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를 마중 나온 나는 친구들과 함께 교문을 통과하는 수아를 발견하고 차에서 내렸다.
“수아야.”
“아빠! 히히히!”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곤 나에게 달려와 다리에 찰싹 달라붙은 수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밝게 미소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했어요?”
“네!”
수아의 손을 꼭 붙잡고 차에 타려던 그때 누군가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저기……”
“응? 아! 무슨 일이시죠?”
고개를 돌리자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학부모인가?
“사, 사인 좀 해주세요.”
“네. 잠시만요.”
수아를 내려 준 나는 그녀가 내미는 펜과 종이를 받아들고 사인을 해준 후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곤 빨개진 얼굴로 급히 멀어져가는 여성.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전이었다면 멀리 떨어져서 가만히 지켜봤을 사람들이 요즘 뭐 때문인지 나에게 다가와 사인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아빠! 유명해요!”
“수아는 아빠가 유명해서 좋아?”
“응! 너무 좋아요!”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수아의 귀여운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유명의 유니폼을 입은 가디언들을 발견했다.
“응? 뭐지? 근처에 균열이라도 생겼나?”
“안녕하십니까!”
“네. 반가워요.”
직각으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건네는 길드원들을 보며 화답하자 조금 딱딱해 보였던 표정을 풀고는 한 명씩 자신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유명길드 소속 균열 처리 3팀 팀장 서현기입니다.”
“팀원 김한수입니다.”
“팀원 소현우입니다.”
자신들을 소개하는 3팀을 보던 나는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혹시 근처에 균열 생겼나요?”
“균열 경보가 있어서 출동했습니다.”
“그런가요.”
서현기의 말에 조용히 눈을 감고 주변 마력을 느껴 균열에 대해 파악한 나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팀장님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아! 저는 A급입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서현기는 A급의 가디언이었고, 팀원들 전원이 B급이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이 전부인가요?”
“아닙니다. 나머지는 균열이 열릴 곳에서 대기 중입니다.”
“총 몇 분이시죠?”
“저희 팀은 저를 포함해 총 열다섯입니다.”
“아! 그럼 혹시 다른 팀도 올 예정인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서현기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죠?”
“B급 균열에 두 개의 팀이 출동하는 건 낭비……라서요.”
내 물음에 당황한 서현기는 말끝을 흐리며 살짝 당황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보다 B급 균열이라고? 아닌데? S급 균열인데?
“B급 균열이라뇨? 제가 느끼기에는 S급 균열인데요?”
“네? 그게 무슨?”
‘아! 이거 특이 균열이구나?’
게이트가 열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특이 균열이란 것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균열의 발생 원인은 안 찾아봐서 나도 잘 모르지만, 종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비스에서 시작되어 지구와 연결되는 것과 지구에서 시작되어 어비스와 연결되는 것.
두 가지의 종류가 있었다.
그중 특이 균열의 경우 지구에서 시작되어 어비스와 연결되는 것이었는데.
보통 한 종류의 마나가 모여 균열을 만들어 내지만, 게이트가 열린 후 게이트를 통해 흘러나온 마나가 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 균열이 열릴 장소에 몰려들며 어비스 깊숙한 곳과 연결해 버리는 현상이 바로 특이 균열이었다.
이 특이 균열 때문에 초창기에는 피해가 심각할 정도로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열리는 균열이 바로 그 특이 균열이었다.
“이번 균열은 이쪽에서 처리할 테니까 잘 봐두었다가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세요.”
특이 균열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마력의 종류를 파악할 줄만 알면 쉬웠으니까.
두 종류의 마력이 모여 있다면 적어도 A급 최상위의 균열이라 판단하고 새롭게 가디언을 배치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다.
“네? 아니 그게 무슨?”
지금이라도 기억이 나서 다행이네?
무심코 지나쳤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보면 아실 거예요. 홉일아 나와봐.”
수아에게 붙여둔 호위조는 홉일이의 조로 홉일이와 고블린 30여 마리가 하나의 조를 이루고 있었다.
“키엑!”
전과 다르게 악마종이 되어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지면서 나만이 아닌 다른 자들의 호위도 가능해진 녀석.
“으헉!”
갑작스럽게 나타난 홉일이를 발견한 3팀은 깜짝 놀라며 급히 거리를 벌렸다.
“균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하고 바로 복귀해. 또 저번처럼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현지한테 말할 거야.”
“키엑!”
대답과 함께 급히 3팀을 잡아끄는 홉일이는 얼마 전 은신한 채로 혼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전적이 있었다.
물론 현지에게 걸려서 죽도록 처맞았지만.
특이하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홉일이는 본사에서 조금 떨어진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모습을 드러내 큰 소란을 일으켰었다.
악마종이 된 후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깜빡한 내 실수였다.
홉일이를 패는 현지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똑똑하단 말이야? 돈이 뭔지도 알고.’
아이스크림 매장의 직원에게 만 원짜리 수십 장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는 홉일이의 모습이 CCTV에 찍혀 방송을 탄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나도 방송으로 그 모습을 보고 폭소를 했었다.
그 돈이 전부 현지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아! 서현기 씨?”
“네.”
“균열 처리하면 걔한테 아이스크림 하나 사줘요. 걔 돈으로요.”
홉일이는 정말 웃기게도 그때 현지에게서 훔친 돈을 항상 들고 다녔다.
현지에게 죽도록 처맞으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만 원짜리 지폐들을.
“네? 네! 알겠습니다.”
“수아야, 우리는 갈까?”
“네!”
내 다리에 붙어 있던 수아를 안아 들었을 때 수아가 눈을 빛내곤 입을 열었다.
“수아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네!”
겨울에 아이스크림은 좀 그런데?
아직 완전한 겨울은 아니었지만, 쌀쌀한 편이었기에 살짝 고민이 되었다.
괜찮으려나?
“그럴까 그럼?”
“와아~ 아이스크림이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것처럼 좋아하는 수아를 보자 어서 수아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기 시작했다.
“가까운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가지.”
아이스크림 매장을 검색하는 김 기사를 보던 나는 다시 수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아는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좋아?”
“네! 정말 좋아하는데 집에서는 언니들이 아이스크림을 못 먹게 해요! 언니들 미워요!”
언니라? 일하는 분들을 말하는 건가?
“언니들이 왜 수아가 아이스크림을 못 먹게 할까?”
“감기 걸린다고 안 된데요. 수아는 감기 같은 거 안 걸리는데…….”
어린 수아가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가 감기에 걸릴까 봐 그러는 것 같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수아 역시 각성자였으니까.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벌써?”
“네. 멀지 않은 곳에 마침 매장이 있었습니다.”
“수아야 내릴까?”
“아이스크림!”
“아! 김 기사도 먹을래?”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준 나는 수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매장 안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응?”
수아와 함께 매장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인사를 하며 나에게 시선을 돌리다 깜짝 놀랐는지 탄성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나는 수아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카운터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을 좀 사려고요.”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종업원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입을 열자 정신을 차린 종업원이 빙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뭘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 거지?
메뉴가 너무 많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은 나는 일단 수아에게 고개를 돌리곤 입을 열었다.
“수아는 어떤 맛으로 먹고 싶어?”
“딸기 맛이요! 쪼꼬 맛도 먹고 싶어요!”
이런 곳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은커녕 주문조차 해본 적 없던 나는 어색한 미소로 종업원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맛도 되나요?”
“네! 가능합니다.”
아이스크림의 종류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종업원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대답을 했고 이상하게도 수아가 원하는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그나저나 날씨가 쌀쌀한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는 걸 깨닫고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기뻐하는 수아의 손을 붙잡고 인사와 함께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저, 저기…….”
어느새 젊은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네?”
“혹시 유선우 님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어머! 저 팬이에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기에 차마 아니라고 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정말 망나니였던 시절이 그리웠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그런데 어디에다?”
“잠시만요.”
그녀가 종이와 펜을 구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자리에 앉아 이쪽을 보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아야, 저쪽으로 갈까?”
고개를 끄덕이는 수아를 데리고 자리를 잡은 나는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미소 지은 채 사인을 해줘야만 했다.
그냥 큼지막하게 내 이름을 적는 게 다였지만, 이상하게 정신적인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
그들 앞에서 친절해 보이는 미소로 연기하는 건 내 성격과 정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모두에게 사인해 준 후 급히 매장을 벗어나 차에 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김 실장을 원망했다.
이게 모두 다 김 실장 때문이었으니까.
내 이미지를 변화시킨다며 한 일들 때문에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수아 아이스크림 다 먹은 후 출발해도 되지?”
“네.”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수아는 그 많은 아이스크림을 금방 다 먹어버리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무언의 압박을 보내기 시작했다.
“안 돼.”
“히잉. 더 먹고 싶은데.”
칭얼거리는 모습조차도 너무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많이 먹으면 배 아파.”
“아닌데. 수아 더 먹을 수 있는데.”
“내일 또 사줄 테니까. 오늘은 참아.”
“정말요? 정말 내일 또 사줄 거예요?”
“그럼~”
“우와! 그럼 약속.”
수아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던 도중 멀리서 마력의 파동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낀 나는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벌써 열렸나?’
지금쯤 탐지기가 균열의 등급을 B급에서 S급으로 상향조정 했을 거다.
딱 봐도 마력의 파동이 B급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응?”
수아 역시도 마력의 파동을 느꼈는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곤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나에게 고개를 돌리곤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 저기! 저기! 가야 해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수아의 다급한 모습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수아의 마력 등급이 A급에 도달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지금 이 파동을 느낄 수 없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 S급 최상위에 올라선 나조차도 미세하게 느껴지는 파동을 수아가 느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저기 친구가 있어요! 친구가 아파해요!”
“친구?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친구가 너무 아프데요.”
이게 무슨 말이야? 친구는 또 뭐고 아파한다는 건 또 뭐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수아를 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김 기사 일단 균열 쪽으로 가.”
“네? 하지만…….”
“무슨 일인지만 확인하려고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수아에게 자세히 묻기 위해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수아를 달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아야? 혹시 무슨 말이 들리는 거니?”
“아니에요.”
“그럼?”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알아요.”
도대체 뭘까? 뭐가 수아를 이렇게 슬프게 만드는 걸까?
슬퍼하는 수아를 달래던 잠깐의 시간 동안 차는 어느새 균열이 발생한 곳에 도착했고, 수아가 차 문을 열고 나가려는 걸 본 나는 급히 수아를 말려야 했다.
“아빠가 먼저 나가서 보고 올 테니까 수아는 여기서 기다려 줄래?”
“하지만…… 친구가 아파하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빠가 누구지?”
“마왕?”
“그렇지? 아빠가 수아 친구 괴롭히는 애들 모두 혼내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렴.”
“네에…….”
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김 기사에게 수아를 부탁한 후 차 문을 열고 나갔다.
“다 나와.”
“키엑!”
내 외침에 30여 마리의 고블린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며 울부짖었고, 그에 균열 때문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잘 지켜.”
“키엑!”
내 지시에 차를 둘러싼 고블린들이 그 무엇도 차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후 걸음을 빨리해 균열이 발생한 장소로 급히 향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서현기 팀장?”
“무슨 일로 다시 오셨습니까?”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아! 균열 등급 확인하시려고 오셨습니까? 도련님 말씀대로 정말 S등급의 균열이었습니다.”
서현기 팀장의 말을 들으며 균열이 열린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내 시야에 약간 특이한 존재가 보였다.
“타락한 정령인가?”
“네. 아주 드물게 나오는 정령형 몬스터입니다.”
“홉일아! 죽이지 말고 힘만 좀 빼놔.”
“키익? 켁!”
타락한 정령.
정령형 몬스터로 속성의 색을 지닌 반투명한 일반 정령과 달리 오로지 어둠만을 품은 악령 같은 몬스터였다.
등급은 B등급부터 S등급까지 다양한 편이었는데, 측정 등급보다 강한 축에 드는 몬스터.
지금 내 앞에 있는 놈은 대충 봐도 S급은 되어 보였다.
“정령이라 수아가 그랬던 건가?”
“네?”
“아!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지켜보며 고민을 하던 사이 타락한 정령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홉일이를 무시하고 자꾸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모습.
내 쪽으로 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홉일이를 뚫어내려 하는 정령을 보자 수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친구가 아파한다고 했지? 저놈 저거 설마 수아에게 가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