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눈아 시작해.”
내 말에 높이 떠오른 왕눈이는 앞쪽에서 벽을 만들고 있는 소환수들을 역할에 따라 나누어 배치를 시작했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임프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너희들이 할 일은 이 공간을 강화하는 거야. 저번에 해봤지? 충격이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막는 연습. 그때처럼만 하면 돼. 알았지?”
“끼익!”
“끽!”
내 지시에 따라 미리 연습했던 대로 임프들이 단체로 이동을 시작했다.
게이트가 열릴 장소와 먼 위치로 이동한 임프들이 바닥에 양손을 데고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하는 모습.
잘 돼야 할 텐데…….
임프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내 계획대로 일을 벌이려면 이곳에 게이트가 열렸다는 걸 절대 들켜서는 안 되었으니까.
“뚱이야 너는 바로 나서지 말고 기다렸다가 강한 놈들 나오면 바로 뛰어들 준비해. 현지와 겹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쿠워!”
대답하는 뚱이를 보며 이번에는 지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처음은 너야. 최대한으로 분열시켜서 쏟아부어 알았지?”
“네.”
이어서 나는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명철 아저씨에게 걸음을 옮기며 불안한 눈으로 한 곳을 주시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력이 상승하는 속도가 빠른 것 같은데?
S급 따위는 진작에 넘어선 흉악할 정도의 마력.
이대로라면 S급 균열 수백 개와 맞먹는 정도였기에 불안하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저씨.”
“아! 선우야.”
“아직 밖에 연락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제 말대로 해주세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이게 써드임팩트인 것 같아요.”
“써드임팩트? 설마? 이것이……?”
처음 전 세계에 동시 균열이 발생했을 때 종말의 시작이라던 사람들은 각성자들이 나타났을 때 이 둘을 퍼스트 임팩트와 세컨드 임팩트로 나누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게이트를 시작으로 대중들이 이 현상에 대해 정말 종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대중적인 명칭이 되어 버린다.
“아마 여기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동시에 나타날 거예요.”
“동시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증거는?”
“들으셨죠? 제가 이곳과 비슷한 곳을 찾아다녔다는 걸.”
“설마 여기와 비슷한 곳이 세계 곳곳에 있었단 말이냐?”
“네. 일본에만 2곳, 중국 같은 경우는 찾은 곳만 무려 6곳이 있었어요. 그뿐 아니라 각 나라에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하고 있었고요.”
“그럼 그곳이 전부 지금 이곳과 똑같은 상황이란 말이냐?”
“아마도요.”
내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지은 아저씨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알렸어야지!”
“저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곤 생각 못 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알았다고 해도 그들이 제 말을 믿었을까요?”
“그건! 그렇구나……. 아무도 믿지 않았겠구나.”
“그래도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알리긴 했으니까 생각보다 피해가 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말이냐?”
“일단 같은 장소에 균열이 여러 번 열리는 곳은 꼭 피하라고 올려 두었거든요.”
내 팬카페나 뉴튜브 채널과 세계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같은 장소에 균열이 여러 번 열리는 장소는 꼭 피하라는 글들을 올려 두고 어그로를 잔뜩 끌어 놨으니 무서워서라도 사람들은 그 장소들을 피할 거다.
“그, 그걸로 되겠냐?”
“증거들도 같이 첨부해 놨으니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증거?”
“네. 처음 그 글을 올린 6개월 전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똑같은 장소에서 균열이 4번 이상씩 열렸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을 테니 피하겠죠.”
“자, 잘했다.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구나. 도대체 저곳에서 뭐가 나오려고 이런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는 건지…….”
점점 흉악하게 변해가는 마력에 아저씨는 길드원들을 보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환수들을 잘만 이용하면 길드원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럼 좋겠지만…….”
그때였다.
말을 흐리는 아저씨를 보며 입을 열려던 순간 오싹한 감각과 함께 특이한 것이 느껴졌다.
본능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이상한 느낌.
당장 이 장소를 벗어나라 소리치는 듯한 본능의 일갈에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춘 후 급히 옆에 있던 뚱이의 뒤로 몸을 숨기며 생각했다.
당장 이 장소를 벗어나야…….
“선우야?”
우웅-
아저씨의 말소리 뒤로 들리는 거대한 울림.
게이트가 열릴 거라 추정되는 장소에 거대한 검은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는데,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위쪽에 거대한 마력이 모이는 걸 느낀 나는 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왕눈이가 마력을 증폭시키며 거대한 레이저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점에 집중되며 증폭에 증폭을 거듭하는 왕눈이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읽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왕눈이가 아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든 힘을 한 점에 집중하는 왕눈이의 공격 역시 여의도에 나타났던 악마종에게 사용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내며 흉악한 공격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모습.
그 덕에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보며 숨이 턱턱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으-”
“읍-”
아저씨를 비롯한 모두의 숨을 강제로 막아버릴 정도로 흉악한 마력에 현지조차도 두려운 눈으로 왕눈이를 응시하고 있던 그때.
왕눈이가 예의 그 레이저를 발사했고, 순간 선이었던 그것이 활짝 펴지며 거대한 눈이 나타났다.
지름이 50m는 되어 보이는 파충류를 닮은 거대한 눈.
어?
순간 어둠이 나를 감싸 버리는 것을 느꼈는데, 샤크가 나를 삼켜버린 거였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샤크가 나를 삼켜버렸음에도 내 생각은 다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그 눈, 나를 찾고 있었어.’
그랬다.
열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 눈동자가 나에게 향하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는데, 본능이 소리쳤던 피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를 찾는 놈에게서 벗어나라는 의미.
도대체 뭐지? 저런 것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미래를 겪은 나조차도 저런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 나를 찾는 것 같았을까? 내가 뭐라고?
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샤크가 나를 뱉어냈는지 어둠에서 벗어난 걸 느낀 나는 의문에 찬 시선으로 눈이 있던 장소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눈동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고, 게이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쏟아지듯 튀어나오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한 발의 화살이 공중에서 낙하하는 모습과 이어서 하나였던 화살이 수십 수백 발로 분열을 시작하며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콰과과과광!
수백 번의 폭발음이 동시에 울리며 1차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걸 보며 서둘러 지안을 찾아 움직였다.
“그 눈, 어떻게 됐어?”
“헉- 헉- 아! 왕눈이가 처리했어요.”
처리했다고? 왕눈이조차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걸?
“자세히 말해봐!”
몬스터들과의 전투 아니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었지만, 지금 나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왕눈이의 레이저를 잠시 막아내던 눈동자가 순간 다시 사라지고 곧바로 거대한 문의 형상이 나타나 활짝 열렸다는 지안의 설명을 들은 나는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문의 형상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게이트의 모습은 전과 같았지만, 문의 형상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때와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 거지?
내가 뭔가를 했다고 이렇게 변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방금 보았던 그 거대한 눈이나 문의 형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막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어.
“2파 옵니다!”
순간 현태의 외침과 함께 수많은 몬스터들과 내 소환수들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저도 가볼게요. 샤벨!”
샤벨을 부르는 지안을 보며 나 역시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도중 놓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샤크! 너 왜 왔어?”
고개를 내민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샤크는 본가에 있었어야 했다.
수아에게 붙여 놨음에도 이곳에 왔다는 건…….
“캉! 캉!”
“아빠!”
수아도 왔다는 소리였다.
“수, 수아야…….”
“아빠 저기 괴물들이 아빠 부하들 괴롭혀요!”
폴짝폴짝 뛰며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를 보려 하는 수아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급히 수아를 안아 들려 했는데.
“릴이야 가서 도와줘!”
“크르릉-”
수아의 말에 으르렁거린 펜릴이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난전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뇌전을 뿜어내며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고, 수아 역시도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수아도 친구들 불러서 도와줄게요!”
“잠깐 수아야!”
이미 정령의 문을 열어버린 수아를 안아 든 나는 급히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도와줘야 하는데…….”
“안 돼! 수아야, 이곳은 위험해.”
“샤크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도요?”
“누가 있든 위험한 건 위험한 거야!”
“하지만…….”
수아가 울먹이며 작은 손으로 전장을 가리켰지만,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위험한 것도 위험한 것이지만 너무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는 곳이었으니까.
“아빠! 그럼 친구들은 괜찮아요?”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정령들을 본 나는 수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자리를 벗어났다.
“샤크, 따라와!”
“얘들아 우리 편을 도와줘!”
수아가 정령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며 한쪽의 통로로 들어가던 나는 의외의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와 형이 급히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
“이게 무슨 일이냐?”
아버지는 다급한 모습으로 나에게 물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왜 아버지와 형이 이곳에 있느냐였다.
본가에 있어야 할 가족들이…….
“아버지? 형? 왜 이곳에…….”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은데?”
“일단 위험하니까 나가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형의 물음에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상황실로 가자.”
“그게 좋겠구나.”
“네. 이쪽으로.”
“거기 말고!”
나는 2상황실로 둘을 데려가려 했지만, 내 뜻을 거부한 채 1상황실로 이동하는 아버지와 형을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전장과 멀리 떨어진 2상황실과 달리 1상황실은 직접 전투를 볼 수 있는 경기장으로 치면 창이 있는 VIP룸 같은 곳이었으니까.
언제든지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이제 이야기해 보거라.”
“그냥 수여식 도중에 균열이 열렸을 뿐이에요.”
“저게 균열이라고? 아무리 봐도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데?”
“그래. 문이라면 또 모를까?”
“아니, 그것보다 왜 이곳에 오신 거예요?”
말을 돌리기 위해 이곳에 온 이유를 묻는 나에게 형이 입을 열었다.
“전 세계에 저것과 똑같은 것이 열렸다. 그것도 네가 위험하다고 말한 장소들에 말이야.”
뭔가 이상했다.
분명 동시에 열렸을 텐데 어떻게 벌써 이곳에 도착한 거지?
“그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저게 생긴 지 10분도 안 됐는데?”
“저 현상에 대해서는 30분도 더 전에 정보가 들어왔어. 아무래도 너의 경고를 언론 쪽에서는 주목한 모양이더구나.”
“정말?”
“그래.”
내 경고가 제대로 통했다는 말에 살짝 기뻤지만, 문제는 가족 전부가 이곳으로 왔다는 거였다.
“수아야 보면 안 돼!”
특히 수아가 창문에 매달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전투를 보는 것이 싫었다.
잔인한 장면에 수아가 충격을 받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수아 친구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걸…….”
그러고 보니 정령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길드원과 소환수들을 돕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는가 하면 커다란 물방울이 몬스터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아버지. 수아가 못 보게 좀 해주세요. 저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샤크! 너는 이곳에 있어.”
“그래. 가 보거라. 수아야 이리 오렴.”
“히잉~”
수아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8살인 수아가 보기에는 많이 잔인한 장면이었으니까.
수아를 아버지와 형에게 맡긴 나는 뛰듯 움직여 게이트 홀에 도착해 상황을 살폈는데, 생각보다 잘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압살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펜릴과 왕눈이 덕분이었다.
몬스터들 사이에 뛰어들어 난장판을 만드는 펜릴과 이쪽이 위험한 순간 레이저를 발사해 도움을 주는 왕눈이 덕분에 피해를 볼만한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 샤벨을 타고 이리저리 이동하며 마력 화살을 발사하는 지안이와 강한 몬스터만 찾아다니며 순식간에 피떡으로 만드는 뚱이와 현지 덕분에 아직 큰 위험은 없어 보였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놈들이 나온다고 했지?
커다란 게이트를 통과해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대부분이 아직은 중 하급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강한 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할 거다.
나도 참여해 볼까?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마력을 끌어올린 나는 몬스터들이 잔뜩 모여 있는 중앙에 균열을 열기 위해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위험을 느끼고 피하려 했지만, 공간의 부족으로 피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열려 버리는 균열에 잡아먹혀 머리나 팔, 다리 등이 순식간에 파괴되어 고통의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고블린 하나 잡지 못했겠지만, 이런 웨이브형 사태는 내 균열도 꽤 쓸모가 있었다.
공간의 일그러짐을 피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짓밟는 몬스터들을 보며 균열을 생성하고 없애기를 반복하던 그때 이상 현상이 포착되었다.
“어? 이게 무슨?”
생성된 균열을 닫으려는 순간 무언가 균열에서 쏙 하고 튀어나온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