급히 온 나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게이트 홀.

일반 몬스터를 모아놓은 거대한 공간의 이름이었다.

그곳에는 지금 현태의 말처럼 체스를 두는 것 같은 왕눈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몬스터를 사용해서 말이다.

몬스터의 반을 나누어 각각 반대편에 세워놓고 한 마리씩 움직이는 걸 본 나는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거기다 공격을 하는 몬스터와 공격을 받은 몬스터들의 다음 행동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공격을 받은 몬스터는 그 공간을 벗어나서 그들만의 체스를 구경했고 공격을 한 몬스터는 자리를 빼앗으며 환호를 내뱉었다.

“그런데 어떻게 몬스터들을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왕눈이는 감정만 전달할 수 있는데?”

그러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지안의 말을 듣자 나 역시도 의문이 생겨났다.

“혹시 그거 아닐까요? 정신특성을 가진 각성자들은 동물은 쉽게 부리지만 사람을 조종하는 건 힘들어하잖아요. 그런 경우가 아닐까요?”

“와! 현지야 너 방금 되게 똑똑해 보였어!”

“무슨 소리야? 나 원래 똑똑하거든!”

“조용!”

현지의 말에 고개가 끄덕이던 나는 점차 시끄러워지는 둘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 강하고 지성이 높을수록 정신방벽이 견고하기 때문에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달라진다?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일반 몬스터를 조종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다.

내가 소환한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들도 조종할 수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가능할까?

내가 소환한 몬스터는 본성이 강하긴 하지만 일단 통제를 당하는데 아무런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몬스터의 경우 통제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정신계열의 능력자들이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극소수의 몬스터. 그것도 약한 녀석들뿐이었다.

거기다 시간 역시도 잠시뿐이었고.

언제 한번 실험을 해봐야겠네.

“마치 전술훈련을 보는 것 같네요.”

현태가 툭 내던진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거 같네요.”

“맞아.”

잠깐만? 전술이라고?

저놈들에게 비싼 마석을 먹여가며 사라지지 않게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 열릴 게이트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유명에 소속된 가디언들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

전술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내가 직접 몬스터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따로 전술 공부를 하고 있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는데 왕눈이가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할 줄 안다면 이 문제는 사라져 버린다.

“너희 중에 체스나 바둑 둘 수 있는 사람 있어?”

“저요! 저 체스 잘 둬요!”

“저는 좀…….”

“뭘 그런 걸 물어보세요?”

지안, 현태, 현지가 순서대로 대답했다.

다행이네. 한 명이라도 둘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지안아 니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음~ 상위 10%? 그 정도는 될걸요? 저 체스 아마추어 대회 나가서 우승도 자주 했어요!”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면 정말 잘 두는 수준이라 생각했다.

“그럼 왕눈이한테 체스 좀 가르쳐봐.”

“왕눈이가 배울 수 있을까요?”

“지금 하는 걸 봐서는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지금에 와서는 왕눈이가 악마종이라고 확신하는 중이었다.

분명 악마종 중에 인간 못지않은 아니 인간보다 똑똑한 존재들이 있다는 걸 들었는데, 아마 왕눈이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네! 가르쳐 볼게요!”

환하게 웃는 지안을 보며 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 징그럽게 생긴 게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야?”

“뭐가 징그러워 귀엽기만 한데!”

“저게 귀엽다고? 너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넌 고블린이 귀엽다며! 보통 사람들은 고블린 징그럽다고 하거든! 그럼 너도 정신이 이상한 거니?”

“나, 나도 처음에는 징그러웠거든. 자주 봐서 귀여워진 거라고!”

현지와 지안의 말싸움을 무시한 채 왕눈이가 조종하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나는 내 계획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눈이는 몬스터의 상성까지 계산해가며 상황을 전개하고 있었다.

거기다 몬스터들의 힘 차이까지 생각해 몬스터를 나누기도 하고 붙여놓기도 하며 최대한 치열한 공방을 펼치게 만들고 있었다.

이길 확률과 질 확률까지도 전부 계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물론 진짜로 싸우는 건 아니었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모든 시뮬레이션을 끝냈는지 왕눈이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너 방금 전술을 연습한 거야?”

긍정.

“혹시 내가 소환한 몬스터 말고 다른 녀석들도 조종할 수 있어?”

부정.

정말 아까웠다.

만약 가능했다면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들이 쏟아지듯 튀어나온다고 해도 별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긴 정말 그게 가능했다면 사기나 마찬가지지.

“너 혹시 이곳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왕눈이가 몬스터를 조종하는 모습을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상한 확신 같은 게 들었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긍정.

왕눈이는 이곳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설마 내 생각을 읽은 걸까?

“혹시 내 생각을 들여다본 거야?”

부정.

순간 안심이 되었다.

만약 내 생각을 들여다본 거라면 왕눈이를 더 이상 곁에 두지 못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럼 어떻게 안 거지?

혹시?

“혹시 너 예지능력도 있어?”

…….

긍정도 부정도 없었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

“혹시 예지와 비슷하지만, 예지는 아닌 능력이야?”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긍정.

“혹시 너희들 중에 예지와 비슷하지만, 예지는 아닌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 있어?”

“아니요.”

“전혀요.”

“저기…… 확실하지는 않은데요.”

현태, 현지, 지안이 순서대로 대답했다.

“알아?”

“그게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상위차원의 존재는 하위차원의 존재보다 더욱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말을요. 혹시 왕눈이가 저희보다 상위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이게 무슨 말이야?

내 고개가 기우는 걸 본 지안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희는 3차원의 존재잖아요. 그런 저희가 2차원을 보면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2차원에 속해 있는 존재의 눈에는 2차원이 선으로만 보인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왕눈이가 저희보다 상위차원의 존재라면 저희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말이죠.”

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지안 덕분에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왕눈이가 미래를 본 거라는 말인데 그게 예지랑 뭐가 다르다는 거지?

“왕눈아 너는 4차원의 존재야?”

부정.

그 이후로 5차원 6차원 7차원 계속해서 물어봤지만, 왕눈이의 대답은 부정뿐이었다.

“아니라는데?”

“정확히 몇 차원이 아닐 수도 있죠. 저희가 모르는 상위차원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그럼 넌 상위차원의 존재야?”

긍정.

“정말이네? 그런데 그럼 왕눈이의 능력이 도대체 뭐야?”

“아마 아무도 모를걸요. 애초에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 수도 있잖아요.”

이 일은 일단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그래도 하나 건진 것은 있었다.

어비스라는 차원이 지금 내가 사는 이곳보다 상위차원이라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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