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214)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히 찾으세요? 저 씻지도 못했어요.”

조금 전 탐험에서 돌아온 나는 아버지가 급히 찾는다는 말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아버지의 서재로 향해야 했다.

“지금 씻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너도 알고 있지. 화랑 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거.”

“네.”

화랑은 지금 제한구역 정리하느라 바쁘지 않나?

“놈들이 아무래도 중국으로 망명을 하려는 모양이다.”

“네?! 망명이라뇨?”

“아무래도 제한구역의 게이트로는 국내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화랑이 게이트를 차지하려던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뿐이라 생각했던 게이트를 통해 국내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종국에는 한국을 집어삼키려 했다는 걸.

그러니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게이트를 차지하려 했던 거고.

“그러니까 이쪽에도 게이트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안 될 것 같으니까 망명을 하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그래. 아무래도 전부터 준비했던 모양이야.”

“전이라뇨?”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이미 준비가 끝났던 모양이야.”

“놈들이 조용히 있었던 이유가 그럼 중국으로의 망명 때문이었다고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망명이라니?

이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망신이었다.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디언이 망명을 한다? 그것도 자신의 길드원들을 데리고?

“그래. 아마 한참 전부터 준비해 왔던 모양이더구나. 그게 이번 게이트 사태 때문에 잠정 중단되었는데, 우리 쪽에서 공개한 게이트 때문에 결심을 한 모양이야.”

“화랑 전부를 데려간다고요?”

“그건 아닐 거라 판단 중이다. 나라를 버린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니까.”

“음- 그럼 최측근들과 몇몇 추종자들뿐이겠네요?”

“그래.”

최측근과 추종자들.

문제는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안 좋은 평을 듣고 있다고 해도 일단은 대한민국 최강의 가디언이었으니까.

“설마 노린 걸까요?”

“그건 아니겠지만, 문제는 놈들이 이쪽을 공격할 경우란다.”

자신들을 쫓아낸 것이 유명이라 주장할 우려가 있었다.

별별 소문들을 만들어내 우리 유명이 자신들을 암중에서 괴롭혀 왔으며 언론을 통제해 자신들을 쓰레기로 만들며 망명이라는 선택지만을 남겨두었다 토로해 버리기라도 하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유명을 흔들지도 몰랐다.

“그렇네요.”

“망명이라는 선택을 해 버린 놈들인데 더 잃을 것도 없겠지.”

“결과가 안 좋아도 본전이라는 말인가요?”

“그래.”

이런 미친놈들.

져도 잃을 게 없는 놈들만큼 무서운 놈들도 없었다.

“어쩌실 생각이세요?”

“이 일을 공론화시킬 생각이다.”

“네? 알리겠다고요?”

“그래. 놈들이 떠나더라도 수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 정도는 벌어 놔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처럼 될까요?”

“그렇게 만들어야지.”

아마 이 일을 공론화해 버리면 놈들은 아니라고 잡아뗄 확률이 높았다.

당연히 녀석들의 움직임은 더욱 조심스러워질 테고 당연히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게 될 거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놈들이 그대로 떠나버렸을 경우였다.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놈들이 그대로 떠나 버린 후 언론 플레이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지.”

“아! 그럼 공론화시킨 후에 녀석들이 바로 떠나려 할 때 잡아들이는 건 어떠세요?”

놈들을 감시하다 떠나려는 순간을 포착해 잡아들이면 모두 해결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좀 문제가 있단다.”

“네?”

“일단 놈들이 떠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게야.”

“어째서요?”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아마 그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이쪽을 압박하겠지. 그게 아마 놈들이 정말로 노리는 것일 테고.”

아버지의 예상이 정확하다면 이건 정말 문제가 커질 우려가 있었다.

각성자들의 싸움이 아닌 국가 간의 전쟁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현대 무기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건 각성자들에게나 그런거고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병기였으니까.

“정말 노리는 것이 그거라고요?”

“일단 망명신청을 한 이상 중국도 이 일에 한발 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단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전 세계가 중국을 비난할 텐데요?”

“놈들이 언제 그런 걸 신경이라도 썼더냐?”

“아! 그러네요?”

언제나 막무가내였던 그들이 그딴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명분 없이도 일을 벌이는 놈들 특성상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결국, 놈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네요.”

“그래서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

“네? 저에게요? 어떤 일인데요?”

“이번에 들어보니 러시아 쪽에 지원한 소환수들의 활약이 대단하다더구나. 벌써 시베리아의 몬스터 10분의 1을 정리했을 만큼.”

“벌써요?”

솔직히 이건 나도 좀 놀랐다.

시베리아는 한국의 제한구역이나 일본의 홋카이도와는 비교 자체가 안될 정도로 엄청난 몬스터가 서식 중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도 수십만의 몬스터가 있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게이트까지 열리며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서 그런데 이번에 너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보여준다니요? 어떤 방식으로요?”

“하나의 사업을 좀 추진해 볼까 한다. 렌탈 사업을.”

“렌탈 사업이라뇨? 저의 힘으로 무슨 렌탈…… 설마? 소환수를요?”

소환수 렌탈 사업을 하시겠다고?

“그래. 일단 게이트 덕분에 힘든 나라들 위주로 시작을 했으면 한단다.”

“그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건 또 뭐냐? 이미 러시아에서 증명했는데.”

“그렇긴 한데요…….”

“걱정하지 말 거라.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 놓았으니까. 네 허락만 떨어지면 지금 당장에라도 도움을 요청할 나라가 넘쳐나는 상황이란다.”

“준비가 벌써 끝났다고요? 그럼 제 허락은 왜 받는 건데요?”

준비가 끝났다는 말은 내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너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아이들의 주인이 바로 넌데.”

“설마 아버지…… 벌써 소환수들을 보낸 건 아니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유명 시에 도착했을 때 내 소환수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크흠-”

“설마 했는데…….”

좀 허탈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내가 있었다면, 허락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요. 저의 힘을 보이는 것과 화랑이 무슨 상관이에요?”

“지금 러시아에 가 있는 너의 소환수가 몇이더냐?”

“1500 정도요.”

“남은 소환수는?”

“조금 더 많은 정도죠?”

“그 소환수가 전부 B급 이상이라지?”

“네.”

“너 같으면 B급 이상의 몬스터가 적어도 3천이 넘는데 싸움을 걸고 싶겠냐?”

아버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적어도 3천 이상의 B급을 보유한 나라.

그중 1천 가까이가 A급 이상이었고, 이게 끝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잡았을 경우의 수.

거기다 각성자까지 포함한다면 상대가 중국이라도 함부로 건들 수 없을 거다.

궁지에 몰린 이쪽이 같이 죽자고 덤비면 그쪽도 난감할 테니까.

“그렇네요.”

“그래. 싸움을 걸었다가 잘못하면 둘 다 망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르니까.”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보여주죠.”

“제대로? 무슨 말이냐?”

“조금 있으면 유명 시로 천 마리 이상의 S급 소환수가 도착할 예정이거든요.”

“뭐라고? S급이 천 마리?”

“네. 제가 나가서 놀고 온 게 아니거든요.”

“허! 너는 정말 마왕이라고 해도 되겠구나.”

* * *

“이쯤이면 되려나?”

나는 왕눈이와 니안을 데리고 유명시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곳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번에 구한 악마석을 복용시키기 위해서.

“왜? 너 안 데려가서 삐졌어?”

다시 돌아왔을 때 왕눈이는 우리를 보고 충격에 빠졌었다.

샤크와 펜릴을 보던 왕눈이는 녀석들이 자신보다 강해졌다는 걸 느꼈는지 마치 삐지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기에 급한 일만 처리하고 바로 악마석을 복용시키기로 했다.

지금도 왕눈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비스듬하게 서서 기운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솔직히 조금 웃겼다.

“내가 설마 네 것도 남겨두지 않았겠냐? 이것 봐라.”

공간확장 배낭을 내려놓고 안에서 바로 수박만 해진 악마석 두 개를 꺼내 놓으며 입을 열자 왕눈이가 바로 반응했다.

비스듬했던 자세를 바로 하고 게슴츠레 뜨고 있던 눈을 활짝 뜨며 나에게 곧바로 다가오는 녀석.

“그렇게 좋냐?”

크헬헬헬헬-

“어? 뭐야 너 소리 낼 수 있었어?”

입을 열진 않았지만, 마력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왕눈이는 웃는 것 같았다.

“키리릭- 키리릭-”

옆에서 니안이 함께 소리치며 얼른 악마석을 달라며 떼를 쓰는 모습에 바로 악마석을 왕눈이에게 던졌다.

“옜다!”

공중에서 정지한 악마석이 천천히 왕눈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니안에게도 악마석을 하나 건넸을 때.

쿠웅-

굉음과 함께 왕눈이에게서 마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며 왕눈이가 마력 폭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어서 마력 폭풍이 점차 커지며 왕눈이가 그 안에 숨어버렸다.

그리곤 나와 니안을 천천히 밀어내며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가까웠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며 수십 미터를 밀려나고 나서야 멈춘 나는 조용히 왕눈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쿠웅- 쿠웅- 쿠웅-

소름 끼칠 정도의 어마어마한 마력에 잠시 당황한 사이 니안 역시도 악마석을 꿀꺽했는지 마력의 파동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변하려나? 어?

조용히 왕눈이와 니안을 지켜보던 그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주변의 마나들이 엄청난 속도로 왕눈이에게 몰리며 숲이 메말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나무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이 쪼그라들었고, 무릎까지 오던 풀들이 초록빛을 잃어가며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 일정 영역을 죽음의 땅처럼 만들어 버렸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나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걸 느낀 나는 살짝 걱정되었다.

나와 니안의 마력까지 빼앗아 갈까 봐.

다행히 니안이나 나의 마력까지 끌어들이는 것 같진 않았기에 안심을 한 나는 생각에 잠겨 들었다.

혹시 주변에 존재하는 마력이 많을수록 왕눈이가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든 생각에 나는 내 손가락에 끼고 있는 인피니티 링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비스가 열리고 인피니티 링의 마력을 모두 교체했기에 전보다 마력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왕눈이가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줘야지.

적다고 해도 지금 내 마력의 30배 정도는 되는 양의 마력을 품고 있었기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만드라고라까지 복용했기에 지금 내 마력은 세계랭커 최상위에 속한 자들에 비해 꿀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 이것도 먹고 왕창 강해져라. 그 드래곤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인피니티 링의 마력을 배출하기 시작하자 왕눈이가 마력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닥이 나 버리는 인피니티 링의 마력조차 부족했는지 계속해서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왕눈이였다.

나무가 쪼그라들다 못해 먼지처럼 부서져 흩날리기 시작했고, 이어서 일정 영역의 숲이 사라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거의 5km는 되어 보이는데?

반경 5km의 숲이 마치 사막처럼 변해 버렸을 즈음 마나가 몰리던 현상이 천천히 멈추어가기 시작했다.

마나가 아예 없어?

왕눈이와 니안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을 제외하고는 조금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키릭?”

그때 악마석의 힘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니안이 깨어나 왕눈이를 보며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벌벌 떠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악마종을 처음 목격한 명철 아저씨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반경 5km의 마나가 모두 왕눈이에게 빨려 들어간 후 왕눈이를 감싸던 마력 폭풍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변하려나?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왕눈이를 감싸던 마력 폭풍이 사라졌고, 그 안에서 왕눈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나도 안 변했네?”

눈을 전부 감고 있는 왕눈이는 외형적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니안 조차 두 개의 뿔이 더욱 길어지고 비늘이 좀 더 매끄럽게 변했는데, 왕눈이는 전혀 변화가 없는 모습이었다.

“어?”

왕눈이가 눈을 뜬 모습을 보고 나서야 변한 곳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눈동자의 색.

어두운 보랏빛이었던 눈동자가 완전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완전한 어둠.

마치 심연의 끝이라 불리는 그 어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조금 전 그 상황을 만들어낸 왕눈이에게서는 이상하게도 조금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강함.

“어?”

-상급.

“지금…… 너야? 왕눈이 네가 한 거야?”

마치 텔레파시처럼 단어가 내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긍정.

“더 길게는 못해?”

-긍정.

“단어 하나 정도만 보낼 수 있는 모양이네? 그나저나 상급이면 얼마나 강한 거야?”

상급 악마종이란 것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왕눈이의 강함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 소환수들 전부랑 싸워도 이길 수 있어?”

-쉬움.

“뭐? 쉽다고? 현지까지도?”

-긍정.

겨우 등급 하나 올라간 게 그 정도란 말이야? 설마?

“너 혹시 드래곤 알아.”

지잉-

순간 왕눈이의 촉수에 달린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져 나갔고 땅에 어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 맞아! 그거. 그것도 이길 수 있어?”

-모름.

“왜? 등급이 같아서?”

-부정.

아 답답해. 단어 하나로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그럼? 설마 얘들도 등급이 있어?”

-긍정.

“하급, 중급, 상급이 따로 있다는 말이야?”

-최소. 상급.

최소라는 의미가 머릿속에 울린 후 상급이라는 의미가 이어서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드래곤은 최소가 상급이라는 말이지?”

-긍정.

왕눈이와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이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왕눈이를 비롯해 내 소환수들이 먹어치운 악마석의 주인이 상급의 악마종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드래곤을 왕눈이 홀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왕눈이가 정말 이뻐 보였다.

또다시 드래곤이 출현한다고 해도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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