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214)

“무슨 일이야?”

“러시아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김 실장을 보며 묻자 대뜸 러시아에서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러시아? 정부?”

“네.”

“직접?”

“네. 정부 쪽에서 직접 부탁을 해왔습니다.”

러시아라?

게이트가 가장 많이 열린 나라가 바로 러시아였다.

총 8개의 게이트가 열려 지금쯤 많이 힘든 상태겠지?

“시베리아에 열린 게이트 주변을 청소해 달라는 거야?”

“네.”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하는데?”

“아무래도 대량의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도련님만 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좀 이상한데? 시베리아 쪽은 애초에 이쪽의 제한구역처럼 되어 있지 않아?”

시베리아는 사람이 살지 않는 구역이 많아 이미 몬스터의 땅이 되어버린 후였다.

러시아 측에서도 가끔 각성자들을 대규모로 투입해 균열의 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유지만 하던 상태였기에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게이트 때문인지 범람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범람? 아!”

러시아는 몬스터가 시베리아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장벽을 만들어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었는데, 게이트가 열리면서 몬스터의 수가 순식간에 불어나 점차 인류의 땅을 침범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시베리아에 두 군데 열렸지?”

“네.”

전생에도 발생했던 일이었다.

방법이 없어 계속 막아내기만 하던 러시아가 결국 핵을 사용하게 만들었던 사태.

‘아마 이게 시작이었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인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인류의 터전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었다.

“근데 말이야. 내가 거길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해.”

“저도 그럴 것 같아 한 번 거절을 했습니다. 다만 그쪽에서 직접 오지 않아도 되니 소환수라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다시 보내왔습니다.”

“소환수만 보내 달라고?”

“네. 강한 개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되도록 많은 소환수로 사태만 진정시켜 준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괜찮은데?’

전과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소환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해준데?”

“일단 일본과 비슷한 조건을 걸었습니다. 일단 관세를 내려주고 따로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랍니다.”

“원하는 거라? 뭐가 좋을까?”

“관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하다고?”

“네.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일 테니까요.”

“그건 중국 때문인가?”

“네. 유독 러시아가 저희 유명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기회에 그걸 변화시키는 게 어떤가 합니다.”

러시아는 유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개 기업의 힘이 국가를 넘어선다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거였다.

거기다 러시아의 정부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는데, 러시아도 중국처럼 모든 각성자가 국가 소속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거기다 각성자의 수준 역시 대체로 뛰어난 수준이었고.

“아버지는?”

“회장님께서는 찬성하셨습니다. 다만 비밀리에 진행했으면 한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유명길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트 때문에 막 나가는 최강준을 막을 상대가 유명밖에 없는데 왜 나서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냐며 시위까지 벌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건 당연한 거고. 그래서 얼마나 보내줬으면 한대?”

“최대한 많은 수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 이래? 잘 알면서.”

“최소 천 이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천이라고? 말이 돼?”

어이가 없었다.

얼마 전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 내가 데리고 있던 일반 소환수의 수가 2천이 살짝 넘었었다.

그런데 그 반 정도를 원한다고?

“그쪽에서는 도련님이 데리고 있는 몬스터의 수가 그 정도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일반 소환수는 임프를 제외하면 300이 조금 넘는다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안이에게 들어보니 단기간에 소환수의 수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고 하던데요?”

“그렇긴 한데…… 나도 힘들다고.”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김 실장은 내가 러시아의 요청을 들어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러시아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거야?”

“물론입니다. 이건 유명 입장에서도 아주 좋은 기회거든요.”

“기회라고?”

“유명의 영향력이 가장 적은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심지어 중국보다도 영향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야?”

“네. 저희 유명이 실패한 유일한 나라니까요.”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말이야?

이걸 계기로 러시아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큰 이득이 될 테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소환수를 늘리고 싶어도 지금은 좀 힘들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몬스터가 없단 말이지. 게이트가 열리면서 반경 백여 km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고. 그걸 전부 처리했고.”

“그 말씀은 게이트 주변의 몬스터가 씨가 말랐다는?”

“맞아. 거기다 제한구역은 이미 화랑이 차지했잖아. 방법이 없다고.”

“음-”

생각에 잠겨 있던 김 실장은 뭔가 떠올랐는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일본의 홋카이도에 있는 몬스터는 어떠십니까?”

“응? 아! 거기에도 게이트 열렸지?”

얼마 전 악마종을 처리했던 홋카이도.

겨우 수복해 가던 곳에 열린 게이트로 인해 일본은 홋카이도란 섬을 포기해야만 했다.

일본에 열린 게이트가 홋카이도 한 곳이었다면 포기하지 않아도 됐겠지만, 일본에 열린 게이트는 총 두 개.

홋카이도와 도쿄였다.

일본의 전력으로는 한 곳만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다.

“일본이 허락해 줄까?”

“물론입니다.”

“음- 그럼 준비 좀 해줘.”

“네.”

누구를 데려가야 하지?

현지나 지안, 현태를 데려가기에는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소환수의 관리부터 이번에 어비스로 조사를 나선 연구팀의 호위와 임프들을 이용한 채굴.

크게 보면 이 세 가지였지만, 이것 외에도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 * *

홋카이도에 도착한 나는 산책을 나온 듯 앞서서 뛰어가는 하임을 보며 한숨을 내 쉴 수밖에 없었다.

처음 홋카이도에 올 인원을 정할 때 수찬이와 현태의 부하들 몇 그리고 니안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철 아저씨는 니안이 아닌 하임들 데려가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하임의 말썽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운 다섯 살이란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쳐대는데,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이 하임만 보면 학을 떼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있으면 사고를 치지 않는데, 꼭 나만 없으면 사고를 쳐대는 통에 요즘 사람들이 나만 보면 왜 하임을 안 데리고 다니냐며 핀잔을 줄 정도였다.

“도련님 바로 출발할까요?”

“어. 출발해. B급 이상이 아니면 전부 처리하고 B급 이상은 살려서 데려와.”

“알겠습니다.”

“S급 발견하면 무전 해. 바로 하임이 보내줄 테니까.”

“네!”

대답과 함께 바로 자리를 뜨는 수찬과 길드원들의 되를 따라 50여 마리의 임프들과 100여 마리의 대형 몬스터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총 200마리의 소환수를 데려왔는데, 나머지는 남은 길드원들과 함께 장비를 설치하는 유명의 직원들을 호위할 예정이었다.

“너 또 어디가?”

“뀨? 뀨!”

고개를 갸웃거리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하임의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왜? 저기에 뭐가 있어?”

“뀨! 뀨!”

고개를 빠르게 두 번 끄덕인 하임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갑작스럽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응? 너 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것을 확인한 나는 하임이 이동술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임프들이 사용하는 이동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임의 이동술은 전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축지법을 떠올릴 정도로 빨랐는데, 시속으로 따지면 1000km는 될 정도였다.

“뀨!”

“아!”

잠시 후 이동이 멈추고, 하임이 한 곳을 가리켰는데,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임프?”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수십의 임프가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는 모습에 하임이 함께 있음에도 소름이 살짝 돋았는데, 이어서 진동과 함께 땅에서 거대한 주먹이 치솟아 오르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목격한 나는 급히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막아!”

“뀨?”

자신을 공격하는 임프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 하임이 손을 들어 올리자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먹이 그대로 멈췄고.

“끼익?”

“끽?”

자신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주먹이 의지를 따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임프들을 보던 나는 하임이 자기 부족의 임프들 뿐 아니라 임프라는 생명체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뀨! 뀨! 뀨!”

임프들에게 달려간 하임은 마치 왜 자신을 공격했는지 물어보기라도 하듯 뀨! 뀨! 거리기 시작했다.

“끽! 끼익.”

“뀨?”

“끽!”

“뀨우!”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저건?

조용히 하임의 모습을 지켜보던 순간 갑자기 하임은 임프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잔뜩 화가 났는지, 폴짝 뛰어 맨 앞에 있는 임프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주변을 뛰어다니면 임프들을 때리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뀨뀨뀨뀨뀨!”

마구잡이로 임프들을 패던 하임이 입을 열자 모든 임프를 무릎을 꿇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는데, 저건 내가 하임을 벌주던 방식이었다.

무릎 꿇고 손들어.

사고를 칠 때마다 벌을 주었는데, 자기가 당했던 걸 고대로 시키는 하임을 보자 실소가 나왔다.

“허 참!”

“뀨우.”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한쪽에 균열을 만들었고, 내 의도를 파악한 하임이 임프들에게 균열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기가 잔뜩 죽은 임프들이 처량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균열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씩 균열을 통과하는 임프들을 보던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임프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지만, 어디서 임프를 찾아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임프라는 종족의 개체 수가 정말 적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비스를 다 뒤져도 오만이 넘지 않을 정도로.

이러면 하임을 데려오길 잘 한 건가?

“다 됐나?”

내 균열을 통과하는 임프들의 수를 하나씩 세던 나는 그 수가 59마리라는 것을 확인하곤 생각보다 힘이 들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얼마 전 어비스에서 임프를 받아들였을 때만 해도 살짝 지치는 걸 느꼈었는데, 지금은 그 수가 더 많음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소모된 마력의 양은 비슷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뭐지? 설마 니안 때문인가?

니안을 지배하기 위해 했던 노력 덕분에 정신력이 더욱 상승한 것 같았다.

분명 그때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겪으며 죽을 힘을 다해 보이지 않는 막을 뚫어냈던 순간 고통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던 걸 생각하면 그럴듯하긴 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죽음을 이겨내야 한다는 소리를 하던 자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뀨?”

“돌아갈까?”

하임과 임프들을 끌고 돌아가려던 나는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임의 이동술을 통해 이곳에 도착한 내가 길을 알 리가 없었다.

“아…… 하임아 혹시 너 돌아가는 길 알아?”

“뀨?”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는 하임을 보던 나는 미아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GPS를 챙기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면서.

* * *

-도련님.

겨우 길을 찾아 돌아와 임프들에게 과일을 한 아름씩 안겨주고 쉬던 그때 무전기를 통해 수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재들은 왜 자꾸 씨를 심는 거지?

“왜? S급이라도 발견했어?”

-아! 그게 아니라 생포한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그쪽으로 데려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도련님께서 직접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백 마리가 조금 넘습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B급 이상이 벌써 백 마리라고?

“알았어. 금방 갈 테니까 쉬고 있어.”

-네!

이쪽인가?

나는 수찬의 위치를 파악해 방향을 정하곤 하임을 불렀다.

“하임! 이쪽으로 쭉 가자.”

“뀨!”

내 옆으로 다가온 하임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보면서도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장애물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거지?

분명 이동 중인 길목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있었다.

건물도 있었고 나무들도 간간이 보였는데, 그곳을 지나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마치 땅을 늘리기라도 한 것처럼 1cm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 순식간에 넓어지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 어떻게 벌써?”

수찬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하임과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축지법이라고 들어봤냐?”

“네? 축지법이요?”

“그래. 하임이 축지법을 쓸 수 있거든. 저기 있는 임프들도 쓸 수 있고.”

“정말요?”

“어.”

놀란 눈으로 하임과 임프들을 번갈아 보는 수찬을 보던 나는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버섯밭을 발견했다.

땅속에 박혀 머리만 내놓고 있었는데, 솔직히 좀 웃겼다.

“생각보다 많네? 힘들진 않았어?”

커다란 머리통이 간간이 보이는 거로 봐서 생각보다 A급 몬스터가 많은 것 같았다.

“도련님의 소환수들이 잘 해줘서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몬스터들을 생포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일단 힘을 좀 빼놓은 후에 임프들을 이용해 땅속에 매장하여 공기를 차단해 기절시킨 후 머리만 빼고 땅속에 박아넣으면 아주 간단하게 몬스터를 생포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시작할까?”

“네.”

균열을 연 나는 몬스터들을 한 마리씩 꺼내 내 균열을 통과시키며 소환수를 늘려갔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몬스터를 늘린 지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는 내 소환수의 수가 3천에 다다를 정도까지 늘어났는데, B급이 2500, A급이 400, 마지막으로 S급 12마리라는 엄청난 수의 소환수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홋카이도에 있는 몬스터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것들을 어떻게 다 데려가지? 아니 그것보다 이거 진짜 잘하면 세계정복도 가능할 거 같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