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이건 말도 안 돼요!”
지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듣는 나 역시도 지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3일 전부터 지안은 왕눈이에게 체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다행히 왕눈이는 지안의 설명을 이해하고 체스를 직접 두기 시작했고, 그만큼 지안과의 사이도 발전했다.
하지만 체스를 두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지안과 왕눈이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 때문일까? 지안이는 점점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제 마지막으로 두었던 체스는 지안이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했을 정도였다.
문제는 오늘 첫판을 두면서 시작되었다.
왕눈이가 지안을 이겨 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여러 판을 두었지만, 지안은 단 한판도 왕눈이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만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도련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왕눈이는 미래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건 아닌 것 같다만…….”
“아니요! 분명하다니까요. 아니면 어떻게 3일 만에 저를 이길 수 있냐고요!”
체스를 둘 줄 모르는 내가 뭘 알겠느냐마는 본 대로 말한다면 분명 왕눈이가 미래를 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지도, 현태도, 심지어 고블린들도 알고 있을 거다.
지안이가 계속해서 실수하고 있다는 걸.
말을 움직인 직후 탄식을 내뱉는 걸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좀 안정을 취하고 다시 둬 보는 게 어때? 내가 보기엔 실수가 많은 것 같은데.”
“네.”
지안이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비장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이겼어요! 도련님 제가 이겼다고요!”
“그것 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왕눈이를 슬쩍 봤는데.
일부러 져 줬네.
왕눈이를 보니 느낌이 왔다.
“현지야, 얘들 좀 게이트 홀에 데려다 놓고 와!”
“네? 네!”
고블린들에게 설교를 늘어놓고 있던 현지가 내 말에 균열에서 나온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현태도 있는데 굳이 현지에게 시킨 이유는 바로 고블린들 때문이었다.
‘쟤들도 좀 쉬어야지.’
현지가 사라지자 많이 지쳤는지 제자리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는 고블린들을 보며 좀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고블린들에 대한 현지의 집착이 메이드에 대한 집착과 비슷해 보였으니까.
“도련님. 저번에 하셨던 말씀에 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고블린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던 그때 현태가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뭔데?”
“왕눈이에게 말했던 게이트 홀에서 벌어질 일이란 거요. 뭔가 알고 계시는 게 있으신가요?”
“아니. 모르는데?”
“분명 그때 도련님 생각을 들여다본 거냐고 왕눈이에게 물어보셨잖아요.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뭔가 알고 계시는 게 있죠?”
생각했던 것보다 현태가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건 아니고 예상을 하고 있을 뿐이지.”
“예상이요?”
“그래. 너도 알겠지만, 그곳의 마력이 좀 특이하잖아.”
“네. 그렇죠.”
“처음 내가 그걸 느꼈을 때보다 그 마력이 더욱 진해졌단 말이야. 아니 점차 진해지고 있지.”
내 말에 현태도 느끼고 있던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가지고 예상을 하고 있을 뿐이지.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구나. 라는 걸.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그 일이 절대 가볍게 끝날 만한 일은 아닐 거라 확신하는 중이고.”
“그럼 도련님은 피해를 볼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서 이곳을?”
현태가 뭔가 큰 착각을 하게 만든 것 같았다.
“역시!”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그래서 선점을 한 거고.”
현태는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혼자 뭔가를 결심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빛낼 뿐이었다.
“너희들 누가 앉아 있으랬어!”
갑자기 들리는 현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고블린들이 앞에 서서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지가 보였다.
“현지야, 적당히 해라. 재들 저러다 스트레스 때문에 큰일 나겠어!”
“도련님은 정말 암살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암살자의 기초는 바로 인내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을 풀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야말로 암살자의 기본이라고요.”
이젠 하다 하다 나까지 가르치려 드는 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현지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 맞다! 도련님 그 게이트 홀? 거기에 균열이 생길 것 같던데요?”
“뭐?”
“방금 제가 거기 다녀왔잖아요. 그런데 마력의 파동을 보니까 곧 균열이 열릴 것 같더라고요.”
“그걸 왜 이제 말해! 바로 말했어야지!”
“어차피 상관없잖아요. 거기 있는 애들 수가 천을 훌쩍 넘는데 균열이 열린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 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쉰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게이트 홀로 향했다.
그런 나를 따라오는 현지와 현태, 그리고 체스를 두다 내팽개치고 나에게 달려오는 지안.
지안은 밀리고 있는 상태였는지 아예 판을 엎어버리곤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주변에 균열이 생긴다는 건 이제 곧 게이트가 열릴 거라는 걸 암시했다.
점차 균열의 발생빈도가 늘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녀석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할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루에 여러 번 균열이 발생할 정도는 아니고 다른 곳보다 균열이 생성될 확률이 조금 더 늘어날 뿐이었지만.
* * *
“취익?”
오로지 암흑뿐인 균열 속에서 오크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한 마리를 시작으로 열이 넘는 오크가 튀어나왔는데.
균열을 통해 나오고 있는 오크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녀석들의 반응을 보고자 했다.
공통된 적인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면 저놈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소환수들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놓았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래서일까? 소환수들은 균열에서 나온 오크들을 보고도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킥킥. 쟤들 진짜 웃긴다.”
“어머! 재들 지금 눈치 보는 거지?”
현지와 지안의 대화를 들으며 오크들을 지켜보던 나는 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소환수들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이동하는 오크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도착한 곳은 내가 소환한 오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그 이후의 상황까지 지켜보던 나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화면 속에 보이는 저 균열은 분명히 내가 연 균열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균열의 색부터가 달랐으니까.
내가 연 균열은 저런 암흑뿐인 공간이 아니었다.
당연히 저 오크들도 내 소환수가 아니었고.
그런데 왜 저것들은 내 소환수인 것처럼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태야. 문 열어.”
“네.”
관리실의 문을 열고 나가 게이트 홀의 문 앞에 도착한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내가 나타나자 역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는 소환수들을 보며 그 오크들을 찾았다.
한쪽에 보이는 오크 무리 속에는 분명 나와 연결되지 않은 오크들이 있었다.
나와 현지, 현태, 지안을 보고도 바로 달려들지 않는 이상한 녀석들.
“조용!”
내 명령에 조용해진 소환수들.
어? 뭐야 저것들?
“도련님 혹시 능력이 몬스터를 조종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본 현지가 의아한 눈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당연했다.
놈들은 마치 나의 명령을 듣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나타났을 때 분명 저것들은 이를 드러내며 잔뜩 흥분해서는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날 공격하려 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소환수들이 조용해졌다고 이를 감추느냔 말이다.
나조차도 사실 저것들이 내가 소환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너희들 이리 와봐!”
혹시 몰라서 오크들에게 명령을 내려봤다.
당연히 내가 소환한 오크들은 내 명령에 따라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소환수가 아닌 오크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역시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소환수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녀석들.
“너희는 쟤들이 왜 오는 거 같냐?”
“눈치를 보며 행동을 하는 거 아닐까요? 다른 애들이 하는 걸 보고 그냥 따라 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가까이 다가온 오크들 뒤쪽에 서 있는 십여 마리의 오크들을 보며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뒤쪽에 가만히 서 있던 오크 중 한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기를 드러내며 앞으로 나서려는 녀석.
퍽- 퍼퍽- 퍽퍽퍽-
순간 내 소환수들이 나에게 살기를 드러내는 녀석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나를 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했는지 무참히 패고 있었는데.
어이가 없는 건 그 오크를 패는 녀석 중에 내 소환수가 아닌 놈이 있다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 저게 지금 무슨 상황 같냐?”
이 상황을 누군가 설명을 좀 해줬으면 싶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들 입을 꾹 다물고 황당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멈춰!”
내 명령에 멈추는 오크들을 보며 현태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때? 저놈들 좀 이상하지?”
“네. 좀 특이하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단체생활에 익숙해 보인다고 할까요?”
저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곳에 균열이 열릴 징조가 보인다는 말에 그냥 실험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처음 열리는 균열에서 나올 녀석들은 별로 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지는 생각도 못 해봤기에 좀 당황스러웠다.
“저러고 있으니 그냥 죽이기도 좀 그렇네요.”
현지의 말을 듣던 그때 저것들을 활용할 아주 좋은 방법이 한가지 떠올랐다.
어차피 죽여야 할 놈들 좀 쓰고 죽여도 되겠지?
“현태야, 저것들 따로 분리해서 가둬놔.”
“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놈에게 어떤 고통을 줄까 고민했었는데,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균열은 어떻게 할까요?”
“응?”
고개를 돌려 균열을 한번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닫아. 놔둬 봐야 쓸모도 없으니까.”
“네.”
* * *
“아빠!”
나에게 달려오는 수아를 보며 나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수아를 안아 들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했어요?”
“네!”
수아를 안고 진한 미소를 지으며 차로 향하는 내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리는 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익숙해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았다.
수아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로서 그래도 좀 있는 집 자식들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일까?
아이를 마중 나오는 학부모들이 많았는데.
문제는 그 학부모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시선이 많이 몰렸는데, 처음에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아빠! 수아 궁금한 거 있어요!”
“응? 우리 수아가 뭐가 궁금할까?”
차에 오르자 수아가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왜 각성을 하면 상을 받아요?”
“누, 누가 각성을 해서 상을 받았니?”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하는 수아를 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묻자 수아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6학년 언니가 각성해서 교장 선생님이 그 언니한테 상을 줘써요!”
“그, 그러니? 그런데 그건 그 언니가 각성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일을 해서 주는 것이 아닐까?”
“정말요? 수아도 상 받고 싶었는데…….”
실망하는 것 같은 수아를 보며 달래기 위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수아는 상을 왜 받고 싶어?”
“상을 받으면 아빠하고 할아버지하고 삼촌이 좋아하니까?”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 수아는 정말 귀여웠다.
“수아야. 아빠는 수아가 상 받는 것보다 이렇게 건강하게 있어 주는 게 훨씬 기쁜데?”
“할아버지하고 삼촌도요?”
“그럼! 당연하지.”
함박웃음을 머금는 수아를 보자 꽉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빠. 그런데 그 언니는 왜 학교를 떠나야 해요?”
“응?”
“선생님이 그랬어요. 각성하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요. 그럼 수아도 이제 학교 못 다니는 거예요?”
진짜 난감한 질문이었다.
원래대로 하면 수아는 이 학교에 다닐 수 없었으니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가씨 그건 아니랍니다. 그 학생은 선택한 거예요. 가디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거죠.”
내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 하고 있자 김 기사가 수아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근데 너무 어렵게 말한 거 아닌가?
“그럼 이제 그 언니는 가디언이 되는 거예요?”
“그건 아니랍니다. 가디언이 되기 위해서 다른 학교를 선택한 것이죠.”
“그럼 언제 가디언 대여?”
“아가씨는 가디언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으신가 보네요?”
“네! 수아도 가디언이 되고 싶거든요!”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수아가 가디언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김 기사를 살짝 노려보자 김 기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저는 아가씨가 가디언보다는 회장님이 되셨으면 좋겠는데요?”
“회장님이요?”
이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여기서 회장님이 왜 나와?
“가디언이란 직업은 정말 힘든 직업이거든요. 특히 징그럽고 무서운 몬스터와 싸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꼭 몬스터랑 싸워야 대여?”
“음- 아가씨는 왜 가디언이 되고 싶으세요?”
수아는 김 기사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반짝 빛내며 대답했다.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서요!”
“아가씨. 그럼 가디언을 지켜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디언을 지켜주는 사람이요?”
“네. 가디언을 지켜주는 건 바로 아가씨의 할아버지인 회장님이랍니다. 회장님은 가디언뿐만 아니라 모두를 지켜주고 계시거든요.”
“우와! 아빠, 나 회장님이 될래요!”
“그, 그러니. 하하하.”
김 기사를 노려보던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아를 회장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형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럼 아버지는 누구 편을 들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