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가 열린 장소는 거대한 절벽의 바로 앞이었다.
수천 미터의 거대한 절벽에 생성된 게이트 덕분에 몬스터들을 막아내기가 수월했을 뿐 아니라 이곳에 전초기지를 짓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뒤쪽으로는 거대한 절벽이 앞쪽으로는 드넓은 평야가.
“가자!”
“뀨!”
내 말에 하이임프가 대표로 대답하며 나를 따라 움직이자 그 뒤로 200여 마리의 임프들이 그 뒤로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수십의 길드원들이 따라붙는 걸 확인한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왜 따라오는 거지?’
그대로 계속해서 이동하던 나는 게이트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걸 확인하곤 임프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기에 높은 벽을 만들 거야. 벽 알지?”
내 계획은 간단했다.
몬스터들의 침임을 막기 위해 임프들을 이용해 성벽을 쌓을 생각이었다.
“뀨!”
“한번 해볼래?”
하이임프가 대답을 하곤 내 앞에 벽을 하나 만들었다.
내 키 정도 되는 벽을…….
“더 크게 해볼래?”
내 말에 점차 거대해지는 벽을 보던 나는 이상한 느낌에 바닥을 보았는데, 주변의 흙을 끌어모아서인지 바닥이 점차 낮아지는 게 보여 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뀨?”
“혹시 이쪽 말고 반대편의 흙을 사용해서 벽을 쌓을 수 있어?”
내 말에 곧바로 벽이 올라가는 걸 확인한 나는 땅을 확인해 봤지만, 내 말대로 반대편의 흙을 사용해서인지 바닥이 낮아지는 일은 없었다.
“그만 멈춰볼래?”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벽의 성장이 멈춘 걸 확인한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순식간에 구멍이 뚫려 버리는 모습.
이 정도는 막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하네?
“더 단단하게는 안 돼?”
내 말에 벽에 다가간 하이임프가 손을 대자 놀랍게도 흙벽이 돌처럼 견고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연금술을 보는 듯했다.
이어서 손을 뗀 하이임프가 의기양양하게 또 해보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럼 어디?
쾅-
주먹이 벽과 부딪히자 큰 소리가 터져 나왔는데, 소리와 다르게 돌벽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괜찮은데? 이 정도면 중급 몬스터도 막아내겠어.
“더 단단하게도 돼?”
“뀨우!”
또다시 성벽을 강화하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전과 달리 마력을 잔뜩 끌어올려 돌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콰앙-
돌벽이 그대로 터져나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반탄력이 강한데?
두께만 좀 더 두꺼워 지면 충분히 상급 몬스터까지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네? 네!”
“혹시 너희들 중에 건설 쪽 전공한 사람 있어?”
“제, 제가 건축학과 졸업했습니다!”
손을 번쩍 드는 길드원을 보며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대 때 대부분 각성을 함에도 이상하게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대학을 다녔다.
이유는 모르지만…… 공부한 게 아까워서 그런 건가?
“그래? 뭐 좀 물어볼게. 내가 여기에 성벽을 쌓으려고 하거든? 근데 내가 뭘 알아야지. 그래서 그러는데 뭐 필요한 게 따로 있을까?”
“이건 제 생각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도련님보다는 전문가를 부르는 게 훨씬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설계나 측량 혹은 성벽에 들어갈 재료까지도 엄선해서 짓는 게 확실할 테니까요.”
“그런가?”
“네!”
이건 따로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내 맘대로 대충 지었다가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까.
괜히 임프들 다 데리고 왔네? 그냥 마석이나 찾게 내버려 둘 걸 그랬다.
임프들은 마석을 찾는 걸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는지 둘 셋씩 짝지어 돌아다니며 땅속에 묻혀 있는 마석을 찾아 손에 쥐고 길드원들에게 찾아가 과일과 교환하는 이상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 마석을 발견한 임프가 길드원에게 마석을 건넸을 때 길드원이 잘했다는 의미로 과일을 잔뜩 주었는데, 아마 그게 시작이 아니었나 싶었다.
“너희들 하던 거 해!”
“네!”
임프들에게 말했음에도 길드원들이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 너희 말고 임프들 말이야. 아니다. 너희들도 하던 거 해. 나 따라다니지 말고.”
“네!”
* * *
“그곳에 건축 전문가들을 투입해 달라고?”
“네. 성벽처럼 장벽을 치려 하는데 제가 그쪽으로는 아무것도 몰라서요.”
“음…… 알았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시는 모습을 보던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어때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나요?”
“그래. 오늘 들어온 정보에는 아직 그곳에 진입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 같구나.”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진입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까.
“마석은요?”
“모두 쏟아내고 있다. 어차피 그곳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손해를 볼 이유가 없지 않느냐?”
곧 마석의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할 거다.
인류가 어비스에 진입한 순간부터 거의 무한에 가까운 마석이 쏟아질 테니까.
“마정석은 굳이 팔지 않아도 될 거예요.”
“네 말대로 그렇게 하고 있긴 한데…….”
마정석은 오히려 가격이 올라갈 거다.
이유는 네임드라 불리는 몬스터의 강함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균열을 통해 나타난 네임드를 사냥하는 방식은 대부분 동일했다.
지치길 기다리는 것.
하지만 어비스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지구와 어비스의 마나 농도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지구에 나타난 네임드가 쉽게 지쳤던 반면 어비스의 경우 그 힘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 사냥하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었다.
오히려 사냥당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
“마정석을 뱉어내는 놈들이 지구에 나타났던 녀석들에 비해 훨씬 강해서 아마 마정석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그럼 균열에 나온 녀석들만 사냥하면 되지 않느냐?”
“들으셨잖아요. 균열의 수가 엄청나게 감소했다는 걸요.”
게이트가 열린 후 지구에 열리는 균열의 수가 대폭 감소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반 정도로 확 줄어들어 버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감소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 국민들이 이에 대해 환호하고 있을 정도였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반이 아니라 10분의 1 수준까지 감소할 거다.
대신 전보다 강한 녀석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겠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수도 있지 않느냐?”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정석의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는 거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요즘 기업들이나 재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마정석으로 바꾸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마정석의 가치는 절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거다.
“그건 그렇고. 제한구역인가 뭔가는 어쩔 생각이냐?”
“욕은 좀 먹더라도 어쩔 수 없잖아요.”
제한구역에 게이트가 열림으로 인해 몬스터가 범람을 시작했다.
국내의 언론은 지금 그쪽에 시선이 쏠려 있어 연일 화랑 길드를 칭찬하고 있었는데, 그 반대급부로 유명은 지금 욕을 먹는 상황이었다.
화랑의 몇 배는 되는 힘을 가졌다 평가받는 유명이 사태를 묵인하고 있었으니까.
“최대한 화랑에 힘을 실어줘야 후에 이쪽에서 얻을 이익이 커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신경이 좀 쓰이는구나. 예전에는 욕먹는 게 아무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기분이 상하더구나.”
“네? 아버지가요?”
“내가 나이를 먹은 게지.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마음도 많이 약해진 모양이야.”
“풋! 아! 죄송해요. 그런데 아버지. 지금 아버지 얼굴만 봐도 전보다 훨씬 좋아진 게 보이거든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아버지는 족히 20년은 젊어 보였으니까.
거기다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취미를 하나둘 늘리고 계셨다.
“뭬야? 이놈이 아비가 심각하게 말하는 데 웃어?”
“저 다 들었거든요? 얼마 전 검진결과.”
“드. 들었어?”
뜨끔한 표정을 지으시는 아버지.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으신 아버지의 신체나이가 40대 초반이란 결과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김 실장에게 들었어요. 아버지가 엄청 건강하시다고.”
“에잉~ 그놈이 다 망쳐 버렸구나!”
“뭘요? 왜 그러시는 건데요?”
아버지는 뭔가 계획이 있으셨던 게 틀림없었다.
좀 허술하긴 했지만.
“너도 이제 회사를 운영해 보는 게 어떠냐?”
“회사요?”
“그래. 경험도 쌓고 겸사겸사 형도 좀 도와주고. 신우도 그걸 원하는 것 같더구나.”
이걸 어쩌지?
회사일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기에 좀 당황스러웠다.
“형이 힘들면 김 실장 붙여주면 되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김 실장이 한사코 거절하더구나. 부회장 자리까지 제안했는데 그것도 단호하게 거절하더구나.”
“네? 부회장 자리까지요?”
“그래. 자기는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게 좋다더구나.”
부회장 자리를 거절했단 말이야?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 백 명을 붙잡고 ‘유명그룹 부회장 할래? 대통령 할래?’라고 물어보면 반 정도는 유명그룹 부회장을 선택할 정도로 지금 유명그룹의 힘은 막강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힘을 가진 자리가 바로 유명그룹 부회장이라는 자리였으니까.
‘이건 좀 놀랍네?’
* * *
1개월.
게이트가 열린 지 단 1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어비스 안은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높이 100m 두께 5m에 달하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재질의 거대한 장벽이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면적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
높이나 두께뿐 아니라 그 강도 역시도 대단했는데, 오우거가 후려쳐도 전혀 흔들림이 없을 정도의 단단함을 자랑하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거기다 틈 하나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보랏빛 성벽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진짜 대단하네.”
“그렇죠? 저도 완성된 모습을 보고 임프들이 건축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현지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겨우 1개월 아니 실질적으로 따지면 3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낸 임프라는 생명체는 솔직히 너무 사기였다.
순식간에 100여 미터에 이르는 장벽이 치솟아 오르며 길이를 늘여 가던 모습.
마치 신이 지형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장엄하고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이제 이곳에 건물 올리고 상하수도만 제대로 만들면 되겠어.”
“네? 건물이요?”
현지가 내 말에 의문 섞인 표정으로 물어왔다.
“넌 저 사람들이 뭐 하는 것처럼 보이냐?”
“건설?”
“맞아. 이곳에 도시를 만들 거거든. 유명이라는 도시를.”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이곳은 몬스터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요.”
“국내에도 몬스터가 살아가는 땅이 있잖아. 거기다 여긴 균열이 열리지도 않는다고.”
“어?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국내에도 서울 바로 위에는 제한구역이라 표시된 몬스터들이 살아가는 땅이 있었다.
거기다 무작위로 열리는 균열 때문에 여기저기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도 했고.
“여긴 몰려드는 몬스터만 잘 처리하면 이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잖아. 물론 비행형 몬스터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그거야 내가 비행형 소환수를 풀어놓으면 문제없어질 테고.”
“그럼 물은요? 서울에서 끌어오기는 힘들 텐데요?”
“그건 걱정할 거 없어. 지금 샤크가 주변 탐색하면서 찾고 있으니까.”
이미 샤크에게 강을 찾으라 지시해 놨다.
이곳에도 강은 있었으니까.
“이곳에도 물이 있을까요?”
현지의 물음에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현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 내 소화수들이 물 먹는 거 못 봤냐?”
“봤어요.”
“그럼 당연히 여기도 물이 있으니까 몬스터들이 살아 있는 거 아니겠냐?”
“아! 그러네요.”
어비스 역시도 좀 특이하긴 하지만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산이나 물도 있고 비도 내리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었다.
물론 지구와 많이 다르긴 했다.
태양도 없고 바다도 없는 이상한 세상.
남쪽 끝과 동쪽 끝 그리고 서쪽 끝에 가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곳을 남과 북으로만 생각하는 이유는 마치 한국처럼 동쪽 서쪽 남쪽으로는 암흑의 바다라 불리는 어둠만이 존재했고, 북으로 향할수록 점차 어두워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심연 혹은 어비스라 불리는 것이었고.
인류가 진출할 수 있는 방향은 북쪽뿐이었는데, 전생의 인류는 북쪽 끝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몬스터의 수가 늘어날 뿐 아니라 점차 강해지며 더 나아가면 악마종이라는 수문장이 드문드문 나타났기 때문에 일정 구역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련님. 그런데 이곳에는 해도 없는데 왜 이렇게 밝을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건 전생에서도 밝혀내지 못했다.
어째서 이곳에 빛이 존재하는지.
어째서 북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지,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었다.
그저 그게 어비스란 차원의 법칙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최북단이었지?’
최북단.
인류가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설 수밖에 없었던 아주 위험한 지역.
물론 이 위치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마석 광산이나 이곳에서만 나는 특이한 광석의 매장량이나 광산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곳을 지키는 것만 가능하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게이트들이 원래에 있던 장소에 열렸기에,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 있어 전력을 보존하는 게 가능해졌다.
“임프들 어딨어?”
“여기저기 흩어져서 마석이나 캐고 있지 않을까요?”
“하임은?”
하임은 하이임프의 이름이었다.
계속 하이임프나 야! 너! 등으로 부르기 좀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좀 귀찮아서 그냥 하이임프를 줄여 하임으로 부르고 있었다.
“걔는 아마 현태랑 같이 돌아다니고 있을 거예요.”
“그럼 현태한테 무전 쳐서 임프들 다 데리고 오라고 전해.”
“네.”
하임은 특이한 능력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주변의 임프들을 모으는 능력이었다.
땅을 통해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인지는 몰랐다.
게이트 앞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잠깐만.”
임프들을 쭉 둘러보며 뭔가 좀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던 그때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