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보시겠습니까?”
“네. 이쪽으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자리를 좀 피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키리마루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현지를 불러 현지와 샤크를 제외한 고블린들과 경호원 모두를 아버지와 형, 수아에게 붙여놓았다.
만약 무슨 일이 발생할 시에는 지체하지 말고 모조리 죽여 버리란 명령을 내린 채로.
잠시 기다리자 키리마루가 부하 둘과 함께 나타났는데, 그들을 모두 이쪽으로 불러달라고 한 게 바로 나였다.
“반갑습니다. 키리마루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선우입니다.”
내가 기다리던 방으로 들어오는 키리마루와 그의 부하들을 보며 인사를 주고받은 나는 그에게 먼저 자리를 권했다.
올해 유명에서 출시한 통역기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부하가 사고를 좀 친 모양입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곧바로 그에게 사과를 전하고 그의 반응을 살폈는데.
“사고라? 정말 사고가 맞습니까? 저를 불러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요?”
역시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다.
물론 표정은 숨기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적대감 가득해 보이는 말투로 깨달을 수 있었다.
“충성이 좀 과한 친구라 저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쪽을 찾아갔다고 하네요.”
“몰살이라는 단어를 쓰더군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무시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필 그런 걸 적어놨냐?
그냥 만나자고만 해도 충분할걸.
“설마요? 세계랭커라는 자리에 계신 분을 어떻게 무시하겠습니까? 그냥 충성심에서 비롯된 실수 정도로 생각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실수라? 저는 실수가 아니라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충분히 벌을 주었으니 그냥 넘어가 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그건 안 될 말이죠. 저에게 잘못을 했으니 벌을 줘도 제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호히 말하는 그를 보며 이걸 어떻게 넘겨야 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그냥 현지에게 모든 걸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네. 해야겠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 지금 내 앞에서 후회라고 했습니까?”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보며 확인하듯 묻는 그에게 정확히 대답을 해주었다.
“이것만 봐도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알 수 있겠어. 내가 후회를 한다? 웃기지도 않는군.”
“지금부터 벌어지는 상황은 모두 그쪽에서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크하하하. 감히!”
폭소를 터뜨리다 말고 나에게 소리치는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현지야.”
“네, 도련님!”
대답과 함께 키리마루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현지를 보며 이어서 지시를 내렸다.
“알아서 처리해. 아! 죽이지는 말고!”
갑작스럽게 그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현지 때문에 당황해서는 잔뜩 굳어버린 키리마루와 그의 부하들의 두 눈동자의 초점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퍽! 퍽!
타격음이 두 번 울리자 키리마루의 부하들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는데, 현지가 움직이는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현지는 두 걸음 물러나고는 씨익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덤벼! 세계랭커 수준 한번 보자.”
“감히!”
순간 모습을 감추는 키리마루와 현지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샤크야. 나 좀 지켜줄래?”
그럴 리는 없겠지만 둘의 싸움에 내 등이 터질지도 몰랐기에 부탁을 한 후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한잔 마시며 생각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이미 키리마루가 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만약 뒤를 잡히지 않은 채 둘이 싸운다면 얼마나 걸릴지.
그런데.
퍽-
순간 또 타격음이 들리고 키리마루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의 표정은 당황이 잔뜩 섞여 있었다.
“나와라!”
그의 외침을 들은 나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현지의 존재를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퍼버버버벅!
샌드백.
그는 샌드백이었다.
현지의 공격에 반응하긴 했지만, 너무 늦게 반응해서인지 계속해서 두들겨 맞는 그의 모습은 마치 샌드백을 연상시켰다.
바로 반격을 해봐도 이미 현지는 그곳에서 피한 뒤인지 계속해서 공격당하던 그는 전의를 상실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니 기절해 버린 건가?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끝까지 신음을 내뱉지 않는 키리마루였다.
샤크의 존재감을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가?
“거봐요. 별거 아니죠?”
“포션이나 가져와.”
“여기요.”
현지에게 포션을 받아든 나는 입을 벌리는 샤크에게 그대로 포션을 부어버렸다.
꿀꺽꿀꺽 포션을 받아먹은 샤크는 이어서 키리마루에게 다가가 그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얼마 전 알아낸 샤크의 새로운 능력.
표션을 먹은 샤크가 상처 입은 생물을 집어삼켜 포션의 효과를 상승시키는 이상한 능력.
여의도에서 왕눈이의 레이저를 받아낸 뚱이는 초주검 상태였는데.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뚱이를 치료하기 위해 최상급 포션을 들이부었음에도 치료가 너무 더뎌 걱정하고 있던 도중에 스스로 포션을 마신 샤크가 뚱이를 집어삼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뚱이를 잡아먹은 건 줄 알고.
하지만 아니었다.
샤크는 뚱이를 금방 뱉어냈는데, 황당하게도 모든 상처가 깨끗이 치료된 모습으로 뚱이가 나타난 걸 보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 봤는데, 확인 결과 최상급 포션의 몇 배나 되는 치유 효과가 있는 거로 밝혀졌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샤크가 키리마루를 삼키고 1분쯤 지나고 그를 뱉어냈다.
퉁퉁 부어올랐던 그의 얼굴이 모두 정상이 된 모습으로.
“쿨럭!”
숨이 막혔는지 기침을 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의 눈은 마치 지옥을 경험한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샤크의 치료를 받는 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부작용이었다.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모두 저런 반응을 보였으니까.
“어떻게? 더 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그를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 *
키리마루가 도망치듯 떠난 후.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
“네. 너무 약해요.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그 말?”
“그, 있잖아요. 우겨서 세계랭커가 됐다는 말이요.”
“설마? 현지 네가 너무 강해진 거 아니야?”
현지의 강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10강 정도가 아닐까 하는 판단이 들 정도로 상대조차 안 되는 모습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제가 강해진 것도 있긴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저 사람이 너무 약해요. 빨강이한테도 질 정도로요.”
“빨강이?”
“아! 홉일이요.”
“그 정도라고?”
“네. 닌자라고 해서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그냥 일반 암살계열 각성자랑 차이가 없어요.”
차이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의 강함이 거짓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지.
“정확히 수준이 어떤데?”
“제 부하들 둘이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정도? 셋이면 압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약하다고?”
“네.”
이건 좀 충격이었다.
물론 고블린들 하나하나가 S급 정도 되긴 했지만, 세계랭커라 불리는 자들은 일반적인 S급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예가 중동의 어쌔신마스터였다.
중국과 자주 충돌하는 그는 중국의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함정을 작은 상처조차 없이 유유히 벗어난 그의 일화는 대중들이 세계랭커라는 자들의 강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었다.
그때 동원되었던 중국 쪽 각성자의 등급을 살펴보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S급이 7명, A급이 50명, B급 300명으로 구성된 총 357명이라는 각성자가 그 하나를 잡기 위해 움직였음에도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고 역으로 당한 어이없는 결과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으니까.
물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10강 중 하나였다.
“카지마도 너 눈치 못 챘다고 했지?”
“네.”
이걸 중동에 보낼 수도 없고 어쩌지?
현지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었는데,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어비스가 열리기 전에 수준 파악을 해야 하는데…… 이걸 어쩌지?
어비스.
말이 어비스지 그곳은 전쟁터였다.
특히 초창기에는 국가 간의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질 정도로 탐욕스러운 장소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마석 광산을 비롯한 희귀 광산들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는 곳이 바로 어비스였다.
그로 인해 각성자의 수준이 급격히 올라가긴 하지만, 그만큼 각성자의 수도 줄어들기에 점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어비스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몬스터나 마수, 악마종들처럼 강한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점차 인류가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약소국들이 멸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어비스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지구에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전 세계적 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위해 핵이 사용될 정도였는데, 그것도 순간뿐이지 계속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몬스터와 끝없는 전쟁이 발생한다.
방사능으로 인해 각성자가 아니면 그 땅에 진입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에 점차 인류가 살아갈 공간이 부족해지고 인류의 터전이 지구에서 어비스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현세에 지옥이 강림한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은 노예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귀족이 존재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제 수준을 그렇게 파악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궁금하잖아. 넌 안 궁금해?”
“저도 궁금하긴 한데 딱히 상관없잖아요.”
아직 현지에게는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게이트가 열리면 국가 간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질 테니 너의 수준을 파악해서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아니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왔다.
* * *
“이게 현자의 돌이란 말이지?”
일본에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는데.
생각보다 관광은 즐거웠다.
처음으로 가족 여행이란 것을 해본 아버지는 벌써 다른 여행계획을 짤 정도로 만족한 상태였고 형도 괜찮았는지 형수님과의 사이가 많이 발전한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수아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들을 잔뜩 사 와서는 직접 포장을 하며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넣으며 기뻐했다.
“네. 일본 측에서 감사 인사와 함께 바로 보내왔습니다.”
본래 악마종을 처리한 후 곧바로 주었어야 할 물건이었는데, 계속 시간을 끌다 지금에서야 보내는 이유는 아마 키리마루 때문이리라.
키리마루가 상대조차 되지 않는 존재가 이쪽에 있다는 사실을 듣곤 급히 보낸 거겠지.
“그럼 관세인가 뭔가도 해결됐어?”
현자의 돌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김 실장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래? 알았어.”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어.”
김 실장이 방을 벗어난 후 곧바로 마력을 끌어 올려 보았다.
증폭률이 150%인지 확인을 해보기 위해.
“오!”
평소 마력을 사용하던 것처럼 마력을 끌어올리던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똑같은 균열을 열었음에도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소모된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는 것까지 느껴졌는데.
“와! 이런 게 일본에 있었단 말이야? 주기 싫을 만하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울토마토 정도 되는 붉은 돌맹이의 모습인 현자의 돌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을 것 같았다.
이건 목걸이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녀야겠네.
드르르륵-
김 실장이 나가고 혼자 방에서 현자의 돌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스마트폰의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상무님. 게이트홀에 또 균열이 열릴 모양이에요.
지안의 전화였다.
“그게 왜? 평소처럼 처리하면 되잖아.”
-그게요. 등급이 지나치게 높아요.
“뭐? 설마 S급이야?”
-네. 측정결과 S급 균열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지금껏 게이트 홀에 열린 균열 중 S급은 없었다.
아니 A급조차 없었는데, 갑자기 S급 균열이 열린다는 말에 급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일단 왕눈이와 뚱이를 데려오긴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오늘은 현태와 현지 둘 다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필 현지와 현태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 균열이 열릴 게 뭐람?
“그 정도면 충분하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너도 준비는 해놔.”
-네.
현태는 오늘 등급 테스트를 하기 위해 길드에 가 있는 상황이었고, 현지는 오늘이 할머니의 기일이라고 잠지 산소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운 후였다.
왜 거기까지 고블린들을 데려가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서둘러 걸음을 옮긴 나는 내 소환수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이트 홀에 도착했다.
“아! 오셨어요.”
“얼마나 남았어?”
“한 시간 안으로 열릴 것 같아요.”
“상황실 가서 충격 차단 방벽 올리라고 해.”
“네!”
대답과 함께 급히 뛰어가는 지안을 보던 나는 고개를 올려 천장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너희 다 내려와!”
끼릭! 끼릭!
거미류의 몬스터들로 천장 쪽에 거미줄을 치고 있던 녀석들이 내 말에 곧바로 거미줄을 타고 내려와 내 주변으로 내려섰다.
비행형 몬스터가 나왔을 때를 대비해 천장에 거미줄을 잔뜩 쳐놓던 소환수들이었다.
“너희들 다 저쪽 구석에 가서 기다려. 뚱이랑 왕눈이 빼고.”
내 말에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대답한 소환수들이 조용히 방벽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발 작은놈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충격을 차단하는 방벽이 있다고 해도 대형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면 건물 자체에 피해가 갈 우려가 있었기에 제발 작은 녀석이 나오길 빌 수밖에 없었다.
물론 튀어나오는 순간 압살을 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상무님!”
조용히 균열이 열리길 기다리던 그때 드디어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아! 초대형 균열이네.”
허공에 생긴 거대한 일그러짐만 봐도 초대형 균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