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됐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 실장을 보며 물었다.
“처리만 해준다면 뭐든 준다는 입장입니다.”
“이쪽에서 원하는 게 뭐든 준다는 거야?”
“네. 세계랭커 중 일본에 있는 카지마와 키리마루를 제외하고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사실인지 많이 다급한 모양입니다.”
카지마와 키리마루는 세계랭커에 들어가긴 했지만, 거의 끝자락이었다.
“그래서 뭘 받기로 했는데?”
“일단 저희 유명 쪽에 붙이는 관세를 10년간 절반 이하로 낮춰 주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현자의 돌을 받기로 했습니다.”
“현자의 돌? 그게 뭔데?”
“저도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유물이라고 합니다. 품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블루 마정석의 각성자 버전인가?
“정확한 수치도 들었어?”
“네. 증폭률이 1.5배라고 하던데 정확한 건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 확인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 외에 능력은?”
“중급 회복 포션 이상의 치유력을 항상 유지해 주며 마력의 회복속도 역시 중급 마력 포션 이상으로 유지해 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마나 호흡법에 도움이 되거나 몸속의 불순물이나 독을 정화해 준다고 합니다.”
“부작용 같은 건 없지?”
“없다고 합니다.”
괜찮은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작용 없이 마력의 증폭율이 150%면 대단히 뛰어난 수준이었으니까.
거기다 마력의 회복과 치유력.
각성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할 유물이었다.
“다른 건?”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자잘한 수준입니다. 물론 원하는 것이 더 있으면 뭐든 들어 준다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주는 저 두 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짜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희 유명이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생각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관세가 줄어들면 당연히 물건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경쟁력이 높아질 테니 지금보다 더욱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테고 그로 인한 수입 역시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테니까요.”
“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일본에서 유명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기도 하고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추진하도록 하고 언제까지 처리해 달래?”
“최대한 빨리 해결해 줬으면 한답니다.”
“그럼 아버지와 형 스케줄 확인해서 날짜 좀 잡아봐.”
“네.”
수아와 여행을 간다는 말에 아버지는 당연히 좋아하셨지만, 형의 경우 난색을 표했다.
물론 형도 수아와의 여행을 원하는 입장이었지만,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었는데 요즘 형을 보면 좀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눈이 퀭한 게 잠을 아예 자지 않는 듯했으니까.
그 때문에 매일 수아가 버프를 걸어주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 * *
“어때? 찾을 수 있겠어?”
배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현태에게 물었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홋카이도에 배를 타고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났지만, 어디에서도 악마종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오로치.
일본에서는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엄청나게 커다란 지렁이였다.
문제는 이놈이 땅을 파고 들어가서 찾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찾는다고 해도 끄집어내기 역시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끼익! 끼익!”
“끽!”
배에서 내린 임프들은 신이 나는지 주변을 방방 뛰어다니며 기쁨을 토로하고 있었다.
CF 촬영 중인 몇몇을 제외한 모든 임프들을 데려온 이유가 바로 그놈을 땅속에서 꺼내기 위해서였다.
“멀리 가진 마라.”
임프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서인지 해맑게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일단 위성을 이용해서 몬스터가 적은 곳만 집중적으로 관찰할 예정이라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오래라? 그게 시간 단위를 말하는 거야? 일 단위를 말하는 거야?”
“일 단위입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48시간 즉 2일이었다.
이틀 후 수아와 아버지, 형 그리고 형수님이 일본으로 건너오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처리하길 원했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이 되었다.
“현지하고 지안은?”
“각각 왕눈이와 샤크를 데리고 찾아보고 있긴 하지만 워낙 넓어서…….”
현지와 지안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탐색을 위해 왕눈이와 샤크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났는데. 이게 다 일본 정부 때문이었다.
이것들은 위치도 파악해 놓지 않고 뭐한 거야? 이러니 세계랭커들이 아무도 안 오려고 하지…….
일본 정부는 섬을 폐쇄한 후 녀석에 대한 위치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못 했다.
몬스터들이 악마종을 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는 악마종을 보면서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럼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해놔.”
“알겠습니다.”
왕눈이와 샤크가 이곳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들이 접근하기 시작할 테니 미리미리 몬스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뚱이보다는 임프들이 몬스터들 정리하기 편할 거야.”
“네? 그게 무슨?”
“임프는 모이면 모일수록 땅을 조종하는 능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저 정도 수면 히드라도 순식간에 매장해 버릴걸? 다수를 상대하는 데는 임프가 최고야.”
임프.
내가 방금 입 밖으로 말했듯 임프는 수가 늘어날수록 땅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에 어비스에서 조차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종족이었다.
부족생활을 하는 임프는 보통 40~50개체 정도가 모여 사는데 큰 부족의 경우 백여 마리까지도 모여 사는 경우가 있었다.
한번은 뭣도 모르는 길드가 이 큰 부족을 건드린 적이 있었는데.
정예라 불리는 가디언 300여 명이 순식간에 땅속에 매장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길드의 정예가 떼 몰살을 당한 거였는데 그때 땅속에 매장된 가디언들 중에 S급에 해당하는 자들이 4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부족 단위의 임프는 건들면 안 되는 몬스터가 되어버렸다.
임프에 대해 연구한 자들의 말에 따르면 임프 200마리 정도면 서울 전체에 강도 8.5 이상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기습에 약하다는 아주 큰 약점이 있긴 했지만.
“너희 뭐하냐?”
“그, 그게…….”
도망가는 닭이라도 잡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길드원들.
길드원들이 쫓아오자 술래잡기를 하자는 줄 알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임프들과 길드원들의 모습에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모두 모여!”
“끽?”
“끼익?”
내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린 임프들이 내 앞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내 앞에 모여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임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좀 귀엽긴 하네.
“지금부터 청소를 시작할 거야. 여기 있는 얘들 따라다니면서 몬스터 보이면 머리 빼고 다 묻어버려 알았어?”
“끽!”
맨 앞에 있던 임프가 대표로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며 현태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이 앞장서서 임프들 보호하면서 다녀. 절대 임프들한테 선봉을 맡기지 마. 알았지?”
“네.”
“시작해.”
임프들을 데리고 떠나는 현태의 뒷모습을 보며 등을 돌린 나는 뚱이에게 입을 열었다.
“너도 심심하면 좀 놀다 와.”
“쿠오?”
그래도 되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뚱이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뚱이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뛰쳐나갔다.
“도련님.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볼까?”
김 실장의 말에 대답한 나는 걸음을 옮겨 모니터가 잔뜩 설치된 곳으로 이동해 화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김 실장 생각은 어때?”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분석팀의 보고에 따르면 몬스터의 비율이 적은 곳은 총 12곳입니다. 드론을 뛰어 놨으니 금방 찾을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요즘 김 실장은 아버지의 비서라기보다는 내 비서라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하는 모든 지시가 김 실장에게 전달이 되어서일까? 요즘 붙어 있는 날이 많았다.
“그 뭐냐? 지진파 측정? 그건 어떻게 됐어?”
“분석팀에서 확인하는 중입니다.”
우르릉-
김 실장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작은 울림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응? 분석팀! 지금 이 진동 어디에서…….”
“아니야. 이건 임프들이야.”
“네? 그게 무슨?”
김 실장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는데.
“임프들이 몬스터 청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진동이라고.”
“임프들이요? 제가 듣기로는 조금 큰 구덩이를 만드는 게 다라고 들었는데요?”
“그건 하나였을 경우고. 모이면 모일수록 힘이 강해지는 게 임프라고. 거기다 구덩이만 만드는 게 아니기도 하고. ”
내 말을 들은 김 실장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임프에 대해 정확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대충 저 정도 수라면 과천의 본사 건물은 순식간에 매장해 버릴 정도는 될 거야.”
“그러면 땅을 조종한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김 실장에게 임프들의 능력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 주었는데, 김 실장은 보물이라도 발견한 눈으로 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대충 이 정도? 그런데 왜?”
“임프들을 건설업에 투입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건설업?”
“네. 철거 작업이나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거나 다지는 작업이 급속도로 단축되면 건설 시간이나 그 외에 비용감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농사를 짓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 실장의 말은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고정관념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아!”
김 실장의 말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비스에 세워질 도시를 짓는데 임프를 이용하면 어떨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많은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마석 광산의 개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위치를 알고 있으니 임프를 이용해 순식간에 굴을 뚫어 버리면 실제로 마석을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될 테니까.
“왜 그러십니까?”
“고마워 김 실장.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다르게 보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시험 삼아 이번 본사 주위에 건설될 곳에 저 임프들을 투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돌아가면 바로 추진해 봐.”
“네.”
* * *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하루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놈이 있을 만한 구역을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현지와 지안은 여전히 탐색 중이었고, 이미 주변 정리는 모두 마친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녀석의 그림자는커녕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없겠어. 현지하고 지안이 어디까지 왔대?”
“곧 도착한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둔 게 있긴 했지만, 그 방법을 사용하면 이쪽에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찾아보는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더는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럼 이동할 준비 하고 대기해.”
“알겠습니다.”
잔뜩 깔아놓은 장비들을 수거하기 시작하는 길드원들을 지켜보며 지안과 현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현지가 먼저 샤크와 함께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10분 정도가 흐르지 지안과 왕눈이가 도착했다.
“이동 준비 끝났으면 바로 이동하지.”
“네!”
이동을 시작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사히카와공항이었다.
홋카이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
일단 피로도를 풀기 위해 잠시 쉬기로 한 나는 계획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내 계획은 별거 없었는데.
샤크를 이곳과 좀 떨어진 장소로 보내 존재감을 잔뜩 드러내며 마력을 최대한 방출해 놈을 끌어들이는 단순한 방법이었다.
악마종끼리는 서로 살의를 품는다는 걸 이용한 방법.
이 방법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방법이 이것뿐이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겨울잠이라도 자는지 온갖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녀석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지진파 측정으로도 놈에 대한 단서조차 얻지 못했기에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놈의 처리는커녕 찾는 것조차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괜찮을까요?”
지안이 나에게 다가오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을 거야. 안티 디텍터 잔뜩 가져왔잖아.”
“그래도 저는 좀 불안해요.”
지안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바로 녀석이 땅속으로 이동한다는 거였다.
놈이 혹여나 샤크에게 향하던 도중 이쪽을 발견하고 공격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피해를 볼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이곳에 있는 모두가 순식간에 삼켜져 버릴지도 몰랐다.
거기다 길드의 정예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모두가 각성자인 것은 아니었다.
김 실장을 비롯한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자들은 모두 유명의 일반 직원들이었으니까.
“만약 이쪽을 발견한다고 해도 왕눈이가 있으니까 최소한 대피할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야.”
왕눈이의 염력으로 놈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뚱이가 도운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었다.
거기다 임프들의 이동술도 있었고.
땅 자체를 움직여 이동하는 특이한 기술이 있다는 걸 오늘 임프를 데리고 청소하러 다닌 현태에게 들었는데.
직접 확인해 본 나는 임프들의 능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속 100km를 가볍게 넘어서는 속도로 이동하는 걸 직접 봤으니까.
‘그건 그렇고 피곤하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때 김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이제 시작하시죠?”
“응? 벌써 시간이 됐어?”
“정확히 3시간이 지났습니다.”
“샤크!”
내 부름에 그림자에서 고개를 내미는 샤크.
“알지? 최대한 존재감을 퍼트려야 해. 놈이 너를 느낄 수 있도록.”
멀뚱멀뚱 내 말을 듣기만 하는 샤크에게 이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하면 바로 시작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샤크를 보며 제발 이쪽을 발견하지 못하길 빌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안티 디텍터 발동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