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잔뜩 올랐네.”
“그러게요. 저걸 벌써 뚫어버릴 줄이야.”
뉴스를 보던 나와 현지는 솔직히 좀 놀랐다.
최강준이 벌써 평양에 있는 게이트까지 길을 뚫어버리고 정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비스에 대한 소식이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 화랑의 모든 길드원을 동원하기 시작한 최강준은 겨우 2주라는 짧은 시간 만에 평양의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욕심이 장난 아니네.”
“화랑 길드원 3분의 1이 죽어 나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니까요?”
“그 정도래?”
“네. 화랑 쪽에서 유언비어라고 발표하긴 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고 있어요. 오죽하면 영웅에서 악마로 추락했을까요.”
악마.
요즘 최강준을 보며 악마라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앞의 이득을 위해 수백의 길드원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전 화랑 길드원들의 양심선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화랑 길드를 이탈하기 시작하는 가디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최강준의 잔인함과 탐욕을 토로하고 있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몬스터들을 정리하며 나아갔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음에도 욕심에 눈이 멀어 희생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길드원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길드원들을 버린 것이었다.
S급 몬스터조차 길드원에게 맡기고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마치 마왕을 처리하기 위해 이동 중 만나는 중간 보스들을 모두 동료에게 맡겨버리듯 말이다.
그가 나섰다면 시간은 좀 걸렸겠지만, 충분히 희생 없이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길드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는 사실에 전 국민이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이 정도면 미친 건데?’
처음 국민들은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양심선언을 하던 가디언들이 몰래 찍어둔 증거 자료들과 등급이 밝혀지면서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점차 그들의 말을 믿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서는 국민 대부분이 최강준을 악마라 칭하며 욕하는 중이었다.
“왜 저러는 걸까요?”
“아마 얼마 전에 통과된 법안 때문이겠지.”
“법안이요?”
“그래. 게이트 법.”
“그게 뭔데요?”
“게이트를 차지하는 길드나 기업이 그 게이트의 관리자가 되는 법안이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됐거든.”
“국가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길드나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한다고요?”
솔직히 말하면 좀 황당했다.
나도 이렇게 빨리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예상을 못 했으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렇게 빠르게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 근데 생각보다 저쪽에 완전히 넘어간 의원들이 많더라고.”
“도대체 무슨 약속을 받았길래 저런 법을 만든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근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야.”
“네? 끝이 아니라뇨?”
바로 어제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확인한 나는 진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대박이 터져 나왔으니까.
“게이트 안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30%를 게이트를 관리하는 자들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미친 법안이 어제 통과됐거든.”
“30%나요? 원래 예상은 10% 아니었어요?”
“막판에 10%가 30%로 변했더라고.”
“와! 대박이네요?”
어이없는 건 이 사실을 국민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였다.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통과됐는지조차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뉴스가 하나도 없어요?”
“그쪽에서 전부 틀어막았거든. 물론 이쪽에서 몰래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럼 세금은 어떻게 해요? 설마 따로 또 걷어가는 거예요? 아니면 그중에 세금이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그거 따로 세금 따로지. 알잖아. 길드는 애초에 세금이 적은 거.”
나라를 지키는 길드는 일반 기업과 다르게 소득세가 5%였다.
물론 가디언 개인은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길드에 부과되는 세금이 정말 적었는데, 이 모든 게 어이없게도 이번 정권에 들어서 모두 바뀐 거였다.
“얻을 거 다 얻었으니까 이제 공개만 하면 되겠네요?”
“아직 좀 기다려야 해.”
“네? 왜요?”
“다른 나라들 상황도 좀 살펴보고 공개할 생각이야.”
다른 나라의 상황이 아니라 이제 곧 세계적인 회담이 진행된다.
어비스의 땅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
그 회담에는 국가뿐 아니라 길드, 기업, 민간단체까지 참여하게 되는데, 그 덕분인지 어비스의 땅을 국가만이 아닌 길드와 기업 심지어 개인에게까지 권리를 부여하는 이상한 법이 탄생한다.
어비스 관리국이라는 범세계적인 기관이 탄생하고 그들에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각성자 협회의 힘을 빼앗아 힘을 실어 줌으로써 땅에 대한 권리를 관리하고 중재자적 역할을 부여한다.
이렇게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말 별것 아닌 기관이었다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지도를 만들고 줄을 그어 땅의 주인을 표시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게 정말 중요했다.
지금 있는 최북단의 영역 대부분을 유명의 것으로 해 둬야 후에 이곳까지 진출한 국가나 길드가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테니까.
* * *
“너 왜 여깄어?”
“뀨우?”
수아와 함께 자는 하임의 어이없는 모습.
어비스에 있어야 할 하임이 왜 수아의 방에서 그것도 수아와 함께 자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하임이 기지개를 쭉 피고는 수아의 품에서 나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내 어깨에 앉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얘도 좀 이상하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임은 일반적인 네임드 몬스터가 아니었다.
뚱이나 고블린들보다 자유의지가 강했기 때문인데.
마치 왕눈이나 펜릴, 샤크처럼 자유롭게 행동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봐서는 악마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 그때 그 충격이 예사롭지 않단 말이지?’
하임이 내 균열을 통과했을 때 느꼈던 엄청난 충격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냐면 요즘 어비스에서 몬스터를 잡아 와 내 지배하에 두기 시작했는데, 그 어떤 몬스터도 그때의 충격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S급 몬스터를 지배하에 둘 때조차 그때 겪었던 충격의 반도 재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
“응? 수아야 일어났니?”
“네에.”
눈을 비비는 수아를 보며 미소를 지어준 나는 수아를 안아 들었다.
“응? 하임아 안녕!”
“뀨!”
내 품에 안긴 수아는 어깨에 앉아 있는 하임을 발견하곤 인사를 했다.
그에 화답하듯 손을 번쩍 들며 마주 인사하는 하임.
근데 수아가 하임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하임이 이쪽에 넘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수아가 어떻게 하임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아야? 하임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어제 지안이 언니가 알려줬어요.”
지안이가 데려온 건가?
당분간은 애들 이쪽으로 못 넘어오게 막으라고 했는데 못 들었나?
요즘 지안은 펜릴과 함께 공중에서 주변을 탐색 중이기에 많이 바쁘다고 할 수 있었다.
주변에 위험이 될만한 것들을 미리 정리해야 했기에 지안이뿐만 아니라 고블린들이나 뚱이를 비롯한 샤크와 왕눈이까지 동원했기에 못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이가 데려왔구나?”
“아닌데요?”
“아니야?”
“네. 얘가 막 혼자 돌아다녀서 수아가 데리고 있었는데, 지안이 언니가 와서 데려갔어요.”
“데려갔다고? 그런데 왜 여기 있어?”
“밤에 또 혼자 돌아다녀서 수아가 데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어비스로 보냈는데 다시 왔다는 거야?
이쯤 되면 정말 악마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볼 만했다.
내 소환수들 대부분은 내 지시 때문에 다른 자들의 지시도 잘 따르는데 악마종만이 내 지시가 아니면 말을 듣지 않았다.
“수아가 잘못한 거예요?”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자 수아는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물어왔다.
“아니야. 잘했어. 수아야.”
“정말이요? 헤헤~”
“뀨! 뀨우!”
수아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갑자기 하임이 내 손을 덥석 잡아끌더니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뀨! 뀨! 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활짝 웃는 하임을 보며 마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그런데요. 릴이랑 샤크는 언제 와요?”
“보고 싶어?”
“네. 릴이랑 샤크가 맨날 수아랑 같이 놀아줬는데, 없어서 심심해요!”
“이걸 어쩌지? 샤크랑 릴이는 지금 많이 바쁜데. 하임이랑 놀면 안 될까?”
“돼요! 하임이랑 놀래요!”
수아와 하임을 내려주고 잠시 수아의 침대에 앉아 둘이 노는 걸 지켜보았다.
“우리 다크 레이디 보자!”
“뀨!”
재는 다크 레이디가 뭔지 알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이어서 수아가 다크 레이디를 틀자 하임은 멍하니 영상을 보다가 다크 레이디의 변신 장면이 나오자 벌떡 일어나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좀 웃겨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요즘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이런 작은 것에도 행복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 * *
쿵- 쾅- 콰과과광-
“이거 무슨 소리야?”
어비스에 지어지는 도시.
유명시의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나는 멀리서 들리는 굉음에 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상무님, 샤크가 뭔가와 싸우고 있어요.
“싸운다고? 위치는?”
샤크와 싸움이 가능한 상대는 같은 악마종뿐이었기에 나는 다급히 위치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성벽에서 북쪽으로 15km 지점이요.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일단 지켜보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합류해.”
-네!
“샤벨!”
곧바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샤벨을 보며 이곳에 남겨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곧바로 샤벨의 등에 탄 나는 급히 입을 열었다.
“소리 들리지! 저쪽이야.”
“크헝!”
곧바로 출발하는 샤벨을 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상황은?”
-샤크가 우세한 상황이긴 한데요. 쉬워 보이진 않아요.
지안의 말에 놈이 악마종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일단 좀 지켜보다 위험하다 싶으면 넌 나서지 말고 펜릴만 보내.”
-네.
순식간에 성벽을 통과한 후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샤벨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몸을 고정한 그때 뒤통수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응? 뭐야?”
고개를 돌리자 내 머리카락을 잡고 매달려 있는 하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 언제 왔어?”
“뀨!”
그대로 하임을 안아 든 나는 이놈이 언제 어비스로 넘어왔는지 생각해야 했다.
분명 내가 넘어오기 전에 수아 방에서 함께 다크 레이디를 보고 있던 걸 확인했었다.
설마 날 따라다니는 건가?
“너 나 따라다니는 거야?”
“뀨!”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치는 하임을 보자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를 따라다니는 거지?’
잠시 이유를 생각하던 그때 저 멀리 허공에서 큰 원을 그리며 도는 펜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샤벨. 저쪽!”
멀리 보이는 펜릴을 가리키자 방향을 잡아 달리는 샤벨을 보며 샤크와 싸우는 존재가 악마종이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얼마 전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내 수준이 단번에 올라갔다는 걸 느꼈는데, 그 때문인지 악마 종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다.
샤크나 왕눈이에게서 두려움이라는 걸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건 내 지배하에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내 지배하에 있지 않은 악마종에게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
손을 쥐었다 피던 나는 점차 커지는 두려움에 내가 과연 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괜찮은 건가?’
다행히 악마종이 나를 꼼짝도 못 하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살짝 안심하던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잠깐만? 그런데 왜 지안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분명 지안의 수준은 지금의 나보다 높으면 높았지 절대 낮지는 않았다.
지안의 말 대로라면 지금 지안은 벽을 눈앞에 둔 상태였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왕눈이나 샤크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익숙해진 상대라서인가?
생각해 보면 명철 아저씨도 이제는 왕눈이와 샤크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였다.
익숙해지면 괜찮다는 건가?
두려움을 느끼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샤벨이 멈추는 것을 느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샤크가 전투 중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올 정도의 거리에 도착해 있었는데, 더는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둘의 전투는 치열했는데, 둘의 격돌에 의한 충격파에 주변의 지형이 계속해서 변하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리자드맨인가?
샤크와 전투 중인 상대는 이족보행을 하는 도마뱀과 같은 모습은 리자드맨과 비슷해 보였는데, 다른 점이 몇 가지 보였다.
머리에 있는 두 개의 뿔과 칠흑같이 어두운 비늘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이족보행의 악마종.
샤크의 그림자 촉수를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며 샤크를 몰아붙이는 모습에 지안의 말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봐도 샤크가 밀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상무님! 샤크가 점차 밀리는 것 같은데 어떡하죠?
“나 주변에 있거든? 일단 이쪽으로 와.”
-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던 펜릴이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상무님!”
“펜릴. 지안이 내려주고 바로 합류해서 샤크 좀 도와줘.”
펜릴의 등에서 지안이 내리자 펜릴이 샤크를 돕기 위해 쏜살같이 날아가며 곧바로 악마종을 향해 뇌전을 뿜어냈다.
빠지지지직-
키에에에엑-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대로 뇌전을 허용한 악마종이 처음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샤크의 공격은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던 녀석은 고통이 심한지 펜릴을 보며 적의를 들어냈는데, 뇌전에 잠시 멈칫했던 녀석이 샤크를 무시하고는 그대로 펜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샤크와 펜릴은 둘이었고 녀석은 혼자였다.
쾅- 콰앙- 퍽- 퍼버벅-
펜릴과 샤크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크게 소리쳤다.
“죽이지는 마!”
당연했다.
이건 기회였으니까.
악마종을 하나 더 늘릴 아주 좋은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