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214)

“생각보다 많이 진행되었네.”

“네. 이제 5분의 1 정도 진행된 상태에요.”

하임은 지금 임프들을 이끌고 제한구역에 장벽을 건설 중이었다.

유명시의 장벽에 비해 낮은 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길이가 길이였으니까.

일직선으로 쭉 뻗은 수백 킬로 길이의 장벽.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었지만, 높이나 강도를 비교해 보면 만리장성은 애들 장난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약 70m 정도의 높이와 10m를 넘어서는 두께.

일직선으로 우뚝 솟은 긴 장벽은 그 어떤 적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거 완성되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십 년이 넘게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아서인지 장벽 위에서 보는 경치가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자연 그대로의 몬스터도 구경이 가능할 듯싶었기에 이곳을 공개한다면 전 세계에서 관광을 원하는 자들이 몰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들의 먹이를 팔고 직접 먹이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한번 만들어 봐?

소환수들을 일반 몬스터로 위장시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이제 거의 끝나가요. 숨어든 것들만 처리하면 되거든요.”

“하임이는 말 잘 들어?”

“말도 마세요.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한 대 쥐어 박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조금만 더 고생해. 그나저나 현태는 어디 갔어? 이제 거의 정리 됐다면서?”

오랜만에 현태 얼굴이나 볼까 했지만,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못 들으셨어요?”

“뭘?”

“현태 씨 러시아 갔어요.”

“거긴 뭐하러?”

“여기는 몬스터가 거의 사라졌잖아요. 강한 몬스터를 찾아 떠난 거죠.”

“거기까지 뭐하러? 어비스로 가면 될걸.”

“거긴 위험하다나 뭐라나.”

‘허, 요놈 봐라.’

어비스는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하다는 걸 알긴 아는 모양인지 자기 수준에 맞는 곳을 찾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소환수들 데리고 다니면 될 텐데 뭐하러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그럼 위기감이 줄어서 안 된다던데요?”

“그런 놈이 어비스를 마다한다고?”

어비스의 마력에 적응해 그 마력을 받아들이면 순식간에 강해질 텐데 뭐하러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건 당연한 거나 마찬가진가?

“그럼 수고해. 나는 다시 가봐야겠네.”

“벌써요?”

“어차피 내가 여기서 할 것도 없잖아.”

“그렇긴 하네요. 저도 곧 여기 일 마무리 지은 후 바로 합류할게요.”

“그래. 아! 내 소환수들은 그대로 놔둬. 혹시 모르니까.”

“네!”

* * *

“거봐 내 말이 맞지.”

“정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네요?”

베이징의 게이트를 토벌하기 위해 약 이천여 명 정도의 각성자가 튀어나왔고 그들을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3인이 지금 마귀를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어두운 마력을 뿜어내면서.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마귀가 아무리 하급이라고 해도 악마종이었다.

그런 악마종을 몰아붙인다는 건 적어도 저들이 세계랭커에 근접해 있거나 동급이라는 소리였으니까.

마귀 정도면 10강이라 불리는 자 중 하나를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런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그러니까요. 저 3명이면 저번에 만났던 어쌔신마스터도 상대가 가능할 것 같은데 왜 지금껏 당하고만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너는 어때?”

“저요? 저야 뭐 저런 것들 10명이 달려들어도 문제없죠.”

“확실해?”

“당연하죠. 딱 보면 모르세요? 저 사마귀 제가 잡아 왔어요.”

현지가 마귀를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길게 잡아도 3초를 넘지 않았다.

물론 기습을 한 효과도 있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기습도 현지의 능력 중 하나였다.

“그렇네?”

“솔직히 저 사마귀나 그 뱀이 홉일이 수준은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같은 하급이었지만, 힘의 차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했다.

홉일이 역시도 하급이었지만, 마귀는 홉일이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샌드백 신세를 면치 못했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으니까.

“이제 슬슬 물러나게 해 볼까?”

“벌써요? 좀 더 보시죠?”

“뭐하러? 그러다 내 소환수들 전부 죽으면 어쩌라고.”

“그럼 저는 슬프게도 당분간은 도련님 곁을 지키지 못하겠네요. 흑-”

무표정한 얼굴로 우는 소리를 내는 현지를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쉰 후 내 소환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만 물러나라고.

“부탁할게. 너에게 우리 유명의 명운이 달려있어.”

“풋!”

내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현지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현지에게 이어서 말했다.

“맞장구를 쳐 줘도 문제네 진짜. 하여간 부탁할게. 고생 좀 해줘.”

“네! 그럼 저는 이만!”

순식간에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는 현지에게서 고개를 돌려 천천히 물러나는 내 소환수들을 시야에 담았다.

‘천 마리 조금 안 되네?’

중국 쪽 각성자들이 게이트를 통과하고 겨우 30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내 소환수 중 500이 넘는 수가 쓰러져 있었다.

물론 중국 쪽의 각성자들 역시 피해를 보았지만 내 몬스터에 비하면 별것 아닌 수준이었다.

저 세 놈을 제외하고도 놈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단 말이야?

“미호야 가자.”

“끼웅!”

내 소환수들이 완전히 물러난 걸 확인한 나는 미호가 연 게이트를 통해 임시거처로 이동했다.

“아!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상하이 쪽 게이트에 도련님이 말씀하신 녀석들이 나타났습니다.”

“근데 그게 왜?”

“스카가 위험합니다.”

“뭐?”

스카가 위험하다는 말은 베이징 쪽에 나타났던 그 단체의 각성자들의 수가 더 많거나 강하다는 걸 의미했다.

“미호야 2번 게이트 열어!”

내 다급함에 미호는 곧장 게이트를 열어버렸고 나는 급히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를 통과한 나는 곧장 상하이의 게이트가 열린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잠시 후 스카가 4명의 각성자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거 정말 위험한데?’

스카의 긴 몸체가 검붉은 피로 뒤 덥혀 있었는데, 정말 위험해 보였다.

최후의 발악을 하듯 마구잡이로 녀석들을 공격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마귀와 다르게 스카는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등을 보이는 순간 숨이 끊겨 버릴 테니까.

“미호야 너 이번에 새롭게 얻은 능력 있지. 그거 좀 사용해서 스카 좀 도와줘.”

“끼웅!”

악마석을 복용하면서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올라선 미호는 꼬리가 하나 늘어나며 새로운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환영을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능력.

일정 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환영을 보여주는 이 능력은 놀랍게도 물리력까지 행사했다.

새롭게 생겨난 미호의 네 번째 꼬리가 살랑살랑 춤을 추자 스카가 순식간에 셋으로 불어나 버리며 놈들을 당황하게 했고, 이어서 녀석들은 세 마리의 스카를 상대로 고전을 하기 시작했다.

저 환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환영의 힘이 달라지는데, 그 사실을 아는 나는 저들이 저 환영을 스카와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저들은 저 능력이 스카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스카의 수가 불어나는 순간에도 스카를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마력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이게 바로 내가 미호의 새로운 능력을 무섭다 표현한 이유였다.

마력이라도 느껴지면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디서도 마력이 감지되지 않기에 환영이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했어, 미호야.”

“끼웅! 끼웅!”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주변을 뛰어다니는 미호를 보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했다.

‘저놈들을 처리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물러서는 게 좋을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스카는 이제 반대로 녀석들을 몰아붙였고, 이어서 상처까지 치료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좀 더 괴롭혀 볼까?’

이미 다른 놈들에게 현지를 붙였기에 저놈들은 필요가 없었다.

“미호야 너도 싸워볼래?”

“끼웅?”

마치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 같은 미호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여주자 미호가 당장이라도 스카에게 합류하려는 자세를 잡았다.

“죽이지는 말고 살려서 데려와. 알았지?”

“끼웅!”

대답과 함께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춘 미호.

잠시 후 셋이었던 스카가 넷으로 불어났다.

새롭게 생겨난 또 하나의 스카. 바로 미호였다.

환영술을 이용해 스카로 변한 미호는 다른 스카들과는 달랐다.

입에서 커다란 푸른 불덩이를 수십 발씩 발사했고, 푸른 뇌전으로 온몸을 감싼 채 녀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겨우 버티던 녀석들은 미호가 합류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도주할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미호는 그들이 도망치려는 걸 알아차렸음에도 바로 그들을 끝내지 않고 더 놀고 싶은 모양인지 그들을 계속해서 괴롭혔다.

갑작스럽게 녀석들의 뒤를 막아버리는 거대한 장벽이 솟아오르거나 바닥에서 그림자가 솟구치며 녀석들을 묶기 시작했기에 도주는커녕 계속해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크합!”

그때였다.

그림자에 묶인 채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던 녀석이 갑자기 고함을 내지르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수준의 마력을 분출하기 시작했고, 그걸 본 나는 어떤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최강준이 도주할 때 보여주었던 기술.

몸속의 마력을 충돌시켜 마력을 증폭시키는 현지의 기술과 언뜻 비슷해 보이는 기술.

녀석은 한순간에 자신을 묶고 있던 그림자를 벗어나 미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지금껏 보였던 속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빠른 속도.

하지만 놈의 돌진에도 미호는 오히려 즐거운 모양이었다.

스카로 변한 미호의 눈이 반달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미호는 놈을 보며 눈웃음치며 수십 발의 푸른 불덩이를 내뱉었는데, 미호를 향해 치고 나가던 녀석은 자신의 마력을 믿는지 푸른 화염구들을 보면서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안 될 텐데?’

콰과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들린 후 녀석이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호의 공격은 마력의 방어를 무시하기 때문에 마력을 이용해 몸을 보호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걸 모르는 그는 결국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하나 죽었네? 하나 정도는 뭐 그냥 넘어갈까?’

미호 역시도 결과가 이렇게 나올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살짝 당황한 모양이었다.

살려서 데려오라는 내 명령 때문에.

‘현지와는 많이 다르단다. 미호야.’

현지는 하급에 올라선 미호의 공격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일정 수준에 오르면 항마력이라는 것이 생기는 모양인지 현지뿐 아니라 뚱이나 니안, 하임까지도 미호의 공격에 고통스러워하긴 했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물론 펜릴 정도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

“@%#!”

중국놈들 중 하나가 크게 소리치자 나머지 두 명이 그에 대답하곤 방금 사라진 녀석과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

셋 모두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냥 보내줄 미호가 아니었다.

세 줄기의 뇌전이 그대로 녀석들에게 쏘아져 나갔고 그 모습을 확인한 녀석들은 어떻게든 뇌전을 피하려 했지만, 자신들의 그림자에 발목을 잡힌 채 뇌전에 적중당해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나저나 미호는 하급인데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넷 모두를 미호 혼자서 거뜬히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미호는 강했다.

아니, 저런 놈들이 열이 있어도 미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기에 어이가 없었다.

‘홉일이보다도 강한 거 아니야 이거?’

* * *

“끼웅! 끼웅!”

기절한 셋을 데려온 미호가 칭찬해 달라며 나를 재촉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잘했어 미호야.”

“끼웅!”

미호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고, 그 모습을 잠시 보며 미소를 짓던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셋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마력이 사라지지 않고 있네?”

기절했음에도 녀석들은 여전히 예의 그 어두운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독특하네? 음-”

녀석들을 살펴본 나는 놈들이 사용한 기술이 현지의 기술과는 다르다는 걸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놈들의 마력은 양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질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뭐랄까? 좀 더 흉악해졌다고 할까?

“일단 갈까?”

내 말에 곧장 게이트를 여는 미호를 보던 나는 스카에게 계속해서 게이트를 막으라 전한 후 임시거처로 이동했다.

실패한 걸 안 녀석들이 지금보다 더욱 강한 놈들을 보낼지도 몰랐으니까.

이 기회에 녀석들의 전력을 최대한 깎아 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오셨습니까.”

“어. 일단 저놈들 좀 데려와.”

“네!”

길드원들이 내 지시에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 놈들을 끌고 오는 걸 확인한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그놈들 제대로 제압해놔. 혹시 모르니까 팔, 다리 모두 부숴놓고.”

“네.”

그 마력독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그랬다면 녀석들이 이상한 수법을 사용해 자살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깝네.

서창렬은 녀석들이 마력을 이용해 고통을 차단한 후 자살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남겼다.

그래서 마력을 전부 없애버리면 녀석들이 자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에 어떻게서든 마력독을 구해보려 했지만,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좀 있다가 걔들 데려갈 보낼 테니까 그때까지 잘 감시하고 있어.”

“그 전에 깨어나면 어떻게 할까요?”

“다시 기절시켜. 이상한 짓 할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곧인가?

아마 내일 유명시를 대중들에게 공개할 거다.

“아! 그리고 좀 있으면 이리로 베이징 쪽 게이트 막던 애들 도착할 거니까 바로 보내 미호 여기다 두고 갈 테니까.”

“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고생 좀 해줘. 이번 일 끝나면 아버지께 말해서 특별수당이라도 잔뜩 챙겨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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