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214)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서창렬은 불안감을 심하게 느끼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물음에 답을 해주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좀 강한 녀석이 나오려는 것뿐이니까요.”

“이 마력이 별거 아니라니…….”

왕눈이 때와 마찬가지로 출렁거리는 균열을 보며 제발 징그러운 녀석이 아니길 빌었다.

그나저나 마력이 충분하려나 모르겠네?

얼마 전 왕눈이를 소환하는데 너무 많은 마력을 사용했기에 인피니티 링의 마력이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마력이 부족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균열이 닫혀버리나?

전생과 현생을 합쳐 한 번도 마력이 부족했던 적이 없었기에 작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전생 때는 마력을 많이 소모 시켰던 녀석은 뚱이 하나뿐이었고, 지금은 인피니티 링이라는 소환에 특화된 유물이 있었으니까.

설마 생명력을 빼가는 건 아니겠지?

그런 경우가 있었다.

마력이 모두 소모된 각성자가 생명력을 불태워 능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이거 불안한데?

“혹시 포션을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포션을 가져오는 서창렬을 보자 이상하게 현태가 떠올랐다.

전혀 다르게 생겼음에도 둘의 모습이 겹쳐 보였는데.

상황이 좀 재밌네?

마력 포션을 건네받은 나는 곧바로 뚜껑을 열어 한 번에 들이켰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복용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빨리 좀 나와라. 불안해 죽겠으니까.’

이러다 정말 생명력을 소모하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출렁거리던 균열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다행이네. 곧 나오겠어.

“으윽!”

“헉!”

내가 놈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서창렬과 현아의 할아버지로부터 신음성이 터져 나왔고. 그 순간 균열에서 검은 무언가가 바닥에 딱 붙은 채 빠른 속도로 빠져나와 잠시 멈칫했는데.

“그림자?”

그것은 그림자였다.

징그럽지 않은 놈이 튀어나와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특이하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림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장소에 그림자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미는 녀석.

녀석의 모습은 마치 그림자로 이루어진 상어를 보는 듯했다.

놈은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피더니 임프들을 발견하고 입맛을 다시고는 천천히 임프들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는데.

놈을 보고는 잔뜩 겁에 질려서 주변을 방방 뛰어다니는 임프들을 보자 저놈이 임프를 쫓던 범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야!”

갑작스럽게 임프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가는 녀석을 보며 급히 입을 열자 녀석은 급정지하곤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와 시선을 맞추고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녀석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외침이 조금만 늦었으면 녀석이 타깃으로 삼은 임프가 잡아 먹혔을지도 몰랐으니까.

한숨을 내 쉬고 주변을 둘러본 나는 역시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창렬과 현아의 할아버지를 제외한 관리자들 모두가 전의 명철 아저씨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공포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진 그들은 몸을 벌벌 떨며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모두가 S급이지만 최상위는 되지 못한다는 의미.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홉일이를 제외한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낸 채로 마력을 잔뜩 끌어올린 채로 공포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뭡니까?”

서창렬의 물음에 그를 돌아보자 왕눈이가 나타났을 때의 현지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서창렬과 현아의 할아버지를 보며 태연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아! 좀 특이한 녀석이 나온 것 같네요.”

“그, 그렇습니까? 조, 조금 특이한 녀석이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를 보고 있던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놈이 내 그림자 속으로 다이빙을 하듯 쏙 들어가 버렸는데.

순간 이곳을 장학하고 있던 녀석의 존재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커헉!”

“으아~”

관리자들은 멈췄던 숨을 단숨에 뱉어내곤 벌벌 떨며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괴, 괴물…….”

“저, 저런 존재가 어떻게?”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 속에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나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그들 모두를 혼자 압도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제가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좋겠죠?”

“네? 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임프들을 데려가야 하는데…….”

“아! 이쪽 통로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밖에 임프들을 모두 실을 수 있는 차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창렬이 한쪽 벽으로 다가가 뭔가를 건드리자 벽이 움직이며 커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공포 가득한 눈을 한 채 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들을 보며 인사를 건넨 후 지안을 불러 유물을 챙기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떼었을 때.

“선우 군.”

“네?”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현아의 할아버지가 망설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 그게 말일세. 음- 혹시 그 임프를 한 마리만 받을 수 있겠는가?”

“임프를요?”

“그렇다네. 임프들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다른 몬스터들과는 달라 보이는데…….”

“괜찮으시다면 저도 한 마리만 받고 싶은데요. 아! 사례는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현아의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서창렬과 나머지 관리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아스트라라는 유물의 존재가 사라졌는지 임프를 바라보는 눈에 탐욕이 가득했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라 명령하면 절대복종까지는 아니어도 반려동물처럼 키울 수는 있을 테니까.

전생의 나는 이걸 이용해서 몬스터를 판 적도 있었다.

희귀한 걸 원하는 자들이 주로 나에게 접근했는데.

정부가 제재하기 전까지는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한 마리씩 선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이쪽만 이득을 본 후라 그들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크로우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현아의 할아버지와 서창렬에게만 선물할 거다.

“그러죠. 대신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임프를 한 마리씩 건네며 마석을 먹여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임프에게 그들의 말을 잘 들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났다.

임프 29마리와 함께.

* * *

“네 이놈!”

“아버지 제 말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다 필요 없다! 정신을 차린 줄 알았건만 이런 짓을 저질러? 네가 한 짓은 횡령이야 이놈아!”

아버지는 내가 유명의 부산물 창고를 털어간 걸 아시곤 내 말을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고 화부터 내고 계셨다.

‘아! 말한다는 걸 까먹고 있었어…….’

“네놈이 가져간 마정석의 값어치가 자그마치 6조가 넘는다. 이놈아! 그걸 도대체 어디다 쓴다고 가져간 것이야!”

아버지가 화부터 내시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말도 없이 가져갔기 때문이겠지.

“아버지, 이거!”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블루 마정석을 꺼내 재빨리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겨우 이딴 걸 사려? 으잉? 이건 블루 마정석이 아니냐?”

“네! 블루 마정석이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찾으시던.”

아버지는 내가 건넨 블루 마정석을 살피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이걸 어떻게 구했느냐? 지금도 찾고는 있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물건인데?”

“운이 좋았어요. 비밀 경매장에 필요한 걸 사러 갔다가 발견했거든요.”

“비밀 경매장이라면 그곳을 말하는 게냐?”

“네.”

아버지는 슬쩍 블루 마정석을 주머니에 챙겨 넣으시곤 표정을 굳히신 채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미리 말을 했어야지. 이 애비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죄송해요. 말한다는 걸 깜빡해서…….”

“그건 그렇고 뭘 사려고 그 많은 마정석을 가져갔누?”

“아 별건 아니고 만드라고라를 좀 사려고 가져갔어요.”

“이 블루 마정석도 그렇고. 그 귀한 것이 비밀 경매장에 나왔단 말이냐?”

사실 말이 비밀 경매장이지 지금까지 정말로 귀한 물건이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혹시 몰라 서창렬에게 부탁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나올 거라곤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이번엔 대단한 것들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블루 마정석과 만드라고라라…… 앞으로는 그곳도 주시해야겠구나.”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입을 여셨는데.

아직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깜짝 놀랄만한 것이.

“하나 더 있어요. 이건 아버지도 깜짝 놀라실걸요?”

“그러냐? 어디 말해보려무나.”

“무려 신기급 유물을 구해왔어요.”

“신기급? 유물이면 유물이지 신기 급은 또 무엇이냐?”

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시며 물었다.

당연했다.

아직 신화 속 유물이 등장한 적이 없으니까.

아마 관리자들도 아스트라에 대한 정확한 가치는 모르리라.

그저 인도에서 발견되어서 그리 이름을 지었을 뿐이겠지.

“제가 구한 유물은 역사 속 물건이 아니라 신화 속 유물이거든요.”

“신화 속 유물?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한단 말이냐?”

깜짝 놀라신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아스트라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네. 아스트라라고 해서 인도 신화 속에 나오는 활이에요.”

“아스트라라…… 응? 그건 활이 아니라 화살이 아니더냐?”

“아! 잘못 말했네요. 정확히는 그 화살을 만들어 주는 활이에요.”

정식 명칭은 아스트라가 맞았다.

다만 내가 그 이름을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전생의 아스트라의 주인이었던 시다트가 화염 속성의 화살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그네 야스트라라는 명칭이 붙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마력 화살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속성력까지 부여가 가능한 말 그대로 신화 속에나 나올법한 유물.

“거 참, 그런 물건을 경매에 내놓았단 말이냐?”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에요. 물론 제가 가져왔지만요.”

“그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더냐?”

나는 아버지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침 크로우 쪽에서 원하는 걸 제가 가지고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원하는 것? 신기라 불릴 만한 유물과 비견되는 걸 네가 가지고 있었다고?”

“네.”

“그것이 무엇이냐?”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이라고 할까요?”

“으잉? 그것은 너만 가능한 방법이지 않느냐?”

아버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곧바로 되물으셨다.

“그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그래서 딜을 했죠. 유물을 주면 알려주겠다고.”

“허허허. 그놈들이 크게 한 방 먹었구나.”

아버지가 웃으시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이어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아버지. 이제 수아 걱정은 그만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길래 어쩔 수 없이 균열을 열었거든요.”

“그렇겠지. 그놈들이 네 말만 듣고 그걸 믿을 리가 없겠지. 그런데 그거랑 수아랑 무슨 상관이냐?”

“괜찮은 녀석이 나왔거든요. 호위에 특화된 녀석이.”

현지의 은신을 꿰뚫어 보는 왕눈이조차 내 그림자에 숨어 있는 녀석을 찾아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졌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말이냐?”

“네. 지금 이곳에 있어요.”

“어서 보여다오.”

“아버지 놀라지 마세요.”

“그래.”

“샤크!”

내가 부르자 내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루어진 상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쉐도우 샤크라고 이름 붙인 녀석.

이름은 현지가 지어주었다.

부하로 달라면서.

“오! 상어를 많이 닮았구나.”

“이 녀석을 수아에게 붙여줄 생각이에요.”

“위험하지는 않겠느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고블린들보다 훨씬 똑똑한 녀석이라 명령을 세세하게 내릴 수 있거든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침묵을 하시다가 입을 여셨다.

“등급은 어찌 되느냐?”

“현지랑 비슷한 정도에요.”

“현지랑 말이냐?”

“네.”

“그 왕눈이? 그놈에게는 안되는 모양이구나.”

“현지랑은 다르게 상성이 안 좋은지 아예 상대가 안 되더라고요.”

이미 샤크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현지와 대련을 시켜본 결과 비슷한 정도라는 판단이 나왔다.

현지가 살짝 우세한 정도?

왕눈이에겐 현지와 다르게 약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상성 차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샤크를 찾아내지 못하는 왕눈이였지만, 일정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권역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왕눈이에게 다가가자 왕눈이의 촉수들이 내 그림자를 주시하더니 다짜고짜 그림자를 향해 레이저를 쏘아대는 통에 깜짝 놀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왕눈이가 나를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거였다.

레이저를 피해 도주하는 샤크를 보며 내 앞을 가로막는 왕눈이에게 솔직히 좀 감동했다.

그 이후 둘에게 대련을 시켜보고 알았다.

샤크는 절대 왕눈이의 방어를 뚫지 못했고, 반대로 왕눈이는 샤크의 방어를 쉽게 뚫어냈으니까.

물론 샤크가 드러내지 않은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결과가 그랬다.

거기다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 수 있었는데.

악마종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항상 서로를 주시하며 살기를 뿜어내었는데, 내가 소환한 게 아니었다면 아마 둘은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 서로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싸웠을지도 모르겠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었다.

“아! 들으셨죠. 이 녀석들 존재감만으로도 S급 각성자를 꼼짝도 못 하게 한다는 거요.”

“그래. 명철이에게 들었다.”

S급 최상위가 아니라면 샤크가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아버지도 수아에 대한 걱정을 좀 접어두실 수 있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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