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되었습니다!
블루 마정석은 결국, 내 손안에 들어왔다.
무려 6천 5백억이라는 가격에.
“와! 도련님 도대체 얼마를 가지고 온 거예요?”
“6천 5백억…….”
6천 5백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현지와 지안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반대로 나는 생각보다 적은 낙찰가에 놀라고 있었다.
하긴 누가 경매장에 6천 5백억이라는 현물을 들고 오겠어.
비밀 경매장의 경우 당장 가지고 있는 현물만 취급이 되기 때문에 재산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마디로 내 재산이 10조라도 이곳에 가지고 온 현물이 1조면 나머지 9조라는 금액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거다.
“지안아, 가서 블루 마정석 받아와. 내가 준 가면 있지. 그거 꼭 쓰고. 현지, 너는 알지?”
“네! 그런데 어디로 가요?”
“이 가방 가지고 가. 나가면 기다리고 있는 사람 있을 거야.”
“네!”
지안은 좀 떨리는지 심호흡을 한 후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다시 경매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 시선을 끄는 경매품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지안이 돌아왔다.
“도련님. 여기요.”
지안이 건넨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열어 블루 마정석을 꺼내 들고 잠시 살펴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물 중에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것들이 많았기에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작은 흠집조차 없는 걸 확인한 나는 장물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도대체 이걸 왜 이곳에 내놓은 거지?
일반 경매를 진행했으면 지금 금액의 5배 이상은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게 그렇게 좋은 거예요?”
“각성자에게도 좋은 물건이지만, 그것보다는 일반인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물건이지.”
유물, 영약, 포션 같은 종류의 물건 대부분이 일반인에게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회복 포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는데.
최상급 회복 포션을 복용한 각성자와 일반인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바로 마력 때문이었다.
회복 포션의 경우 복용자의 마력을 치유력으로 바꿔 몸을 치유하는 방식이었기에 마력이 거의 없는 일반인에게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영약의 경우에는 오히려 독이 될 소지가 있었고.
-이번에 소개해 드릴 물건은 바로 만드라고라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에 내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인 만드라고라가 경매에 올랐다.
-이건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만드라고라의 경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썩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길 보시면 정확히 절반 정도가 검은색으로 변색 된 것이 보일 것입니다.
뭐? 썩어?
나는 벌떡 일어나 화면에 집중했다.
진행자의 말대로 만드라고라의 윗부분이 검은색으로 변색된 게 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나온 만드라고라인데 상태가 이래서 저희도 정말 아쉽습니다.
“왜 그러세요. 도련님?”
“잠깐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는 말이지 이거?
진행자의 썩었다는 말에 아직 그 사실을 아는 자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작가는 100억입니다.
시작가를 들은 나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 크기의 만드라고라라면 적어도 시작가가 300억은 넘어야 했을 테니까.
자리에 앉은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가격의 상승이 멈출 때까지.
200억. 300억……. 점차 올라가던 가격이 500억에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모두가 눈치를 보는 상황.
이 이상 가격이 올라가면 손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물론 저들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었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변색이 시작된 만드라고라.
그 의미는 바로 만드라고라가 자신이 품고 있는 마나를 버티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해서 품고 있는 마력의 양이 엄청나다는 말이었다.
같은 크기의 만드라고라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양의 마나를 품고 있는데 보통의 만드라고라라면 마나를 뱉어냄으로써 안정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의 차이가 있듯이 만드라고라 역시도 특이한 개체가 있었다.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마나가 아까워 뱉어내지 못하는 놈들.
마나가 굳기 시작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다 참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개체가.
사람들은 이 굳은 마나를 죽은 마나라고 부른다.
주변의 마나를 모두 굳혀 버리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마나.
진행자가 썩어버린 부분이라고 설명하는 걸 보니 아직 이 굳은 마나를 푸는 방법이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거 정말 운이 좋은데?
-550억 더 없으십니까?
진행자의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급히 버저를 눌렀다.
-네. 1번 관리자분 600억!
곧 있으면 나의 손에 들어올 만드라고라를 응시하는 내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650억! 3번 관리자분께서도 만드라고라를 노리고 계십니다.
-700억!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8백억! 9백억!
계속해서 따라오는 3번 관리자.
그의 참여로 인해 정상적인 가격을 넘어 황당할 정도의 가격이 되고 말았는데.
천억까지 상승한 가격 때문에 점차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척 바로 가격을 부르지 않고 기다렸다.
가격이 더 올라가면 포기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아슬아슬한 순간 1번 관리자분이 천 백억을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천 2백억!
계속해서 따라오는 3번 관리자라는 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정상적인 만드라고라조차 천억이면 후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썩은 만드라고라를 천 2백억을 부른다고?
나는 결국 빨간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아! 1번 관리자분께서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지안아 나가서 서창렬 좀 불러 달라고 해.”
“네? 네!”
지안은 나의 짜증이 치솟은 표정을 처음 보는지 놀란 모습으로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지야, 잠깐 숨어 있어 봐.”
“네!”
잠시 후 서창렬이 들어오는 걸 보며 서창렬에게 대뜸 말했다.
화가 났다는 표시를 잔뜩 내면서.
“지금 저랑 싸우자는 건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 3번 관리자 석에 당신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이런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관리자석은 지정석입니다.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자신의 지정석이 아닌 곳에서는 경매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서창렬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인정하시는 건가요?”
“하하. 그건 아닙니다. 저곳에 계신 분에게는 어떤 말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복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은데요. 저분이 블루 마정석을 정말 간절히 원했거든요.”
분이라고?
서창렬이 분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자는 많지 않았다.
그런 서창렬에게 존칭을 받는다는 건 일반적인 관리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설마?
“복수라?”
“물론 제 생각입니다.”
“혹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3번 관리자 석에 있는 분과 말씀입니까?”
“네.”
내 말에 잠시 고민에 찬 표정을 짓던 서창렬이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창렬은 방 안으로 밖에서 대기하던 직원을 불러 말을 전해달라고 지시하곤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 물건을 노리시는 건가요? 쉽지 않으실 텐데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오늘의 메인 경매품 때문에 저에게 관리자 석을 부탁하신 게 아닌가요?”
“메인이라뇨? 블루 마정석보다 귀한 물건이 나온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메인은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습니까?”
서창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블루 마정석보다 귀하다고? 그런 게 있긴 한가?
“메인 상품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오늘의 메인은 유물입니다.”
“유물이라고요?”
“네. 인도에서 발굴된 활이죠.”
인도에서 발굴된 활이라고? 그게 왜 이곳에 있어?
“의아하신 모양이네요. 왜 인도의 유물이 이곳에서 있는지.”
“네. 혹시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별건 없습니다. 저희가 발견했으니까요.”
“네?”
“저희가 발견하고 빼돌렸습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어이가 없었다.
남의 나라에서 유물을 발굴해 빼돌렸다고?
아니 애초에 그 인도에는 왜 간 건데?
“물론입니다. 저희 크로우의 무대는 국내만이 아니거든요. 누구처럼.”
정말 놀라웠다.
저들의 무대가 전 세계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마 서창렬의 누구처럼이란 말은 유명을 말하는 거겠지.
똑똑똑-
잠시 놀란 채로 굳어져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현지가 문을 열어주자 아까 그 직원이 굉장히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서창렬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부하셨습니다.”
“저도 이제는 방법이 없네요.”
“그런가요. 뭐 괜찮습니다.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상관없었다.
다음 물품이 유물이란 걸 안 이상 3번 관리자 석에 있는 자가 더는 만드라고라의 가격을 올리지 못할 것이란 걸 알았으니까.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 경매는 바로 진행 시키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서창렬이 나가고 멈춰 있던 경매가 바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천 3백억이라는 금액을 불렀다.
따라온다면 포기할 생각으로.
-천 3백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진행자를 보자 살짝 열이 받았지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생각해 보면 큰 손해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저 만드라고라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싼 가격이었다.
그렇게 자위하며 애써 마음을 안정시켰지만,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3번 관리자만 아니었어도 7백억 선에서 만드라고라를 낙찰받았을 테니까.
“도련님. 여기요.”
지안이 들고 온 상자를 열어보니 만드라고라가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이제 이건 끝났고.
저 3번 관리자라는 자가 진짜 원하던 것이 유물이라면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를 거다.
나를 화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물에 대한 관심까지 생겨났으니까.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만드라고라였기 때문에 이것만 얻으면 바로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이미 얻을 건 모두 얻었기에.
하지만 그는 나를 건드렸고 서창렬을 호출하게 만듦으로써 유물이 메인이란 사실을 알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떤 유물이길래 메인으로 올라오는 거야?
보통 유물의 거래 가격은 아무리 비싸도 천억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블루 마정석보다 귀한 물건이라? 신기라도 나오나?
신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무리 생각이라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드디어! 오늘의 메인 물품입니다. 많은 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유물!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 그 활! 바로 아스트라의 활입니다!!!
아스트라? 그게 뭐지? 정말 유명한 유물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상무님, 저 저거요! 저 활이 가지고 싶어요! 어? 그런데 아스트라는 화살 이름인데?”
진행자의 설명을 끝으로 활이 공개된 직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깜짝 놀랐다. 아니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저 활이 왜 여기에 있어?
내 눈에 들어온 활은 정말 익숙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인도의 영웅이라 불리던 자의 반쪽.
세계 최강을 다투던 10인 중 하나인 시다트의 무구였기 때문이다.
내 고개가 지안을 향해 돌아갔다.
만약 저 유물을 지안의 손에 쥐어 준다면?
회귀하기 전 많은 사람이 떠들던 주제였다.
변변찮은 유물조차 없던 그 시절의 지안은 그와 많이 비교되었었다.
지안에게 저 유물 그러니까 아그네야스트라가 있었다면 그를 뛰어넘을 거다. 아니다를 가지고 많은 이들이 설전을 벌였을 정도로.
-이 유물은 다른 유물들과 다르게 마력만 사용할 줄 안다면 이제 막 각성한 자들조차 A급으로 만들어 줄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 보시죠!
직접 시범을 보이는 진행자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작은 마력으로도 마력 화살을 만들어 주는 저 활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마력 화살이란 검기와 같은 파괴력을 보이는데.
저 활은 그 검기를 의지력이나 집중력 따위는 필요 없이 적은 양의 마력 주입만으로 생성해 주는 미친 유물이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기였다.
“도, 도련님 저도 활 쏠 줄 아는데…….”
현지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나에게 조그맣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진행자가 시범을 보이는 걸 보고 알았을 거다.
저 활이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내, 내가 더 잘 쏘거든!”
“나도 연습하면 너보다 더 잘 쏠 수 있어!”
지안과 현지가 다투는 걸 무시한 채 경매를 지켜봤다.
-시작가는 2천억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합니다. 신화 속에서나 존재하던 신기를 가져갈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요!
도대체 왜 저 활을 경매에 내놓은 거지?
마력만 있다면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최상위 유물. 아니 신기였다.
물론 활을 쏠 줄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그거야 연습 좀 하면 그만 아닌가?
-5천억 나왔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 신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니까요!
계속해서 치고 올라가는 가격.
어쩐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물건이 나와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관리자들을 보며 원래 이런가 했는데.
아니었다.
모두가 저 유물을 노리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관리자 석 모두에 미친 듯이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안아 거기 가방 좀 줘.”
“여기요.”
나는 지안에게 가방을 받아들고 안쪽을 살폈다.
마정석을 모조리 가방에 쑤셔 넣을 때 나를 말리던 직원에게 똑똑히 들었다.
6조 원의 가치를 넘어선다고.
내가 지금껏 쓴 돈이 7천 8백억이니까 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마정석의 가치가 적어도 5조는 넘을 거야.
나는 결심을 굳혔다.
최대한 빠르게 경매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경매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저 유물을 얻을 확률이 줄어든다.
이곳은 저놈들의 영역.
아마 지금도 계속해서 현물을 끌어오고 있을 관리자들을 생각하며 망설이지 않고 경매가를 적어 버튼을 눌렀다.
삑-
-네! 1번 관리자님? 5, 5조?
진행자는 순식간에 올라간 경매가에 당황해서 잠시 멈췄다가 힘차게 입을 열었다.
-5조 원이라는 금액이 나왔습니다! 무려 5조! 놀랍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매를 진행했던 저조차도 처음 보는 금액입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모든 관리자 석에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관리자들 모두가 이의를 제기한 순간이었다.
이거 잘못했다가는 현지뿐만이 아니라 고블린들까지 드러내야 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