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 홀에 열린 게이트 속에서 쏟아지듯 튀어나오는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막아내는 소환수들과 길드원들의 뒷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시작으로 장면이 휙휙 지나가며 급박한 상황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편집 진짜 잘했네?’
한쪽에 표시된 시간을 통해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이 가능했다.
그렇게 7시간이 지났을 무렵부터 길드원들이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바뀐 장면은 어비스 안쪽을 비추다 점차 시점이 높아지던 그때.
-헉!
-정……말이었어?
-저게 다 몬스터라고?
수백 미터 상공에서 촬영한 모습이 화면을 통해 보이자 기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십만을 가뿐히 넘어가는 몬스터와 계속해서 합류하는 몬스터들의 행렬에 기자들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엄청난 수의 몬스터.
거기다 드문드문 보이는 S급 몬스터들과 A급의 대형 몬스터의 수가 절대 적지 않았기에 그들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 영상 하나 때문에 전 세계가 놀라고 있을 거다.
한 달을 훌쩍 넘긴 지금 시점에서 이 영상을 공개한다는 건 저 몬스터들을 전부 처리했다는 의미이니까.
-이것이 지금껏 저희 유명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입니다.
영상이 끝을 알리는 순간 한쪽에서 다시 등장한 김 실장이 천천히 기자들과 시선을 맞추며 힘있게 입을 열었다.
-아니 못하고 있던 이유입니다. 저희 유명은 이 나라를 위해 필사적으로 몬스터들을 막아야 했습니다. 지쳐 쓰러지다 못해 기절하는 길드원들을 보면서도 말리지 못했던 그때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아십니까?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다시 전장으로 나서는 길드원들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내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저 끔찍한 곳을 사수하며 버텨내야 했던 그들의 심정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김 실장을 보며 역시!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사실을 아는 나까지도 속아 넘어갈 뻔했다.
‘저런 표정으로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 배우를 해도 되겠어.’
김 실장의 열변에 기자들 모두가 감동한 표정으로 그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아마 유명의 길드원들 모두는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거다.
-네. 거기 기자님 질문하시죠.
김 실장의 말에 카메라가 손을 번쩍 든 여기자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무리 유명 길드라고 해도 저 많은 몬스터를 전부 막아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시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유명에는 세계랭커라 불리는 유선우 님이 계십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겠습니까?
김 실장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아! 역시! 등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또 아버지겠지? 이제 그만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
왜 이렇게 나를 못 뛰어서 안달이 나신 건지 모르겠다.
-이만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 * *
-그걸 도대체 어떻게 막은 거냐? 전 세계의 모든 각성자가 다 달라붙어도 힘들 것 같은데?
└난 그것보다 도대체 왜 한국에만 저렇게 많은 몬스터가 몰려든 건지 이해가 안 가는데?
└마왕의 나라잖아. 당연히 마왕을 영접하기 위해 몰려든 거겠지.
└미친놈.
-세계 길드 평가서 나왔다! 유명 무려 3등임!
└에게? 그것밖에 안 돼? 솔직히 이 정도면 1등 줘야 하는 거 아님?
└그것보단 마왕 정도면 10강에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중국의 리셴인가 뭔가 빼고 그 자리에 마왕이 들어가야 하는데.
국뽕이라 그랬나?
국뽕에 취한 국민들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유명에 환호하고 있었다.
세계 길드 순위 10위권은커녕 20위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던 유명 길드가 단숨에 3위까지 올라간 영향과 20만이라는 몬스터를 막아냈다는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었는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보. 마왕은 유명길드 소속이 아니기에 3위에 그쳐.
└그러네? 유선우가 유명길드 소속이 아니었어!
└그럼 유명길드 소속이었으면 1등인 건가?
└당연하지. 마왕이라면 충분히 1등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
‘근데 이거 괜찮은 건가?’
반응이 뜨거운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몇몇 사람들이 나를 우상화하는 것 같은 글들이 간간이 보여 살짝 걱정되었다.
동상을 세우자는 말부터 교과서에 위인으로 실려야 한다는 말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게이트를 막은 이유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유명을 위해서였으니까.
이거 수아 학교 개학하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뭘 그렇게 보세요?”
“아! 별거 아니야. 그냥 반응 좀 봤어.”
“영웅이 된 기분은 어떠세요?”
“지금 나 놀리냐? 내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 그걸 물어?”
“도련님은 참 이상한 것 같아요. 누구나 영웅을 꿈꾸잖아요. 도련님은 그런 영웅이 된 건데 왜 싫어하시는 거예요?”
“나는 사람들 앞으로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왜요?”
아마 전생의 영향 때문이겠지?
전생의 나는 나를 알리는 걸 극도로 꺼렸다. 유명이라는 거대한 배를 침몰시킨 당사자가 바로 나였으니까.
누군가의 입에서 유명이라는 말만 나와도 바로 자리를 피해 버렸을 정도로 그 사실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그때의 그 생각이 지금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안 맞아. 나랑은.”
“그나저나 어쩌실 거예요?”
“뭐가?”
“기업들요. 게이트 언제 공개할 거냐는 문의가 장난 아니던데…….”
“아! 그거. 걱정할 거 없어. 김 실장이 알아서 조율하고 있으니까.”
게이트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은 후 국내의 기업들뿐 아니라 길드부터 일반인 노동자, 개인 사업자들까지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이쪽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아버지나 형이 좀 나서서 해결해 줬으면 했지만, 둘 다 모든 걸 나에게 일임한 상태라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었다.
하지만 김 실장이란 비장의 카드가 있는 나는 곧바로 김 실장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이쯤 되면 김 실장이 아버지 비서가 아니라 내 비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법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일을 처리하는 동시에 내 일까지도 가볍게 처리하는 김 실장은 정말 유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집사에, 아버지 비서에 내 비서까지…….
도대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거야? 보니까 형 일정이나 일도 좀 돕고 있는 것 같던데…….
* * *
쾅- 콰앙- 쿠구구구구-
유명시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 도착한 나는 지금 뚱이와 니안의 대련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정말 그렇네요?”
네임드인 뚱이와 악마종인 니안의 대련은 당연히 니안이 우세해야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니안을 몰아붙이는 뚱이.
방어력, 공격력 둘 다 뚱이에게 밀리는 니안은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둘 다 방어를 무시한 채 공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점차 뒤로 밀리는 건 바로 니안이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니안의 공격을 받아내는 뚱이에 비해 니안은 뚱이의 공격에 점차 충격이 심해지는지 공격 횟수가 줄어들며 방어 일변도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걸 모르고 있었지? 좀 황당하네.”
“매일 보니까 모를 수밖에 없죠.”
뚱이는 전과 많이 변한 상태였다.
키가 좀 더 커졌고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근육은 지금에 와서는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아니 줄어들었다기보다는 마치 압축된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우락부락하기만 했던 근육이 밸런스 있는 모습을 찾아갔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아직 우락부락한 면이 있긴 했지만, 전에 비하면 많이 변한 상태였다.
“현태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네요.”
“그러니까.”
현태가 할 말이 있다면서 찾아와 꺼낸 이야기에 뚱이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면 정말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뚱이를 다루는 게 힘들어졌다는 현태는 뚱이에게 위압감을 느낀다면서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분명 뚱이의 태도가 변한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지시를 내리는 게 망설여지기 시작했다는 현태의 말에 뚱이를 자세히 살펴본 나는 뚱이가 지금 진화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몬스터가 마력을 다루게 됨으로써 진화를 해 종국에는 악마종이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던 나에게 뚱이의 변화는 가설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기 충분했다.
“그나저나 저 정도면 진화 중인 게 아니라 이미 진화가 끝난 거 아닐까요?”
“내 생각도 그래. 설마 니안을 저렇게 몰아붙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둘의 대련을 조금 더 지켜보던 나는 그만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릴과 샤크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한 시간을 넘게 버틴 니안이 30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많이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
내 외침과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둘.
하지만 둘의 이후 행동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대로 주저앉은 니안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뚱이.
“근데 저 돼지는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예요?”
“설마 왕눈이도 힘든 건 아니겠지?”
뚱이의 주력은 파워와 체력이었는데, 진화를 통해 스피드까지 갖추게 되어 무력이 단번에 몇 계단을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좀 힘들겠어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에이~ 저 무시하지 마세요. 이제 저 왕눈이랑 비교해도 많이 안 꿀려요.”
“정말?”
“여기 마나가 좀 특이해서 그런지 저 엄청 강해졌다고요.”
이제 2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적응이 끝났다고?
솔직히 말하면 좀 황당했다.
나야 전생의 기억과 경험 덕분에 곧바로 마력을 교체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전생 덕분이었다.
이미 머릿속에 마력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현지가 2개월 만에 그걸 해냈다는 말은 솔직히 믿기 좀 그랬다.
“정말이야?”
“네? 뭐가요?”
“정말 어비스의 마력으로 모두 교체한 거냐고.”
“당연하죠. 그게 뭐 어려운가요? 지안이도 이미 다 끝냈어요.”
‘이런 괴물 같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전생에 어비스의 마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각성자들은 게이트가 열리고 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난 후에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리 내가 조언을 조금 해 줬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태나 명철 아저씨조차 이제 겨우 조금씩 적응을 하는 수준이었기에 빨라도 6개월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오판이었다.
같은 범주에서 생각한 내가 바보였던 건가?
“너무 빠르게 바꿔버리면 통증이 있을 건데?”
“통증이요? 전혀 없었는데요?”
“전혀?”
“네. 그냥 어느 정도 적응된 것 같아서 그냥 바꿔보니까 잘 되더라고요.”
“지안이도 그렇데?”
“네.”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어비스의 마나에 대해 파악하고 경험까지 있는 나조차도 극심한 통증을 동반해 겨우 내 것으로 만들었기에…….
거기다 1주일을 기절한 후 깨어나 어비스의 마나를 다시 받아들일 때조차도 고통을 받아야 했기에 더욱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언젠데?”
“이제 2주 좀 넘었어요.”
‘허! 어이가 없네…….’
천재가 아닌 내가 천재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건가?
“왜요? 도련님은 곧바로 바꿔버렸잖아요. 저희는 좀 늦은 거 아니에요?”
“말을 말자.”
더 해봤자 나만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만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도련님 저도 얘랑 붙어보면 안 될까요?”
“뚱이랑?”
“네. 저도 제 수준을 좀 파악하고 싶은데 딱히 상대가 없어요.”
“음- 그래 한번 해봐.”
나도 현지의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딱히 말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은신은 사용하지 말고 싸워.”
“당연하죠. 야! 따라와 한판 붙자!”
“쿠오?”
뚱이의 등짝을 후려친 현지가 뚱이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 모습을 본 뚱이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천천히 현지의 뒤를 따라 걷던 뚱이는 현지가 멈춘 후 자세를 잡으며 분위기를 일변했다.
평소에는 멍해 보이는 뚱이지만, 전투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간다?”
“취익!”
뚱이가 자세를 잡고 폭발적으로 마력을 뿜어내자 현지가 자리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콰앙-
뚱이의 정면에 현지의 모습이 나타나며 굉음을 만들어냈고.
잠시 힘겨루기를 하던 현지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뚱이 역시도 내 시야에서 사라지며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쾅- 콰과과과광- 콰앙-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이거 드래곤X이야? 왜 아무것도 안 보여?
여기저기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둘은 언젠가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나 정도면 움직임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저 둘에게 많이 처진다 해도 일단은 S급이었다.
그것도 상위.
아니 최상위는 되지 않을까? 얼마 전 분명 벽을 넘었다는 걸 느꼈기에 충분히 최상위에 속해 있을 줄 알았는데, 둘에 비하면 아직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현지의 수준을 파악하긴커녕 그 모습조차 보지 못하는 상황에 많이 당황해 있던 순간.
퍼억-
타격음이 울리고 현지의 모습이 나타나 저 멀리 튕겨 나가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오! 뚱이가 한 방 먹인 건가?
뒤로 튕겨 나가던 현지가 그대로 몸을 뒤집어 착지한 후 쭉 미끄러지는 모습에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그때였다.
“너! 뒤졌어!”
‘어? 뭐야?’
현지를 보던 나는 현지가 뿜어내는 마력의 양이 내 생각의 범주를 심하게 벗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왕눈이의 레이저처럼 마력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