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를 관통해 쏘아져 나가는 붉은 빛줄기.
지나치는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며 소음까지도 빨아들이는 듯한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여의도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악마종조차 아무런 거부감없이 꿰뚫어버리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는데.
“아!”
사라졌던 소리가 다시 들린다는 걸 깨달은 나는 급히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어떻게 됐어!”
쿠웅-
순간 고막을 강타하는 거대한 굉음은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는데.
뚱이는?
뚱이 쪽에 할당하던 드론 대부분이 충격파에 박살이 났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드론! 드론 빨리 뚱이 쪽으로 보내!”
“네!”
다행히 멀리서 찍고 있던 드론이 있었는지 바로 뚱이의 영상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왕눈이가 쏜 레이저가 무언가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바로 뚱이였다.
앞에서 레이저를 막아내는 뚱이와 밀려나지 않도록 뚱이를 보조하는 샤벨의 필사적인 모습.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 뚱이야! 제발.”
만약 뚱이가 저 에너지를 해소하지 못하고 그대로 보낸다면 여의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어이없는 결과가.
아니, 그럼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랐다.
만약 저곳에서 에너지가 터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마포뿐만이 아니라 서울 전체를 날려 버릴지도 몰랐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찰나의 시간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이상한 경험.
그때였다.
레이저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는 모습에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어서 뚱이가 레이저의 진행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검붉은 레이저가 화면이 아닌 시야에 들어오는 걸 확인한 나는 멈췄던 숨을 그제야 내뱉을 수 있었다.
“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청소 시작해!”
“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여 있던 가디언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연락 돌려. 괴물 처리했으니까 진입해서 몬스터 소탕하라고. 방송국, 정부, 길드 가릴 것 없이 모두 연락해. 소환수들 모두 철수시키고!”
“네.”
마음 같아서는 내 소환수들을 이용해 몬스터를 청소하고 싶었지만, 다른 길드원들이 내 소환수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기에 모두 철수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가자!”
“네!”
이제 시작이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유일한 길드가 유명이라는 걸 제대로 홍보해야 했으니까.
이 기회에 유명을 대한민국의 수호자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도련님! 이놈 살아 있어요!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현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순간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급히 무전기를 들어 올린 나는 고함을 치듯 물었는데.
“무슨 소리야!”
-재생 중인 것 같아요. 놈의 파편들이 점차 모여들고 있어요.
“아직 살아 있다고? 그걸 처맞고도?”
-네. 일단 제가 재생 못 하게 막아볼게요.
-나도 그쪽으로 갈게.
지안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주변에 있는 드론으로 빨리 그쪽을 비추라고 지시한 후 화면을 응시했다.
드론의 초점이 잡히고 점차 그쪽의 상황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파편들끼리 뭉치며 점차 크기를 불려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어이없는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으니까.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화면 속의 모습에 굳어버린 채로 초점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저 꼴이 됐는데도 재생한다고? 그게 가능해?
화면을 응시한 채 멈춰버린 내 눈에 현지가 파편들을 향해 참격을 뿌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검기가 날아들어 점차 거대해져 가는 놈을 베고 지나갔지만, 재생의 속도만 늦출 뿐 효과가 없는 모습.
-저도 이제 도착해요! 어!
지안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화면 속에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그림자가 보였는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지안에게 붙여둔 샤크였다.
재생 중인 악마종의 앞에 도착한 샤크의 그림자 웅덩이가 점차 크기를 불려 나가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되었는데.
점차 거대해지는 그림자 웅덩이의 크기가 순식간에 작은 운동장을 연상시킬 만큼 거대해졌다.
주변을 모두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샤크를 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나는 무전기에 대고 급히 소리쳤다.
“현지야 빠져!”
잡아먹겠다고? 저걸?
샤크의 생각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먹어 치워버려!”
내 육성이 터져 나온 순간.
거대한 그림자 웅덩이에서 그 크기에 걸맞은 거대한 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물 위의 먹이를 향해 뛰어오르는 상어처럼 높이 뛰어오른 샤크가 악마종을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곤 그림자 속으로 다이빙하듯 사라졌는데.
잠잠한 그림자를 조용히 지켜보던 그때 샤크가 아닌 뭔가가 그림자를 뚫고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종의 다리 중 하나가 그림자를 뚫고 나온 것이었다.
순간 그림자 웅덩이에서 그림자로 이루어진 긴 촉수 수십 개가 튀어나오며 다리를 묶어 다시 그림자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문어 다리가 거칠게 저항을 시작했다.
팽팽한 힘겨루기.
거친 반항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그림자 촉수들이 시간이 지나자 점차 우세해지며 다리의 저항을 이겨내고 악마종의 다리들을 그림자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다리가 그림자의 늪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춘 걸 확인한 나는 서서히 작아지는 그림자 웅덩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후우~”
“와아아아!!!”
내 한숨과 함께 주변의 길드원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모두가 긴장했던 순간이었던 만큼 기쁨이 큰 모양이었다.
* * *
“그나저나 이걸 어쩌지?”
뉴스를 보고 있는 나는 좀 난감했다.
몬스터가 사람들을 구했다는 말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이었다.
유명의 길드들과 함께 움직인 몬스터들.
-유명의 연구소에서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입니다.
예상은 했다.
분명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쳐오자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지 참 난감했다.
아버지도 상황이 좀 난감한지 모든 걸 나에게 일임하겠다며 한발 물러서셨고, 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실대로 말하려 했었다.
내가 소환했다고.
그런데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살펴본 결과 사실을 밝혔다간 말도 안 되는 유머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랬는데.
사실은 내가 균열을 통해 나온 마왕이란다.
마왕이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유명일가를 협박해 노예처럼 부려먹으며 천천히 지구를 잠식하려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품고 있다는 말이었는데.
다행히 이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문제는 내 이명이 마왕이 되어 버렸다는 거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소환한 몬스터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 이명이 정말 마왕이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알바들을 풀어 좋은 방향으로 선회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긴 했지만, 아직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김 실장 생각은 어때?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저는 도련님께서 방송에 출연하셨으면 합니다.”
“방송? 기자회견이 아니라?”
“네. 기자회견은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드니 좀 희화화하는 방송 쪽이 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이라?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것도 문제가 있었다.
내가 도대체 방송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데?
몬스터를 소환한 건 내가 맞지만, 마왕은 아니다?
“어떤 방송?”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그 사람이 알고 싶다.’에 출현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알고 싶다? 그런 방송도 있었어?”
“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대중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놈이 알고 싶다라?”
“정확히는 그 사람이 알고 싶다 입니다.”
“그럼 일단 그 프로그램이 어떤 건지 봐야겠네.”
“그럼 일단 준비만 해 놓겠습니다.”
“알았어.”
김 실장이 나간 후 나는 리모컨을 이용해 ‘그 사람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의 정보를 보며 어떤 편을 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응? 뭐야 최강준도 이 프로그램에 나왔었어?
‘그 사람이 알고 싶다.’ 18편에 최강준이 나왔다는 걸 확인한 나는 얼른 재생을 시켰다.
시작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최강준에게 구함을 받은 사람들이나 그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호감을 끌어낸 후 최강준에게 호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MC.
질문들도 대부분 그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었는데.
문제는 후반부였다.
최강준이 난감해할 질문들을 거침없이 묻는 MC와 대중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는 솔직히 좀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으니까.
연합의 해체와 관련된 물음까지도 거침없이 하는 MC.
물론 조정은 가능할 거다.
너무 심한 질문들은 애초에 차단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어 고심하고 있던 그때 방문이 열리며 수아가 나타났다.
“아빠!”
나에게 안겨 오는 수아를 보며 다시 보기로 보던 ‘그 사람이 알고 싶다.’를 일시 정지시킨 후 수아를 안아 무릎에 앉힌 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학교 잘 다녀왔어요?”
“네!”
오늘은 아버지가 수아를 마중 나가는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나와의 협상을 통해 얻어낸 정당한 권리였다.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된 날 수아의 옆방을 꼭 사용하셔야겠다고 우기시는 아버지에게 수아의 마중을 가지고 협상을 진행해 일주일에 2번은 아버지에게 맡기게 되었다.
“아빠! 아빠는 마왕이에요?”
“응? 마왕?”
“응! 친구들이 나보고 마왕의 딸이라고 막 부러워해요!”
이게 무슨 소리지? 마왕의 딸인데 부러워한다고?
“부, 부러워해? 왜?”
“다크 레이디! 다크 레이디래요!”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아!
요즘 수아가 자주 보던 애니메이션 제목이 다크 레이디였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다크 레이디가 설마 마왕의 딸인 건가? 분명 나쁜 놈들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던 거 같은데?
“수아는 다크 레이디가 좋아?”
“네! 수아도 다크 레이디처럼 되고 싶어요! 나쁜 사람들을 혼내줄 거예요!”
양손을 번쩍 들며 외치는 수아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왕의 딸이 왜 나쁜 놈들을 혼내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네. 그런 만화라도 있어서.
“우리 수아 때문에 이 세상에 나쁜 놈들이 전부 사라지겠는걸?”
“헤헤헤.”
“그런데 수아는 마왕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응! 정의의 사도!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사람!”
“응?”
이건 좀 아닌데? 왜 마왕이 나쁜 놈들을 혼내고 다니는 건데?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지만 마왕의 설정을 너무 이상하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수아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수아는 용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나쁜 사람이요!”
“왜?”
“착한 마왕을 맨날 괴롭혀요! 용사 나빠!”
설마 했는데…….
그 댓글들이 설마 수아 또래의 아이들이 작성한 거였어?
내가 마왕이라 주장하는 글의 반응을 살펴보면 댓글 중에 이상한 댓글들이 정말 많았다.
단순히 마왕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댓글들과 마왕은 착하다는 댓글.
누군가의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다 어린아이들이었단 말이야?
“수아의 친구들도 다 그래? 마왕이 착하고 용사가 나쁘다고?”
“응! 다들 다크 레이디만 하려고 해요. 용사는 아무도 안 하려고 해요! 이제 수아가 맨날 다크 레이디야! 아빠가 마왕이니까!”
아마 수아의 말은 역할극 같은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수아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TV 매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TV에 나오는 만화를 보고 그걸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이야 마왕과 용사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다른 심각한 문제가 만화를 통해 방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악인을 선인으로 선인을 악인으로 바꾸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가 나서서 언론을 통제해 아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없을 거다.
대중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이건 좀 고민을 해 봐야 할 문제 같았다.
“수아는 다크 레이디가 좋아?”
“응! 좋아요! 아빠가 마왕이라서 더 좋아요!”
“마왕이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마왕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