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화면발 괜찮네요.”
“그러냐? 나는 실물이 더 괜찮은 것 같다만?”
TV를 통해 회담에 대해 방영하는 프로를 보고 있었는데, 국내의 모든 언론이 유명의 대단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조차 왼쪽 세 번째 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유명의 부회장인 형이 중앙 첫 번째 줄에 미국의 대통령, 중국의 주석, 영국의 여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인해 언론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나 아버지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째서 형이 저 자리에 앉아 있는지…….
“러시아 쪽에서 자리를 양보한 모양이더구나.”
“러시아가요?”
“그래. 원래 저 자리는 러시아의 대통령 후딘이 앉을 자리였을 게다. 아마 이번에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인 모양이구나.”
나에 대한 감사가 솔직히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통 맨 앞줄은 지도자들이 앉는 자리였기에, 일개 기업인 유명이 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말들이 나올지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보기는 좋네.
“괜찮을까요?”
“무엇이 말이냐?”
“아무리 우리 유명이 대단하다고 해도 일개 기업이잖아요. 저 자리에 앉았다고 형한테 비난이 쏟아질까 두렵네요.”
“그렇게 따지면 미국의 저스티스 길드장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하지만 저 사람은 10강이잖아요.”
미국 최고의 길드 저스티스의 길드 장 존 록펠러.
10강 중 가장 강하다고 소문이 난 록펠러가의 당대 당주인 그도 형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첫 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와 형은 솔직히 좀 차이가 있었다.
“그도 신우와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아니지. 거기다 우리 유명이 저스티스에 꿀리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더냐?”
“에이~ 솔직히 세간의 평가는 저쪽이 많이 우세한 편이잖아요.”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너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많이 변하지 않았느냐.”
“저요?”
솔직히 말하면 전생과 좀 다르게 흘러가는 평가에 좀 당황스러웠다.
전생의 나는 몬스터를 사육한다는 이유로 무시를 많이 받았다.
그 시절 나의 등급이 A급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는데, 뚱이 홀로 S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내 등급은 A급에 멈춰있었다.
물론 내가 유명그룹의 유선우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어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도 있었지만, 나에 대한 대중들과 각성자들의 평가 자체는 최악이었다.
몬스터를 사육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래. 지금 너와 영국의 리첼을 포함해 10강을 12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는 걸 아느냐?”
“12강이라니요?”
나를 그 정도로 생각한다고?
물론 지금 내 소환수들의 무력이라면 10강 전부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다 현지까지 포함한다면 10강 전부를 압살할 거라 예상되긴 했지만, 그건 이쪽만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었다.
잠깐만? 리첼? 그게 누구야?
“리첼이라뇨?”
“엑스칼리버의 주인을 모른단 말이냐?”
솔직히 말하면 좀 당황스러웠다.
엑스칼리버라니?
“설명 좀 해 주세요.”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런던에 게이트가 열린 직후란다.”
런던에 열린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에 의해 점차 밀리기 시작하던 그때 리첼이라는 여성이 홀연히 나타났다고 한다.
그녀의 무기는 검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그녀의 특성이 바로 엑스칼리버라는 것이었다.
성검을 소환하는 존재.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백의 몬스터를 단숨에 쓸어버린 영국의 영웅.
그게 바로 리첼이라는 여성이었다.
“그게 말이 되나요? 특성이 성검 소환이라뇨?”
“왜 말이 안 되느냐? 몬스터를 소환하는 너도 있는데?”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서울과 연결된 어비스의 위치나 악마종의 출현 같은 건 다 이해하겠는데, 이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생에는 분명 리첼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니 저런 특성을 가진 랭커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건 미래가 바뀐 수준이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그런 존재는 기억에 없었다.
“정말 특성이 성검을 소환하는 거라고요?”
“그렇다는구나. 성검과 그 검집을 소환하는 게 그녀의 특성이라고 밝혀졌다.”
“그런데 그 검을 어째서 엑스칼리버라고 단정 지은 거죠?”
“영국 왕실에서 인정했다는구나. 왕실에 비밀리에 내려오는 엑스칼리버의 모습과 같다더구나. 물론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사진 같은 거 있나요?”
“당연히 있다. 무려 공주인데 사진 한 장이 없을까?”
“공주라고요?”
“그래. 리첼 엘리자베스 다이에나가 그녀의 이름이다.”
저런 공주가 있었나?
왕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내가 공주의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보거라. 이 아이가 영국의 공주인 리첼이란다.”
아버지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화려한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떠올라있었다.
많이 어려 보이는데?
“나이는요?”
“이제 18세라고 하더구나.”
“언제 각성했데요?”
“그걸 모르겠어. 영국 쪽에서 감추고 있어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겨우 18살이란 나이에 세계랭커도 모자라 10강의 일원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혹시 동영상은 없어요. 게이트 사태 때 싸우던 동영상이요.”
“있다. 근데 이게 확실하게 찍힌 게 아니라 그녀가 한 것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단다.”
“그래도 보여주세요.”
“아니. 이놈아 네가 직접 찾아보면 되는데 왜 자꾸 늙은 애비를 시키려고 해.”
“아! 그러네요.”
나는 한쪽에 올려둔 스마트폰을 집어 그녀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이건가?’
영상을 재생시키자 멀리 거대한 게이트가 보였고, 그 앞으로 잔뜩 몰려 있는 몬스터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 갑작스럽게 황금빛의 에너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곤 그대로 영상이 끝나버렸다.
뭐야? 이게 다야?
리첼이라는 여성의 모습은 영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다른 영상들을 찾아봤지만, 그녀의 모습이 나오는 영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이걸 보고 그녀라고 단정 지을 수 있죠?”
“그곳에 있던 자들이 전부 그녀가 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럼 그녀가 정말 엑스칼리버를 소환한 건지는 확인이 되지 않은 거네요?”
“그건 아니란다. 그녀가 성검을 소환하고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거다.”
“영상이 있는데 왜 공개를 하지 않는 건데요? 12강을 만든다면서요?”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영국 왕실이 그걸 원하지 않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거면 왜 왕실이 나서서 엑스칼리버라고 인정을 한 거지?
“인정했다면서요?”
“언론에서 압박을 가한 모양이더구나. 영상을 공개하겠다고.”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죠?”
“이쪽에서 비밀리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아마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을 거다.”
“어떤 건데요?”
“성검을 소환하는 순간부터 그녀의 모습이 변했다고 하더구나. 마치 마녀처럼.”
“네? 마녀요?”
“그래. 금발이 흑발로 변하고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새빨간 루비처럼 변해 버렸다더구나.”
마녀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모르는 이유는 아마 그 변한다는 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분명 숨겨야 할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 *
세계정상회담이 끝난 후 발표는 내 예상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차원을 어비스라 명명하고, 어비스 관리국이라는 범세계적인 기관이 탄생했으니까.
“준비는 어때?”
“문제없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김 실장은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게이트를 공개하고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무력이 권력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국가가 아닌 길드와 기업에게도 땅에 대한 권리를 준다는 건 그만큼 무력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거니까.
무력=재력>>권력.
무력과 재력이 균형을 유지하며 국가 권력을 무너트리기 시작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판단되었는데, 이건 내 생각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형 역시도 무력의 힘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돈의 힘이 국가의 힘을 넘어서기 시작한 순간 이건 이미 예견되어 있던 상태였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권력은 유한해도 돈은 무한하다는 말이나 권력은 망해도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들이.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김 실장이 알아서 잘해줄 거라고 믿어.”
“물론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기자회견만 수십 번을 해왔습니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래. 부탁해.”
김 실장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될 거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 * *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명그룹을 대표해 인사드리겠습니다. 비서실장 김건우입니다.
화면 속의 김 실장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유명그룹을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유명그룹은 지금껏 감추고 있던 것이 있습니다. 아니, 감춰야만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한 여기자의 질문에 김 실장은 표정을 좀 더 굳히며 입을 열었다.
-바로 게이트의 존재입니다.
-게이트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국내의 게이트는 하나가 아닙니다. 저희 유명의 본사가 있는 과천에 또 하나의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지금 그 말이 사실입니까?
-어떻게 그걸 숨기실 수가 있죠? 이건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닙니까?
기자들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어떻게 막으신 겁니까?
-아시다시피 그곳의 설립 목적은 본사가 아니었습니다. 길드원들의 주거복합단지로 지어졌죠. 다행히 유명의 길드원들이 그곳에 있었기에 몬스터들을 내보내지 않고 막을 수 있었습니다.
-몬스터들을 막아냈다면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에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뭔가요?
한 기자의 질문에 김 실장은 심호흡을 한차례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 유명의 길드원들 대부분이 모습을 감춘 것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혹시 기자님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질문한 기자를 똑바로 보며 말하는 김 실장의 카리스마에 기자는 잔뜩 기가 죽은 모습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게이트가 있었다면, 그곳을 조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틀렸습니다. 저희 길드원들은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으니까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유명의 전력과 유선우 씨의 힘이라면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텐데요?
이제 시작인가?
기자회견을 보던 나는 드디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열린 게이트가 다른 곳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기자님 혹시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의 평균적인 수를 아십니까?
-적게는 1만에서 많게는 2만까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만에서 2만. 그로 인한 인명 피해나 피해액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단 금액적으로는 조 단위라 알고 있습니다. 인명 피해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술술 말하는 기자를 보며 김 실장은 눈을 잠시 감고는 심호흡을 한 후에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
-20만입니다.
김 실장의 말에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곳에 있던 몬스터의 수가 무려 20만입니다.
-20만?
-몬스터가 20만이 있었다고? 그게 말이 돼?
기자들의 혼잣말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이크가 없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는 기자들에게 전부 마이크를 채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걸 위해서.
술렁거리기 시작하는 회견장.
이번에는 기자들에게 미리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그들의 충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 사실을 국민 여러분께 알렸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그, 그 말이 정말이라면 어떻게 되든 알렸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민에게는 숨긴다고 해도 정부나 다른 길드에 알려 도움을 요청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알린다라? 혹시 기자님은 얼마 전 있었던 여의도 사태를 벌써 잊으신 겁니까? 그때 다른 길드들과 정부가 어떤 짓을 벌였는지 벌써 잊으셨단 말입니까!
기자에게 호통을 치는 김 실장의 카리스마에 모두가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 하지만 그러다 뚫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물론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 두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건물을 무너트려 시간을 벌고 정부와 길드에 연락해 어떻게서든 국민이 피난할 때까지 버틸 준비를 해 두었으니까요.
-증거가 있습니까? 20만이라는 몬스터에 대한 증거가 있으시냔 말입니다.
순간 한쪽에서 손을 번쩍 든 젊은 기자가 김 실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어왔다.
-물론입니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실 겁니까?
-네.
김 실장은 왼편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이곤 이어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보실 장면은 게이트가 열린 후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아내던 저희 길드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게이트 안쪽으로 진입하는 영상과 게이트 안쪽에 진입한 후 드론을 이용해 촬영한 영상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편집을 조금 했을 뿐 조금의 조작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후에 영상을 배포할 테니 직접 확인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김 실장이 자리에서 비키자 미리 준비해 둔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