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어떻게 하지?”
고민이 되었다.
수아를 데려와 봐야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수아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홉일이 저것은 왜 저렇게 힘들어해?
죽이지 않고 힘만 빼놓으라는 말이 난감한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홉일이는 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의 실수로도 정령을 소멸시킬지 몰랐기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정령의 공격을 그대로 허용하는 홉일이.
“야 나와! 내가 할 테니까. 넌 가서 수아나 데려와.”
“키엑?”
마력을 끌어올린 나는 마력을 이용해 정령을 속박해 버린 후 홉일이에게 지시를 내렸고, 홉일이는 대답을 하곤 곧장 모습을 감췄다.
정령을 상대하는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막대한 마력으로 찍어누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일정 수준의 마력을 이용해 정령을 감싸버리기만 하면 정령은 마력을 뚫어내지 못했다.
일반 몬스터의 경우 별 소용이 없었지만, 정령형 몬스터의 경우 마력이 물리력이라도 행사하는지 감옥에 갇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령의 등급보다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지만.
B급 정령이라면 A급의 마력이 필요했고, A급 정령이라면 S급의 마력이 필요했기에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벽을 넘은 후 넘쳐나는 것이 바로 내 마력이었다.
“도련님. 혹시 지금 도련님께서 정령을 붙잡아 두고 있는 건가요?”
“그런데? 왜?”
“대, 대단하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입니까?”
응? 이걸 모른다고?
“이 방법을 몰라?”
“방법이라뇨?”
‘아! 설마 이것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거야?’
내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는 이 방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같은 등급의 몬스터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타락한 대지를 찾는 자들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 방법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정령석은 값이 꽤 나가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등급보다 약한 타락한 대지를 찾는 강자들이 꽤 있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네!”
“아빠!”
수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멀리 고블린들에게 싸여 천천히 이동 중이던 수아가 나를 발견하고는 뛰어와 정령을 보며 크게 외쳤다.
“친구! 아빠 내 친구! 친구 구해줘야 해요!”
정령을 가리키며 친구라 소리친 수아는 갑작스럽게 마력을 끌어올리더니 예의 그 버프를 타락한 정령에게 걸어주기 시작했다.
‘응? 저거 설마?’
정령의 어두웠던 색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하는 걸 발견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무슨?”
마치 정령을 정화해 주는 듯한 모습.
천천히 제 색을 찾아가며 점차 크기를 불려가는 정령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 하!”
이어서 시간이 지나자 정령은 마치 언제 검었냐는 듯 붉은색의 반투명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고, 은은하게 내뿜던 살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며 일반적인 정령으로 돌아온 듯 온화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인가?”
“최, 최상급 정령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커다란 힘을 품고 있을수록 그 크기가 커지는 정령의 특성상 지금 눈앞에 있는 정령의 등급은 분명 최상급 정령이었다.
정화가 되며 크기가 더 커진 정령은 마치 진화를 하듯 크기가 조금 더 불어났는데, 그에 현기를 비롯한 팀원들이 정령을 보며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으로 정령의 위용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제 안 아파?”
우웅-
수아가 정령을 보며 말을 걸자 정령이 긍정을 표하듯 대기를 공명시키며 빙긋 미소를 지으며 수아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내 마력에 막혀 다가오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돌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홉일아 이쪽으로 와!”
홉일이가 내 옆에 다가온 것을 확인한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공격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처리해. 알았지?”
“키엑!”
홉일이의 대답을 들은 나는 마력을 풀어버린 후 수아를 안아 들며 마력으로 나와 수아를 동시에 감싸며 언제든 자리를 피할 준비를 마치고 조용히 정령을 지켜봤다.
“좋아? 나도 좋아!”
마치 정령과 말이 통하는 듯 보이는 수아는 정령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정령은 일정 거리에서 멈춰선 채 수아와 대화하듯 계속해서 웅- 웅- 거리기 시작했다.
“수아야. 아빠에게 설명을 좀 해주겠니?”
“응! 얘가 많이 아파해서 수아가 호! 해줬어요. 그래서 이제 안 아프데요.”
“그, 그렇구나. 수아가 치료해 준 거야?”
“네! 히히-”
대충 타락한 정령을 원래대로 돌려주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얘는 어쩌지?’
보통 정령의 경우 소환 후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가는데, 이 정령의 경우 원래 존재하던 곳이 어비스의 타락한 대지가 틀림없었기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방치할 수도 없고 이걸 어쩌지?
“혹시 수아가 같이 가자고 하면 저 아이가 따라올까?”
“네! 이제부터 수아랑 다니고 싶데요.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수아 친구인데.”
“히히-”
아주 좋은 일꾼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비스에서 생산되는 철을 가공하는 데 이만한 일꾼이 없었으니까.
어철의 경우 지금도 가공이 가능했지만, 앞으로 발견하게 될 새로운 금속들의 경우 녹는점이 지나치게 높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불의 최상급 정령이라면 충분히 가공하고도 남을 거다.
‘잠깐? 이거 수아를 데리고 타락한 대지에 가서 정령들을 대량으로 끌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저…… 도련님.”
“왜 그러시죠?”
“이 일은 보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서요.”
“아! 이 건은 제가 따로 말할 테니까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일은 저희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우와- 저 최상급 정령 처음 봐요!”
“나도!”
정령을 데리고 집에 도착한 나는 할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수아를 아버지에게 보낸 후 정령을 끌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수아를 따라가도록 내버려 둬야 했지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당분간은 현지와 지안 둘에게 감시를 맡길 생각이었다.
“신기하냐?”
“당연하죠. 무려 최상급 정령이잖아요.”
“근데 얘는 어디서 나신 거예요? 설마 아가씨가 소환하신 거예요?”
“소환한 건 아니고. 균열에서 나온 타락한 정령에게 수아가 버프를 걸어주니까 이렇게 변했어.”
“네? 타락한 정령이요?”
현지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나에게 물었다.
“어.”
정령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안과 현지에게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자 둘은 깜짝 놀라며 이상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아가씨는 정령왕인가?”
“그러네? 도련님은 마왕이고 아가씨는 정령왕? 아니 이 경우에는 정령 여왕인가? 아니면 공주?”
“또! 또! 이상한 상상한다.”
“그렇잖아요. 정령을 무더기로 소환하고 타락한 정령을 정화해 주기까지! 거기다 진화도 시켜주잖아요.”
“맞아! 역시 핏줄은 무시할 수 없는 건가?”
둘의 수다를 듣던 나는 한숨을 내 쉰 후 아버지를 뵙기 위해 둘을 내버려 둔 채 자리를 떠났다.
* * *
수아를 품에 안고 계신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기쁜지 밝은 미소를 짓고 계셨다.
“허허! 우리 수아가 아주 착하구나. 친구도 도와주고.”
“아프다고 해서 수아가 호 해줬어요!”
“허허허!”
수아는 아버지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자랑하고 있었다.
“응? 왔느냐?”
“네.”
“그런데 어째서 혼자냐? 그 정령이라는 아이는?”
“일단 어비스로 보냈어요. 계약된 정령이 아닌 자유로운 정령은 저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수아와 계약한 것이 아님에도 수아의 말을 잘 따랐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냐? 언제 한 번 가서 봐야겠구나.”
“그나저나 하실 말씀 있으시다면서요.”
수아의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긴 했지만, 그 외에도 하실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김 실장을 통해 전해 들은 상태였다.
“음-”
“수아야, 하임이가 많이 기다렸단다. 수아랑 놀고 싶어서.”
“정말요?”
“그럼. 수아 방에서 혼자 다크 레이디 보고 있단다.”
“하임이랑 놀래요!”
아버지가 수아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나는 수아를 내보내기로 했다.
수아가 나가고.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이대로 끝내기에는 좀 아쉽지 않더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최강준을 말하는 거다.”
“아!”
아버지 역시 최강준이 바꿔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최강준과 중국에 속았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버린 모양인지 요 며칠 아버지는 바쁘게 어떤 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방법이 있으세요?”
“일단 중국 쪽에는 어비스에서 생산된 자재의 납품을 끊어버릴 생각이다.”
“그리고요?”
어차피 중국이 아니어도 자제를 원하는 자들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독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단다.”
“네. 물어보세요.”
“하루에 소환수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
“음- 확실히 얼마라고는 확답을 드릴 수가 없지만, 대충 천 마리 근처라고 보시면 돼요. 물론 몬스터가 그만큼 있다는 전제하에요. 그런데 그건 왜요?”
지금 내 마력이라면 천여 마리 정도는 거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몬스터 등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평균을 A급으로 잡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중국에 열린 게이트를 전부 틀어막아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게이트를 막아버린다고요?”
“그래.”
좀 힘들 것 같은데?
“아무리 몬스터가 많다고 해도 중국의 힘을 생각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요?”
“그래. 네 말대로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 하지만 중국에 숨어 있는 강자들을 끌어낼 수는 있지 않겠느냐?”
“아!”
중국을 지배하는 그 종교에 대한 조사는 지금 완전히 막혀 버린 상태였다.
최강준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들의 지부를 감시하던 정보팀이 그들이 사라졌음을 알려왔기에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거기다 사로잡은 중국놈들에게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지독한 고문에 괴로워하던 녀석들이 어느 순간부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더니 일정 시간이 지나고 전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할지 도저히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 한번 해 보죠.”
“할 수 있겠느냐?”
“천 마리로 안 되면 2천을 그것도 안 되면 4천을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될 때까지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겠죠.”
요즘 뭐랄까? 의욕이 없었다.
최강준을 놓친 후부터 뭔가 의욕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아 요즘 좀 방황 중이었다.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가슴이 허하다고 해야 할까?
그냥 그런 상태였는데, 아버지의 계획을 듣자 다시 의욕이 샘솟는 것 같았다.
“그럼 우선 중국 게이트의 위치부터 확인해 두어야 하겠구나.”
“아뇨. 그것도 저한테 맡겨 주세요.”
“그것까지?”
“네. 대신 당분간 수아를 좀 부탁드려요. 제가 좀 바쁠 것 같거든요.”
“그건 걱정하지 말 거라.”
중국에 열린 게이트의 위치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총 5곳이었지만, 모두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소가 바뀌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오랜만에 바쁘겠는데?’
* * *
“잘 들어. 지금부터 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모든 몬스터를 잡아서 나에게 데려와. 죽이지 말고 살려서 데려와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네!”
유명의 길드원 백여 명과 소환수 천여 마리, 마지막으로 임프들까지 전부 끌고 온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처음 보는 몬스터를 발견하면 나설 생각하지 말고 곧바로 빠져. 들키면 곧바로 신호탄 발사하고. 그럼 이쪽에서 바로 출발할 테니까.”
“네!”
지금 우리 일행은 유명시에서 북쪽으로 수백 킬로의 거리를 이동해 온 상태였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모두 내 휘하로 만들어 버리며 이동한 우리 일행이 도착한 이곳은 미래에 죽음의 땅이라 불리게 되는 곳이었다.
땅을 넓히기 위해 끝없이 전진하던 인류를 물러서게 만든 결정적인 장소.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넘쳐날 뿐 아니라 간간이 악마종까지 출현했기 때문에 인류는 결국 전진을 포기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것도 천 킬로가 넘어갈 정도로 멀리 말이다.
악마종이라는 것이 처음 발견된 곳.
S급을 포함한 수천의 각성자가 죽어 나갔고, 두려움에 질린 인류는 물러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발견된 악마종은 공포 그 자체였으니까.
홀로 수천의 각성자를 죽여 버린 악마종은 겁에 질려 도주하는 각성자들을 뒤쫓으며 계속해서 살육을 벌였다.
10강이라 불리던 자들 셋이 모이고 나서야 겨우 처리했을 정도로 그때의 악마종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까 니안이 그때의 악마종하고 좀 닮은 것 같네?
그 괴물이 리자드맨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아 니안을 슬쩍 바라본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니안은 정말 게을렀으니까.
내가 부르지 않으면 미동조차 하지 않는 니안.
그런 니안이 수백 킬로란 거리를 뒤쫓으며 인류를 학살했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거기다 니안을 발견한 장소 역시도 이곳과 많이 떨어져 있었고.
“너희들은 각자 맡은 조와 거리를 벌리고 따라다녀. 너무 가까이 붙으면 몬스터들이 도망가니까.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악마종들을 보던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출발해! 왕눈이 너하고 하임은 나랑 같이 있고.”
솔직히 나도 무서웠다.
전생에 하도 이곳에 대한 흉악한 소문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살짝 겁이 난 나는 왕눈이를 옆에 붙여두기로 했다.
“저도 가요?”
“당연하지. 너도 얘들처럼 뒤에서 따라다녀. 너 때문에 몬스터들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뭐라고요!”
현지가 화를 냈지만, 이 말은 진심이었다.
현지를 바라보는 악마종들의 눈은 동류를 바라보는 눈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