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214)

삐이잉~ 펑!

멀리 붉은색의 신호탄이 쏘아진 걸 발견한 나는 왕눈이를 보며 곧장 소리쳤다.

“죽여!”

내 외침에 하늘 높이 떠오른 왕눈이는 신호탄이 쏘아진 방향을 잠시 주시한 후 수십 발의 레이저를 발사했다.

지이잉-

멀리 뻗어 나가는 레이저 줄기들을 보던 나는 아깝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처리한 악마종의 수가 벌써 네 마리째였으니까.

현지가 오기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악마종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무전만 됐어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어비스에서는 기존의 통신장비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통신장비가 나오기 전까지는.

“처리했어?”

-긍정

“등급은?”

-하급

이번에도 고일이들 차지가 되겠네?

악마석을 먹는다고 모두 급격한 성장을 하는 건 아니었다.

확인결과 자신보다 등급이 낮은 악마종의 악마석을 복용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얻은 악마석은 최하급의 악마석이었다.

그 악마석을 정확히 나누어 내 악마종에게 복용시켜 본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고일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장을 하지 않은 것 같았기에 두 번째로 얻은 하급의 악마석을 전부 뚱이에게 먹여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세 번째로 얻은 악마석을 이용해 실험을 해봤는데, 하급의 악마석을 먹은 고일이들이 가장 많이 성장했고, 홉일이가 두 번째로 많은 성장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거의 성장을 하지 않았고.

같은 등급이거나 높은 등급이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왕눈이가 여기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급의 악마석이 필요하다는 말이었기에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일이들 아니면 미호에게 주면 되겠네. 그나저나 언제 만 마리를 모으냐? 응?”

혼잣말을 내뱉던 그때 주변에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 도착한 건가?’

이어서 지름 5m 정도 되는 커다란 구멍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너편을 비추기 시작했고, 그 안에 미호를 안고 있는 현지와 펜릴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미소를 지으며 셋을 맞이했다.

“저희 왔어요!”

미호의 능력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에만 게이트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딱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나.

기억 속에 없더라도 내가 있는 장소 주변에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드디어 왔냐?”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끼웅!”

현지의 품에서 나와 나에게 파고드는 미호를 보던 나는 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안 힘들지?”

전혀 힘든 것 같지 않은 현지의 표정에 조심스레 입을 열자.

“네. 힘들진 않아요.”

그나마 다행이네.

현지에게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설명한 나는 곧바로 현지를 투입했다.

고생한 현지에겐 미안했지만, 악마종이라는 특수한 종을 얻을 기회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이제야 악마종의 숫자를 늘릴 수 있겠네.

* * *

“야! 네가 이러면 어쩌냐?”

“저도 어쩔 수 없었다고요. 까딱 잘못했다가는 제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해요.”

현지가 도착한 후 처음으로 발견된 악마종은 중급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악마종은 지금 내 앞에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목이 사라져 버린 채로.

기척을 최대한 숨긴 현지가 있는 조에 나타난 녀석은 곧바로 현지와 격돌했고 순식간에 결판이 나 버렸다.

현지의 말대로라면 현지 자신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녀석은 니안과 생김새가 살짝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

“네? 왜요?”

“아! 아니야.”

리자드맨과 흡사한 모습의 악마종.

전생에 인류를 물러나게 했던 그놈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네.”

주변을 슬쩍 돌아보자 역시나 중급의 악마석을 노리고 있는 소환수들이 보였다.

전과 다르게 뚱이도 욕심이 나는지 내 눈치를 살피며 아주 조금씩 녀석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전부 멈춰! 이놈 내가 잡은 거야!”

현지가 그 모습을 발견하곤 크게 외치며 내 소환수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뀨! 뀨우?”

그에 하임이 현지에게 달려가 다리에 찰싹 달라붙더니 애교를 살살 피우기 시작했다.

“너, 너는 조금 줄게.”

“뀨!”

현지의 말이 떨어지자 기뻐하는 하임과 현지에게 다가가는 악마종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허! 저놈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지들이 하임의 애교를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현지를 협박하는 것 같은 모양새의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당연하게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현지야. 너 그거 어차피 네 부하 줄 거잖아.”

“그렇죠?”

“그럼 그냥 저건 재들 줘라. 네 부하 줄 거 있으니까.”

“정말요?”

“그래.”

“네. 알았어요.”

그제야 악마종의 시체에서 물러나는 현지였다.

“오늘은 좀 쉬자.”

“네!”

“너도 좀 쉬어. 미호야, 유명시로 향하는 게이트 좀 열어줄래?”

“끼웅!”

내 부탁에 곧장 유명시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어버린 미호를 보던 나는 현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 잠깐 지구에 다녀올 건데 넌 어쩔래?”

“저도 따라가도 돼요?”

“어. 뭐 금방 다시 돌아올 거긴 하지만.”

“그럼 저도 갈게요. 솔직히 좀 씻고 싶거든요.”

“너희들은?”

“저희는 이곳에 있겠습니다!”

길드원들을 보며 묻자 그들은 이곳에 남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긴 이런 기회가 흔치 않겠지.’

그들은 하임이 계속해서 구해오는 작물들과 과일들에 눈이 멀어 버렸으니까.

마력을 높여주는 작물과 과일들.

나나 현지의 경우 워낙 마력의 양이 많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는 저 작물과 과일은 먹을 때마다 마력을 아주 조금씩 늘려주었다.

시중에서 파는 영약에 비하면 정말 별것 아닌 정도의 마력을 높여주었지만, 저것들은 특이하게도 내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먹을 때마다 일정 수준의 마력을 계속해서 늘려주었기에 길드원들이 절대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양이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수북이 쌓여 있지만, 얼마 못 가서 저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겠지.

“하임아. 너는 여기서 저것들 좀 더 구해와.”

“뀨! 뀨뀨!”

임프들을 모으는 하임을 보던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려 게이트를 통과했다.

* * *

집에 돌아온 나는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곧장 제한구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지배한 몬스터의 수가 적었기에 제한구역에 존재하는 몬스터도 길들일 생각으로.

“이게 전부야?”

“네. 총 1320마리입니다. 좀 적죠?”

“생각보다 많은데?”

제한구역을 정리하는 지안과 현태에게 몬스터를 잡아두라며 임프를 보낸 게 바로 어제였다.

단 하루 만에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라면 결코 적은 게 아니었다.

“몬스터의 수야 좀 되지만, 급이 너무 낮잖아요.”

“아니. 딱 좋아.”

“네?”

지금껏 길들인 몬스터들 대부분이 상위급의 몬스터였기에 하위급의 몬스터가 많이 필요했다.

중국의 게이트를 막아설 몬스터들.

게이트 주변에 존재하는 몬스터들 대부분은 하위급의 몬스터인데 상위급의 몬스터만 몰려든다면 중국은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물론 중국의 게이트에만 몬스터가 몰린다는 것으로도 나를 의심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의 의심으로 시비를 걸지는 않을 거다.

거기다 중국의 게이트에만 몬스터를 보낼 것도 아니었고.

“괜찮다고. 낮은 등급도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많이 모아줘.”

“네.”

“그럼 시작해 볼까?”

몬스터를 지배하기 위해 균열을 열어버린 나는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환수들에게 몬스터들을 꺼내 내 균열에 던져 넣으라 명령하곤 지안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정리하는 건 어때?”

“큰 문제는 없어요. 몬스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최강준이 제한구역을 정리했기에 몬스터의 수가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놈은 제한구역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그냥 게이트로 향했을 뿐이니까.

몬스터들을 정리하며 올라간 것이 아니라 게이트로 향하며 길을 막아서는 몬스터만 처리했다는 말이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줘. 일단 한번 정리가 끝나면 이곳에도 탐지기를 설치해서 균열을 없애버릴 거니까.”

“그런데 어째서 게이트 위쪽은 정리하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거긴 임프들 동원해서 장벽을 쌓아버릴 거거든.”

게이트 북쪽을 정리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셨다.

중국이 한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제한구역이 한국과 이어진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상의 길이 있긴 했지만, 그 경우 잘못했다간 자신들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폭발해 버리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거길 전부요?”

“좀 길긴 하지?”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해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아. 하임이나 임프들도 성정을 많이 했으니까.”

하임만 강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하임이 강해짐에 따라 하임에게 속한 임프들 역시 천천히 성장 중이었다.

특히 하임과 같은 시기에 지배된 임프들은 전과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는데, 지금 내 주변에 앉아 맛있게 과일을 먹고 있는 임프들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크기였던 임프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 크기와 피부색이 다 제각각이었다.

이상하게 강해질수록 작아지는 녀석들.

마치 하임처럼 크기가 점점 작아지며 피부의 색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기에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설마 쟤들이 전부 다 하임처럼 변하는 건 아니겠죠?”

“왜 무서워?”

“당연하죠. 얘들이 전부 하임처럼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요.”

“그렇긴 하네. 그나저나 현태 이놈은 왜 코빼기도 안 보여?”

“킥킥킥.”

“왜 웃어.”

현태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지안.

“저 때문이거든요.”

“너? 네가 왜”

“자존심이 많이 상했거든요. 제가 자기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걸 안 후부터 장난 아니에요.”

“뭐가 장난 아닌데?”

“강해지기 위한 노력이요. 소환수도 안 데리고 혼자 다니면서 강한 몬스터들만 찾아다니고 있거든요. 덕분에 현태 씨 팀원들이 소환수를 이끌고 있고요.”

지안의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지안과 홉일이의 대련을 지켜본 현태는 큰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네.’

현태가 A급 상위에 올라있을 무렵 지안은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지안이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만에 자신을 넘어섰을 뿐 아니라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을 거다.

“그래서 강해지고 있긴 해?”

“물론이죠. 아마 조금 있으면 S급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던데요?”

“정말?”

현태가 벌써 S급의 벽을 넘는다고?

일반 S급 각성자와 세계랭커를 나누는 기준이 바로 벽을 넘느냐 못 넘느냐였다.

상급과 최상급을 나누는 기준, 그것이 바로 벽이었다.

재능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에 올라선 자들 앞에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벽.

물론 재능에 따라 벽의 높낮이가 다르긴 했지만, 이 벽이란 것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느냐 벗어나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제한선이었다.

“명철 아저씨를 넘어섰다는 말이네?”

“당연하죠. 매일 과천과 이곳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정도는 돼야죠.”

“과천을 다녀온다고? 왜?”

“그야 수아 아가씨에게 버프를 받기 위해서죠.”

‘요놈 봐라?’

나에게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놈이 수아에게 매일 달려간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너는 어때?”

“현태 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 역시 계속해서 강해지는 중이랍니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앞으로 현태가 지안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안뿐 아니라 현지 역시도 한계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벽에 막힌 것 같으면서도 금방 벽을 넘어서 버리는 둘의 재능은 일반적인 천재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 * *

“준비는 끝마쳤느냐?”

“네. 이제 출발만 하면 돼요.”

총 1만 2천의 몬스터들이 유명시의 장벽 너머에 집결해 있는 상태였다.

요놈들을 지배하는 데 걸린 기간이 한 달이었다.

처음 빠르게 몬스터를 지배하던 나는 악마종들 때문에 한 번 막혔지만, 현지가 복귀한 후 다시 빠른 속도로 몬스터를 모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점차 넓게 퍼져가는 길드원들 때문에 사로잡은 몬스터를 데리고 복귀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문제는 미호가 해결해 주었다.

악마석을 복용하며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올라선 미호는 꼬리가 하나 더 늘어났고, 게이트 역시 동시에 두 곳을 열어둘 수 있게 되면서 복귀하는 시간을 급속도로 단축해 주었다.

“그럼 출발하려무나. 몸조심하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대충 배치만 해 두고 저는 빠질 생각이거든요.”

“그래도 조심하거라. 수아는 걱정하지 말고.”

“네. 그럼 다녀올게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어비스로 향하는 게이트를 통과한 나는 곧장 소환수들에게 향했다.

장벽에 올라선 내 시야에 1만 2천이라는 엄청난 수의 소환수들이 마치 군인처럼 정렬해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앞쪽 줄부터 점차 크기를 키워가는 녀석들은 잘 훈련된 정병을 보는 듯했고, 맨 앞에 대표로 나와 있는 두 마리의 악마종은 자기들이 마치 장군이라도 되는 듯 그들을 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지배하게 된 녀석들로 둘 다 하급의 악마종이었다.

체구가 3M 정도 되는 사마귀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녀석과 길이가 30m를 가볍게 넘어가는 칠흑의 비늘을 가진 거대한 뱀.

마귀와 스카였다.

사마귀를 줄여 마귀,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스카라는 소리를 내뱉어 스카가 된 두 녀석은 왕눈이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었다.

“출발할까?”

이번 출정은 이미 드러난 악마종들이 아닌 이 두 녀석이 지휘할 예정이었다.

“진짜 장관이네요. 몬스터 군단이라니…….”

“미호야 게이트를 열어주겠니?”

“끼웅!”

미호의 꼬리 중 하나가 흔들거리며 스카와 마귀의 앞에 거대한 두 개의 게이트가 열렸고.

“출발해.”

내가 입을 열자 녀석들은 곧장 그 안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둘을 따라 순서대로 게이트 속으로 사라지는 소환수 군단을 보던 나는 조금 있으면 시작될 반격에 살짝 흥분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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