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돌산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 현지의 입이 열렸다.
“왜?”
“그게요. 저거 아무리 봐도 그냥 산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어떤 기분?”
“도망쳐야 할 것 같은 기분?”
“뭐……라고?”
도망이라고? 저 돌덩이가 몬스터라도 된다는 말이야?
누가 저 커다란 돌산을 생명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싶었다.
너무 거대했으니까.
샤크의 최대 크기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큰 정도?
거기다 지안의 말대로라면 저건 머리뿐이지 않은가?
만약 저게 생명체라면 몸통도 있다는 말이었고, 그렇다면 그 크기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하다는 건데…….
“그 말은 저게 몬스터라도 된다는 말이야?”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이상하게 막 도망치고 싶어져요.”
“난 모르겠는데?”
점차 불길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고, 이어서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어.”
“저도 그게 좋겠어요.”
현지가 내 말에 동조하던 그때.
“아!”
지안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왜?”
“움직이고 있어요.”
“뭐?”
지안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돌산의 한 부분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부르르 떨리며 작은 소음을 만들어냈고, 이어서 소리가 커지며 떨리던 부분에서 돌들이 마구 떨어졌다.
그리고…….
거대한 눈이 나타났다.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 나타났던 그 눈과 비슷한 쭉 찢어진 파충류의 눈이.
“튀어!”
우르르릉-
내 외침과 동시에 지진이 난 듯 땅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어서 거대한 돌산이었던 알 수 없는 존재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도련님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그 존재를 본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단 한 발자국만으로 이쪽을 따라잡을 게 뻔해 보였으니까.
“전투 준비해! 뚱이 샤크가 최전방! 현지는 기습! 지안이랑 펜릴은 공중에서 지원. 나하고 하임은 일단 뒤로 빠진다!”
“네!”
“뀨!”
“크왁!”
“하임!”
내 부름에 곧장 내 옆으로 온 하임은 나를 데리고 뒤로 쭉 빠졌다.
수 km를 물러섰음에도 저 괴물에게는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녀석은 너무 거대했다.
분명 녀석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누가 봐도 저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있으리라.
드래곤.
전생을 겪은 나조차 처음 보는 드래곤이란 존재였다.
머리부터 몸통까지의 길이가 최소 500m는 되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외형을 본 나는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크롸롸롸롸-”
녀석의 포효에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며 숨이 막혀올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게 드래곤 피어라는 건가?
그래도 다행인 건 녀석의 피어에 영향을 받은 존재가 나뿐이라는 거였다.
“시작해!”
공포를 겨우 참아내며 크게 외치자 가장 먼저 지안의 아스트라가 빛을 뿜어냈다.
콰과과과광-
수백 발로 분열한 지안의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녀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오로지 샤크와 뚱이만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마치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뭔가를 발견한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설마 악마석을 노리는 거야?
악마종에게서 나오는 마석을 악마석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는 없던 일이었으니까.
인간들이 이곳을 들쑤시는 동안에도 잠들어 있던 녀석이 굳이 지금 깨어날 만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악마종인 내 소환수들.
빠지지지직-
지안의 공격이 끝나고 곧바로 펜릴의 뇌전이 녀석에게 쏘아져 나갔고.
“크롸롹-”
지안의 공격과는 다르게 고통이 느껴지는지 그 거대한 머리를 돌려 펜릴을 노려보는 녀석은 이어서 자신에게 뻗어지는 샤크의 그림자 촉수에 묶였고 잠시 멈칫한 틈을 노리는 뚱이의 공격이 녀석에게 작렬했다.
터엉-
공격과 동시에 튕겨 나가는 뚱이는 녀석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살짝 떨리는 정도?
‘이럴 줄 알았으면 왕눈이도 데려올 걸 그랬어.’
공격력 최고인 왕눈이가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와서 그딴 게 무슨 소용이야!’
찌지직-
녀석을 묶고 있던 샤크의 그림자가 놈의 작은 몸부림에도 쉽게 찢겨 나갔고, 이어서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는 녀석의 움직임에 꼬리가 숲을 휩쓸기 시작했고.
쿠구구구궁-
그 공격에 뚱이가 휩쓸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뚱아!”
“쿠와아!”
정말 다행히도 뚱이는 무사해 보였다.
공격에 적중당한 것이 아닌 녀석의 공격을 멈추어 세워버린 뚱이.
“하임아 혹시 저놈 못 움직이게 묶어둘 수 있어?”
“뀨우…….”
고개를 절레절레 젖는 하임을 보며 점차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지 이대로라면 도망도 못 갈 텐데?
“그럼 공격이라도 해줄래?”
“뀨!”
바로 땅에 양손을 대고는 곧바로 마력을 쏟아부은 하임이 만들어 낸 것은 흑색의 거대한 주먹이었다.
“오오-”
드래곤의 머리통만 한 거대한 주먹이 땅에서 솟구쳐 그대로 드래곤을 가격하자 거대한 몸체가 휘청이며 녀석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더…….”
더 공격하라 말하려던 나는 하임에게 시선을 돌리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리안의 브레스조차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아낸 하임이 표정을 잔뜩 구기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드래곤을 공격한 하임은 힘을 다한 모양인지 그대로 주저앉아 헐떡거리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의 힘을 단숨에 뽑아낸 영향으로 탈진 직전의 상태에 빠져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하임.
고개를 돌려가며 내 소환수들과 현지, 지안의 전투를 지켜보던 나는 ‘모두가 정말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왜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태해진 건가?
그 시절의 나는 이렇지 않았다.
C급일 때는 B급 몬스터를 B급일 때는 A급 몬스터를 사냥하며 더욱 위를 향했었다.
웬만한 부상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뼈를 취하기 위해 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내주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왜 지금은 소환수의 등 뒤에 숨어 지시만 내리게 되었을까?
겁을 먹은 건가?
“정말 많이 변했네.”
“뀨?”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어느 정도 기력을 찾았는지 하임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동술 쓸 수 있겠냐?”
“뀨!”
고개를 끄덕이는 하임을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싸우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서서히 몸속에 잠들어 있는 마력을 깨웠다.
몸통이 커서 그런지 공격하기는 편하겠네.
“저기 보이지. 저놈이 신경 쓰지 않는 곳.”
“뀨!”
“저기로 몰래 이동 좀 해봐.”
“뀨!”
하임의 대답과 함께 장소가 변하기 시작했다.
녀석을 빙 둘러 이동하며 놈의 옆구리 부분에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나는 그대로 녀석의 옆구리에 큼지막한 균열을 생성하기 위해 마력을 집중했다.
퍼억-
“크롸롸롸롹-”
그대로 터져나가는 녀석의 옆구리를 보며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강의 공격력.
그 무엇도 뚫을 수 있는 내 마력은 녀석의 비늘조차 아무렇지 않게 뚫어내며 녀석의 옆구리를 한 움큼 뜯어냈다.
“피해!”
지금껏 나란 존재를 무시하던 녀석은 내 공격에 당한 후부터 나를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임의 이동술과 소환수들의 방해 덕분에 녀석을 계속해서 피해 다닐 수 있었던 나는 그 이후부터 계속 녀석을 공격하기 위해 틈을 노렸지만, 더 이상의 피해는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는 순간 나를 노리는 녀석 때문에 바로 피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졌고, 그로 인해 녀석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를 제외한 소환수와 현지, 지안이 더욱 자유로워졌는데, 문제는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옆구리를 노려!”
내가 뜯어버린 옆구리 쪽을 노리라는 지시를 내린 후 계속해서 녀석을 교란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녀석이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회라 생각한 나는 녀석의 뒤쪽으로 이동해 마력을 집중하려 했는데, 순간 내 마력을 밀어내는 어떤 힘이 느껴졌고, 그 때문에 균열은 내가 생각했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장소에 생성되어 버리며 공격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놈이 방법을 찾아낸 거였다.
이런 방법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것뿐이었으니까.
이후로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역시나 녀석의 방해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마력만 낭비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결국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임아 저기 떨어진 비늘 조각 보이지?”
“뀨!”
“저거 가지고 와!”
처음 내가 뜯어버린 상처 주변의 땅에 비늘의 조각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한 나는 하임에게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고, 이어서 손에 쥘 수 있었다.
마치 창처럼 길쭉한 형태로 된 비늘 조각을 손에 든 나는 일단 거리를 벌려달라 부탁하고는 비늘의 강도를 시험해 봤다.
마력을 잔뜩 실어 가격해 본 결과, 강도가 상상 이상이라는 확인하곤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현지야! 잠깐 이리로 와봐!”
크게 소리치자 현지가 내 앞에 바로 모습을 드러내며 지친 얼굴로 격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가 신호하면 그 마력 증폭시키는 기술 써서 저놈 좀 혼란시켜 봐.”
“어쩌시게요? 저 그거 쓰면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해요. 아시죠?”
“알아. 그래도 부탁할게.”
“네.”
그대로 사라지는 현지를 보던 나는 하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내가 신호하면 저놈 상처 바로 앞으로 나를 좀 데려다줘.”
“뀨!”
하임의 대답을 들은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육체를 제한하는 리미트를 풀기 위해 집중했다.
서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선.
그 선을 아무 망설임 없이 끊어버린 나는 크게 소리쳤다.
“현지야!”
현지를 부르는 내 외침이 울림과 동시에 퍼억- 소리가 나며 드래곤의 고개가 한쪽으로 휙 돌아갔다.
퍽퍼퍼퍼퍽-
이어서 격타음이 계속해서 울리며 드래곤의 고개가 상하좌우 4방향으로 마구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몸속의 마력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어서 변화된 파괴의 마력을 드래곤의 비늘 조각에 담으며 이를 악물었다.
저번 싸이클롭스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양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비늘 조각 덕에 나의 고통 역시 계속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그때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야.
나 자신을 안심시키며 계속해서 파괴의 마력을 담아가던 그때.
끼기기기긱-
“지금!”
너무 커다란 고통에 이를 악물던 입을 열며 소리쳤다.
이동 중에 자세를 잡기 시작한 나는 육체가 가진 모든 힘을 끌어올리며 녀석에게 도착하길 기다렸다.
1초도 되지 않는 그 찰나가 마치 1년처럼 느껴졌고.
“뀨!”
도착한 순간 모든 힘을 모아 손에 들고 있던 길쭉한 비늘 조각을 녀석의 옆구리를 향해 집어 던지며 외쳤다.
“뒈져, 이 새끼야!”
내 손을 떠난 순간 이미 상처를 파고들어 사라진 창을 보며 미소지은 나는 그대로 암흑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 * *
“크윽!”
“도련님!”
“상무님!”
신음과 함께 눈을 뜨자 현지와 지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얼마나 지났어?”
“도련님 쓰러지시고 이틀이 지났어요.”
고통이 점차 심해지는 걸 느낀 나는 이틀이란 시간이 좀 적다고 생각했다.
이왕 기절한 거 모두 회복된 후에 깨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괴물 어떻게 됐어?”
“일단 쓰러지긴 했는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다고?”
“네. 바로 처리할까도 생각해 봤는데, 일단은 상무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몰라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었어요. 전혀 위협이 안 되는 상태이기도 했고요.”
일단 그 녀석을 내 지배하에 두는 건 배제해야 했다.
솔직히 내가 지배하기에 녀석은 너무 강한 듯 보였다.
거기다 그 크기.
내 균열을 통과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크윽!”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순간 전신을 강타하는 엄청난 고통에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변화시킨 마력의 잔재가 아직 몸 안에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전신이 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누워 계세요. 포션을 복용하긴 했지만, 회복이 더딘 편이에요.”
“샤크는?”
“한 시간마다 샤크가 회복을 시키는 중이긴 한데, 효과가 없네요.”
포션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샤크의 능력으로도 회복력을 높이지 못한다는 설명에 당분간은 누워 지내야 할 것 같았다.
“위치는?”
“아직 주변이에요. 일단 길들인 애들은 이곳으로 옮겨 놨어요.”
“잘했어.”
아마 날 옮기기 좀 그랬을 거다.
내 부상을 정확히 파악할 만한 의료기계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함부로 옮기다가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몰라 일단 제자리에 둔 거겠지.
“그런데 상무님.”
“왜?”
“주변 정찰을 하다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어요.”
“이상한 거?”
“네. 뭐랄까? 다 부서진 고대의 도시 같은 것들을 발견했어요.”
설마? 유적을 찾은 건가?
“혹시 거기서 문양 같은 거 발견했어?”
“문양요? 아! 붉은 손 모양의 문양 비슷한 걸 봤어요.”
찾았다.
악마의 손 같은 문양이 중앙에 떡하니 그려져 있는 어비스의 유적.
바로 그곳이 내가 탐험을 시작한 이유였다.
“거기까지의 거리는?”
“정확히 재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꽤 먼 편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래도 내가 회복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 모여봐.”
일단 먼저 가서 찾아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나는 모두를 불러 모은 뒤 입을 열었다.
“일단 저놈 처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